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45장. 영약이 필요해
1.
“한 가지는 살 수 있다는 말이구려. 어떤 거요?”
“개방의 취구단은 구매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격이 터무니없습니다.”
“얼마나 하기에 그러시오?”
“개당 은자 500만 냥입니다. 게다가 수량도 제한돼 있습니다.”
“흠……. 거지들 욕심이 과하군. 그리고 숫자가 적으면 먹으나 마나 아니오?”
가격이 높을 거라 예상했으나, 500만 냥은 선을 넘었다. 단약 하나를 한화 1조 3,125억 원에 구매하는 건, 돈에 구애받지 않는 창수라 해도 무리한 일.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터무니없는 가격을 치르는 호구가 되는 게 탐탁지 않다.
또한, 수량 적은 것도 문제가 된다. 창수가 단약 복용 효율이 떨어지는 북명신공을 익히고 있기 때문이다.
어중간하게 내공을 늘렸다가 중간에 막히면, 발전 속도가 오히려 늦어질 수 있다.
가성비 극악에, 오히려 무공 증진에 방해되는 취구단을 구매해야 할까?
“대인, 단약 말고 영약을 알아보는 것이 어떨까요?”
“영약? 대환단에 버금가는 효능을 가진 것이 있소?”
“공청석유, 천년설삼, 천년화리라면 대환단과 유사한 효능을 보일 겁니다.”
“그것들은 가격이 얼마나 하오?”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그리고 돈만으로 구매하기 쉽지 않습니다.”
“허어. 그러면 결국 단약과 다를 바 없지 않소? 바가지를 쓰더라도 개방에서 단약을 사야 하는 거요?”
“아닙니다. 마탑에서 영약을 구할 수 있습니다. 마법물품을 제작하는 데도 영약이 사용되니까요.”
“그런 거군! 영약을 녹탑에서 구할 수 있을 것 같소?”
“녹색마탑과 같은 대형 마탑이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전문가는 안목이 다르다. 창수도 마법물품 제작에 영약을 사용한다는 걸 어렴풋이나마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영약을 복용해 내공을 증진한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반면, 절정 무사로 공력을 향상할 방법을 여러모로 연구했던 관시엔은 창수가 마탑과 거래할 수 있는 거물이라는 걸 알고, 영약 확보를 권유했다.
<대표님, 말씀하신 영약들을 녹색마탑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대부분 마법물품 제작에 투입된 상태라 재고가 없다고 합니다.>
마법사 고사누는 녹색마탑에 머물면서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이다. 창수가 5개월 만에 선양으로 돌아오자 오백세건강으로 복귀했으나, 사흘만 머물렀을 뿐이다.
창수는 고사누에게 연락해 영약을 구할 수 있는지 물었다. 돌아온 답은 긍정적이었으나, 당장 살 수는 없었다. 녹색마탑이 희귀한 영약을 남겨 두지 않고 사용했으니까.
<그렇군요.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공청석유는 6개월 후에 여유분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천년설삼과 천년화리는 적어도 1년은 걸릴 것 같습니다.>
<시간을 단축할 방법이 없을까요?>
창수가 정상적인 내공 수련 과정을 밟고 있다면, 1년을 기다리는 건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무공을 익힌 지 단 5일 만에 15년 공력을 모으고, 소주천에 성공한 초고속 연공이다. 이 기세를 이어 가려면,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한다.
<공청석유는 워낙 쓰임이 많은지라, 단시간에 재고를 구하기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천년설삼과 천년화리를 생산하는 빙탑과 불의 마탑에 가면, 재고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오! 그런 방법이 있군요!>
<대표님, 한 달 말미를 주시면, 제가 빙탑을 방문해 천년설삼을 구해 오겠습니다.>
<아닙니다. 법사님은 녹탑에서 업무를 계속하세요. 영약을 구하는 것보다 지금 연구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거니까요.>
평행우주 너머 선양으로 돌아온 창수는 5서클 유저 고사누에게 숙제를 안겨 줬다.
쌀, 밀, 옥수수, 콩, 보리, 감자, 사탕수수 등 주요 농작물 중에서 가장 수확량이 높은 품종 씨앗을 가져와 속성으로 재배하는 연구를 권유한 것.
평행우주는 창수 이외 생명체가 이동하는 데 제약이 있다. 개, 고양이, 새와 같은 동물은 전혀 이동이 안 되고, 식물도 온전한 형태를 보이면면 이동이 안 된다.
씨앗 형태와 줄기를 자른 토막 형태를 가진 식물만이 평행우주를 넘어갈 수 있다.
창수는 수확물 자체가 아니라, 마법진으로 씨앗의 성질을 변화하는 방법이 최상이라고 여기고 있다.
고사누는 창수가 준 어려운 과제를 풀어야 한다. 영약을 얻는 것이 중요하지만, 고사누의 연구를 방해해서는 안 되는 상황.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러면 소개장을 써 드리겠습니다.>
<그리해 주시면, 고맙죠.>
마탑은 매우 폐쇄적인 곳이다. 창수가 대부호라고 해도 일면식이 없는 상태에서 출입이 쉽지 않다.
반면, 고사누는 어떤 마탑을 가도 환영받는 존재다. 5서클 유저의 경지가 흔치 않기에.
고사누가 써 준 소개장은 굳건하게 닫힌 마탑의 문을 여는 열쇠와 다를 바 없다.
2.
- 칙칙칙!
- 부웅!
2023년 9월 14일 새벽 2시, 오백세건강 선양 본사 건물에서 화물차 한 대가 조용히 빠져나와 북쪽으로 이동했다.
“대인, 놀랍습니다. 길이 훤하게 보이는군요.”
화물차에 3명이 타고 있었다. 츠네가 운전대를 잡았고, 창수가 정찰 드론을 사용해 어두운 새벽길을 살폈다. 그리고 관시엔은 드론이 보내오는 선명한 영상에 놀라움을 표했다.
“누구나 감춰 둔 수가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오. 그렇지 않다면, 관 선생 같은 무림인에게 꼼짝없이 당했을 거요.”
“그렇군요. 대인의 전투력이 강한 이유를 알겠습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창수와 관시엔은 서로 죽고 죽이려는 전투를 벌였으나, 지금은 동료가 됐다.
창수가 절정 무사 관시엔과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의 하나가 정찰 드론이다.
먼 거리에서 관시엔의 위치를 먼저 발견하고, 최적의 타이밍에 원거리 무기로 공격하니, 절정 무사가 맥없이 당한 거다.
관시엔은 창수가 가진 힘의 일단을 보고, 자기가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했다는 걸 알게 됐다.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소. 무림인과 근접전을 벌이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소.”
“염려 마십시오. 지금 속도로 성장을 계속하면, 근접전에서도 강자가 되실 겁니다.”
“관 선생이 그렇게 말해 주니, 든든하오.”
돈으로 맺은 관계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창수와 관시엔은 서로 능력자임을 알고 존중했다.
또한 창수는 한때 적이었던 관시엔에게 믿음을 줬다. 근접전에 취약한 상황에서 옆자리를 내줬고, 영약을 구하러 가는 길에 참여시켜, 정찰 드론의 실체를 알려 줬다.
세상 풍파를 아는 관시엔은 창수의 마음을 알아보고, 예의를 갖췄다.
* * *
창수 일행의 목적지는 러시아 사하 공화국 오이먀콘이다. 평행우주 너머 세상에는 야쿠트 왕국 인디기르카 지역이라 불린다.
영하 71.2℃에 달하는 살인적인 온도를 기록해, 북반구에서 가장 추운 곳으로 알려진 그곳에 빙탑이 있다.
선양에서 직선으로 2,700km 떨어진 거리. 금나라 영역까지는 도로 사정이 좋아 하루에 500km를 이동할 수 있으나, 야쿠트 왕국으로 넘어가면, 비포장도로가 이어져 하루 이동 거리가 절반 이하로 대폭 줄어든다.
전체적인 이동 기간을 10일로 잡았다.
“츠네, 차를 멈춰. 성가신 놈들이 길을 막고 있다.”
“마적인가요?”
“마적 수준을 넘은 놈들이야. 이걸 봐.”
- 슥!
“허……. 무장 차량이 있군요.”
“무장 차량 방어력이 어느 정도지?”
“대포에 맞아도 3~4발은 버틸 수 있습니다. 일반 소총으로는 아무리 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면 저놈들은 길바닥에서 구르는 떨거지 마적이 아니구만.”
“그렇습니다. 무장 상태만 보면 거의 정규군입니다.”
9월 19일 오후 4시 30분, 야쿠트 왕국으로 진입한 지 3일째 되는 날, 창수 일행이 중무장한 불청객을 만나게 됐다.
정찰 드론이 보내온 영상에 30여 명으로 구성된 마적단이 보였다. 인적이 드문 도로에 마적이 출몰하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마적단이 특별한 건 차륜형 장갑차와 유사한 무장 차량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건 보통 마적단이 아니라는 걸 의미한다.
“확실히, 마적치고는 과무장이야. 그런데 이렇게 인적이 드문 도로에서 저렇게 중무장할 이유가 있을까? 설마 마탑 수송대를 공격하려는 건 아니겠지?”
“마탑이 공격받으면, 마탑 연합이 끝까지 추적해 보복합니다. 웬만한 능력과 강심장이 아니면, 마탑을 건드리지 않습니다.”
무장 차량이 대단한 무기임에 틀림없으나, 마탑의 공격을 받아 낼 만큼 강력하지는 않다. 마적단이 마탑 수송대를 공격하는 건 자살 행위이다.
그러면 마적단이 무엇을 노리고 중무장한 것인가?
“혹시 저놈들이 우리를 노리는 건 아닐까?”
“저도 그것이 의심스럽습니다. 국경에서 여기까지는 외길입니다. 국경 도시에 패거리가 있다면, 우리가 지나간다는 걸 미리 알고 매복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야쿠트 왕국은 450만km²에 달하는 광활한 면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구는 채 100만 명이 되지 않는다.
금나라와의 접경에 인구 2만 명 수준의 국경 도시가 있고, 왕국은 대부분 산과 초목으로 덮여 있다. 간혹가다 작은 마을이 있을 뿐, 인간의 영역이라 칭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자연 상태다.
창수와 츠네는 중무장한 마적단이 자신들을 노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두 시간 정도가 지나면 해가 질 거야. 한기가 내릴 때, 저놈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자.”
“알겠습니다, 주군.”
야쿠트 왕국의 9월 날씨는 한국 초겨울과 유사하다. 일몰 후 영하로 떨어져, 제법 매서운 추위가 닥친다.
마적단이 창수 일행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면, 추위를 피해 근거지로 돌아갈 거다.
만약, 마적단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목표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리고 그 목표가 창수 일행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 * *
- 아흐. 추워!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야 하는 거야!?
- 오다가 화물차가 퍼진 건가? 천천히 와도 지금쯤 눈에 보여야 해.
- 젠장. 어리바리한 금나라 놈들이라고 하더니, 정말 그런 건가?
- 빌어먹을! 이거 오밤중에 찾으러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창수의 예감이 맞았다. 마적단이 노린 건 창수 일행이 탑승한 화물차였다.
해가 떨어지자 시베리아의 차가운 바람이 뼛속까지 들어왔다. 기온은 1℃, 아직 영상이지만, 체감온도는 -10℃ 이하다.
게다가 일몰 전에 공격을 마칠 거라 예상해서, 추위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았다. 마적들은 제시간에 이동하지 못한 창수 일행의 무능함을 성토했다.
“조용히 해! 강건한 야쿠트 용사가 고작 이런 추위를 무서워하다니, 말이 돼!?”
“두목, 무서운 게 아니고 헛걸음 할까 봐 그럽니다. 낡은 화물차를 털어 봐야, 빈손으로 돌아갈 게 뻔합니다.”
“아니야. 허름해 보이는 화물차가 더 수상한 거야. 마법자루에 돈 되는 것이 가득 들어 있을 거야.”
“하지만, 너무 막연합니다.”
“어허! 신령님을 믿으라니까! 이거 대박이라고!”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는 것일까?
마적단 두목 쿠라트는 창수 일행의 가치를 거의 정확하게 예측했다. 그리고 추위에 떨고 있는 부하들을 독려하며, 창수 일행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30분이 지났을 때,
- 슝!
- 쾅!
- 콰쾅!
“크아악!”
“우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