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48장. 대청소
4.
2023년 11월 3일 오전 0시 50분, 백호대 거점 절반을 둘러싸며 감시하고 있던 흑룡회 타격 2조장에게 마법통신이 왔다.
<후카미 조장, 작전이 변경됐다.>
<복귀하라는 말씀입니까?>
<아니야. 대사관 병력과 사사키 재단 병력이 합세할 거다. 협력해서 육본에서 파견한 무사들을 구출하라.>
<무사들이요? 실종된 검호들이 백호대 거점에 있는 겁니까?>
<그렇다. 대사관에서 나온 정보이니, 확실할 거야.>
예상하지 못한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단순히 백호대 거점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공격해서 무사 10명을 구출하는 작전으로 바뀐 것이다.
필동정미소를 나올 때 전혀 언급이 없다가 갑자기 명령이 변경된 건 그사이에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일본이 백호대에 심어 놓은 세작이 대사관에 정보를 전달한 것. 일본 대사는 즉시, 일본 정부에 이 내용을 알렸고, 무사 10명을 탈취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하지만 백호대에서 검호들을 구출하면, 하야시 공사를 빼내 오기 어렵지 않을까요?>
<나도 그 이야기를 했다. 정부에서는 하야시 공사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할 생각이다. 명나라와 협력해 면책특권을 내세우면, 석방할 수 있다고 본 거야.>
자체 병력으로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한 일본 대사는 흑룡회와 사사키 재단 병력을 동원했다. 마침 흑룡회에서 2개 타격조를 이미 파견했기에, 작전 전개가 한결 수월하다.
문제는 백호대 거점에서 일본 무사들이 탈출하면, 의금부 경비가 더욱 강화될 거라는 점이다.
타격 2조장 후카미 테루카즈처럼 무사들을 구하는 작전보다 일본 공사를 빼내 오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한 의견이 많았다.
일본 대사도 다수의 의견을 받아 일본 정부에 작전 우선순위를 바꾸자고 건의했으나, 대책이 있었다. 일본 공사를 구금한 것을 국제적 외교 문제로 만들어 조선을 압박하는 전술.
게다가 일본 무사 10명을 먼저 빼내면, 조선이 확보한 역모 가담 증거에 흠집을 낼 수 있다. 양수겸장 방식으로 유리한 여건을 만들 수 있는 거다.
<그렇군요.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굳이 무력을 사용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러면, 병력 지휘는 누가 합니까?>
<대사관에서 참사관이 나올 거다. 전반적인 작전은 그쪽 지휘를 받으면 된다. 그리고 임무 할당받은 뒤, 우리 병력은 자네가 관리하도록.>
<알겠습니다, 대장님.>
3개 조직이 급조해서 모일 때, 일사불란한 조직력을 보여 줄까?
게다가 흑룡회와 사사키 재단은 지난주까지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벌였다. 협력을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리라.
일본 대사도 이 사실을 알기에 조직별로 임무를 할당하고, 독립적인 전투를 수행하도록 작전을 짰다.
흑룡회의 경우, 선임인 타격 2조장 후카미 테루카즈가 병력을 지휘하게 됐다.
<카츠메 조장, 아무래도 전투를 해야 할 것 같다.>
<나도 통신 내용 들어서 알고 있소.>
<대사관 병력과 사사키 재단 병력이 올 때까지 현 위치를 지켜라. 구체적인 작전은 우리가 맡은 임무를 보고 전달하겠다.>
<…….>
<왜 대답이 없지?>
<…….>
후카미 테루카즈가 타격 3조장 카츠베 코시에게 지휘명령을 내렸다. 흑룡회 공용 마법통신을 통해 상부의 지시를 알고 있는 타격 3조장은 툴툴거리는 말투로 응답했다.
타격 2조와 3조는 라이벌 관계. 경쟁자의 지휘를 받는 것이 달가울 리 없다. 카츠베 코시는 나중에 아예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심기가 심하게 뒤틀린 듯하다.
후카미 테루카즈는 카츠베 코시의 행동이 거슬리면서도 모른 척 넘어갔다. 자신도 타격 1조에게 같은 일을 당하면, 유사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기에.
* * *
“타나베, 타격 3조 놈들이 뭐 하고 있는지 알아보고 보고해. 미친놈들이 연락을 끊고 있다.”
“알겠습니다, 조장님.”
- 사사삭.
대사관 병력이 20분 후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은 뒤, 후카미 테루카즈가 타격 3조장에게 지시를 하달했다. 그러나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이건 선을 넘은 행동. 마음이 급한 타격 2조장이 척후병 타나베 히사토를 타격 3조가 배치된 지역으로 보냈다.
흑룡회 타격대는 조장과 부조장 그리고 척후병이 마법통신구를 가지고 있다. 타나베 히사토가 타격 3조와 접촉하면, 마법통신을 사용해 호통을 칠 요량이다.
<타나베! 타나베! 왜 대답이 없는 거야!? 칙쇼! 빌어먹을 놈들!>
조선 속담에 나오는 함흥차사가 이런 것일까?
척후병을 파견했으나, 5분이 지나도 보고가 없다. 어이없는 상황에 타격 2조장 후카미 테루카즈가 분통을 터트렸다. 집단으로 자신의 지휘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든 것.
하지만 황당한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부조장은 왜 대답을 안 해!? 마법통신구가 망가진 거 아니야!? 이거!?”
“작전 나오기 전에 마법통신구를 확인했습니다. 조금 전 타격 3조와 연락하지 않았습니까?”
부조장이 이끄는 타격 2조원 5명도 연락이 두절됐다. 분노한 후카미 테루카즈가 장비를 담당하는 부하에게 호통쳤으나, 담당자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매뉴얼에 따라 마법통신구를 비롯한 장비의 점검을 마쳤다. 게다가 타격 3조장과 연락이 됐었다. 마법통신구가 고장 났다면, 그 이후 일일 텐데 특별한 사건이 벌어진 것도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된 일이야!? 왜 하나같이 연락이 안 돼!”
“혹시, 변고가 생긴 것 아닐까요?”
“뭐야!? 우리만 빼고 나머지 병력이 습격당했다는 거야!?”
“그것밖에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설마…….”
궁지에 몰린 장비 담당자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할 이유를 댔다. 성질 같아서는 헛소리하지 말라고 귀싸대기라도 갈기고 싶다. 그러나 후카미 테루카즈는 갑자기 무언가 싸한 느낌을 받았다.
- 쒜에엑!
- 팍!
- 지지직!
“크악!”
불길한 느낌이 현실로 드러났다. 허공에서 날아온 화살에 맞아 부하 한 명이 절명한 것.
부하들 모두 천잠사 전투복을 착용하고 있기에 일반 화살에 당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부하들을 단숨에 살해한 것은 마법화살이 분명하다.
“마탑 병력인가!? 왜 우리를 공격하지!?”
“멍청한 놈, 마탑만 마법물품을 사용하냐? 그리고 백호대를 노리고 무사할 줄 알았어?”
“칙쇼! 빌어먹을 조센징 놈! 모두 공격해! 어서!”
- 슥!
- 사악!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데 생각하지 못했다. 흑룡회 병력이 백호대를 포위한 상태에서 감시했다면, 역으로 백호대에 행적이 발각될 수 있는 거다.
후카미 테루카즈는 자신이 안이하게 대응했다는 걸 깨닫고 분노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설 수 없는 일.
스스로 선봉에서 검을 들고, 부하들에게 공격을 지시했다.
- 휘청!
하지만 상대방은 자신처럼 투명망토를 가동한 상태, 목소리가 나오는 곳을 향해 검을 날렸지만, 허공을 가르고 말았다.
- 스걱!
- 촥!
- 화르르!
“크악!”
상대방은 달랐다. 후카미 테루카즈의 정확한 위치를 아는 것은 물론이고, 몸에 중심을 잃을 것까지 파악하며 검을 휘둘렀다.
흑룡회 타격 2조장의 입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나오고, 상체에서 진한 불꽃이 피었다. 상대방이 휘두른 화염계 마법검에 적중당해 절명한 것.
조장이 당한 것을 본 조원 3명이 일제히 흉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채 30초를 버티지 못하고 후카미 테루카즈와 같은 꼴이 됐다.
* * *
<츠네, 이쪽은 완전히 정리됐다.>
<이쪽도 모두 정리됐습니다. 주군께서 예상한 대로 흑룡회가 백호대 거점을 공격하려 했습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백호대가 큰 타격을 받았을 겁니다.>
흑룡회 병력 22명을 제거한 건 창수 일행이다. 창수는 흑룡회 타격 2조와 3조가 백호대 거점을 감시하는 모습을 정찰 드론으로 확인하고, 필동정미소를 공격하는 계획을 변경했다.
백호대 거점에 일본 무사 10명을 구금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린 거다. 흑룡회 병력이 무사들을 탈취해 가면, 일본에 압박을 가하려는 전략이 벽에 부딪힐 수 있다.
그리고 백호대 거점에 경복궁 강녕전 인근과 이어지는 비밀 통로가 있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흑룡회 병력이 경복궁 내부로 진입하는 건 절대적으로 막아야 하는 일.
츠네는 유연한 사고와 결단력을 동시에 보여 준 창수의 판단에 감탄했다.
<아무래도 백호대에 일본의 간자가 침투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흑룡회 이외에도 일본 대사관 병력과 사사키 재단 병력이 백호대 거점을 노리고 있다고 한다. 정찰 드론으로 북촌 쪽을 살펴봐. 나도 주위를 정찰할 거니까.>
<알겠습니다, 주군.>
필동정미소 인근을 떠나 백호대 거점 부근에 도착한 창수는, 관시엔에게 흑룡회 타격 3조 처리를 맡기고, 츠네에게 타격 2조 부조장 병력을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창수 자신은 지휘자로 보이는 후카미 테루카즈 인근으로 이동한 뒤, 관시엔과 츠네가 공격할 때, 조용히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탐으로 적지 않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는 백호대 거점을 공격하기 위해 일본 측 병력이 추가로 온다는 것.
창수와 츠네는 정찰 드론 8대를 동원해 백호대 거점 인근을 샅샅이 수색했다.
<주군, 투명망토를 착용한 병력 50명이 북촌에 진입했습니다.>
<4~5분 안에 도착하겠군. 일단 백호대 거점으로 이동해, 작전을 짜야겠다.>
50명은 예상보다 많은 병력이다. 창수 일행이 정면에서 대결하면, 모두 처리할 수 있으나, 일부 병력이 우회해 백호대 거점을 공격할 수 있다.
창수는 백호대와 힘을 합해 대응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 * *
<어떻게 된 겁니까? 흑룡회 병력이 보이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도 연락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쩌자는 겁니까!? 너무 무책임한 대답 아닙니까!?>
백호대 거점 인근에 도착한 일본 참사관 코다테 쇼마는 황당한 경험을 하게 됐다. 공격하기 좋은 지점을 먼저 선점했다고 자랑하던 흑룡회 타격대가 종적을 감춘 것.
흑룡회 병력이 빠지면, 일본 무사 구출 작전에 큰 차질이 생긴다. 당황한 참사관은 흑룡회 지부에 연락해 병력의 위치를 알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지부에서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목소리가 높아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
<지금 추가 병력 45명을 보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사사키 재단 병력이 10분 후에 도착합니다. 언제 도착할 수 있나요?>
<20분 정도면 가능합니다.>
<후……. 좋습니다. 10분 정도는 참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실망시키면, 각오해야 할 겁니다.>
<그런 일 없을 겁니다. 제가 직접 병력을 인솔하겠습니다.>
흑룡회 타격대장 카리베 테루스미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 참사관이 대단한 권력자는 아니지만, 그 배후에 일본 정부와 군부가 있다는 걸 고려해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찍힐 때, 여러 가지 면에서 곤란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카리베 테루스미는 연락이 두절된 타격 2조와 3조를 찾는 대신 병력 증파를 선택했다.
자신이 앞장서서 타격 1조와 4조, 5조, 6조를 이끌면 병력 실종 사건을 무마할 수 있을 거라 여긴 것.
코다테 쇼마는 흑룡회에 실망감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한 번 더 믿기로 했다. 작전을 10분 늦추는 것으로 흑룡회 병력이 두 배 증가한다면, 나쁘지 않은 상황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