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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162화 (162/200)

162화 46장. 이건 꼭 사야 해

1.

빙탑 정문에서 빙탑 본관 건물까지의 거리는 12km. 창수는 빙탑에서 제공한 귀빈 전용 차량을 타고 편안하게 이동하며, 빙탑 내부를 느긋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북반구에서 가장 추운 지역이지만, 연중 따뜻한 물이 흐르는 온천 강을 따라, 깔끔한 주거지와 상업 지구가 이어졌다.

야쿠트 왕국 수도 야쿠츠크와 비교해 100년은 족히 앞선 선진적인 시설을 갖춘 곳이 빙탑 내부 시가지. 주민의 얼굴에 활기가 넘친다.

창수는 마르테가 빙탑과 야쿠트 왕국을 비교해서 묻는 것이 당연하다 여겼고, 빙탑이 우월하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하지만 녹색마탑을 거론하자 싸한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 메이저급 마탑에서 다른 메이저급 마탑을 거론하는 건 금기시된 일이기 때문이다.

“녹탑은 전반적으로 넉넉한 분위기입니다. 일이 조금 늦더라도 자연에 맡기는 경향이 강합니다. 빙탑을 본 처음 느낌은 잘 정돈됐다는 것입니다.”

“대인께서 녹탑과 친분이 깊다는 말이 있던데, 사실인가 보군요.”

“예. 사실입니다. 여러모로 녹탑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공동 연구도 하시더군요.”

“고사누 마법사님이 주도해서 녹탑과 작물 생산량을 늘리는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사탕수수 생산량을 늘리는 연구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쌀, 밀, 옥수수, 콩, 고구마, 감자와 같은 농작물의 생산량도 늘리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사탕수수는 암브로시아 원료가 되기에 가치가 있지만, 굳이 상업적인 가치가 떨어지는 다른 작물은 연구할 이유가 있을까요? 막대한 연구 자금을 대인께서 후원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빙탑의 정보력은 만만치 않다. 메이저 마탑이 괜히 메이저 마탑이 아니다. 농작물 연구에 소모되는 모든 자금을 창수가 지원하고 있다는 건, 극히 일부만 알고 있는 일이다.

창수, 고사누, 츠네가 발설할 리 없다는 걸 생각하면, 녹색마탑 핵심층에 빙탑의 세작이 스며들어 있다는 말이 된다.

게다가 마르테의 말은 이상한 질문이기도 하다. 빙탑은 농업에 큰 관심이 없는 마탑이다. 녹탑과 농업 분야 공동 연구에 관심을 두는 이유가 무엇일까?

“조선에 ‘장사는 이문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윤은 암브로시아와 황탄으로 충분히 얻을 수 있습니다. 작물 생산량을 늘려 굶주린 사람들을 살린다면, 그것이 남는 장사입니다.”

“조선에 그런 말이 있었나요? 아무튼, 좋습니다. 대인께서 선양 일대에 베푼 자선을 생각하면, 일관성 있는 행동이라 봅니다. 그래서 녹탑과 친분이 깊은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어떤 사실을 말씀하시는 건지 알고 싶군요.”

“마탑 한 곳과 친분이 깊은 만큼 다른 마탑과 협력할 가능성은 떨어질 수 있습니다. 대인께서 원하는 것이 천년설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녹탑과의 관계가 너무 돈독하면, 우리 빙탑의 보물 천년설삼을 구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합니다.”

마르테는 노련한 인물이다. 창수의 체면을 세워 주면서 동시에 천년설삼을 호락호락 넘길 수 없다는 걸 분명히 밝혔다.

녹탑과의 공동 연구를 들먹인 건, 이 내용을 말하기 위한 빌드 업이었다.

“저는 상인입니다. 녹탑과 좋은 거래를 한다고 해서 빙탑과 거래를 못 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글쎄요. 천년설삼과 거래할 수 있는 귀물이 있을까요? 99.999994% 초고순도 은이 녹탑과 독점 계약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참고로 천년설삼은 화폐로 거래되지 않습니다.”

마르테가 노리는 것, 더 나아가 빙탑이 노리는 것이 드러났다. 빙탑은 녹탑이 독점한 초고순도 은을 원하고 있다.

“그렇습니다. 말씀대로 녹탑에 초고순도 은을 독점 공급하기로 계약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진 것이 초고순도 은만은 아닙니다.”

“암브로시아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훌륭한 상품이기는 하지만, 우리 빙탑에는 큰 소용이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빙탑의 판매망과 암브로시아 고객과 접점이 적죠.”

“흠……. 초고순도 은도 아니고 암브로시아도 아니고. 그러면 무엇을 가지고 계신 건가요? 설마 황탄은 아니겠죠?”

창수가 가진 무기는 크게 3가지다. 99.999994% 초고순도 은, 암브로시아 그리고 황탄.

창수는 초고순도 은을 빙탑에 팔지 않겠다는 것을 명확히 밝혔다. 암브로시아는 판매망이 미약한 빙탑에게 빛 좋은 개살구다. 그리고 황탄은 녹색마탑의 허가 없이 빙탑과 어떤 약속도 할 수 없다.

오백세건강의 주인은 무엇으로 천년설삼 값을 치르려 하는 걸까?

마르테는 창수의 생각을 알 수 없어 순간 혼란에 빠졌다.

“이걸 봐 주십시오.”

- 척!

- 스륵!

“헉! 이… 이건…….”

“초고순도 은보다 가치가 높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닌가요?”

“당연히 그렇습니다! 비교가 안 되는 귀물입니다!”

창수가 맨손으로 빙탑에 왔을 리 없다. 마법자루에서 준비한 것을 꺼내자, 포커페이스로 유명한 마르테가 경악의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창수의 히든카드가 초고순도 은보다 월등히 가치가 높다는 걸 인정했다.

순식간에 바뀌는 대화 분위기. 이런 걸 신속한 태세 전환이라고 하는 것일까?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죠. 1g당 천년설삼을 얼마를 주실 수 있습니까?”

“대인, 우리 빙탑에 영빈관이 있습니다. 여장을 푸시고 휴식을 취하시는 것이 어떨까요? 장기간 이동으로 피곤하실 겁니다.”

“피곤은 하지만, 일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천년설삼을 어떤 비율로 교환할 수 있나요?”

“제가 당장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미를 주십시오.”

“음……. 그리하시죠. 하지만 오래 기다리지 못합니다. 선양에 업무가 많이 밀려서요.”

“늦어도 내일 오후까지는 답이 나올 겁니다. 그때까지만 기다려 주십시오.”

간절한 쪽이 을이 되는 건 어디서나 통하는 진리. 도도한 빙탑도 예외는 아니다. 5서클 유저 마르테는 창수의 바짓가랑이를 잡는 심정으로 매달렸다.

협상에서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창수는 짐짓 못 이기는 척하면서, 빙탑 영빈관으로 이동했다.

2.

창수 일행을 친히 영빈관으로 안내한 마르테는 빙탑 수뇌부에게 면담 내용을 보고하지 않고, 본관 인근 부속 건물로 갔다.

<마르테, 무슨 일이냐? 위급한 일이 아니면, 나를 찾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스승님, 연구를 방해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꼭 아셔야 할 일이 있어 찾아뵌 겁니다.>

<흥. 중요한 일? 한 푼의 가치도 없는 권력 다툼이겠지.>

마르테가 찾아간 인물은 6서클 유저 판트리. 마르테의 스승이면서 동시에 빙탑주의 둘째 사제다.

판트리는 자신의 연구실에 틀어박혀 3년째 나오지 않고 있다. 6서클 유저에서 익스퍼트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중요한 실험이 답보 상태에 머물러, 외부와 자신을 단절한 것.

실험의 성과를 진전하기 위한 실낱같은 희망이 보였다가, 안 보이는 순간이 이어지는 지금, 뜬금없는 제자의 방문이 반가울 리 없다.

<절대로 그런 것 아닙니다. 만약 제가 거짓말을 한다면, 마나의 저주를 받을 겁니다. 믿어 주십시오, 스승님.>

<커험. 마르테. 너라는 놈은 정말 골칫덩어리로구나. 그래 일단은 만나 주마. 그러나 저번처럼 쓰잘데기없는 일로 찾아왔다면, 단단히 각오해야 할 거야.>

<감사합니다, 스승님.>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이 이것이리라. 제자가 마나의 저주를 언급하자, 판트리는 어쩔 수 없이 면담을 허락하고 말았다.

설령 이번에도 별 볼 일 없는 용건이라도, 마법사가 생명만큼 중요한 마나를 들먹이는 상황을 외면할 수 없었다.

“무슨 일로 호들갑을 떠는 것인지, 자세히 말해 보거라.”

“-240℃보다 28℃ 이상 온도가 낮은 초저온 물질을 판매하려고 온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방금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

“뭐야!? 빙탑에 그런 귀물이 들어왔다고? 누가 가져온 거야!?”

“김창수라는 상인입니다. 본래 조선…….”

창수가 마르테에게 보여 준 건, 특수용기에 담긴 액체헬륨이었다. 액체헬륨은 -268℃로 절대 영도 -273.15℃보다 5.15℃ 높다.

-268℃에 달하는 물질이 있다는 말에 판트리가 경악의 반응을 보였다. 귀물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중요한 쓰임새가 있는 듯하다.

스승의 극적인 자세 변화를 본 마르테는 찬찬히 창수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김창수라는 상인, 정말 대단한 인물이구나. 우리 빙탑이 거절할 수 없는 귀물을 가지고 왔어.”

“현명한 상인입니다. 그리고 상도를 아는 인물입니다. 우리가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초저온 물질을 대량으로 판매할 겁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말이다. 이런 인물의 손에 천년설삼이 들어가면, 어떤 불상사가 발생할지 걱정이 되는구나.”

“스승님, 김창수 대인은 선행을 많이 베푼 사람입니다. 천년설삼을 나쁜 용도로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설령 악한 곳에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초저온 물질을 확보해 스승님의 경지를 높이는 것이 우선입니다.”

“개인의 욕심만 생각할 게 아니다.”

“아닙니다! 초저온 물질을 확보하면, 스승님께서 6서클 익스퍼트는 물론이고 단숨에 6서클 마스터에 오를 수 있습니다! 좀 더 연구하면, 7서클에 도달할 수도 있습니다! 어찌 그것이 개인적인 욕심입니까!? 빙탑을 최고 반열에 올리는 일입니다!”

빙탑 마법사들의 경지를 견주는 측정 방법의 하나가 ‘얼마나 낮은 온도의 물질을 만들 수 있느냐?’이다.

판트리는 -240℃까지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사형들과 다르게 온도를 낮추는 마법에 올 인 하고 있다.

창수가 가져온 액체헬륨의 가장 큰 수혜자가 판트리가 될 기능성이 매우 높다.

마르테는 목소리를 높여 스승에게 액체헬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7서클이라니, 터무니없다.”

“스승님은 빙탑이 배출한 최고 마법사입니다. 초저온 물질을 연구하면 7서클도 꿈이 아닙니다.”

“허허……. 네 욕심이 끝이 없구나.”

“저만을 위한 욕심이 아닙니다. 빙탑 전체를 위한 욕심입니다. 그리고 스승님, 탑주님을 만나 주십시오.”

“사형은 왜? 그 양반도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거 너도 잘 알잖아?”

마르테가 창수와 헤어진 뒤 스승을 먼저 찾은 이유는, 단순한 보고가 아니라 소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청하기 위함이다.

3년 전 은거한 빙탑주 알로틴을 불러낼 수 있는 두 명 중 한명이 판트리다.

“탑주님이 직접 나서서 김창수 대인과 협상하지 않으면, 부탑주가 훼방 놓을 가능성이 큽니다. 빙탑이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초저온 물질이 부탑주의 지위를 흔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설마 그럴 리가?”

“능력 없는 자가 권력을 잡으면, 그 알량한 권력을 지키기 위해 무슨 짓이든지 할 수 있는 겁니다. 제가 스승님께 보고를 드리지 못해서 그렇지, 부탑주가 전횡을 부린 일이 한둘이 아닙니다. 초저온 물질도 탑주님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이 핑계 저 핑계 대다가 매입을 못 할 수 있습니다.”

“음……. 알았다. 내가 사형과 상의해 보마.”

판트리는 제자 마르테가 순수하게 빙탑의 발전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아마도 부탑주를 끌어내리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목적이리라.

하지만 판트리는 마르테의 청을 들어줬다. 그만큼 초저온 물질이 빙탑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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