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46장. 이건 꼭 사야 해
3.
2023년 9월 26일 오후 3시, 창수 일행과 빙탑 수뇌부가 만났다.
“김창수 대인, 빙탑에 오신 걸 환영하오.”
“환대 감사합니다, 탑주님.”
“귀물을 가지고 온 손님을 환영하는 건 당연한 일이오. 실물을 보고 싶은데 볼 수 있겠소?”
“물론입니다.”
- 척!
“오! 정말 대단한 물건이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창수가 마법자루에서 액체헬륨을 담은 용기를 꺼내자마자, 빙탑주 알로틴이 그 가치를 단번에 알아봤다.
마르테가 말한 것처럼, 창수가 가져온 것은 -268℃에 달하는 초저온 물질이었다.
“초저온 물질 무게가 1kg 정도 돼 보이는구려.”
“맞습니다. 정확히 1kg입니다.”
“천년설삼 10kg으로 교환하는 것이 어떻겠소?”
“10kg이면, 7뿌리가 조금 안 되겠군요.”
“그렇소. 7뿌리면 중량이 10kg을 조금 넘어갈 거요. 하지만 대인에게 7뿌리를 주겠소. 먼 길 온 발품값이라고 생각하시오.”
완전히 자란 천년설삼 한 뿌리의 무게는 1.5kg 내외다. 7뿌리면, 10.5kg 정도인데, 알로틴은 500g을 추가로 지급하겠다고 말했다.
천년설삼 한 뿌리의 가격이 은자 150만 냥이라는 걸 고려하면, 50만 냥에 해당하는 금액을 양보한 것이다.
그만큼 액체헬륨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반드시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거다.
“합리적인 교환이라고 생각합니다. 탑주님의 제안 받아들이겠습니다.”
“하하하. 김창수 대인, 젊은 사람답게 화통하구려.”
일이 너무 잘 풀려 너털웃음이 나온다.
알로틴은 사제 판트리로부터 액체헬륨의 존재를 전해 듣고, 곧바로 연구실을 박차고 나왔다. 놓칠 수 없는 귀물이기에.
그리고 빙탑 비상 회의를 열어, 어느 정도의 대가를 주고 구매할 것인지 논의했다.
부탑주 바타가이는 액체헬륨의 가치를 g당 은자 1,000냥으로 봤다. 천년설삼과 1:1 교환하자는 의미.
마르테는 바타가이가 말한 가격이 터무니없이 낮다고 주장했다. -240℃ 물질 1g을 만드는 비용이 은자 3,000냥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g당 은자 10,000냥을 제시해야, 협상이 가능하다는 것이 마르테의 판단이었다.
합리적인 성품을 가진 알로틴은 자신의 직계 제자이자 부탑주인 바타가이의 말을 저버리고, 마르테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결과적으로 현명한 선택. 이제 빙탑은 초저온 물질 1kg을 확보하게 됐다. 이것으로 고급 마법물품을 만들고, 빙탑 마법사의 능력을 향상할 걸 생각하니, 천년설삼 7뿌리가 전혀 아깝지 않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면 본격적인 교환을 해 볼까요?”
“본격적인 교환이라면…….”
- 슥!
“1kg은 견본품입니다. 제가 준비한 본 상품은 30kg입니다.”
2,700km 거리를 고생하면서 왔는데 고작 1kg 처리로 만족할 수 없다. 창수는 액체헬륨 1kg을 확보했다고 희희낙락하는 빙탑 수뇌부 앞에 30kg이 담긴 용기를 내놨다.
- 꿀꺽!
잠시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1kg만 가져도 빙탑이 발전할 수 있는데, 30배에 달하는 물량이 눈앞에 보이는 거다.
똑똑한 마법사들이지만,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사고가 정지됐다.
* * *
잠시 이어진 침묵을 깨고 알로틴이 휴식을 선언했다. 빙탑의 주인다운 노련한 대응.
창수의 예상치 못한 물량 공세에 넋이 나간 마법사들에게 정신 차리고 추스를 시간을 벌어 준 거다.
“바타가이, 천년설삼 재고가 얼마나 있지?”
작은 회의실로 자리를 옮긴 알로틴이 가장 먼저 한 말은 액체헬륨 값을 치를 수 있는 천년설삼의 수량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판매할 수 있는 건 71뿌리입니다.”
“흠……. 그러면 추가로 매입할 수 있는 초저온 물질이 10kg이군.”
‘이건 꼭 사야 해’라고 생각한 상품이 있는데, 지불할 돈이 부족하면, 어떤 느낌이 들까?
알로틴은 정말 오랜만에 결핍의 감정을 느껴야 했다.
“10kg도 필요 없습니다. 5kg 정도만 추가로 매입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무슨 말이야, 그게?”
“초저온 물질 6kg만 있으면, 당분간 사용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천년설삼 70뿌리를 사용하면, 거래처에 납품 기일을 맞추기 어렵습니다.”
“바타가이! 부탑주가 고작 그런 생각밖에 못 하는 거냐!?”
“스… 스승님…….”
“당분간이 지난 뒤에는 어떻게 할 거야!? 손 빨고 있을 거야!?”
“…….”
바타가이의 말에 합리적 측면이 보인다. 액체헬륨을 필요한 만큼만 구매해, 천년설삼 공급에 차질이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빙탑 운영에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마법실험과 경지 상승에 목마른 마법사의 본능을 무시하는 말이기도 하다. 알로틴은 마법사가 아니라 행정가의 자세를 보이는 제자를 대놓고 힐난했다.
“탑주님, 좀 더 숙성한 설삼으로 셈을 치르는 것이 어떨까요?”
“진설삼을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김창수 대인이라면 진설삼의 가치를 알고 합당한 셈을 치를 거라 생각합니다.”
“음……. 좋아. 마르테 자네가 설명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탑주님.”
휴식 시간에 빙탑에서 의미심장한 변화가 시작됐다. 액체헬륨을 구매하는 협상에 마르테가 참여하게 된 것.
알로틴은 이번 협상을 빙탑의 명운을 가를 수 있는 중요한 갈림길로 여기고 있다. 자신을 도와 협상을 보조할 인물에게 호감을 가지게 될 건 명약관화.
마르테가 빙탑에서의 입지를 강화할 절호의 기회가 온 거다.
* * *
“진설삼에 천년설삼보다 3배 이상 많은 마나가 들어 있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천년설삼 중에서 발육이 우수한 것만 따로 모아서 특수한 방식으로 키운 것이 진설삼입니다.”
천년설삼에는 일반 설삼 1,000년을 키울 때 함유하는 마나가 응축돼 있다. 그렇다고 천년설삼을 키우고 수확하는 데 1,000년이 걸린다는 건 아니다.
빙탑은 마법진과 기술을 활용해 대략 50년간 천년설삼을 길러 판매한다.
진설삼은 천년설삼 중에서 마나 응축이 높은 개체를 따로 골라, 보다 정교한 생육 과정에서 50년 이상 더 키운 것을 말한다.
평균적으로 무게가 2kg이고, 마나 함유량이 310% 높다.
“가격은 어느 정도로 책정하고 있나요?”
“아직까지 판매한 적이 없습니다. 진설삼은 대부분 우리 빙탑에서 사용하고, 특별히 빙탑에 큰 공을 세운 분에게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천년설삼 가치의 10배로 하시죠.”
“초저온 물질과 1:1로 교환하자는 말씀인가요?”
“맞습니다. 마나 함유량만 보면, 10배까지는 안 갑니다. 하지만 빙탑의 보물이니 걸맞은 대우를 해야겠지요.”
진설삼은 천년설삼보다 3.1배 응축된 마나를 함유하고 있다. 마르테는 내심 5~6배를 받는 것이 적당하다고 여겼으나, 창수는 그보다 높은 10배를 제시했다.
자연스럽게 눈이 커지고, 어리둥절함이 마르테의 얼굴에 나타났다. 창수는 미르테가 놀라고 있다는 걸 알아보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 짝! 짝! 짝!
“하하하! 역시 거상은 배포가 다르구려! 김창수 대인의 호의 잊지 않겠소.”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탑주님.”
곁에서 마르테의 협상을 지켜보고 있던 알로틴이 훅 치고 들어왔다. 창수가 진설삼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니, 다른 말이 나오기 전에 거래를 확정 지어 버린 거다.
창수는 알로틴의 의도를 알아차렸음에도 반발하지 않고, 오히려 맞장구쳐 줬다. 이런 자세를 보인 건, 내력을 증가하는 귀물의 가치 형성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걸 파악했기 때문이다.
창수가 처음 복용한 양생단과 2차로 복용한 운초단의 마나 응집 차이는 3배였다. 하지만 가격은 12.5배 차이가 났다.
양생단이 올릴 수 있는 한계가 25년 내공인 반면, 운초단이 50년 내공까지 쌓을 수 있기에, 큰 가격 차이가 난 거다.
진설삼도 마찬가지. 천년설삼이 쌓을 수 있는 것보다 한 단계 더 높은 내공을 쌓게 할 가능성이 크다.
창수가 진설삼의 가치를 천년설삼보다 10배 이상 높게 매긴 것은 합리적인 가치 평가다.
물론, 창수가 가치를 후려칠 수도 있다. 그러나 뒤끝이 강한 마탑의 특성을 고려하면, 작은 욕심이 챙기는 것보다, 합당한 가치를 쳐 주는 것이 현명하다.
“감사는 우리가 해야 하오. 그리고 천년설삼 일부를 복용할 거라는 이야기가 있던데 사실이오?”
“그렇습니다. 천년설삼이 건강에 좋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암, 그렇다마다. 천년설삼보다 몸에 더 좋은 영약을 쉽게 찾을 수 없소. 특별히 우리 연공실을 빌려 줄 테니 시간을 두고 천천히 복용하시오. 수명이 최소 10년은 늘 거요.”
“예? 연공실이요?”
“천년설삼은 차가운 성질을 가지고 있어, 그냥 복용하면 효능의 태반을 잃어버리고 마오. 그래서 몸에 열을 더해 줄 영약을 같이 복용하든가, 몸을 덥힐 수 있는 곳에서 복용해야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는 거요. 온천 중앙의 가장 화기가 강한 곳에 우리 연공실이 있으니 사용하시오.”
“깊은 배려 감사합니다, 탑주님.”
“껄껄껄. 오는 정 가는 정 아니겠소.”
빙탑 주인의 말대로, 천년설삼을 그냥 복용하는 건 낭비이며 어리석은 짓이다.
창수도 절정 무사 관시엔의 조언을 받아, 몸을 따듯하게 만드는 영약을 따로 준비했다. 그러나 예상보다 확보한 천년설삼의 수량이 많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한 진설삼을 고려하면, 한기를 중화할 영약이 모자란다.
알로틴의 호의는 창수에게 큰 도움이 된다. 창수의 너그러운 가격정책이 바로 보답으로 이어진 것이다.
* * *
빙탑 내부에는 일 년 내내 얼지 않는 온천 강이 있다. 창수 일행은 마르테를 따라 강 중심부로 이동했다.
강에서 나오는 열기가 강 위에 설치된 다리와 건축물을 훈훈하게 달궜다.
“여기는 열대지방과 다를 바 없군요.”
“그렇습니다. 항상 35℃로 기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겨울이 되면 이곳으로 주민들이 많이 몰리겠습니다.”
“이곳까지는 오지 못합니다. 중요한 시설이 많으니까요. 주민 대부분은 강변에서 추위를 피합니다.”
온천 강 중앙을 따라 방갈로 형태 건축물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창수는 그 건물들이 주민을 위한 휴식처라 생각했으나, 마르테의 대답은 달랐다.
빙탑에서 운영하는 핵심 시설로 일반 주민이 접근할 수 없는 곳이다.
일반 주민들은 강변에 세워진 찻집과 음식점 그리고 산책로를 거닐며, 춥고 긴 겨울을 보낸다.
“여기가 연공실인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대인께서 사용할 연공실은 좀 더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이곳 연공실은 3서클 이하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곳입니다.”
“우리가 온천의 심장부로 들어가는 건가요?”
“맞습니다. 탑주님의 허가가 아니면, 외부인이 출입할 수 없는 곳입니다.”
온천강 위에 설치된 빙탑 연공실은 등급이 있다. 1서클에서 3서클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초급 연공실, 4서클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중급 연공실 그리고 5서클 이상 고위급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상급 연공실이 그것이다.
창수 일행이 할당받은 연공실은 상급 연공실 중에서도 탑주와 부탑주가 사용하는 특급이다.
- 저벅!
- 척!
“이곳입니다.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관리인을 부르십시오. 그리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천년설삼을 흡수하십시오. 연공실 사용 기간에 제한을 두지 말라는 탑주님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탑주님의 배려 감사합니다.”
“대인께서 쌓은 덕입니다. 좋은 성과 있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