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44장. 돈으로 무공을 사다
2.
“7월 암브로시아 판매량이 100만 관을 돌파했습니다!”
“뭐야!? 한 달에 그렇게 많이 팔면 어떻게 해!? 8월에 팔 거는 남은 거야!?”
암브로시아 1관 가격은 은 3냥. 7월 암브로시아 판매 금액이 300만 냥에 달한다. 한화 7,875억 원에 해당하는 금액. 연간 추정 9조 원이 넘는 매출액으로, 연초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대단한 성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창수는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당황했다. 재고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창수 일행이 류큐에서 어렵게 구해온 사탕수수가 900만 관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중 13%인 117만 관을 암브로시아로 만들었다.
요택에서 자라고 있는 사탕수수를 수확하는 11월까지 판매할 수 있는 암브로시아 물량은 제한돼 있다.
그런데 츠네는 이걸 아는지, 모르는지 한 달에 100만 관이나 팔았다고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당장 8월부터 판매할 암브로시아가 없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아……. 제가 설명을 빼먹었군요. 염려 마십시오. 암브로시아 재고는 충분합니다.”
“재고가 충분하다고? 법사님이 사탕수수를 더 빨리 키우는 마법진을 개발한 거야?”
“그건 아닙니다. 명나라 상단에서 정상 가격으로 사탕수수를 공급해, 암브로시아를 대량 생산하고 있습니다.”
“엉? 그 악덕 상인 놈들이 무슨 바람이 분 거지?”
암브로시아 생산 초기, 선양 인근에서 사탕수수를 대량으로 구하기 어려웠다. 자연스럽게 해외 수입을 추진했고, 명나라 상단에 구매 의사를 타진했다.
그러나 명나라 상단은 흉작을 핑계로 정상 가격의 10배를 부르는 행패를 부렸다. 창수가 친히 류큐까지 간 원인이 바로 이것.
그런데 창수가 자리를 비운 5개월 사이에, 명나라 상단이 마음을 고쳐먹고, 정상 가격에 사탕수수를 공급한단다. 창수가 어리둥절해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리라.
“명나라 황제와 황후가 암브로시아에 푹 빠져 있습니다. 황족과 고관대작들도 암브로시아 없이 식사를 못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아하! 그렇군! 역시, 명나라 사람들이 단맛에 약해!”
“그렇습니다. 한번 맛을 들이니, 엄청난 중독성을 보이더군요. 타무 님 말로는 명나라 종족 특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명나라에 할당된 암브로시아는 매달 3만 관이었습니다. 명나라에서 관리까지 파견해 공급량을 늘리라고 아우성치더군요.”
“한 달 판매량이 10만 관 정도가 한계인데, 3만 관도 많이 준 거지. 욕심이 과하군.”
“타무 님도 관리에게 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명나라 상단 농간 때문에 암브로시아 생산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그러면 그 관리가 해결해 준 거야? 명나라 상단 놈들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건데?”
“관리 힘으로는 어렵죠. 대신 상부에 보고했고, 자초지종을 안 명나라 황제가 불호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상단주가 호부상서에게 끌려가 호되게 당한 뒤, 작년 가격으로 사탕수수를 팔고 있습니다.”
“하하하. 이야기가 그렇게 된 거군. 확실히 물건을 잘 만들고 봐야 해.”
이해가 가는 설명이다. 평행우주 너머 중국이 암브로시아 전체 생산량의 21%를 소비하고 있다. 중국에 오백세건강 지사가 없고 심지어 콜센터도 운영하지 않는데, 암브로시아의 맛에 빠져 대량 소비를 하고 있는 거다.
명나라도 마찬가지, 황제와 황족 그리고 관리들이 암브로시아의 맛에 빠져 있다.
일반적인 제품이라면, 명나라 상단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정책을 사용하겠으나, 암브로시아에 대한 열망이 너무 강하기에, 사탕수수를 정상 가격에 공급하도록 강요한 거다.
“연말에 암브로시아 월 판매량이 200만 관을 돌파할 거라고 합니다.”
“달성 가능한 수치야. 생산 시설은 어떻게 되고 있지?”
“공장을 3개로 늘려, 매월 300만 관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그거로는 부족해. 공장을 3개 더 늘려야 내년 상반기까지 늘어날 수요를 대비할 수 있어.”
“암브로시아 판매가 그렇게 빨리 늘까요?”
“당연하지. 한번 맛을 들이면, 줄일 수 없는 게 암브로시아야. 합법적이지만 마약보다 중독성이 더 강하다는 말이 농담만은 아니야.”
300만 관은 11,250톤에 불과하다. 창수는 이보다 10배 이상 많은 암브로시아 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 재고를 쌓아 놓는 것이 현명하다. 창수는 츠네에게 공장을 확충할 지역을 지정해 주고, 인력 수급 방안을 지시했다.
* * *
“주군, 아이신 상단을 미행하던 절정 무사를 기억하십니까?”
“당연히 기억하지. 능천곡 출신 관시엔이잖아.”
“그자가 보름 전부터 주군을 만나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급한 업무를 처리한 뒤, 츠네가 새로운 소식을 알렸다. 천살단 부단주 관시엔이 선양 오백세건강 본사를 찾아왔다는 것.
“돈이 궁해서 찾아온 건가?”
“그렇습니다. 120만 냥이었던 능천곡 빚이 150만 냥으로 늘었습니다. 이달 말까지 변제하지 못하면, 젊은 처자 15명이 기루에 팔려 간다고 합니다.”
“가련한 처지군. 좋아. 조용히 데려와.”
“다녀오겠습니다, 주군.”
관시엔이 언젠가는 찾아올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지만, 피할 이유가 없다.
창수는 츠네에게 관시엔을 은밀히 집무실로 데리고 오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 츠네가 작성한 능천곡 현황 보고서를 찬찬히 읽었다.
- 척.
“대인을 뵙습니다!”
“오랜만이오. 그런데 안색이 좋지 않구려. 걱정거리라도 있소?”
50분 만에 관시엔이 창수의 집무실을 찾아왔다. 창수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가, 부름이 있자 단숨에 달려온 거다.
창수는 관시엔의 얼굴이 반쪽이 된 것을 보고, 덕담을 건네는 대신, 용건을 말하라고 판을 깔아 줬다.
“대인께 무엇을 숨기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귀하도 알다시피, 나는 상인이오. 일방적으로 도와 달라는 건 나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는 거요.”
“죄송합니다. 제가 급해서 그만…….”
“좋소. 이해하리다. 그러면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묻겠소. 귀하가 필요한 금액이 150만 냥으로 알고 있는데, 그 돈을 주면 나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소?”
“평생 견마지로의 자세로 대인을 모시겠습니다.”
150만 냥은 한화 3,937억 원에 해당하는 거금이다. 절정 무사 관시엔은 능천곡 여인 15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자유와 목숨을 창수에게 위탁하려 했다.
“귀하 같은 능력자를 150만 냥으로 얻는다면, 나에게 남는 장사요. 하지만, 빚 150만 냥을 정리한다고 해서, 능천곡에 닥칠 채무 위협이 사라질 거라 생각하는 거요?”
“역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빚을 진 겁니다. 능천곡 사람들은 사치를 멀리합니다. 더 이상 큰 빚을 지지 않을 겁니다.”
“능천곡 주민들이 검소하다는 것은 알고 있소. 그러나 5개월도 안 돼서 빚이 30만 냥이나 늘지 않았소? 이건 어떻게 설명할 거요?”
“그… 그건…….”
150만 냥이 큰돈이지만, 창수에게는 소소한 금액이다. 절정 무사를 150만 냥에 영입하는 건 쌍수 들고 환영할 일.
하지만 창수는 관시엔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능천곡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점을 언급했다.
관시엔은 창수의 날카로운 지적에 즉답을 못 하고 말을 더듬어야 했다.
“능천곡은 마나가 풍부하고 사계절 온화한 날씨를 가지고 있어, 예로부터 수많은 기인이 은거하던 곳이오. 특히, 능천곡 여인은 용모가 빼어나고 노화가 늦어, 50대라고 해도 20대와 다를 바 없는 미모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졌소. 내 말이 틀리오?”
“대인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런데 설마……. 능천곡 여인을…….”
“커험! 내가 여인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 모르오?”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다만 여인을 말씀하시기에…….”
영웅호색이라는 말이 있지만, 창수와 동료들은 예외다.
약혼녀에게 뒤통수 맞은 창수는 여자에게 관심이 없다. 꽃뱀 구아이에게 농락당한 경험이 있는 고사누는 여자를 혐오하는 지경이고, 츠네는 기녀였던 모친의 영향으로, 가벼운 만남을 피하고 있다.
관시엔은 오백세건강의 수뇌부가 여색을 밝히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순간 창수를 의심한 건 그만큼 능천곡 여인의 미모가 빼어나 노리는 사람이 많다는 걸 나타낸다.
여인에 초탈한 창수조차 능천곡 여인을 탐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낀 거다.
“귀하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겠으나, 능천곡이 위협받는 근본 원인은 아름다운 여인에 있소. 150만 냥을 해결한다고 해도, 적들은 다른 방법으로 능천곡을 공략해 궁지에 몰 거요.”
“후……. 대인의 말씀이 옳습니다. 사내들이 무능해 여인들을 지키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지요.”
“아니요. 남자들이 유능하니, 적들도 어려운 방법을 쓰는 거요. 만약 무능했다면, 능천곡을 무력으로 점령하려 했을 거요.”
“그렇군요! 대인! 해결 방법이 있다면 알려 주십시오!”
창수의 통찰력이 놀랍다. 관시엔은 창수의 날카로운 지적과 상황 인식에 감탄했다. 그리고 무언가 희망을 느끼기 시작했다.
창수 같은 거물이 능천곡의 취약점을 열거한다면, 해결 방안도 생각해 둔 것이 있으리라.
“나와 거래합시다. 앞으로 능천곡에 발생할 모든 금전적인 어려움을 내가 해결해 주겠소. 그 대신 나와 츠네에게 무공을 전해 주시오.”
“무공은 외인에게 전할 수 없습니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해 주십시오.”
무인에게 무공은 생명과 같은 것. 관시엔은 창수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에서도, 무공을 팔라는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전할 수 없는 건, 주인이 있는 무공에 국한된 것 아니오?”
“예? 무슨 말씀이신지…….”
“능천곡에 후인을 남기지 않고 등선한 기인들의 무공이 남아 있을 것 아니오? 그걸 전수해 주면 되는 거요.”
“음……. 대인의 말씀이 타당합니다. 하지만 저 혼자 결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능천곡 원로들의 중지를 모아 보시오. 서두르면, 제시간 안에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거요.”
문제가 있다는 건 해결 방안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창수는 관시엔이 무공 전수를 거절할 거라 예상하고, 허를 찌르는 대안을 마련했다.
능천곡에는 평생 무공을 연구하다가, 제자는 물론이고, 자신의 이름도 남기지 않고 죽은 기인들이 즐비하다.
그들이 남긴 무공을 창수에게 전하는 것과 능천곡이 금전적인 어려움에서 해방되는 것을 저울질할 여지가 있는 거다.
관시엔은 창수의 제안을 장로회에 알리기 위해, 황급히 능천곡으로 향했다.
* * *
선양을 떠난 관시엔은 증기 자동차와 기차 그리고 경공을 이용해 7일 만에 능천곡에 도착했다. 급한 마음에 11일 거리를 4일이나 단축한 것.
그리고 즉시, 원로회에 창수의 제안을 보고했다.
“절대 불가한 일이야! 외인에게 무공 전수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장로님! 이름 모를 선인들이 남긴 무공입니다! 그것으로 여인들을 지킬 수 있다면, 등선하신 분들도 기뻐할 겁니다!”
“선인이 남긴 무공도 능천곡 무공이야!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 무공을 외부로 내보낼 수 없어!”
예상은 했지만, 장로들의 반발이 너무 거세다. 관시엔은 장로들로부터 심한 질타를 받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