178화 50장. 또 다른 세상 Earth
1.
창수와 송연희는 공간 이동 마법과 비행정을 사용해 하루 만에 카트만두 인근에서 조선으로 돌아왔다. 물론, 테라로 진입하는 통로를 지키고 있던 경비 골렘을 챙긴 후에.
“앙! 모르겠어요! 하나도 모르겠어요!”
“차이가 크게 나는 거야?”
“차이 정도가 아니에요! 완전히 다른 골렘이에요!”
창수의 예상이 맞았다. 세피아의 마도공학 연구소에서 확보한 골렘 제작 기술과 경비 골렘 구조에 큰 차이가 있었다.
경비 골렘을 정밀 검사 한 송연희는 생소한 구동 방식에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마치 공부한 범위 밖에서 시험문제가 나왔을 때 나타나는 패닉 반응을 보는 듯하다.
“세피아가 최신 기술을 숨긴 것이 분명해.”
“맞아요. 얄미운 언니예요. 어제 하루 종일 연구실에 가서 샅샅이 뒤졌는데 아무것도 없었어요.”
“너무 속상해하지 마. 시간을 두고 연구하면, 최신 기술을 알아낼 수 있을 거야.”
“에공. 골렘 연구를 처음부터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요.”
“나쁘게만 생각할 건 아니야. 이 골렘을 지구에서 가져온 재료로 개조하면, 돌쇠보다 더 강한 녀석이 될 거야.”
“어머! 그러네요! 세피아 언니가 테라에 가져간 골렘보다 몇 배 강한 골렘으로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고민하던 송연희가 창수의 조언을 듣고 급히 반색했다. 경비 골렘을 강력한 골렘으로 개조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송연희는 창수가 지구에서 가져온 99.999994% 초고순도 은과 첨단 재료를 투입해 돌쇠의 성능을 5배 향상했다.
돌쇠 전투력의 80% 수준인 경비 골렘을 강화하면, 이론적으로 돌쇠보다 4배 강한 골렘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이 골렘은 세피아가 테라로 돌아가면서 보유했던 골렘 5대와 유사한 전투력을 가진다. 힘이 하나에 집중된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세피아가 가진 전력보다 강할 가능성도 있다.
“일단, 이 녀석 개조하면서 기술을 습득해. 너에게는 많은 시간이 남아 있으니, 서두를 필요는 없어. 나는 지구로 가서 더 좋은 재료가 있는지 알아볼게.”
“알았어요, 아저씨. 그리고 정말 고마워요.”
테라에서 혼원구로 도피한 아카데미 학생 12명은 특수한 마법 시술을 받았다. 몸이 성장하지 않는 대신 1,000년 수명을 가지는 비술.
테라의 마법 지식을 집대성한 공화국연합 아카데미에서 보유한 마법으로, 발동하는 데 웬만한 국가 예산 1년 치가 소모된다.
황제 사이퍼스를 저지할 수 있는 힘을 기르려면, 장기간이 걸릴 것이 분명하다. 아카데미 수뇌부는 선발한 학생들에게 미래를 걸고, 비술을 사용했다.
송연희에게는 580년이 넘는 삶이 남아 있다. 골렘을 개조하고 세피아가 남긴 마도공학 기술을 익혀 가면, 언젠가는 제국 병력을 물리칠 골렘을 만들 수 있을 거다.
창수는 그 시간이 앞당겨질 수 있도록 도우려 했다.
창수의 마음 씀씀이를 알아보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송연희.
* * *
송연희가 경비 골렘 업그레이드에 몰두하는 동안, 창수는 선양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사탕수수 수확, 암브로시아 생산 점검, 녹색마탑과 공동 진행 중인 작물 생산량 증가 연구 등… 여러 가지 업무를 처리했다.
요택에서 수확한 사탕수수 물량이 예상보다 많아서, 굳이 명나라에서 수입할 필요가 없게 됐다.
암브로시아 판매는 명나라를 중심으로 가파르게 상승했고, 작물 증산 연구도 일부나마, 결실을 봤다.
창수는 요택을 추가로 개발해 시범적으로 작물을 재배하는 계획을 수립한 뒤, 마법사 고사누에게 실무를 위임했다.
츠네에게는 일본 군부 움직임을 계속해서 살펴보라고 지시했으며, 관시엔에게 3개월간 휴가를 줬다.
그리고 지구로 가져갈 마법진과 마법물품을 챙긴 후, 조선 한양으로 이동했다.
창수가 북한산 통로를 거쳐 서울로 넘어간 것은 12월 15일. 이어서 다음 날 태국으로 날아가 김근홍을 만났다.
“창수야! 어디 갔다가 이제 오는 거야!?”
“12월에 돌아온다고 하지 않았나요?”
“오늘 16일이야. 네가 2주 전에는 올 거라고 생각했었어. 기다리다가 목 빠지는 줄 알았다.”
5개월 만에 만난 김근홍은 얼굴이 반쪽이다. 그동안 격무에 시달린 것이 역력한 모습.
그리고 김근홍의 입에서 볼멘소리가 나왔다. 창수와 연락할 수 없어 애가 탄 모양이다.
“생산 시설 준비로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렸습니다. 이번에 암브로시아 공장을 20개 더 세울 수 있고, 버닝스톤 공장도 10개 더 만들 수 있습니다.”
“버닝스톤 공장 10개!? 엄청나구나! 늦은 이유가 있었어!”
사실 창수도 12월 초에 태국을 방문하려 했다. 하지만 평행우주 너머 혼원구에서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났다.
특히, 골렘 업그레이드에 관련된 일이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서, 부득이 2주 정도 늦게 김근홍을 만난 거다.
창수는 심기가 뒤틀린 김근홍에게 억지로 변명을 만들어 말하는 대신, 가져온 성과를 들이밀었다.
암브로시아 공장과 버닝스톤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서 세계 각국이 치열한 로비를 하고 있다.
인도에 버닝스톤 공장 2개를 건설하는 조건으로 서울보다 면적이 넓은 리틀 안다만을 받은 건, 더 이상 파격적인 거래가 아니다.
다수 국가에서 버닝스톤 공장 하나만 세워도, 1,000㎢가 넘어가는 토지를 주겠다고 역제안을 하는 상황. 버닝스톤 공장 10개는 김근홍의 국제적 협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김근홍은 창수가 예상보다 늦게 온 것을 이해했다. 아니, 오히려 잘한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한번 할 때 확실히 해야죠. 그건 그렇고, 선배님 얼굴에 피곤이 쌓였네요.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말도 마라. 우리가 인수한 일본 기업 때문에 아우성이야.”
“예? 인수 대금 모두 지급했는데, 문제 될 게 있나요?”
“구조 조정 하면서 부라쿠민 중용한 걸 걸고넘어지고 있어.”
창수와 김근홍은 일본을 금융 위기로 몰아넣은 뒤, 일본 기업 65개를 헐값에 쓸어 담았다.
그중에 타요타 자동차, 하드뱅크, 파낙과 같은 일본을 대표하는 알짜 기업이 다수 포함돼 있다.
65개 기업에서 극우 성향을 가진 자들을 모두 퇴출하고, 일본에서 차별받았던 사람들을 그 자리에 앉혔다. 이것이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준 거다.
일본인들은 뿌리 깊은 계급의식이 있다. 부라쿠민을 불가촉천민으로 여기며, 멸시하고 있다.
그런데 오백세건강이 인수한 기업에서 부라쿠민이 승승장구하자, 자신들의 신분이 격하된 것이라 여기게 된 거다.
일부는 몰락한 일본의 현실에 순응했으나, 견디지 못하고 반발한 세력이 있었다.
“이미 예상한 것 아닌가요? 구조 조정을 못 받아들이겠다면, 회사와 사업부 자체를 해체하고, 오백세건강 직계로 통폐합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고 있어. 하지만 문제는 일본 정부가 직접 나섰다는 거야.”
“일본 정부가요? 아직 정신 못 차렸나 보죠?”
“그런 것도 있고. 우리 방식으로 구조 조정이 진행되면, 일본 사회가 뿌리부터 무너진다는 위기감을 느낀 거지. 일본 총리가 너를 만나고 싶어 해.”
부라쿠민을 중용하면, 일본인이 반발할 거라는 건 사전에 알고 있었고, 대비책을 만들어 놨다.
하지만 일본 총리 후지다가 발 벗고 나설 거라 예측하진 못했다. 후지다는 오백세간강의 소유자가 창수라는 것을 파악하고, 계속해서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창수와 연락이 두절된 김근홍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면담을 거절했다. 그 과정에서 김근홍에게 쌓인 피로감이 적지 않은 상황.
“그냥 무시하죠. 몰락한 국가의 실권 없는 허수아비 총리를 만나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긴, 만나 봐야 너에게 득 될 것이 없지. 하지만 네가 공식 행사에 모습을 보여야 할 것 같아.”
“예? 공식 행사요?”
“면담을 계속해서 거절하니까, 후지다 쪽에서 네 건강 이상설을 퍼트리고 있어.”
후지다는 창수를 만나 당근을 주면서 부라쿠민 중용을 중단시키려 했다. 그러나 면담 일정도 잡지 못하자, 분노하며 작전을 바꿨다.
창수가 중병을 앓다가 식물인간이 돼서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못한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린 것이다.
김근홍이 헛소문을 막으려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으나, 창수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던 형편이었다.
사실 김근홍의 얼굴이 반쪽이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
“흠! 이것들이 간덩이가 부었군요. 선배님, 일본 금융에 압박을 가하세요. 이대로 놔둬서는 안 됩니다. 본때를 보여 줘야 합니다.”
“강공으로 가자는 거야?”
“예. 일본은 좋은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힘을 제대로 보여 줘야 나대지 않을 겁니다.”
“알았어. 일본이 다시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따끔한 맛을 보여 주자.”
김근홍이 가진 재력만으로도 빈사 상태에 빠진 일본을 충분히 공략할 수 있다. 그러나 가능한 한 거래로 문제를 해결하는 트레이더의 특성상 공격을 자제하고 있었다.
이제 창수가 강공을 결정하니,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어졌다. 김근홍은 2조 달러가 넘는 든든한 자금을 바탕으로 일본 응징에 나섰다.
* * *
태국에 도착한 이후, 창수는 활발한 대외 활동을 벌였다. 암브로시아 메인 모델에서 어느덧 오백세건강을 대표하는 모델로 성장한 까오와 함께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중요한 연말연시 행사에 참석했다.
후지다가 퍼트린 건강 이상설이 완전히 사라진 건 당연한 일. 그 대신 까오와 결혼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5일 연속 함께 만찬을 즐기니, 그런 소문이 나올 만하다.
하지만 창수는 결혼할 생각이 없고, 시간적 여유도 없다. 지구에서 처리해야 할 일을 마친 창수는 혼원구에서 골렘과 씨름 중인 송연희를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흠……. 역시 경비가 삼엄하군. 여기는 일반적인 기지가 아니야.’
2024년 1월 4일 밤 11시, 창수가 라스베이거스에서 북서쪽으로 130km 떨어진 미군 기지에 잠입했다.
51구역, 공식 명칭 그룸 레이크 공군기지. 이곳은 미국 공군이 고고도 정찰기와 스텔스기를 비롯해 첨단 무기를 시험하는 장소라고 대외적으로 공표돼 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이 51구역에 외계인이 존재하고, UFO가 있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증언과 영상들이 심심치 않게 나와 화제 몰이를 하는 상황.
창수는 투명망토를 가동하고 51구역 내부에 진입했다. 그동안 사용했던 정찰 드론은 기지 내부 레이더에 걸릴 수 있기에, 사용하지 않았다.
탐지 방법이 줄어든 상태지만, 200년 내력을 바탕으로 북명신공을 사용하니, 주위에 매복 중인 병력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창수가 의외라고 생각한 것은, 황량한 사막에 세워진 공군기지라는 대외 포장과 다르게 대규모 병력이 기지 전체를 꼼꼼하게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 부르르!
‘확실하군. 저 바위가 평행우주를 넘어가는 통로야.’
51구역 곳곳을 돌아다니던 창수는 브룸 레이크 외곽 4시 방향에 놓인 돌덩어리 인근에 도달했다. 그리고 창수의 지갑 속에 있던 통행권이 반응을 보였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명확하다. 바위를 통해 다른 세계로 이동할 수 있다.
‘음……. 통행권을 지금 사용하는 게 올바른 결정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