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47장. 조선에 드리운 암운
1.
2023년 10월 17일, 선양으로 돌아온 창수가 녹색마탑에서 공동 연구 중인 고사누에게 연락했다.
<마법사님, 일본 군부가 조선을 침략하려 한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녹탑에서는 별 이야기가 없던가요?>
<아직까지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빙탑에서 나온 정보인가요?>
<그렇습니다. 빙탑 임시 운영 위원장 마르테 마법사님이 알려 준 정보입니다.>
<등급이 높은 정보로군요. 마침 엘레크 님과 저녁 약속이 있습니다. 조선과 관련된 내용을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고사누가 녹색마탑에 상주하는 또 다른 이유는 고급 정보를 얻기 위함이다. 메이저 마탑의 정보력은 강대국을 능가할 정도로 우수하다.
특히 해당 국가에 지부가 있다면, 고위층과의 교류가 빈번하기에 어설픈 스파이가 확보한 것보다 양질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녹색마탑은 메가 히트 상품 황탄을 제조하고 판매한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환영받는 마탑으로 지부가 있고,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고사누는 녹색마탑의 2인자를 통해 일본 군부의 움직임을 파악하겠다고 말했다.
<대표님, 일본 군부가 주요 부대에 전투 대비 명령을 발동했다고 합니다. 조만간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녹탑 정보부도 빙탑과 같은 판단이군요.>
<그렇습니다. 정보력만 따지면, 녹탑과 빙탑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듭니다. 일본이 조선을 침공하려는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고사누는 녹색마탑 선양 지부를 운영하는 엘레크에게 조선에 관련된 정보를 요청했다. 평소 창수에게 호감을 가진 엘레크는 녹색마탑 정보부를 직접 움직여, 일본 정부와 군부의 현황을 조사했다.
그리고 결과는 마르테가 알려 준 정보와 같았다. 메이저 마탑 2곳의 정보가 동일하다면, 일본이 조선을 노린다는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저와 츠네는 당분간 조선에 머물러야 할 것 같습니다. 진행 중인 연구와 랴오쩌(요택) 농지 확대를 마법사님 주도로 진행하십시오.>
<대표님, 저도 전투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마법사님이 곁에 있다면 전투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하지만 작물 생산량을 늘리는 연구와 농지를 확대하는 일에서 마법사님이 빠지면, 대체할 방법이 없습니다. 식량난에 허덕이는 많은 사람을 구하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일본의 조선 침공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전투가 벌어질 건 불문가지. 그리고 전투에서 5서클 마법사는 ‘지옥에 가서라도 초빙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용하다. 고사누가 전투에 참여하면, 창수에게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창수는 마법사의 참전 희망을 단칼에 거절했다. 이미 충분한 전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창수와 츠네가 절정의 경지에 올랐고, 관시엔이 초절정이다. 절정 무사의 전투력은 5서클 마스터 마법사와 유사하다. 게다가 초절정은 6서클 마스터 마법사급 전투력을 보인다.
고사누를 전투에 투입할 때 얻는 이익보다, 현재 진행 중인 연구와 요택 농지 개발에 집중할 때 얻는 이익이 월등히 크다.
<음……. 대표님의 말씀을 들으니, 그런 면이 있군요.>
<그리고 마법사님이 전투에서 맡은 역할은 후방 지원입니다. 녹탑과 협력해 마법물품 조달에 힘써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대표님. 제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마법사의 공백은 마법장비와 마법스크롤로 메울 수 있다. 창수는 고사누에게 간접적이나마 전투에 참여할 대안을 제시했다.
명석한 두뇌를 가진 고사누는 창수의 방안이 현시점에서 최고의 선택이라는 걸 알고, 적극적인 참여를 다짐했다.
* * *
- 띠링!
“어서 오시오, 젊은 손님. 오랜만이오.”
“그동안 격조했습니다, 어르신.”
“커험. 알기는 아는구려. 아무리 바빠도 3~4달에 한 번은 얼굴 좀 봅시다. 얼굴 잊어버리겠소.”
10월 23일, 창수가 한양에 있는 대광금은방을 찾았다. 마지막으로 이곳을 들른 건 3월 달. 7개월 만에 얼굴을 보이자 금은방 주인 장두호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1년간 사용할 고순도 은을 판매하지 않았나요? 물량이 더 필요한 건가요?”
“그건 아니오. 하지만 젊은 손님이 초고순도 은을 취급한다는 소문이 있어서 말이오.”
“초고순도 은은 녹탑과 독점 계약이 돼 있습니다. 필요하시다면, 녹탑과 연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녹탑과 접촉을 했었소. 하나, 가격이 터무니없는 것이 문제요. 조선을 위해서 직거래할 수 없는 거요?”
장두호는 일반적인 금은방 주인이 아니다. 조선 왕실 비선 조직 백호대의 단주로, 왕실을 음지에서 지키면서 조선의 부국강병을 추구하고 있다.
창수를 공격한 일본과 친일 세력의 준동을 일정 부분 막아 준 역할을 한 배후 세력의 일원기도 하다.
장두호는 창수가 공급하는 99.99% 은을 사용해 조선에서 생산하는 마법물품의 질을 대폭 향상하고 막대한 수익을 얻었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창수의 사업에 감세 혜택을 주고, 활동에 자유를 준 상황.
창수와 장두호는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다. 그러나 지금 장두호는 창수가 99.999994% 초고순도 은을 자신에게 판매하지 않은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
초고순도 은을 사용하면,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한 마법물품을 만들 수 있기에 욕심을 내는 거다.
“녹탑에 초고순도 은 독점권을 주면서, 황탄 제조권과 판매권을 받았습니다. 제가 약속을 어기면 녹탑도 황탄에 대한 권리를 회수할 겁니다. 그것이 조선을 위한 일일까요?”
“흠……. 그런 문제가 걸린 거구려. 황탄도 조선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니…….”
“필요한 초고순도 은 수량을 말씀하십시오. 녹탑과 협조해서 저렴하게 공급하도록 해 보겠습니다.”
“50kg 정도가 필요한데 가능하겠소?”
“그 정도 물량이면, 한 달 안에 공급이 가능할 겁니다.”
“허허허. 그렇게만 된다면, 대만족이오.”
한양에도 녹탑 지부가 있다. 선양과 비교해 1/100 크기이지만, 90만 평이 넘는 대지에 생산 시설과 업무 시설 그리고 주거 시설을 완비해, 요새화된 거점을 구축했다.
창수가 마법주머니에 보관한 초고순도 은을 한양 지부에 매각하면, 장두호의 손으로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다.
우회적으로 초고순도 은을 공급하겠다는 창수의 말에 뚱했던 장두호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어쨌든 귀물을 확보할 수 있으니까.
“그나저나 어르신, 해외 정보에 너무 무심한 것 아닌가요?”
“해외 정보라면…….”
“일본 군부가 조선을 침공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진행 중입니다. 모르고 있었나요?”
“뭐요!? 금시초문이오! 어디서 들은 풍문이오!?”
“대형 마탑 2곳에서 나온 정보입니다. 마법물품 생산도 좋지만, 국가 안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흠……. 이거 보통 일이 아니군. 알겠소. 확실하게 알아보겠소.”
창수가 장두호를 찾은 것은 거래하기 위함이 아니다. 왕실 비선 조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침략을 파악하지 못한 것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장두호는 창수의 말에 화들짝 놀라면서 정보의 출처를 물었으나, 이내 수긍했다. 창수가 언급한 대형 마탑의 한 곳이 녹색마탑이라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녹색마탑의 정보력과 분석력은 정평이 나 있다. 일본이 침공을 준비하는 게 아니더라도, 불손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분명하기에, 대응에 나서야 한다.
2.
“조선 관군 전체에 비상이 걸렸소! 이게 어떻게 된 일이요!?”
“우리는 모르는 일입니다.”
“저희도 그렇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 쾅!
“칙쇼! 이것들이 장난하나! 너희가 정보를 팔아먹지 않았다면, 조센징 놈들이 어떻게 우리 작전을 알아차려!?”
10월 25일, 조선 전역 군부대에 비상이 발령됐고, 연해주에 주둔한 병력이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침공을 알아차리고 조선이 대응한 것이 분명하다.
일본 공사 하야시 개스케는 흑룡회와 사사키 재단 책임자를 불러 놓고, 정보 유출의 책임을 물었다.
흑룡회 조선 지부장 이바라키 아키오와 사사키 재단 조선 감찰관 야치다 오키노리가 자신들은 정보 유출과 관계없다고 항변했으나, 일본 공사는 막무가내였다.
“공사님! 말씀이 지나칩니다! 우리 흑룡회는 대일본의 영광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궂은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그런데 확실하지도 않은 이유로 이렇게 모욕을 줘도 되는 겁니까!?”
“모욕!? 지금 모욕이라고 했어!?”
“그렇습니다! 아무리 공사님이 군부를 대표한다고 하지만, 이런 식으로 흑룡회를 대하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걸 아시기 바랍니다!”
일본 공사는 국방 무관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며, 일본 정부보다 군부와 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하야시 개스케는 준장 계급을 가진 현역 군인이기도 하다.
이바라키 아키오는 일본 공사가 군부의 힘을 믿고, 흑룡회에 죄를 뒤집어씌운다고 여겼다.
침투, 요인 암살, 테러와 같은 험한 일을 도맡아 하는 흑룡회 간부답게, 군부의 강압에 버티는 모습을 보여 준 것이다.
“못 참으면 어쩔 건데? 명나라에 쪼르르 달려가서 정보 팔려고?”
“그… 그건…….”
“흑룡회고 나발이고 건방지게 설치는데, 정말 혼쭐이 나야 정신 차리겠어!?”
“…….”
그러나 아무리 악명 높은 흑룡회라고 하더라도, 폭력의 강도에서 군부와 견줄 수 없다. 하야시 개스케가 약점을 물고 늘어지자,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잘 들어! 지금 이 시간부로 흑룡회와 사사키 재단의 분쟁을 일절 금지한다! 쓸데없는 이권 다툼을 멈추고, 조센징을 상대하는 데 힘을 모아! 그렇지 않으면, 깡그리 제거해 버릴 거니까!”
“공사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오늘부터 사소한 전투를 중단하겠습니다.”
“요시! 사사키 재단은 말귀를 알아먹는구만! 그런데 흑룡회는 내 명령을 거역하겠다는 건가!? 왜 대답이 없지!? 피를 봐야 정신 차릴 거야!?”
“아닙니다. 우리 흑룡회도 전투를 중단하겠습니다.”
흑룡회와 사사키 재단이 일본 군부의 움직임을 조선 측에 알렸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하야시 개스케는 기정사실로 여기고 압박을 가한 뒤, 양측의 충돌을 중단하도록 강요했다.
황당한 일이 벌어졌으나, 흑룡회와 사사키 재단은 일본군 장군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거부했다가 정보를 유출한 배신자로 몰려, 제거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실 일본 군부의 노림수는 바로 이것. 조선을 기습하는 작전이 무산됐지만, 이걸 빌미로 내부 다툼을 수습하며, 다른 기회를 엿본 거다.
* * *
10월 28일 토요일 밤 11시, 좌포도대장 최상민이 좌포도종사관 박시우를 자택으로 긴급 호출했다.
“영감, 찾으셨습니까?”
“그리했네. 지금 우리 관내에 병력이 이동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일인가?”
“아, 그 일 때문에 부르신 거군요.”
“말 돌리지 말고 말해 보게. 누가 겁도 없이 야밤에 병력을 움직였어? 더구나 지금은 비상시국이야.”
“훈련도감 군사들이 작전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작전? 무슨 작전을 누구 명령으로 한다는 겐가?”
“조선의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무능한 조정을 처단하기 위해 나선 겁니다. 영감께서 모른 척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