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47장. 조선에 드리운 암운
3.
훈련도감은 한양을 방어하는 삼군영의 하나로, 중무장한 강병 5,000명으로 구성돼 있다.
금위영과 어영청이 왕과 궁궐을 방어하는 데 집중한다면, 훈련도감은 수도 한양 방위를 전담하고 있다.
그런데 훈련도감 병력이 야밤에 궁궐을 급습하기 위해 움직인다고 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명확하다.
- 쾅!
“자네 지금 제정신으로 말하는 겐가!? 이건 역모야! 무엇보다 좌포도종사관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하는 자네가 무슨 망발인가!?”
“영감! 조선은 썩을 대로 썩었습니다. 부패한 대신들이 전횡을 일삼고 백성의 고혈을 빨고 있습니다. 갈아엎어야 합니다!”
좌포도청에 배치된 병력은 200명 남짓이다. 훈련도감과 비교하면 1/25에 불과한 적은 숫자. 그런데도 좌포도청이 중요한 것은 한양 절반의 치안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좌포도청의 묵인 없이 훈련도감이 병사를 움직이지 못한다.
좌포도종사관 박시우가 반역 행위에 깊숙이 관계돼 있는 거다. 나이 어린 왕의 눈을 가리고 부정부패를 일삼는 간신들을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훈련도감은 안 썩은 것 같아!? 도제조, 부제조, 군영대장! 모두 쓰레기들이야!”
훈련도감은 현재 좌의정이 도제조직을 맡고 있고, 공조판서가 부제조를 담당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모두 부패한 인물로 악명이 자자하다는 것.
좌포도대장 최상민은 훈련도감을 동원해 정변을 일으키는 것을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것’이라 여겼다.
“맞습니다. 그래서 조정을 물갈이한 뒤, 그자들도 처리해야 합니다.”
“뭐야!? 자네 지금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야!?”
“독으로 독을 제거하는 겁니다. 그리고 쓰레기 청소가 완료된 후, 영감처럼 강직한 분이 국정의 중심으로 우뚝 서야 합니다.”
“지금 나보고 역모에 가담하라는 겐가!?”
“아닙니다. 영감께서는 모든 것이 정리될 때까지 이곳에서 조용히 머무시면 됩니다.
박시우는 최상민을 자택에 감금했다. 그동안 쌓은 정이 있어 차마 죽이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조선 조정에서 드물게 청렴하고 강직한 인물이기에 우대한 것일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조선 수도 한양의 치안을 담당하는 양대 축의 하나, 좌포도청이 역모에 가담한 박시우의 손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 * *
- 척!
“정지! 어디서 온 병력이오!?”
“우리는 어영청 소속이오. 근무 교대를 위해 왔소.”
“어영청? 그런 통보는 없었소. 그리고 일몰 이후에는 병력 이동이 불가하다는 걸 모르오?”
10월 28일 밤 11시 10분, 경복궁 광화문 앞에 100명에 달하는 병력이 도달했다.
경복궁의 남문이자 정문인 광화문을 지키고 있던 경비 군관은 스스로 어영청 소속이라고 밝힌 병력에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궁궐은 아무 때나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일몰 전에 문을 닫은 뒤, 다음 날 오전 8시가 돼야 문을 연다.
무장한 병력이 토요일 밤 11시 넘어서 경복궁으로 들어간다는 건 가당치 않은 일이다.
“전국에 내려진 비상령 때문에 병력 이동 시간이 엉망이오. 당직사령께 연락하면, 우리가 받은 교대 명령을 확인할 수 있을 거요.”
“흠……. 알 수 없는 일이군……. 잠시만 기다리시오. 상황을 알아보겠소.”
미심쩍은 면은 있지만, 워낙 당당하게 말하니 무시하기 어렵다. 게다가 최근 전국의 군부대에 비상령이 내려져, 병력 이동이 잦고 복잡한 것이 사실이다.
군관은 경복궁의 야간 경비를 총괄하는 당직 사령에게 연락해, 어영청 병력 교대의 진위를 문의했다.
“입궐이 허가됐소. 한밤중이니 조용히 이동하시오.”
“알겠소. 고양이처럼 조용히 움직이리다.”
옆문이지만 야밤에 궁궐 문을 열어야 한다니. 광화문 경비를 담당한 지 3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이다.
군관은 무언가 찜찜한 느낌이 들면서도, 어영청 소속이라 자처하는 병력에 문을 열어 줘야 했다. 당직사령에게 반복해서 확인한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
- 끼익!
- 사박! 사박!
광화문 왼쪽 문이 열리고, 어영청 병력 100명이 약속대로 최대한 발소리를 죽이며, 경복궁 안으로 들어갔다.
이례적인 일이지만, 무탈하게 병력의 수용이 끝나 가기에 안도의 한숨을 쉬는 군관.
그리고 바로 그때.
- 우르르!
- 타다닥!
“저것들은 뭐야!? 비상! 비상! 당장 문을 닫아! 어서!”
어영청 병력 100명이 경복궁 안으로 완전히 진입한 순간, 족히 2,000명이 넘어 보이는 병력이 광화문을 향해 돌진해 왔다.
소스라치게 놀란 군관은 직감적으로 역적의 침입이라 판단했다. 그리고 열렸던 문을 닫으라고 경비병들에게 지시했다.
- 슝! 슝! 슝!
- 팍! 팍! 팍!
“크악!”
“우아악!”
하지만 군관의 명령은 이행되지 않았다. 적이 발사한 화살에 자신을 포함한 경비병들이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 푹!
“컥!”
광화문 누각에 배치된 병력도 마찬가지, 어디선가 나타난 적에 의해 모두 살해당했다.
“정 초관, 솜씨가 대단하군.”
“과찬이십니다. 장군께서 제때 호응하셔서 쉽게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대업의 선봉에 선 내가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지. 아무튼, 정문을 무사히 뚫었으니, 첫 고비를 넘긴 셈이야. 이 기세로 치고 들어가면, 누구도 우리를 막을 수 없을 걸세.”
“맞습니다. 대업은 성공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광화문 정문이 쉽게 뚫린 이유는, 어영청 소속이라고 자처한 100명이 훈련도감 소속 역도였기 때문이다.
먼저 광화문 안으로 들어간 100명 중, 30명이 재빨리 누각으로 올라가 공격 준비를 마쳤고, 외부 반란군이 공격을 시작하자 일시에 누각에 배치된 경비병을 살해한 것이다.
경복궁 정문을 손쉽게 장악한 훈련도감 역도들은 2,500명에 달하는 병력을 전술적으로 배치한 뒤, 본격적인 공격을 시작했다.
* * *
- 탕! 탕! 탕!
- 팅! 퉁! 팅!
역도들이 근정전과 강녕전을 향해 진격하자, 궁궐에 배치됐던 금위영 병사들이 소총을 발사하며 저지에 나섰다.
그러나 종이탄피를 사용하는 소총 총탄의 낮은 위력으로 역도들의 방패를 뚫을 수 없었다.
- 슝! 슝! 슝!
- 틱! 툭! 틱!
화살 역시 마찬가지, 사전에 금위영 병력의 무장 상태를 파악한 훈련도감 역도들이 방패와 갑옷으로 가볍게 저지했다.
“근정문을 사수하라! 여기서 죽는다는 각오로 막아야 한다!”
인원과 장비 양면에서 열세에 놓인 금위영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근정문에서 저지선을 구축했지만,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태.
- 휙! 휙!
훈련도감 역도 중 경공이 뛰어난 자들이 근정문 담을 넘었다. 금위영 병력이 삽시간에 앞뒤로 포위됐다.
- 챙! 챙! 챙!
- 창! 쓰걱! 촥!
“크아악!”
“으아악!”
금위영 병력이 근정문을 사수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으나, 야수의 심정으로 모반에 참여한 역도들의 칼을 버텨 낼 수 없었다.
무공이 뛰어난 군관 몇 명이 사력을 다해 버텼지만, 15분 만에 금위영 병력이 몰살당하고 말았다.
- 척! 척! 척!
두 번째 관문을 돌파한 훈련도감 역도들이 근정전 마당에서 다시 전열을 다듬었다. 이제 근정전을 접수하고, 뒤편에 있는 임금의 처소 강녕전을 공략하면, 역적질이 성공하게 된다.
아직 경복궁 내부에 어영청 병력과 금군이 남아 있으나, 기세가 오른 역도를 막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
역도들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흐른다. 역적질에 성공한 뒤 얻게 될 부귀영화가 저절로 머릿속에 그려진 것.
하지만 세상일이 그리 호락호락할까?
- 투투투투! 투투투투!
희희낙락하던 역도들에게 고막을 찢는 듯한 소리와 함께 총알이 빗발처럼 쏟아졌다.
- 팍팍팍팅! 팅팍팍팍!
“끄아악!”
“으아아악!”
날아온 총탄은 방패와 갑옷을 가볍게 뚫고, 훈련도감 병력에 궤멸적인 타격을 가했다. 일부 총알은 역도의 몸을 뚫고 뒤편 역도에 치명상을 입힐 정도로 위력이 강했다.
근정전 앞에 집결했던 역도들이 피할 곳을 찾지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장군! 근정문 밖으로 후퇴해야 합니다! 여기서 머뭇거리면 전멸합니다!”
“빌어먹을! 도대체 어떤 총탄을 쓰기에 위력이 이렇게 강한 거야!?”
“우리에게 약화 주술을 사용한 것이 분명합니다!”
“저주받을 주술사 놈들! 모두 후퇴하라! 근정문 밖으로 후퇴하라!”
훈련도감 역도들이 날아오는 총알이 주술에 의한 것이라 생각했으나, 완전히 잘못된 판단이다.
총알은 주술과 상관없는 7.62mm 철갑탄이고, 발사한 무기는 러시아 PKM 기관총이다.
방어마법이 걸리지 않은 방패와 갑옷으로 괴물 같은 관통력을 가진 철갑탄을 막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
결국, 훈련도감 병력은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남기고 근정문 밖으로 도주해야 했다.
“허허……. 정말 무서운 무기요.”
“그 정도는 아닙니다. 잔챙이들 청소하는 데 유용한 정도지요.”
“무슨 소리요? 이거 한 정이면 병사 100명 몫은 충분히 할 거요.”
근정전 마당에서 기관총을 발사한 건 창수였다. 경복궁 내부와 연결된 백호대 비밀 거점에서 숙식하고 있던 창수가 근정전으로 달려와 훈련도감 역도들에게 참교육을 시전한 거다.
역도들이 순식간에 정리되는 장면을 목격한 장두호는 PKM 기관총의 위력에 넋이 나갔다.
“그렇기는 하죠. 하지만 마법방어구를 착용한 상대에게는 아무런 타격을 줄 수 없습니다.”
“전쟁에서 마법방어구를 사용하는 적은 많지 않소. 젊은 손님, 이 무기를 몇 정이나 가지고 있소?”
“지금 가지고 있는 건 5정입니다.”
“모두 파시오. 정당 20만 환 주겠소.”
“100정 이상도 공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역적들 정리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커험. 하긴 그렇구려.”
장두호는 한화 2억 원에 해당하는 거금을 주고 PKM 기관총을 매입하겠다고 말했다. 병참과 조달에 특화한 능력을 갖춘 인물다운 모습.
창수 입장에서 100배 남는 장사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지금 시급한 건 무기 매매가 아니라, 경복궁에 침입한 역적들을 처리하는 거다.
기관총 덕분에 근정문 밖으로 훈련도감 병력을 몰아내기는 했으나, 남아 있는 역도의 숫자가 2,000명에 달한다.
병력이 적은 창수 일행에게 버거운 숫자일 수 있다.
* * *
<강 장군! 근정전을 코앞에 두고 후퇴하다니!? 어찌 된 일이오!?>
<좌상 대감! 금군이 주술을 펼치고 있습니다! 우리 병력 수백 명이 순식간에 도륙당했습니다!>
<대업을 이루는데 수백 명 죽는 게 문제요!? 머뭇거리지 말고, 어서 공격을 재개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강 장군과 나는 죽은 목숨이고, 3족이 멸하는 화를 입을 거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금군의 주술을 상대할 방법이 없습니다.>
<없으면 찾으시오!>
역적 소굴이 된 훈련도감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자가 좌의정 손훈기. 손쉽게 점거할 것 같던 근정전을 눈앞에 두고 병력이 후퇴하자, 별장 강성진을 강하게 질책했다.
강성진이 현장의 어려움을 이야기했으나, 무조건 전진하라고 지시했다. 여기서 역모가 실패하면, 직접 가담한 자는 물론이고 가족까지 무사하지 못하기에, 손훈기의 말에 타당한 측면이 있기는 하다.
문제는 대책 없이 근정전으로 진격하다가 PKM 기관총에 몰살당할 수 있다는 것.
“장군! 금군의 주술을 파훼할 방법을 알아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