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45장. 영약이 필요해
4.
교활한 마적 두목 쿠라트가 함정을 팠다. 협공하는 창수와 츠네가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접근하는 걸 역이용한 것.
투명망토를 가동하고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츠네를 직접 타깃으로 삼고 공격하기 어렵다. 그러나 자신이 있던 곳으로 이동하는 건 확실하다.
쿠라트는 정신을 집중해 츠네의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한 뒤, 이동로에 범위 마법을 사용하려 했다.
창수는 쿠라트가 대규모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캐스팅에 들어갔다는 걸 알아차렸다. 예전에는 마나에 대한 감각이 희미했지만, 소주천에 성공한 이후 달라진 거다.
그리고 즉시, 츠네에게 위험을 알렸다.
- 파바박!
창수의 경고를 들은 츠네가 몸을 돌린 뒤 빠르게 후방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위험지역 밖으로 벗어나려는 움직임.
- 슈아악!
- 꽈르릉!
“크윽!”
츠네가 후퇴하는 걸 파악한 쿠라트는 캐스팅을 신속히 끝내고 마법을 사용했다. 반경 25m, 지름 50m에 달하는 지역에 벼락이 떨어졌다. 5서클 범위 마법 라이트닝 필드가 펼쳐진 것이다.
헤이스트 마법으로 빨라진 발걸음을 활용한 츠네가 최대한 멀리 이동하려 했으나, 라이트닝 필드의 파괴 범위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그나마 마법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에서 피격당한 것이 다행이다.
- 사사삭!
쿠라트는 마법 사용 후, 재빨리 자리를 이탈했다. 창수가 자신의 위치를 파악한 뒤 응징하는 걸 사전에 대비한 것. 수많은 전투를 통해 축적한 생존 노하우다.
‘쥐새끼 같은 놈! 아주 교활하게 움직이는군!’
하지만 창수는 중구난방으로 움직이는 쿠라트의 움직임을 대략적이나마 파악했다. 외부의 마나를 흡수하는 북명신공이 특성을 발휘한 것.
창수는 아직 1갑자 60년 공력을 모으지 못했으나, 50년 내공을 가지고 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쿠라트의 몸에서 나오는 마나를 감지한 뒤, 놓치지 않고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쿠라트가 교묘한 보법을 사용하기에, 정확한 공격이 어렵다는 것.
‘이대로 시간을 끌면, 츠네가 위험해질 수 있어. 모험할 수밖에 없어.’
통신에서 들리는 츠네의 비명과 신음이 심상치 않다. 라이트닝 필드에 당한 츠네가 치명상을 입은 것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쿠라트가 재차 마법 공격을 가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 추아악!
창수는 단전의 내공을 짜내, 실낱같이 연결된 쿠라트 쪽으로 마나를 보냈다.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이 없는 무모한 행위지만, 작은 기회라도 잡아야 한다는 집념을 보였다.
‘걸렸다! 쥐새끼!’
- 쉐에엑!
- 팍!
“크악!”
일시에 단전이 비는 위험한 상황에 놓였으나, 베팅에 성공했다. 상당량의 마나가 쿠라트와 이어져, 정확한 위치를 알려 준 것.
창수는 마적 두목을 향해 마법화살을 발사했고, 무서운 속도로 날아간 화살이 쿠라트의 머리를 정확히 꿰뚫었다.
- 퓩!
‘미친! 저놈 좀비야!?’
흉포한 몬스터도 머리에 마법화살이 직격당하면, 즉사하거나 치명상을 입고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나 쿠라트는 머리에 마법화살을 맞고도 블링크 마법을 사용해 거리를 벌린 뒤, 북서쪽에 펼쳐진 산림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낭패감이 드는 창수. 전투에서 승리했으나, 여기서 마적 두목을 놓치면, 패배한 것과 다를 바 없게 된다.
“관 선생! 도주하는 마적 놈을 처단하시오!”
그래도 마지막 히든카드가 남아 있다. 창수가 북동쪽에서 마적단을 공격하고 츠네가 남서쪽을 담당하는 동안 절정 무사 관시엔이 전투에 개입하지 않고, 북서쪽에 매복하고 있었다.
관시엔을 북서쪽에 배치한 것은 남동쪽이 초목 지대이기 때문이다. 마적이 창수와 츠네의 협공을 피해 도주한다면, 초목 지대가 아니라 산림 쪽으로 도주할 거라 예상한 것.
결과적으로 창수의 예측이 맞아 들어갔다.
- 타다닥!
창수의 지시를 받은 관시엔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쿠라트가 여전히 투명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나, 절정 무사는 정확히 목표를 향해 움직였다.
마치 요격미사일이 적 스텔스기에 돌진하는 모습.
- 퓽! 퓽! 퓽!
관시엔이 위협적인 속도로 다가오자, 마적 두목이 매직미사일을 연달아 발사했다. 마법 공격으로 격살하면 좋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도주할 활로를 찾을 요량.
- 획! 획! 사악!
그러나 절정 무사에게 매직미사일 따위는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번개처럼 검을 휘두르며, 매직미사일을 쳐 내는 관시엔.
- 획!
- 댕겅!
“컥!”
예상보다 뛰어난 관시엔의 능력에 놀란 쿠라트가 매직실드를 펼쳐 몸을 보호하려 했으나, 소용없는 몸짓이었다.
예리한 절정 무사의 칼이 마적 두목의 목을 그대로 잘라 버렸다.
“관 선생, 이놈 정체가 뭐요? 어떻게 마법화살에 영향을 받지 않고, 머리에 화살을 맞고도 움직이는 거요?”
쿠라트가 절명하자 투명마법이 풀리면서 기괴한 모습이 확실히 드러났다. 창수가 발사한 마법화살이 머리를 관통한 상태였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끈질김.
쿠라트는 생강시인가? 아니면 좀비?
하지만 좀비가 매직미사일을 발사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샤먼입니다. 마법 내성이 있고, 공격마법과 치유마법에 능합니다.”
“아무리 치유마법이 강하더라도 뇌가 파괴됐는데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괴이하오.”
“샤먼은 관통된 부위를 복원하고 유지하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이자는 고위급 샤먼이 분명합니다. 머리통을 터트리거나 지금처럼 분리하지 않으면, 처단하기 어렵습니다.”
샤먼은 정령과 신령과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와 교감하는 샤머니즘의 사제다. 드루이드와 유사한 존재로 전천후 마법 능력과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야쿠트 왕국과 같은 시베리아 지역에서 소규모 집단을 통솔하는 지도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능천곡 일성대주로서 외부 세력과의 전투 경험이 많은 관시엔은 샤먼을 상대하는 방법을 숙지하고, 단칼에 쿠라트의 목을 베어 버린 거다.
“고위급이라면, 오늘 처단한 마적 놈들 이외에 다른 패거리가 있겠구려.”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이자가 직접 통솔하지 않더라도, 연관된 세력이 적지 않을 겁니다.”
“번거롭더라도 마적 놈들 시체를 처리하고 전장을 정리하는 것이 좋겠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대인.”
빙탑으로 가는 길이 급하기에, 마적단 시체를 그냥 방치하고 가려 했으나, 관시엔의 말을 듣고 생각을 바꿨다. 뒷정리를 확실히 해야 귀찮은 날파리들이 덤벼 오는 걸 피할 수 있으니까.
창수는 마적 시체를 모아 소각마법으로 모두 처리하고, 마적단이 가지고 있는 쓸 만한 물품을 챙겼다.
- 쾅!
- 콰콰쾅!
“대인, 폭탄의 파괴력이 정말 대단합니다. 완전히 가루로 만드는군요.”
“화약 무기도 쓰기 나름이라오. 이것보다 수백 배 강한 폭탄도 있소.”
“무시할 수 없는 무기로군요. 이번 전투에서 배운 것이 많습니다.”
창수는 마지막 정리로 파괴된 무장 차량에 C4를 설치한 뒤 폭파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들었다. 무엇이 공격했는지 알 수 없도록 증거를 인멸한 것.
C4의 파괴력을 본 관시엔이 감탄사를 쏟아 냈다. 평소 장난감으로 취급하며 우습게 여기던 화약 무기의 진면목을 알게 된 거다.
“나도 그렇소. 무공의 쓰임새가 여럿이라는 걸 깨달았소.”
“대인의 전투력은 본래부터 강했습니다. 무공을 접목하면, 더 강해질 겁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오, 관 선생이 많이 도와주시오.”
“응당 그리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인.”
창수는 이번 전투를 통해 투명마법을 사용하는 적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깨우치게 됐다.
무공이 단순히 근접전을 강화하는 용도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
관시엔은 빠르게 무공을 흡수하고, 그것을 실전에 사용하는 창수의 능력에 감탄했다. 고용인과 피고용인이라는 계약관계를 떠나 순수한 의미에서 창수가 발전하는 것을 도우려 했다.
* * *
빙탑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쿠라타 마적단을 처단한 것이 알려진 건 아니지만, 단독으로 움직이는 화물차를 노리는 마적단이 여럿 있었다.
창수는 정찰 드론을 활용해 피할 수 있는 충돌은 피하고,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만 전투를 벌였다.
3차례 전투를 벌인 뒤 예정보다 2일 늦은 9월 25일, 창수 일행이 빙탑에 도착했다.
“어디서 오신 분들입니까?”
“오백세건강에서 왔습니다.”
“암브로시아를 생산하는 곳이군요. 하지만 우리 빙탑은 암브로시아를 취급하지 않습니다. 먼 길 수고하셨지만, 빙탑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입구 컷. 2,700km 거리를 풍찬노숙 하면서 왔다. 게다가 마적단과 4번에 걸쳐 전투를 벌였다.
이토록 험난한 길을 왔음에도, 빙탑 정문을 지키는 일개 경비병에게 입장을 거부당했다. 빙탑의 콧대가 얼마나 높은지 알려 주는 단면이리라.
창수는 경비병의 시건방진 태도에 살짝 기분이 상했지만, 얼굴을 붉히며 화내지 않았다.
제대로 꾸며진 상단이 아니라, 낡은 화물차 하나 달랑 끌고 온 것이 홀대의 원인 중 하나라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창수는 경비병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카드를 가지고 있었다.
- 척!
“5서클 유저 고사누 마법사님의 소개장입니다.”
“5서클 마법사님이라고요!?”
“예. 확인해 보세요.”
“잠…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호떡집에 불났다는 말이 이런 것일까? 고사누의 소개장을 본 경비병이 화들짝 놀라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빙탑에서 5서클 마법사는 권력 집단으로 통한다. 6서클 마법사가 3명이 있기는 하지만, 모두 은거해 빙탑 운영에서 손 뗀 상태고, 5서클 제자들이 절대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비록 고사누가 빙탑과 관련이 없는 인물이지만, 5서클 마법사의 소개장을 경비병이 소홀히 처리할 수 없는 것이 빙탑의 현실이다.
창수와 일행은 경비병의 허둥대는 모습을 보고, 비웃음을 날렸다.
“고사누 마법사님을 후원하시는 김창수 대인이시군요.”
“예, 제가 김창수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마르테 마법사님.”
빙탑은 마탑답게 매우 보수적이고 격식을 차리는 곳이다. 창수 일행을 접대한 마법사는 고사누와 같은 경지를 가진 5서클 유저였다.
“인적이 드문 한적한 곳이라 귀인 대접이 소홀했습니다. 무지한 경비병을 대신해 제가 사과 인사 드리겠습니다.”
“하하하. 괘념치 마십시오. 경비병은 자기 할 일을 한 거라 생각합니다.”
“너그러이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빙탑의 면적은 609km²로 녹색마탑보다 2배 이상 크고, 서울보다 조금 넓다. 상주인구가 30만 명에 달해, 야쿠트 왕국 전체 인구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독립국가라 해도 무방한 상황.
마르테는 빙탑에서 실무적인 서열 9위에 해당하는 거물급 인사. 그럼에도 창수를 대하는 것이 겸손하고 살갑다.
‘이 양반이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구만.’
창수는 마르테의 친절에 예의로 화답했다. 이건 올바른 자세지만, 단순한 예절에 국한한 문제가 아니다. 마르테의 친절에서 가식을 캐치 해 냈기에 신중하게 대응한 거다.
“우리 빙탑을 둘러보시니 어떻습니까?”
“정비가 아주 잘돼 있더군요. 특히 주민들의 생기 넘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역시. 대인께서 안목이 날카로우시군요. 그렇습니다. 우리 빙탑은 야만이 판치는 야쿠트 왕국과 질적으로 다른 곳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야쿠트 왕국과는 큰 차이가 있지요.”
“녹탑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흠……. 이 양반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