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42장. 떨이로 쓸어 담다
6.
2023년 6월 11일, 창수가 태국 방센비치에 있는 김근홍의 저택을 방문했다. 과거 1,000㎡(303평)에 머물던 이곳은 확장을 거듭해, 현재 25,000㎡(7,563평)에 달하는 대저택이 됐다.
러시아 크렘린 궁전과 같은 면적을 가진 저택 내부에 김근홍과 여친들이 거주하는 곳은 물론이고, 트레이딩 룸, 경호실, 고용인 숙소, 연회장, 영화관, 수영장 등이 배치돼 있다.
상주인구만 1,000명이 넘어, 웬만한 국가의 대통령 궁 못지않은 규모.
김근홍은 본관 건물 지하 7층에 위치한 트레이딩 룸에서 창수를 맞이했다.
“창수야! 축하한다! 너는 이제 세계 최고 부자야!”
“하하하! 모두 선배님 덕분입니다! 그리고 선배님도 두 번째 부자 반열에 오른 걸 축하드립니다!”
“너는 확실한 1등이 맞지만, 나는 2등이 아니야. 나보다 부자가 너 빼고도 5명은 있어.”
“그래도 현금 동원력은 선배님이 앞서지 않나요?”
“그거야 당연하지. 현금 5,000억 달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너와 나 둘뿐이야.”
창수가 2차에 걸친 일본 공략으로 벌어들인 돈은 1조 8,960억 달러에 달한다. 기존에 보유한 재산을 포함하면, 가뿐하게 2조 달러를 넘는 재산을 가지고 있다.
2위권을 형성하는 부호들의 재산이 1조 달러라는 걸 고려하면, 창수가 세계 최고 부자라는 데 이견이 없다.
한편, 김근홍은 일본 공략을 통해 4,740억 달러를 벌어들여 총 재산이 5,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전체 부자 순위로 6위에 해당하지만, 현금은 창수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가지고 있다.
“기업 인수에 사용할 총알을 확보해서 다행입니다.”
“확보한 정도가 아니야. 넉넉히 넘치고도 남아.”
“일본 상위 10개 기업 시가총액이 1조 3,000억 달러를 넘지 않나요? 30개 정도 쓸어 담으려면 넉넉한 정도는 아닐 것 같은데요.”
“고인물들 칼춤 덕분에 기업 가치가 뚝뚝 떨어지고 있어. 지금 타요타 가치가 500억 달러 이하로 평가돼.”
일본 경제가 무너지기 전, 타요타 자동차의 주가 총액은 2,500억 달러에 달했다. 2주일도 안 되는 시간에 80% 가치가 날아간 거다.
일본 주식시장 규모가 5조 달러였다는 걸 생각하면, 산술적으로 1조 달러만 가지고도 일본 기업 대다수를 사들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와! 떨어지는 속도가 엄청나네요! 고인물들 능력이 예상보다 뛰어난 건가요?”
“그건 아니고. 일본 기업가 놈들이 황당한 짓을 한 거지. 타요타가 이번에 손해 본 금액이 9조 엔이야. 저금한 돈 6조 원 다 날려먹고, 3조 원이나 빚을 진 거야.”
“고인물들이 공작을 벌일 필요 없이, 추가 대출만 막아도 타요타가 말라 죽겠습니다.”
“그런 거지. 잘하면 1/10 가격 이하로 인수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면 인수할 회사를 50개 이상으로 늘려도 되겠군요.”
“경제 연구소에서 파악한 일본 우량 기업이 71개야. 그중에서 57개를 인수하면, 80%가 조금 넘어.”
“좋습니다. 최소 57개 인수하도록 작전을 짜 보죠.”
일본 경제가 몰락했지만, 과거 세계 경제 3위의 위상을 지키던 핵심 기업이 남아 있다. 기초 소재, 자동화 로봇, 반도체 장비, 전자 부품 분야 기업이 그것.
로버트 카빌이 이끄는 오백세건강 경제 연구소는 거시적인 관점과 미시적인 접근을 동시에 사용해, 가치 있는 일본 기업 71개를 선정했다.
창수와 김근홍은 이 중 최소 57개 회사를 인수하려 한다. 일본이 쌓은 알토란 자금을 뽑아 먹은 데 이어서, 일본 산업 근간을 접수할 요량.
“오케이. 사업 이야기는 이쯤 하고, 파티를 즐겨 볼까. 너를 위해서 세계 100개국의 진미를 준비했다.”
“예!? 100개국이요!? 너무 과소비 아닐까요?”
“창수야, 우리 같은 부자가 돈을 써 줘야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는 거야. 과소비가 아니라 세계 경제를 위해서 자금을 공평하게 분배한다는 생각을 해야 해.”
“하하하. 선배님 말이 궤변 같으면서도 묘하게 설득력이 있네요.”
“껄껄껄. 찰떡같이 알아들었으면 됐다.”
왕궁 규모 대저택 심층부에 자리 잡은 이곳은 일반적인 트레이딩 룸과 큰 차이가 있다.
정보를 취합하고 금융거래를 할 수 있는 첨단 시설이 있는 것은 기본이고, 수면을 취할 수 있는 침대를 비롯해 생활 시설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
트레이딩 룸 전체가 50cm 두께의 복합 장갑으로 만들어져 외부와 단절돼 있고, 10명이 2년간 버틸 수 있는 식량과 식수가 저장돼 있다.
창수와 김근홍은 철벽을 뛰어넘는 방어력을 갖춘 안전한 거점에서 세계 100개국에서 조달한 산해진미와 희귀한 술을 맛보며 승리를 자축했다.
일반인의 관점에서 말도 안 되는 과소비이지만, 일본이라는 국가 하나를 털어먹은 능력자들이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여흥이다.
7.
“회장님, 모든 자금줄이 막혔습니다.”
- 쾅!
“칙쇼! 세계 자동차를 석권한 우리 타요타의 신용도가 이것밖에 안 되는 거야!? 겨우 5,000억 엔을 구하지 못해서 도산한다고!? 그게 말이 되냐고!?”
6월 28일 수요일, 일본이 IMF 구제금융을 받은 지 20일이 지난 시점에서, 타요타 자동차에 위기가 닥쳤다. 간신히 돌려 막던 부채에 한계가 온 것이다.
이번 주 안으로 5,000억 엔을 마련하지 못하면, 회사가 파산하게 된다.
타요타는 연간 매출액이 29조 엔에 달하는 세계 1위 자동차 회사고, 순이익이 2조 5,000억 엔에 달한다.
회장 유키오 타요타는 1주일 매출액도 안 되는 당좌수표를 막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했다.
“국제금융 세력이 대출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정부가 IMF 체제에 들어간 상황에서 우리에게 남아 있는 활로는 없습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회사를 매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고 도산합니다.”
“안 돼! 절대로 우리 회사를 헐값에 넘길 수 없어! 100억 달러 받고 매각하느니, 차라리 옥쇄하는 게 나은 선택이야!”
빅벤과 레드실드는 타요타가 단 한 푼도 대출을 받지 못하게 막은 뒤, 100억 달러에 인수하겠다고 통보했다.
금융 위기 전 기업 가치가 2,500억 달러였다는 걸 고려하면, 말도 안 되는 후려치기.
유키오 타요타는 절대로 100억 달러에 회사를 매각할 수 없다고 다짐했다.
“150억 달러에 인수를 타진한 곳이 있습니다. 그 돈을 받으면 회장님과 대주주분들이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승냥이 같은 국제금융 세력의 눈치를 안 보고 50억 달러를 더 쓸 곳이 있다고?”
“오백세건강이 인수를 제안했습니다.”
창수와 김근홍은 정보 네트워크를 통해 인수 목표로 삼은 71개 회사의 일거수일투족을 자세히 파악하고 있다.
빅벤과 레드실드가 타요타 자동차를 100억 달러에 인수할 계획이라는 걸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은 일.
그리고 애초 계획대로 막판에 가로채기 위해, 50% 추가한 150억 달러를 인수 금액으로 제안했다.
타요타의 본래 가치 2,500억 달러와 비교해 150억 달러도 상식 이하의 낮은 금액. 하지만 50억 달러는 회장과 임원진 그리고 주요 주주들의 은퇴 자금으로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오백세건강!? 거기는 한국 회사와 다를 바 없는 곳이잖아!”
“오백세건강은 식품과 에너지 분야를 석권하는 다국적 기업입니다. 경영자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따질 이유가 없습니다. 자금이 탄탄한 곳이 인수하면, 우리 타요타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악랄한 국제금융 세력에게 넘기는 것보다 훨씬 좋은 선택입니다.”
“다른 대안은 없을까? 일본에도 150억 달러 정도는 조달할 곳이 있을 거야.”
“이번 주말까지 그런 인수자를 찾기 어렵습니다. 설령 찾는다 해도 국제금융 세력이 점찍은 우리에게 50억 달러를 얻어다 줄 배포가 없을 겁니다.”
유키오 타요타는 한국인 창수가 경영하는 오백세건강에 일본 최고 기업을 매각하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이왕 넘길 거라면, 일본인 자산가 또는 투자 펀드에 매각하는 것이 나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일본 경제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상태에서 150억 달러를 투입할 인수자를 찾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인수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해외 세력이 노리고 있다는 것이 알려진 상황에서, 굳이 50억 달러를 더 써 가며, 전쟁에 뛰어들 이유가 없다.
“후……. 정녕 그 방법밖에 없는 건가?”
“현재로서는 최고의 제안입니다.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겁니다.”
“알았다. 오백세건강에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알려.”
최악을 피하고자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한다.
고인물들에 의해 궁지에 몰린 타요타 자동차가 창수의 수중에 떨어지게 됐다.
* * *
<오백세건강이 타요타를 인수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소. 그게 사실이오?>
<사실이오. 건방진 졸부가 우리 먹이를 가로챈 거요.>
6월 29일, 오백세건강이 타요타를 전격적으로 인수했다. 인수 자금 150억 달러 정도는 언제든지 쓸 수 있고, 인수를 위한 대비는 2주 전부터 완벽하게 준비한 상태.
창수는 유키오 타요타가 제안을 수락하자, 즉시 인수 팀을 파견해 뜸 들이지 않고, 모든 절차를 단번에 마무리했다.
<버닝스톤부터 여러 가지로 신경을 건드리는구려. 경고 차원에서 금융 쪽으로 압력을 가하는 것이 좋지 않겠소? 레드실드가 그런 것에 통달하지 않았소?>
<돈으로 건드릴 상대가 아니오. 무차입 경영은 기본이고, 매달 순이익이 50억 달러를 넘어가고 있소. 차라리 타격대를 투입하는 건 어떻겠소?>
무차입 경영은 1년 이상 비유동성 부채가 0인 기업을 칭한다. 주로 영업 이익률이 높은 IT와 바이오 관련 업종에서 나타난다.
이언 매코이는 오백세건강을 견제하기 위해 은행을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현금이 남아도는 오백세건강을 돈으로 압박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오히려 은행들이 오백세건강의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
베르너 레드실드는 금융이 아니라,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일 거라 여겼다.
<무력이 만만치 않소. 오백세건강에서 고용한 특수부대 출신 PMC가 1,000명이 넘소. 그중의 절반이 태국 저택에 배치돼 있어, 전면전을 치르기 전에 뚫기가 어렵소.>
창수의 경고에 따라 김근홍은 대대적으로 무력을 증강했다. 영국 SAS와 미국 델타포스 출신을 포함해서, PMC에서 명성이 높은 우수 인력을 대거 영입했다.
평균임금보다 50% 높은 급료를 주고, 최첨단 무기와 장비를 갖춘 오백세건강의 경비병과 타격 팀은 고인물들도 소홀히 대할 수 없을 만큼 강하다.
<커험……. 정말 골치 아픈 것들이군. 지난번에 빅벤에서 처리했으면, 오늘 같은 일은 없었을 것 아니오?>
<그걸 당신이 말할 건 아니지!>
<무슨 말이오?>
<우리가 오백세건강을 치려고 할 때, 당신네 레드실드가 사인드파고 센터를 기습하면서 일이 틀어진 거란 말이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오! 우리는 사인드파고를 공격하지 않았소! 오히려 당신네 빅벤이 우리 런던 본부를 기습해서, 불태운 거잖소!>
<헛소리하지 마시오! 사인드파고 센터에 골렘이 등장했는데, 아니라고 발뺌하는 거요!? 그리고 빅벤은 런던 본부를 공격한 적이 없소!>
<사인드파고에 나온 골렘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오! 게다가 런던 본부에서 늑대가 소환됐는데, 뻔한 거짓말을 하는 거요!?>
창수의 이간계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일본을 털어먹는다는 공동 목표로 손을 잡았으나, 빅벤과 레드실드가 한 달 전까지 피 튀기는 전투를 벌였던 것이 엄연한 사실.
그 원한이 되살아나 언쟁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