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42장. 떨이로 쓸어 담다
4.
[이번에 번 것만 1조 9,000억 달러야!]
[하하하! 엄청나군요. 그러면 일본에서 우리가 벌어들인 총액이 2조 3,700억 달러가 되는 건가요?]
[커커커! 맞아! 일본을 제대로 털어먹은 거지!]
창수와 김근홍은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일본 GDP 47%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벌어들였다.
2조 3,700억 달러는 일본 정부와 기업 그리고 개인이 보유했던 대외 순자산 3조 달러의 79%를 차지한다. 70년간 일본과 일본인이 피땀 흘려 쌓은 부가 한국인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또한, 이 금액은 일본 대외 총자산의 23.7%에 달하고, 부동산을 포함해서 일본 국민이 보유한 전체 재산의 8%에 해당한다.
창수와 김근홍이 일본이라는 국가 하나를 통째로 잡아먹은 셈이다.
[일본 정부가 어떻게 나올까요?]
[IMF에 지배당하는 처지이니, 별다른 대책이 없을 거야.]
[그러면 IMF만 바라보고 손 놓고 있는 건가요?]
[그건 아니지. IMF의 주구 노릇을 충실히 해야지. 우선 긴축에 들어가면서 금리를 올릴 거야. 그리고 기업에 강도 높은 구조 조정이 있겠지.]
[IMF는 왜 고금리정책을 고수하죠? 경제 위기에 빠진 국가마다 원인이 다를 건데, 고금리정책은 항상 들어가더군요.]
[아주 좋은 질문이야. 그리고 IMF의 본질을 집어 내는 질문이기도 하고. IMF가 고금리정책을 사용하는 건, 경제 위기에 빠진 국가의 경쟁력을 뿌리까지 태우려는 수작이야.]
[예? IMF가 소방수가 아니라 방화범이라는 건가요?]
[방화범과 소방수 역할을 동시에 하는 거지. IMF가 하는 짓거리는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국가로 불이 번지는 것을 막는 거야. 불쏘시개가 된 국가 입장에서는 방화범이고, 경제 위기 전이를 두려워하는 국가에서는 소방수로 보는 거지.]
[당하는 처지에서 IMF 같은 악질이 없군요.]
[맞아. IMF 사태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야. IMF 체제에 들어가면, 국민과 기업이 불지옥에 빠지는 경험을 피할 수 없어.]
IMF는 혹독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경제 위기에 빠진 국가에 천편일률적으로 고금리정책을 사용하고 있다.
IMF는 고금리가 해외 자금의 유입을 촉진한다고 주장하지만, 이건 핑계에 불과하다.
금리가 높아지면 부실기업이 도산하는 건 기본이고, 멀쩡한 기업도 이자 부담이 높아지며, 자금 조달이 어려워 파산에 이르게 된다.
연쇄적으로 하청기업과 연관 기업이 타격을 받게 되고, 미래를 위한 투자와 생산 설비 확충이 위축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
고금리는 결과적으로 경제 위기에 빠진 국가의 경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해당 국가의 성장 잠재력과 미래를 망가트린다.
그리고 그 희생의 과실을 타국이 보게 되는 거다.
[그래서 부실기업이 먼저 무너지는 거군요. 그다음 순서가 우량 기업이고요.]
[그렇지. 우리가 노리는 기업이 시장 매물로 나오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거야. 현금이 바닥나도 국제적인 명성으로 한 달 정도는 버틸 거니까.]
[우리가 개입해야겠네요.]
[아니. 고인물들이 설치고 다닐 거야. 이번에 별로 재미를 못 보니까, 기업이라도 사냥하려 들겠지. 망나니들이 칼춤 추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것이 좋아.]
김근홍의 활약으로 빅벤과 레드실드가 외환시장에서 큰 수익을 얻지 못하게 됐다. 취약해진 일본 경제의 실상을 알고 있는 그들이 적은 수익에 만족할 리 없을 터.
김근홍은 고인물들의 다음 타깃이 일본 우량 기업이라고 판단했다.
[정체를 숨겨야 하는 건가요?]
[고인물들이 일본 기업에 작업하면서 경쟁자도 제거하려 들 게 분명해. 우리는 조용히 숨죽이고 있다가, 빈사 상태에 빠진 기업을 막판에 가로채면 돼.]
[고인물들이 싸움을 걸어온다면, 맞받아치면 됩니다. 무력이든 금력이든 우리가 충분히 이길 수 있습니다. 굳이 몸을 숨길 이유가 있나요?]
[고인물들하고 싸워서 우리가 밀리는 건 아니야. 하지만 전쟁을 벌이면, 일본 기업 몸값이 올라가게 될 거야. 과도한 가격은 피해야 해.]
[아하! 일본이 재기할 종잣돈을 줄여야 한다는 거군요.]
[빙고. 정상가의 1/4 수준 이하로 인수해서 회생 가능성을 낮춰야 해. 그것이 일본이 저지른 수많은 죄악에 걸맞은 처벌이야. 아니, 이 정도로는 아직도 멀었지.]
[맞습니다. 이참에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철저히 박살 내야 합니다.]
일본은 한민족으로부터 많은 도움과 영향을 받았다. 일본 신사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미나미 신사의 정체가 일본에 쌀을 전해 준 한국 농업 신을 찬양하는 장소다.
일본 문자의 기원은 신라 이두 문자이며, 야요이인의 기원은 한반도에서 넘어간 한민족의 후손이다. 일본 왕실의 뿌리가 김해 김씨고, 중간에 백제 왕족이 합류했다.
그러나 일본은 도움에 보답하기는커녕 원수로 갚았다.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역사 기록만 500회가 넘는다.
명나라를 침공하는 길을 빌려 달라는 말 같지 않은 이유로 임진왜란을 일으켰고, 서구 열강의 침략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대한제국을 침탈했다.
사악한 일본의 제국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에 철저히 패한 뒤 몰락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6.25가 발발하면서, 화려하게 부활한다. 어리석은 김일성의 야욕이 농업 국가로 전락할 일본에 새 생명을 준 거다.
일본은 아시아 경제 위기가 한국에 영향을 미치자, 갑자기 한국에서 자금을 회수해 IMF 사태를 일으켰다.
그리고 일본 경제가 침체하고 국가 부채가 GDP 280%에 이르자, 한반도에서 제2의 6.25를 일으켜, 반등의 기회로 삼으려 전쟁을 획책하기도 했다.
창수와 김근홍은 일본을 IMF 체제로 밀어 넣은 것에 만족하지 않고, 경제 기반을 뿌리부터 흔들어, 일본이 재기하지 못하도록 할 작정이다.
[그래도 직접 칼질하는 게 꺼림칙했는데 고인물들이 나서 준다면, 얼마나 다행이야.]
[그렇군요. 양아치는 양아치가 처리하도록 놔두는 게 상책이죠. 이제야 선배님의 깊은 뜻을 알게 됐습니다.]
[하하하. 깊은 뜻은 아니고, 편하고 폼 나게 처리하자는 거지. 그건 그렇고 태국으로 넘어와라. 2조 3,700억 달러나 벌었는데 그냥 넘어갈 수 없지.]
[알겠습니다. 화끈하게 잔치 한번 열어 보죠.]
승전식은 단순한 사치가 아니다. 전쟁 못지않게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이 중요하듯, 승전식은 전쟁의 승리를 마무리하고 구체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창수는 태국으로 오라는 김근홍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비록 둘만의 잔치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여겼기에.
5.
[일본 IMF 체제 돌입!]
[금융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일본, IMF에 점령당하다.]
[IMF 구제금융, 세계 3위 경제 대국의 굴욕.]
6월 8일 오후 6시, 일본이 IMF 구제금융에 합의하고 관리 체제에 돌입했다는 소식이 일본 열도를 강타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IMF 사태를 당한 일본 언론의 목소리에 분노와 굴욕감이 가득했다.
- 정치인 놈들이 일본을 망하게 만들었어! 국가 부채를 GDP 280%까지 만들어 놓고 안 망하기를 바라는 게 이상한 거라고!
- 맞아! 아벨 그놈이 원흉이다. 빚내고 돈 풀어서 기업 놈들만 먹여 배불렸어!
- 일본 은행도 제정신이 아니었지. 국채하고 주식을 무한정 사들이다가, 이 사달이 난 거야.
- 하……. 어떻게 된 게 이놈의 나라는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어?
- 하긴 GDP도 가라로 만드는 나라가 지금까지 망하지 않은 게 용한 거지.
파국이 오자 이제야 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와 넷 우익에게 점령당했던 일본 인터넷과 SNS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아벨이 추진한 경제정책 실패와 일본 은행의 방만한 경영, 그리고 단물만 빨아먹고 제 역할을 못한 기업들이 일본 경제를 몰락시킨 주역이다.
이전에도 이 문제를 거론한 목소리가 있었으나, 정부를 두둔하는 목소리에 철저히 가려졌었다.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변화는 일본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충격이 그만큼 강하다는 걸 나타낸다.
그리고 여론 조작을 일삼던 세력이 퇴보했음을 의미한다. 돈줄이 끊기니 키보드 워리어 짓을 그만두게 된 거다.
- 팔아! 무조건 팔아!
- 소용없어! 매수세가 없는 데 매도해야 무슨 소용이야!?
- 그래도 걸어 놔! 운에라도 기대야 해!
일본 주식시장은 오후 3시에 마감됐지만, 장외시장은 남아 있다. 일본이 IMF 구제금융을 수용했다는 뉴스를 접한 투자자들은, 묻지 마 투매에 나섰다.
그러나 매도만 있고 매수가 없는 상황에서 거래가 이뤄질 리 없다. 투자자들은 하한가에 매도를 걸어 놓고, 인디언 기우제처럼 매매가 체결되기를 하염없이 기원했다.
* * *
“회장님, 분초은행이 회사채 만기 연장을 거부했습니다.”
“뭐야!? 하늘이 두 쪽 나도 우리 회사채는 처리한다고 하더니 이제 와서 무슨 소리야!?”
6월 9일, 일본이 IMF 체제에 들어간다고 발표한 다음 날 오전 10시, 세계 최대 자동차 기업 타요타 회장실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회장 유키오 타요타가 비서실장에게 고함을 지른 것.
“분초은행도 생존이 어렵다고 합니다. 최대한 대출을 줄여야 하는 형편이라 회사채 연장이 불가하다고 합니다.”
“쯔쯔쯔. 한심한 놈들. 우리와 손잡고 일본 최고 은행이 된다고 큰소리치더니 부도 걱정하고 있어?”
분초은행은 일본 2위 상업은행이다. 올해 초 공격적인 경영을 시도하면서, 타요타 자동차에 파격적인 우대책을 제시하며, 일본을 넘어 세계적인 은행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유키오 타요타는 용두사미로 드러난 분초은행의 초라한 행색을 비웃었다.
“국채가 폭락하고 환율이 요동치면서 손실이 컸다고 합니다. 우리도 외환시…….”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어반뱅크에 긴급 대출 알아봐!”
“아…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러나 분초은행을 조롱할 처지가 아니다. 타요타 자동차가 외환시장에서 입은 투자 손실이 9조 엔에 달한다. 비축하고 있던 6조 엔을 다 날리고도, 3조 엔에 달하는 단기 부채를 떠안게 된 것이다.
3조 엔은 타요타 자동차가 2022년 거둔 영업이익보다 5,000억 엔이 많은 금액. 이로 인해 쪼들리고 있는 형편에 분초은행의 투자 실패를 비웃는 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짓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비서실장이 타요타의 치부를 들먹이려 하자, 회장이 급하게 입을 막고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 * *
<타요타가 자금 압박에 시달린다는 소식이오.>
<멍청한 공돌이 놈들이 외환시장에 고개를 들이밀더니, 엎어져서 코가 깨졌구려.>
<맞소. 분수를 모르고 설치다가 위기에 빠진 거요.>
타요타 자동차의 빈궁한 처지가 레드실드에 알려졌다. 국제금융업계에 깔아 놓은 정보망에 걸린 것.
타요타가 여유 자금을 외환시장에 투입한 것은, 일본의 금리가 너무 낮아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금융 문외한에게 자금 운용을 맡긴 건 아니다. 나름대로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금융업계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전문가들을 기용했다.
하지만 국제금융시장을 주무르는 고인물들 눈에는 타요타의 행동이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든 어리석은 짓으로 보였다.
<자금줄을 막으면, 알아서 꼬꾸라지겠군. 확실하게 끝장을 냅시다.>
<타요타가 어반뱅크와 접촉하고 있소. 우리는 이미 작업을 시작했으니, 당신도 힘을 보태시오.>
<크크크. 어반뱅크는 내 손아귀에 있소. 멍청한 공돌이 놈들이 은행을 잘못 골랐군.>
빅벤 집행위원회 의장 이언 매코이에게 어반뱅크는 동생 집과 다를 바 없다.
긴급 자금을 융통하려던 타요타 자동차에 짙은 암운이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