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152화 (152/200)

152화 43장. 갑질의 미학

3.

7월 17일, 일본에 은밀히 잠입해 알짜 기업 5개에 대한 정보를 모으던 창수에게 김근홍이 메시지를 보냈다.

[창수야, 아무래도 하드뱅크는 어려울 것 같다. 매각 주간사가 로건 컨설팅이야.]

[로건이라…….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 이름이네요.]

[로건 레드실드. 레드실드 가주의 4촌 동생이 경영하는 회사야.]

하드뱅크의 돈줄을 막고 헐값에 집어삼키려는 레드실드가 매각 실무를 담당하는 주간사가 됐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 바로 이것이리라.

[아예 작정하고 나선 거군요. 부당 내부 거래로 클레임을 걸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드뱅크 인수에 레드실드는 빠지고, 빅벤이 나설 거야. 빅벤과 레드실드가 협력하고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워. 잔대가리를 굴린 거지.]

[연결 고리를 잡아내야 합니다. 하드뱅크는 일본 기업 중에서 핵심입니다. 고인물 놈들에게 넘겨줘서는 안 됩니다.]

일본이 IMF 체제에 들어가기 전 하드뱅크의 시가총액은 1,000억 달러였다. 타요타 자동차보다 1,500억 달러 규모가 작은 기업.

그러나 보유한 자산의 질과 규모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드뱅크는 중국 간판 기업 유리바바의 최대 주주이며, 승차 공유 서비스 우바를 포함해 다수의 IT 첨단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하드뱅크의 투자자산 가치가 3,500억 달러로 추정된다. 타요타 자동차와 견주어 밀리지 않는 탄탄한 기업이다.

게다가 사업성도 우수하다. 투자자산을 당장 현금화하기 어렵고, 빅벤과 레드실드가 담보대출을 막아 유동성 위기가 온 것일 뿐, 자생력이 충분한 우량 기업이다.

창수는 하드뱅크를 일본 기업의 핵심이라 여기며, 반드시 인수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나도 하드뱅크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 하지만 고인물들이 쉽게 약점을 드러낼 놈들이 아니야.]

[침투조를 투입하면, 단합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증거를 확보해도 활용하기가 어려울 거야. 언론이 고인물 놈들과 한통속이니까. 게다가 침투조를 활용하면, 우리 존재가 드러날 수 있어.]

빅벤과 레드실드가 결탁했다는 증거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창수가 투명망토와 블링크 마법을 사용해 증거를 확보한다고 해도 걸림돌은 여전하다.

고인물들이 언론에 강력한 영향력을 가해, 증거를 무력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더 문제가 되는 건 어렵게 확보한 증거가 오백세건강을 위해 활용되기에, 창수가 펼친 이간계가 파탄 날 수 있다는 거다.

김근홍은 침투조 사용이 위험에 비해 효용이 떨어지는 일이라 판단했다.

[대안이 없을까요?]

[우리 힘만으로 고인물 놈들의 수작을 막기 어려워.]

[그러면 누구의 조력을 받아야 할까요?]

[조력은 아니고, 중국을 끌어들여야 해.]

[유리바바를 이용하자는 건가요?]

[맞아. 유리바바는 중국 최대 기업이고, 선진적인 산업의 간판이야. 하드뱅크가 고인물들 손에 떨어질 때, 유리바바도 흔들릴 수 있다는 정보를 흘리면, 중국 정부를 움직일 수 있을 거야.]

빅벤과 레드실드는 일본에서 인수한 기업을 공중분해 한 뒤, 기술 특허, 상표권, 토지 등으로 나눠 매각을 추진 중이다. 하드뱅크를 인수하면, 유사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김근홍은 중국 정부에 유리바바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걸 알려, 고인물들을 견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양날의 칼이군요. 자칫 하드뱅크가 중국에 넘어갈 수 있겠습니다.]

[맞아, 그런 위험이 있어. 그리고 중국 정부가 나서면, 인수 가격이 대폭 올라갈 거야. 낙찰을 받아도 실익이 적을 수 있어.]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그러면…….]

김근홍의 예측이 타당하다. 경쟁 입찰에 고인물들 눈치를 보지 않는 중국 정부가 끼어들면, 필연적으로 낙찰 가격이 오를 거다.

창수는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진 뒤, 자신의 구상을 말했다.

* * *

<좋지 않은 소식이요. 중국 정부가 하드뱅크 입찰에 개입했소.>

중국 정부가 로건 컨설팅에 공식 문서를 보냈다. 고압적인 자세와 적대감을 담은 어조로 하드뱅크 입찰 절차에 관해 경고한 것.

이 내용을 보고받은 베르너 레드실드가 즉시 이언 매코이에게 연락했다.

<뭐요!? 중국 정부가 무슨 이유로 사기업 입찰에 끼어든다는 거요!?>

<하드뱅크가 소유한 유리바바 지분을 걸고넘어졌소. 입찰 과정 전체가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처리되지 않으면, 낙찰을 승인하지 않겠다고 했소.>

<터무니없는 헛소리! 하드뱅크는 일본에 상장돼 있고, 유리바바는 미국에 상장돼 있소! 중국이 무슨 권한으로, 승인 운운한다는 거요!?>

<유리바바의 본사는 중국에 있고, 매출 대부분이 중국에서 발생하오. 중국 정부가 작정하고 나서면, 유리바바가 도산할 수 있소. 그렇게 되면, 하드뱅크를 인수할 이유가 없게 되는 거요.>

<아무리 중국 정부가 제정신이 아니지만, 그런 미친 짓을 할 것 같소?>

<쉽게 하지 못하겠지만, 불가능은 아니오. 하드뱅크에 엄연히 공산당 리스크가 있다는 걸 고려해야 하오. 감정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되는 거요.>

고인물들에게 까다로운 상대가 중국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 권한이 막강하기는 하지만, 의회와 여론 그리고 선거라는 견제 수단이 있기에, 상식에 어긋난 행동을 함부로 하기 어렵다.

반면, 중국은 공산당 1당 독재 체제이기에 어떤 일도 벌일 수 있다. 국제사회의 규범, 공식 문서로 작성한 계약, 인류의 보편타당한 도덕도 공산당의 결정으로 단번에 깰 수 있다.

중국을 기반으로 사업을 벌이는 유리바바를 거꾸러트리는 건 언제든지 가능하다.

3,500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자산을 보유한 하드뱅크의 시가총액이 고작 1,000억 달러에 머물던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거다.

<그것참……. 여러 가지로 골치 아프구만. 중국 정부가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뭐요?>

<감사 팀을 파견해 공개 입찰 전반을 감시하겠다고 하오.>

<그러면 우리가 너무 불리하지 않소?>

<손쉬운 낙찰이 어려워진 건 사실이지만, 불리한 건 아니오. 과거 입찰을 근거로 최대한 유리한 룰을 만들면, 우리가 충분히 하드뱅크를 차지할 수 있소.>

<알겠소. 이번 건은 당신에게 맡기겠소.>

이언 매코이는 마치 큰 선심이나 쓰듯이 중국 정부의 요구를 수용했다. 하지만 이건 허세다. 떨떠름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기에 적극적으로 반대를 못 한 것뿐이다.

평소에 갑질을 일삼던 고인물이 역으로 갑질당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4.

2023년 7월 20일 오전 10시, 도쿄에 있는 하드뱅크 본사에 경쟁 입찰에 참여하는 투자자들이 몰려들었다.

“입찰 참여자 여러분, 환영합니다. 하드뱅크는 세계 IT 산업을 선도하는 기업입니다. 일본 경제가 잠시 어려움에 처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만, 조만간 본래의 힘을 되찾을 것이 분명합니다. 미래로 앞서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입찰을 시작하기 전, 매각 실무를 진두지휘한 로건 레드실드가 나서서 하드뱅크의 가치를 높이는 열변을 토해 냈다.

일부는 사실에 기반을 둔 말이지만, 상당수가 하드뱅크의 몸값을 올리려는 미끼성 발언이다.

빅벤과 결탁한 상황에서 하드뱅크 인수 가격이 치솟는 걸 바라는 건 아니나, 주관사 대표로서 할 도리를 다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지금부터 12시까지, 입찰 서류를 받습니다. 그리고 2시간 뒤, 오후 2시에 입찰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이번 입찰은 일본 정부는 물론이고 중국 정부와 협력하여, 공정한 기준과 평가 절차를 마련했다는 점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고대로 중국 정부가 감사를 파견했다. 그리고 일본 정부도 경쟁하듯이 하드뱅크 입찰에 개입했다.

입찰 방법과 입찰 시기 그리고 평가 방법이 중국 정부와 일본 정부 승인하에 결정됐다.

로건 레드실드는 이 내용을 언급하며, 입찰의 공정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정말 공정하게 입찰이 이루어질 건지는 여전히 미지수.

- 소근! 소근!

입찰이 시작되자 입찰장 내부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자리를 배정받은 투자 그룹은 모두 12개 팀. 서로 눈치를 보면서 언제 입찰 서류를 제출 할 것인지 그 시기를 가늠했다.

- 뚜벅! 뚜벅!

- 척!

첫 번째 입찰 서류가 접수된 건 오전 11시 30분, 마감을 30분 남기고 어반뱅크가 스타트를 끊었다.

- 틱! 틱! 틱!

- 수근! 수근!

어반뱅크는 빅벤의 들러리다. 이 사실을 파악하고 있는 투자 팀들이 외부와 문자로 정보를 주고받고, 내부에서 의견을 교환했다.

치열한 눈치작전이 펼쳐지는 상황.

“입찰 마감 5분 전입니다. 마감 시간을 1초라도 넘기면, 접수받지 않는다는 것을 상기해 주십시오.”

하지만 25분이 지나도록 추가 접수가 없었다. 보다 못한 로건 레드실드가 나머지 11개 팀에게 경고했다.

막판에 접수가 몰리면, 누구를 받아 주고 누구를 받아 주지 않는다는 불만이 나올 수 있다.

이쯤에서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 혼란을 줄인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단호한 어조로 선언한 것이다.

- 척!

- 척!

경고가 먹힌 것일까? 눈치만 보고 있던 투자 팀들이 입찰 서류를 연이어 제출했다.

이제 남은 건 3팀뿐, 빅벤이 운용하는 스피어펀드, 중국 정부가 조종하는 용상은행 그리고 오백세건강.

“30초 남았습니다! 서두르세요!”

눈치작전이 과해도 나무 과하다. 막판까지 남은 3팀이 실질적으로 낙찰받을 가능성이 크다.

로건 레드실드는 주인공들이 입찰 서류 제출에 실패하지 않도록, 목소리를 높여 마지막 경고를 날렸다. 특히, 스피어펀드를 향해.

- 슥!

먼저 움직인 건 오백세건강이었다. 60대로 보이는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 타다닥!

- 후다닥!

그리고 거의 동시에 스피어펀드와 용상은행 관계자가 서류를 들고 접수대로 돌진했다.

마치 100미터 달리기 선수가 결승선을 앞두고 라스트 피치를 올리는 듯한 모습.

- 척!

- 척!

30대로 보이는 용상은행 관계자가 빨랐다. 그리고 이어서 40대로 보이는 스피어펀드 관계자가 입찰 서류를 접수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10초. 로건 레드실드가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10, 9, 8, 7, 6, 5, 4, 3, 2…….”

- 척!

“접수 완료! 총 12개 투자 그룹에서 하드뱅크 입찰에 응했습니다. 입찰 결과는 2시간 뒤에 발표하겠습니다.”

정말 간발의 차이였다. 먼저 도착한 2명에 밀려 접수를 못 하던 초로의 오백세건강 관계자가, 1초를 남겨 두고 응찰에 성공했다.

로건 레드실드는 자연적으로 오백세건강을 탈락시킬 기회를 놓친 것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백세건강 관계자를 훑어봤다.

하지만 로건 레드실드는 60대 남자가 행한 번개처럼 빠른 손놀림을 인식하지 못했다.

* * *

빠르게 시간이 지나고 오후 2시, 하드뱅크의 새로운 주인을 가리는 입찰 결과가 발표됐다.

“공지한 규칙에 따라, 5위부터 순위를 발표하겠습니다. 300점 만점에서 총 271점을 얻은 엑세스캐피탈.”

- 웅성웅성!

입찰장 안이 술렁인다. 5위는 입찰에서 패배했으나, 완전히 탈락한 건 아니다. 1위부터 4위까지 입찰에 결격사유가 발생하면, 다른 경쟁 입찰 없이 우선 협상자가 될 자격이 있다.

나름 선방한 투자 그룹 이름이 생소하기에, 사람들이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 거다.

“4위, 281점을 얻은 스피어펀드.”

- 헉! 세상에!

- 뭐야!? 스피어펀드가 떨어졌어!

- 어떻게 된 거야! 이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