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147화 (147/200)

147화 42장. 떨이로 쓸어 담다

1.

- 쾅!

“미친놈들 아닌가!? 국가가 위기에 빠졌는데, 무책임하게 사임해!?”

6월 5일 오전 7시, 일본 총리 관저에서 긴급회의가 열렸지만, 참석자는 절반으로 줄었다. 부총리와 재무 장관을 포함해, 총리 반대 파벌이 대거 사표를 내고 회의에 불참한 것이다.

속칭 빤스 런.

총리 후지다는 진심으로 분노했다. 일본 금융시장이 붕괴할 위험에 놓인 상황을 홀로 헤쳐 나가야 한다는 불안감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부총리 일당이 작정하고 사보타주하는 겁니다. 매국적인 행위를 국민에게 널리 알려야 합니다.”

“당연한 일이오! 그리고 중국에서 받은 자금은 어떻게 된 거요? 설마 미카미 그놈이 장난친 건 아니겠지!?”

“그건 염려하지 마십시오. 외무성과 협력해 내각 정보 조사실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후……. 그나마 다행이군. 니오 장관을 도와 즉시 외환시장에 투입하시오.”

금융 위기를 풀어 갈 당사자 재무 장관이 떠났지만, 자신에게 충성하는 외무 장관과 내각 정보관이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중립적인 경산성 장관 니오 시게오미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후지다는 암 덩어리가 떨어진 것이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하며, 자금 사용을 지시했다.

“자금을 어느 정도 투입해야 할까요?”

“오늘만 버티면, 우리에게 승산이 있으니 모두 사용해도 좋소.”

“독일과 프랑스를 너무 믿으시는 것 아닐까요?”

“믿는 게 아니요. 뿌리칠 수 없는 제안을 준비했으니, 하는 말이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총리 각하.”

우역곡절 끝에 중국으로부터 2조 2,000억 위안을 받아 냈다. 달러로 바꿔 엔화 방어에 투입하면, 하루 정도는 버틸 수 있는 물량.

그리고 후지다는 오전 10시에 전용기를 타고 유럽으로 갈 예정이다. 독일과 프랑스 정상을 만나 긴급 자금을 얻어 내고, 막혀 있는 EU 통화 스와프를 재개하려는 목적.

모종의 세력이 일본의 숨통을 조르고 있으나, EU를 좌지우지하는 두 나라 정상을 만나면, 해결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물론, 그에 따른 반대급부로 독일과 프랑스에 많은 이권을 줘야 하지만, 일본 금융시장 붕괴를 막는다면, 기꺼이 지급하겠다는 각오가 돼 있다.

후지다는 자신의 손으로 일본에 닥친 위기를 풀어낼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세상일이 후지다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속보, 미국 위안화 유통에 제동.]

[EU 금융시장 교란하는 화폐로 위안화 상정.]

[위안화 지역 화폐로 자격 강등.]

오전 8시, 일본 금융시장을 강타할 또 다른 뉴스가 전해졌다. 미국과 EU가 손잡고 위안화 사용을 제한한 것이다.

이로써 위안화를 달러로 바꾸는 것은 물론이고, 유로화로 바꾸는 작업도 사실상 막히게 됐다.

이건 일본이 애써 확보한 2조 2,000억 위안이 무용지물이 된다는 걸 의미한다.

- 한심한 정부 놈들! 대만 배신하고 중국과 손잡더니 꼴좋다!

- 아무리 그래도 위안화를 막은 건 너무한 거 아니야?

- 너무한 게 아니지! 그게 국제 사회의 무서움이야!

- 그런가……. 이제 일본은 어떻게 되는 거지?

일본이 위안화를 조달하기 위해, 중국의 대만 침공을 용인한다는 내용이 일본 국민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일본인 대부분이 대만에 우호적인 것과 다르게 88%가 중국에 부정적이다. 일본 정부가 엔화 방어를 위해 중국과 손잡을 것을 일본 국민 상당수가 탐탁지 않게 바라보고 있었다.

일본 정부가 확보한 위안화가 쓸모없어졌다는 소식에 통쾌하다는 반응이 적지 않은 상황.

반면, 상당수 일본인이 위안화를 사용하지 못하면, 일본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며, 불안감을 나타냈다.

- 미국이 일본을 버린 거야!

- 팔아! 무조건 엔화 팔아! 이제 일본은 끝장이야!

- 지금 팔아야 절반도 못 건져!

- 절반이라도 건져야 해! 안 그러면 우리 다 죽어!

엇갈린 생각이 혼재하는 국민 여론과 다르게 금융시장 참여자는, 위안화가 막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번에 알아봤다.

엔화 붕괴.

이제 달러당 170엔을 유지했던 일본의 화폐가치는 바닥을 모르고 추락할 거다. 벼랑 끝에서 같이 떨어질 수 없다고 판단한 투자자들이 묻지 마 투매에 나서기 시작했다.

* * *

일본 정부가 사태 수습을 위해 사력을 다했으나, 엔화 추락을 막을 수 없었다. 엔화를 방어할 수단을 잃었다는 것이 알려졌으니, 당연한 일이리라.

일본 시간 오후 2시, 엔화가 초기 목표가에 도달하자, 김근홍이 창수에게 연락했다.

[창수야! 쭉쭉 빠지고 있다! 벌써 250엔 돌파야!]

[고인물들 실력이 확실하군요.]

[껄껄껄. 달리 고인물들이 아니지. 먹잇감 숨통을 끊는 데 그놈들처럼 잘하는 하이에나가 없을 거야.]

엔화 가치가 170엔에서 250엔까지 떨어진 것에 빅벤과 레드실드의 공이 절대적이다.

천문학적인 자금을 동원해 엔화를 직접 공격하는 한편, 어둠의 영향력을 사용해 일본이 방어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위안화를 달러와 유로로 교환하지 못하게 한 것도 빅벤과 레드실드의 작품이다. 적으로 삼으면 까다로운 상대지만, 같은 편에 서니 든든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물론, 그들은 창수와 김근홍을 위해 열일했다는 걸 까맣게 모르고 있지만.

[엔화가 얼마까지 떨어질까요?]

[350엔은 갈 것 같아. 1970년대 수준으로 되돌아가는 거지.]

[100엔만 더 떨어지면, 모두 정리할 수 있겠군요.]

[포지션을 청산해야지. 하지만 철수하기는 일러. 뽑아 먹을 게 아직 남았거든.]

[예? 일본 경제가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질 건데, 더 노릴 게 있어요? 밑바닥에서 반등을 노리는 건가요?]

창수와 김근홍이 2차 공략으로 1,000억 달러를 투입할 당시 평균 환율이 달러당 115엔이었다.

달러당 250엔까지 떨어질 때, 목표 수익을 7,000억 달러로 상정하고 하방 포지션을 구축했다.

고인물이 개입해서 엔화 가치가 달러당 350엔까지 떨어지면, 수익이 1조 5,000억 달러를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예상 수익을 100% 이상 뛰어넘는 성과.

여기에 고인물들을 비롯해 국제 투기 세력이 뽑아 먹는 이익을 생각하면, 일본이라는 국가의 자산이 대부분 말라 버릴 거라고 예상하는 것이 타당하다.

창수는 껍데기만 남은 일본에 공략할 대상이 더 남아 있다는 김근홍의 말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한국 IMF 사태를 생각해 봐. 원화 급락한 뒤에 무슨 일이 벌어졌지?]

[이자율이 급상승하고, 기업들이 도산하면서 대량 실업자가 발생했죠.]

[맞아. 이제 일본은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할 수밖에 없어, 그리고 금리가 살인적으로 오르면서 방만한 경영을 한 기업들이 파산할 거야. 그리고 그중에는 흑자도산 하는 우량 기업도 섞여 있겠지.]

[아하! 기업 사냥을 하자는 말이군요!]

[빙고! 일본 기업 상당수가 국가 지원으로 연명하는 부실기업이지만, 그중에는 알토란도 있어. 그걸 우리가 쓸어 담는 거야.]

흑자도산은 장부상에 이익이 남지만, 현금이 모자라 부도에 이르는 상황을 말한다.

기업이 물건을 판매한 뒤 원재료 비용과 인건비 그리고 각종 경비를 제외하고 이익을 남기면, 우량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물건을 판매한 시점과 기업에 현금이 들어오는 시점에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리고 그사이에 기업이 보유한 현금보다 지급해야 할 금액이 많아지는 상황이 발생하면, 장부상으로 흑자를 보고도 파산할 수 있다.

국가 경제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이라면, 이런 흑자도산은 정부의 개입으로 구제받을 수 있다.

하지만 IMF 체제에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IMF가 사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철저하게 막기 때문이다.

한국 IMF 사태 당시 3개월간 파산한 기업의 50%가 흑자도산이었다.

[미리 생각해 놓은 기업이 있나요?]

[당연히 있지. 타요타 자동차, 하드뱅크, 수니, 훈다 자동차, 구에츠 화학공업, 눈텐토, 오라타 제작소, 스시모토 화학, 파낙 이런 기업은 노려 볼 만해.]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들이군요. 하지만 타요타 자동차와 하드뱅크는 어렵지 않을까요? 쟁여 놓은 현금이 상당하다고 들었습니다.]

타요타 자동차는 2022년 영업이익이 2조 5,000억 엔에 달하고, 현금성 자산 6조 엔을 보유하고 있다. 하드뱅크는 영업이익 1조 엔에 현금성 자산이 10조 엔에 달한다.

창수는 아무리 일본 경제가 몰락의 길에 들어섰다고 해도, 타요타 자동차와 하드뱅크 같은 우량 기업을 인수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일본 기업 대부분이 현금성 자산을 금융에 투자했어. 타요타하고 하드뱅크는 이번에 보유 현금을 다 날릴 가능성이 높아. 제대로 걸린 거지.]

[헐……. 왜 그렇게 무모한 짓을 한 거죠?]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사용한 것이 원인이야. 투자처를 찾으려고 위험한 도박을 한 거지. 10년간 따복따복 잘 챙겨 먹다가, 이번에 한 방에 토해 내게 된 거야.]

[일본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이 나비효과를 일으킨 거군요.]

[맞아. 일본 기업들에 불행한 일이지. 하지만 우리에게는 우량 기업을 싸게 사들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 거야. 그런 의미에서 일본 경제를 망가트린 일등 공신 아벨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지.]

일본 최장수 총리 아벨은 집권 후 국가 부채를 늘리고, 엔화 약세를 조장하는 해괴한 경제정책을 펼쳤다.

소위 아벨노믹스라고 불리는 망국적 경제정책으로 일본 국민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졌고, 도산해야 할 부실기업이 좀비처럼 살아남게 됐다.

현재 일본이 당면한 문제점 대부분이 아벨 정권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특히, 아벨노믹스가 치명적인 건, 정부의 도움이 없어도 스스로 흑자를 내고 있는 기업에도 악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김근홍은 천문학적인 수익을 낼 수 있도록 판을 깔아 준 아벨의 공적(?)을 높이 평가했다.

[하하하! 아벨의 별명이 ‘어둠의 한국인’이라면서요?]

[아벨 집안에서 40년간 가정부로 일한 할머니가 폭로한 거야. 아벨의 부친이 자신을 조선 출신이라고 자주 말했다는 거지.]

[그런데 아벨은 혐한 정책을 사용하지 않았나요?]

[혐한이 정치적으로 유리하니까 이용해 먹은 거야. 그리고 친일파들이 일본인보다 더 열성적으로 한국을 비방하잖아. 아벨도 비슷한 거라고 봐야겠지.]

[그래도 아벨이 친일파보다는 낫네요.]

[도긴개긴 아니야? 아벨이 더 나은 게 있어?]

[아벨은 그래도 방사능 뿜어 나오는 일본에 살면서 혐한 하잖아요. 하지만 친일파들은 안전한 한국에 살면서 한국 망하라고 고사를 지내고 있죠. 비겁하다는 측면에서 친일파들이 훨씬 악질이죠.]

[껄껄껄. 하긴 그렇군. 한국이 주는 혜택은 다 받아 처먹으면서, 한국에 1도 도움이 안 되는 쓰레기들이지.]

어떤 시대 어떤 국가에도 내부 불만 세력이 있기 마련이다. 한국에도 일본에 친화적이고 한국을 반대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문제는 한국 친일파들이 단순한 일본 친화를 넘어서 매국적인 행위까지 일삼는다는 것이다.

이건 광복 후 친일파 매국노들을 제대로 처단하지 못한 부작용이다. 죄를 지어도 처벌받지 않았으니, 친일 행각에 두려움이 없는 거다.

[그런데 이번에 일본이 망조 들면, 친일파들이 어떻게 나올까요? 우리가 인수하려는 회사에도 친일파가 많을 건데요.]

[열렬한 반일파로 돌변할 거야. 그게 비열한 친일파들의 본성이지.]

[확실히 걸러 내야겠군요.]

[맞아. 무관용의 원칙으로 친일파를 배제해야 해.]

목표로 점찍은 일본 기업 상당수가 한국에 지사를 두고 있다. 기업 인수 후 그들을 중용해야 하지만, 친일파에게 힘을 줄 수 없다.

창수와 김근홍은 친일파 배제 방안을 심도 깊게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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