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141화 (141/200)

141화 40장. 일본 몰락의 날

9.

“회장님! 수익이 1,400억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되는 거군!”

“그렇습니다! 100억 달러만 더 수익을 내면 됩니다! 모든 것이 회장님의 지도력 덕분입니다!”

“하하하! 암 그렇고말고! 내 말 안 들었으면 어쩔 뻔했어!?”

일본 시간 2023년 5월 30일 오전 9시 10분, 구라다증권에 함박웃음이 터졌다.

일본 정부의 금융시장 개입으로 엔화 가치가 급상승해 달러당 99엔이 되면서, 구라다증권이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린 것이 원인.

이런 추세로 100억 달러를 더 벌면, 지난주 손실 1,500억 달러를 모두 복구할 수 있다.

회장 이마에 스바루는 인생을 건 도박이 성공했다고 여기며 환호작약했다.

“이제 포지션 정리를 준비하겠습니다.”

“벌써? 너무 이른 것 아닌가?”

“예? 곧 목표 수익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연히 그렇지. 하지만 청산을 서두를 필요 없다는 거야. 수익을 더 낼 수 있으니까.”

“목표에 도달하면 포지션을 정리하는 것이 회장님의 매매 철칙 아닌가요? 욕심을 부리면 사달이 난다고 누누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기쁨이 넘쳐 과욕을 부리는 것일까? 자산 운용 본부장 노다카 아키라는 평소와 다른 회장의 자세에 의구심을 가지게 됐다.

말단 트레이더부터 경력을 쌓아 회장에 오른 이마에 스바루는 칼 같은 매도로 유명하다. 수익이 더 나올 가능성이 커도 매수 전에 설정한 수익을 얻으면, 미련 없이 매도했다.

이런 매매 방식은 얻을 수 있는 수익을 제대로 뽑아내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투자에 실패하는 확률을 대폭 떨어트리는 장점이 단점을 커버하고도 남는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정글과 같은 금융계에서는 생존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마에 스바루가 자신을 생존하게 해 준 매매 원칙을 어기려 하고 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 95엔까지 뺀다고 정부와 약속이 돼 있어.”

“그렇게 되면, 환율이 과도하게 상승해 부작용이 클 겁니다.”

일본 정부는 해외에서 회수한 외화로 엔을 대량 매집하고 있다.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엔 가치가 적정가 이상으로 오버슈팅 하는 상황.

엔 과대평가가 지속되면, 일본 수출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 장기적으로 일본 경제를 죽이는 독약 처방이다.

“어허, 이보게. 장사 한두 번 하나? 100엔 이하로 강세를 보이는 건 단지 3일뿐이야. 그 뒤로 약세로 돌아서 115엔으로 원상 복귀할 거니까, 부작용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

“그사이에 수익을 내서 비자금을 확보해야 하는 거군요.

“이제야 머리를 돌리는구만. 3일간 최대한 수익을 뽑아서 우리 몫을 챙겨야 해. 목숨을 걸었는데 그 정도 보상은 있어야지. 그리고 정치인들에게도 두둑이 찔러 줘야 해.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

“확실히 이해했습니다! 회장님!”

돈 놓고 돈 먹는 야바위판이 벌어졌다. 정치인들이 국가 자산을 사용해 환율을 조작하면, 투기꾼들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그 일부를 정치인들에게 상납하는 사악한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욕심에 양심이 사라졌다. 평소 건전한 투자로 이름이 높던 노다카 아키라도 야바위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다.

- 무조건 더 간다! 엔화 사 모아!

- 무리하는 거 아니야? 100엔 이하는 위험해.

- 정부 놈들이 짬짬이 하고 있어! 90엔대 중반까지는 갈 거야!

- 뭐야? 작전 들어간 거야? 어디서 들은 정보야?

- 정보는 무슨! 투자 커뮤니티에 파다하게 퍼졌어! 너만 모른 거지!

상당 기간 환율이 달러당 115엔대를 유지하다가, 가치가 급상승해 달러당 100엔 다다르면, 심리적인 저항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현재 엔화는 기존의 상식을 넘고 단숨에 100엔을 돌파했다. 여기에 공포감을 느끼고 엔화를 매각하려는 투자자들이 생겨났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것.

하지만 상당수 투자자는 100엔 돌파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95엔 부근까지 떨어질 거라는 정황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환율 개입은 일본 은행의 협조를 받아 일본 재무성이 주도하고 있다. 관계된 사람이 적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정보가 새 나간 거다.

- 여유 자금 긁어모아서 엔화에 몰빵해야겠어.

- 그 정도로는 안 되지! 나는 외화 대출 받을 거야!

-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 일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야! 여기서 베팅 안 하면 언제 해!?

금융시장에서 방향성이 보인다는 건 돈이 보인다는 것과 동일하다. 일본 정부의 의도를 파악한 투자자들이 달러와 유로화를 빌려 엔화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10.

5월 30일 12시 20분, 오후 장을 10분 앞두고 일본 주식시장은 장밋빛 분위기였다.

정책적으로 금융시장에 쏟아부은 자금 덕분에 오전 장에서 니케이 지수가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기 때문이다.

환율이 상승하면 일본 기업의 수출 채산성이 악화하기에 주가가 빠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일본 은행이 ETF(상장 지수 펀드) 대량 매입을 통해 일본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일본 금융시장 전반에 돈 잔치가 벌어진 거다.

그러나 끝나지 않는 잔치는 없다.

[속보! 일본 은행 총재와 감사에 대한 해임안 발의!]

[일본 은행에 감찰 청구권 발동!]

[일본 은행 업무 중단!]

일본 언론에서 일제히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일본 금융의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중앙은행이 졸지에 셧다운됐다는 내용이 전해진 것이다.

“미카미 장관!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일본 은행은 총리님께서 직접 챙기지 않았습니까? 오히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총리님께 묻고 싶군요.”

“뭐… 뭐라고…….”

일본 은행이 멈춘다는 건 일본 금융을 넘어 일본 경제의 심장이 멈춘다는 걸 의미한다.

총리 후지다가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긴급 내각회의를 소집했다. 그리고 재무 장관에게 상황을 보고하라고 다그쳤으나, 오히려 역공당하고 말았다.

“그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본 은행은 국가기관이 아닙니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일반 기업입니다. 총 발행 100만 주의 3.5%인 35,000주를 위임받은 대리인이 일본 은행의 운영을 문제 삼아 제동을 걸고 있습니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 총리와 재무 장관이 쓸데없는 신경전을 벌이자, 경산성 장관 니오 시게오미가 다시 나섰다.

투자은행에서 20년간 근무한 전문가답게 일본 은행의 구조적 문제와 현재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했다.

“허어! 니오 장관! 나를 멍청이로 아는 거요!? 일본 은행이 사기업이라는 건 잘 알고 있소! 국가기관이 아니지만, 정부가 의결권 100%를 가지고 있으니 하는 말이오!”

“회사법에는 의결권뿐만 아니라, 지분 소유 자체로 해임과 감찰을 발동할 권리가 있습니다.”

“설마……. 바보 같은…….”

“법의 맹점을 악용한 겁니다. 카베세 시민 연대 대표가 위임장 35,000주를 확보한 상황에서, 권한 행사를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칙쇼! 악랄한 반일파 놈이 일본을 망치려 드는구만!”

일본 은행이 중앙은행이면서도 국가기관이 아니라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따라서 안전장치로 일본 정부가 지분 55%를 가져 소유권을 확보하고, 의결권 100%를 독점해 사실상 국가기관으로 만들었다.

게다가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지만, 주주 명단을 비밀로 취급해, 불온한 세력의 접근을 사전에 차단했다.

그러나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일본 은행이 국가기관이 아니기에 내포한 문제를 모두 막기는 역부족이다.

오늘 발생한 사건은 언젠가는 벌어질 일.

후지다는 오랜 기간 자민당 정권과 대립한 시민 연대 대표 카베세 야스노리가 약점을 제대로 치고 들어왔다 여기며, 분통을 터트렸다.

“총리 각하! 경찰 병력을 동원해 카베세를 체포해야 합니다.”

“오! 그런 방법이 있군! 니시가와 위원장! 당장 병력을 투입하시오!”

총리가 분노하자, 국가 공안 위원회 위원장 니시가와 카즈오가 나섰다. 국민의 권리야 어떻든 물리력을 동원해 제압하겠다는 심보.

후지다는 마치 오랜 가뭄에 비를 만난 듯 기뻐하며, 경찰 투입을 승인했다.

“어떤 혐의로 체포한다는 겁니까?”

“카베세 그놈은 일본 경제를 무너트리려 공작하는 중국의 스파이가 분명하오!”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막연한 심증만으로 체포가 쉽지 않을 겁니다.”

“니오 장관! 지금 국가 위기 상황이오! 증거는 천천히 수집하면 되는 거요!”

“지금 일본 은행에 도쿄 지검 특수부가 압수 수색을 벌이고 있습니다. 카베세가 끌고 온 겁니다. 경찰을 동원해도 그자의 신병을 확보하기 어려울 겁니다. 오히려 총리님에게 화가 미칠 수 있습니다.”

“칙쇼! 빌어먹을!”

도쿄 지검 특수부는 1976년 록히드 사건, 1988년 리크루트 사건, 1992년 사가와규빈 사건에서 국가 권력의 방해를 무릅쓰고 권력형 비리를 파헤쳐, 국민적인 지지를 받았다.

경찰이 확실한 범죄 사실과 영장을 제시하지 않고, 카베세 야스노리를 체포하려 든다면, 도쿄 지검 특수부가 수사 방해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제보자 카베세 야스노리를 보호하는 건 물론이고, 경찰을 투입한 총리를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할 가능성이 크다.

후지다는 눈앞이 암담해지는 느낌을 받으며, 괴성을 질러야 했다.

* * *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오늘은 금융 연구소 나츠미 소장님을 모시고, 일본 은행 사태의 원인과 파장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나츠미 타케오미입니다.]

일본 은행이 업무를 중단하자, 방송국에서 긴급 편성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금융 분야 전문가를 초빙했다.

[소장님, 일본 은행이 멈춘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터질 게 터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일본 은행은 방만하고 불투명한 경영으로 시장으로부터 불신받고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정부가 발행한 국채가 총 1,100조 엔에 달합니다. 일본 은행은 그중에서 54.5%에 해당하는 600조 엔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정부가 빚을 내고 일본 은행이 사 주는 자전 거래를 한 셈입니다.]

[허……. 엄청난 금액이군요. 그런데 일본 은행이 국채를 대량 매입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국채가 시장에서 팔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용도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이자가 마이너스이기에, 특수한 목적이 아니고서는 일본 국채를 사 갈 주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남는 부분을 일본 은행이 인수했기에, 국채 보유액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겁니다.]

나츠미 타케오미는 금융 전문가답게 일본 은행의 문제점을 정확히 짚어 냈다.

일본 국채는 정크 본드보다 2단계 높은 ‘A’ 등급으로, 한국 국채와 비교해 3단계나 낮다. 그런데 한국 국채 이자율이 2%인 것에 반해, 일본 국채 이자율은 마이너스를 나타내고 있다.

고위험 고수익이 아니라, 고위험 마이너스 수익. 제정신이 박힌 투자가라면, 일본 국채를 외면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일본 정부는 국채를 관급 공사와 금융시장에 접근하는 보증금으로 활용하며, 강매하고 있다. 그러고도 소화되지 않은 국채를 일본 은행이 매입하니, 보유량이 급증한 거다.

[그런 문제가 있군요. 하지만 일부에서는 어차피 국내에서 회전하는 국채라, 아무리 많아도 위험하지 않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 점 어떻게 보시나요?]

[굉장히 무책임한 주장입니다. 자전 거래로 만든 빚은 갈수록 늘어나고, 줄일 방법이 없습니다. 최근 벌어진 예금 봉쇄 사태는 과도한 부채가 만든 비극입니다. 그리고 일본 은행은 국채뿐만 아니라, 주식시장에도 무모하게 개입해, 금융 질서를 흐리고 있습니다.]

[ETF 매입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런데 그것이 어떤 악영향을 미치나요?]

[일본 경제를 뿌리째 흔들 수 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