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46장. 이건 꼭 사야 해
5.
“관 선생, 진설삼을 복용하고 초절정의 벽을 넘으시오.”
“아닙니다, 대인. 저는 350년 내공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설삼은 다시 구하기 어려운 보물 중의 보물입니다. 귀하게 여기셔야 합니다.”
창수는 자신도 사용을 머뭇거리는 진설삼을 관시엔을 위해 내놓았다. 대담하고 파격적인 배포를 보여 준 것.
무인으로서 초절정을 넘는 것은 꿈이라고 할 수 있다. 관시엔에게 다시 얻기 어려운 황금 기회이리라.
하지만 관시엔은 창수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진설삼을 추가로 구하기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진설삼은 확실히 보물이오. 하지만 보물은 임자가 있는 법이오. 지금 진설삼을 사용해 가장 높은 성취를 이룰 사람이 관 선생이오.”
“그것만으로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나와 츠네는 무공을 배운 지 한 달 만에 1갑자를 가볍게 넘고 160년 내공을 가지게 됐소. 이처럼 빠른 성장에 관 선생의 역할이 컸소. 그 공에 보답하는 것이라 생각하시오.”
“고용된 호위 무사로 응당 해야 할 일을 한 겁니다.”
“바로 그 점도 이유의 하나요. 관 선생이 초정절에 올라 내 곁에서 돕는다면, 진설삼을 아끼는 것보다 몇 배 이문이 남는 장사요.”
창수가 단기간에 160년 공력을 가지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막대한 재물과 액체헬륨이다.
그러나 관시엔이 없었다면, 이토록 빠른 성취는 불가능했을 거다. 심지어 주화입마에 걸려 폐인이 됐을 위험성도 있다.
게다가 초절정 실력자를 돈으로 영입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관시엔이 진설삼을 복용하고 초절정에 오르면, 자동으로 난제가 해결된다.
창수의 말은 진심이다. 관시엔에게 진설삼을 내주는 건, 보답과 동시에 미래를 위한 투자가 된다.
“대인의 깊은 뜻 감사히 받겠습니다. 반드시 초절정에 올라 대인의 검이 되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소.”
창수의 베팅은 표면적인 이유 이외에도, 관시엔에 대한 믿음과 호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관시엔은 이 마음을 알아차리고, 창수에게 더욱 감사하게 됐다.
- 츠으윽!
진설삼을 복용한 관시엔이 연공에 들어갔다. 그리고 3시간이 흘렀을 때, 관시엔의 등에 붙은 극양지체에서 강한 열기가 발생했다.
관시엔이 독맥으로 화기를 빨아들인 것이다.
이어서 관시엔의 전신에서 구슬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으나, 무언가 중요한 국면에 들어간 것이 분명하다.
- 번쩍!
“대인! 초절정의 벽을 넘었습니다!”
“관 선생! 축하하오!”
“모두 대인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심각한 상황이 1시간 정도 진행된 후, 관시엔이 눈을 뜨고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단번에 초절정을 돌파한 것이다.
“수고했소. 그런데 조금 전 위험한 상황 아니었소? 땀을 많이 흘려 위태로워 보였소.”
“운기 도중에 벽에 부딪혀 단전의 화기를 높였습니다. 조금 위험했지만, 무사히 수습하고 공력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사실은 조금 위험한 것이 아니고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 진설삼이 뛰어난 효능을 가졌으나 한 뿌리로 초절정의 벽을 넘기 어려웠고, 추가로 한 뿌리가 더 필요했다.
관시엔은 9뿌리밖에 남지 않은 진설삼을 최대한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 단전에 양기를 과다 주입하는 방안을 고안해 냈다. 극양지체의 화기를 더 섞어 마나 흡수 효율을 높이려 한 거다.
예상대로 단전에 극양지체의 화기를 끌어들이자, 마나가 상승했다. 하지만 예측보다 상승하는 속도가 너무 가팔라서 자칫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었다.
관시엔이 위험한 고비를 넘긴 건 기초부터 탄탄한 내공을 쌓아 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단전의 화기를 높인다……. 흥미로운 발상이구려. 내공이 얼마나 증가했는지 측정해 봅시다.”
“예. 그리하겠습니다.”
- 척!
“400년 내공입니다! 단숨에 50년 공력을 올렸습니다!”
예상보다 상승 폭이 크다. 진설삼을 먹기 전 350년이었던 내공이 6갑자 360년을 간신히 돌파한 것이 아니라, 예측을 넘어 400년 내공을 이뤘다.
“진설삼의 효능이 뛰어난 거요? 아니면 관 선생이 사용한 방법이 효과를 발휘한 거요?”
“진설삼 효과는 9년 내공 정도입니다. 나머지 41년은 단전에 화기를 끌어와서 올린 겁니다.”
“그렇다면 천년설삼은 어떻소? 복용하고 내공을 늘릴 수 있을 것 같소?”
“가능성이 큽니다.”
“좋소. 실험해 봅시다.”
관시엔의 과감한 도전은 자신을 초절정 경지로 올렸을 뿐만 아니라, 한계에 도달한 영약으로 치부된 천년설삼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현재 남은 영약은 천년설삼 23뿌리와 진설삼 9뿌리, 창수 일행은 관시엔이 고안한 연공 방법을 사용해 최대한 효과를 내는 방안을 모색했다.
6.
10월 9일 오후 2시, 창수 일행은 2주일간 머물던 특급 연공실을 나왔다. 그리고 연공실 입구 인근에서 대기하고 있던 빙탑 관계자를 따라 영빈관으로 이동했다.
“대인, 얼굴이 환하시군요. 좋은 성과 있으셨나요?”
“빙탑과 탑주님의 배려 덕분에 원하는 것을 얻었습니다. 호의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영빈관에는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고, 마르테가 창수를 반갑게 맞이했다.
마르테는 2주 전과 확연히 달라진 창수의 기도를 보고, 천년설삼 복용 효과가 확실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현재 창수는 3갑자 내공을 넘어 절정의 경지에 도달한 상태. 굳이 성장을 감추지 않고, 특급 연공실을 빌려 준 빙탑주의 도움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성취를 이루셨다니 다행입니다. 탑주님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이 자리에 함께하시기를 원했으나, 급한 실험이 있어 참석하시지 못했습니다.”
“마법사님들에게 실험보다 귀중한 것이 없지요. 마르테 님도 성취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아닌가요?”
“감이 좋으시군요. 맞습니다. 저도 스승님 연구를 도우면서 5서클 익스퍼트가 됐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이제 연구동을 세울 수 있겠군요.”
5서클 익스퍼트는 독립해 마탑을 세울 수 있는 자격이 있다. 빙탑과 같은 메이저 마탑의 경우, 독자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작은 마탑을 만들 수 있다.
5서클 유저에서 익스퍼트로 성장하는 것은 단순한 한 단계 성장이 아니라, 독자 세력 구축이 가능한 경지에 들었다는 걸 의미한다. 이제 빙탑에서 마르테의 입지가 굳건해질 거다.
창수도 이 내용을 알기에 마르테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모두 대인 덕분입니다. 초저온 물질이 없었다면, 저를 포함해서 많은 빙탑 마법사들이 성장을 못 하고 벽에 갇혔을 겁니다.”
“성취를 이루신 분들이 많은가 보군요.”
“스승님께서 6서클 익스퍼트가 되셨습니다. 탑주님께서는 6서클 마스터가 되는 길에 바짝 다가섰습니다. 그 외에 4서클 이상에서 성장을 이룬 마법사가 10명이 넘습니다.”
빙탑이 창수 일행을 위해 진수성찬을 차린 이유가 있다. 2주 동안 빙탑 마법사 14명이 성장한 것.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성장은 마르테의 스승 판트리가 6서클 유저에서 익스퍼트가 됐다는 것이고, 그다음 중요성을 가지는 것은 마르테의 성장이다.
판트리와 마르테의 성취는 빙탑 전체에 충격을 줬다. 경쟁 마법사들의 눈에 불똥이 튄 건 당연한 일. 부탑주를 비롯해 빙탑 수뇌부 대부분이 개인 연구에 돌입했다.
남은 마법사 중에서 경지가 가장 높은 마르테가 빙탑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상황.
“이번 거래는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앞으로도 대인과 좋은 관계를 이어 가고 싶습니다. 이건 저만의 생각이 아니고, 탑주님과 스승님을 비롯해 우리 빙탑 마법사 모두가 바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윈윈 거래가 바로 이것이리라. 창수 일행과 빙탑 모두 서로 가진 것을 교환해 예상을 월등히 넘는 성취를 얻었다.
한쪽이 일방적인 이득을 보는 거래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나 서로 이득이 되는 거래는 길게 이어질 수 있다.
창수와 마르테는 지속적인 협력을 약속하며, 훈훈한 덕담을 나눴다.
“대인, 조선 관련 소식 들으셨습니까?”
“예? 조선이요? 무슨 일이 있나요?”
진수성찬을 안주 삼아 술잔을 주고받으며 친분을 쌓은 지 3시간이 지났을 때, 얼큰하게 취한 마르테가 조선을 언급했다.
평행우주 너머 세상에서 조선 한양이 아니라, 금나라 선양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창수는 마르테의 뜬금없는 말에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보 보고서를 보니, 일본이 조만간 조선을 침공할 것 같습니다.”
“군사력을 동원한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일본 군부에서 구체적인 침공 준비를 마치고, 내각과 협의 중이라고 합니다.”
“군사력에서 일본은 조선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일본이 무모한 전쟁을 일으킬까요?”
“표면적으로는 조선의 군사력이 강합니다. 하지만 대인께서도 아시다시피 조선의 왕권이 약화하면서 힘을 한곳에 모으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흠……. 일본이 조선 내부 교란을 획책할 가능성이 있는 거군요.”
“바로 보셨습니다.”
“조선 내부가 엉망인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일본 공작의 첨병인 흑룡회와 사사키 재단이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일본이 분열 공작을 벌이기 쉽지 않을 겁니다.”
“흑룡회와 사사키 재단의 충돌이 일본의 조선 침공을 늦추는 역할을 한 건 확실합니다. 그래서 일본 군부에서 분쟁 중단을 강제하려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시적이지만 빙탑의 실권을 장악한 마르테는 빙탑 정보부로부터 다양한 보고를 받았다. 그중의 하나가 일본이 조선을 침공하려 한다는 정보였다.
평소 같으면 조선과 일본에서 벌어지는 일에 큰 관심을 두지 않겠지만, 창수가 조선인이기에, 보고서 내용을 자세히 살폈다.
마르테는 창수가 선양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타국에서 기반을 잡았다고 하더라도, 본국이 침략당할 위기에 몰리면, 의협심이 강한 창수 성격에 나 몰라라 할 리 없을 거라 생각했다.
마르테는 빙탑이 확보한 정보를 창수에게 자세히 알려 줬다.
* * *
“츠네, 빙탑의 정보에 신빙성이 있어 보여?”
“일본 정부가 흑룡회와 사사키 재단에 전투 중지 압력을 넣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다른 움직임에 대해서는 확인이 필요합니다.”
“음……. 우리가 일본 군부에 대해 너무 소홀했어.”
“죄송합니다, 주군. 제가 미처 챙기지 못했습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우리의 시야가 좁았던 거야.”
빙탑을 나온 창수와 츠네는 마르테가 전해 준 정보에 대해 심도 깊게 논의했고, 정보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인식하게 됐다.
츠네가 뛰어난 정보망을 구축했으나, 흑룡회와 사사키 재단에 집중한 것이, 일본 정부와 군부의 움직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원인이다.
창수는 정보망 확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주군, 제가 조선으로 들어가서 조금 더 확실한 정보를 알아보겠습니다.”
“흑룡회에 네 정체가 알려지면, 더 위험하지 않을까?”
“완벽하게 세탁된 신분이 3개 준비돼 있습니다. 제가 움직인다는 걸 파악할 수 없을 겁니다.”
“좋아. 그렇게 해. 나도 선양으로 돌아가서 정보를 더 모아 볼게.”
“알겠습니다, 주군.”
한국인 창수는 조선의 정치와 사회문제에 가급적 개입하지 않으려 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문제가 산적해 있어도, 그건 조선인이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조선이 타국의 침략을 받을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국인 창수는 지금까지 보였던 방관자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조선이 당면한 위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