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139화 (139/200)

139화 40장. 일본 몰락의 날

6.

북미 지역 해외 공작 내역이 담겨 있는 목록을 뒤지던 창수는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평행우주 너머 세상에서 창수와 악연을 맺은 사사키 재단이 등장한 것.

‘미국 정치권에 사용한 공작 자금 대부분이 사사키 재단에서 나온 거군. 이놈들 안 끼는 데가 없어.’

평행우주 너머 조선에서 사사키 재단은 일본 경제 침략의 첨병이었다. 한국에서도 자금을 살포하며 친일파 양성과 공작을 서슴지 않았다.

경제협력단 단장이었던 타니와 유우시를 통해, 사사키 재단의 규모가 방대하다는 걸 알았지만, 자료를 보니 미국 정치계에 대규모 금품을 살포하는 몸통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

‘미국과 관련된 건 모두 챙겨야겠군.’

기밀실은 도서관 서고와 같은 형태로 자료를 보관하고 있었다. 사사키 재단이 미국에서 벌여 놓은 일이 워낙 많아, 단시간에 파악하기 어려웠다.

창수는 마법자루 속으로 관련 자료들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이것도 금고 털이의 일종이다. 사사키 재단의 자세한 활동 내역은 숙소로 돌아가 파악하면 될 일.

- 끼리릭!

창수가 빠르게 자료를 쓸어 담고 있을 때, 기밀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들어올 모양이다.

적지 않은 자료를 챙겼지만, 아직까지 백악관 비서실장 데이븐 포드와 관련된 자료를 찾지 못했다.

이대로 기밀실에서 빠져나가면, 자료를 들고 간 것이 들통날 거고, 다시 잠입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마음이 급해진 창수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열람 시간은 한 시간입니다. 사용 시간을 연장하려면, 10분 전에 알려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 저벅! 저벅!

‘젠장! 하필이면 이쪽으로 오네!’

기밀실로 들어온 사람은 한 명. 이 정도는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 하지만 창수는 낭패감을 느꼈다. 기밀실이 열린 상태에서 입구에 총기로 무장한 경비병 4명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비병 2명은 기밀실 밖을 살피고, 나머지 두 명은 기밀실 안으로 들어온 인물을 감시했다. 창수에게 다가오는 인물을 제압하면, 행적이 바로 들통날 거다.

‘매뉴얼을 철저히 따르는 놈들이군. 어쩔 수 없지, 일단 기회를 보자.’

창수는 자료 챙기기를 멈춘 뒤, 기밀실로 들어온 사람의 동선을 관찰했다. 상대방이 어떤 움직임을 보이느냐를 보고,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서.

“어!?”

- 타다닥!

기밀실로 들어온 사람이 자료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급하게 달려왔다. 창수에게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북미 지역 자료가 없어졌습니다! 당직실에 보고하세요!”

“아리시마 사무관님! 얼마나 없어졌나요?”

“수십 개입니다! 이건 누군가가 침입해 탈취해 간 겁니다!”

기밀실 안에 변고가 발생했으나, 경비병 4명은 안으로 진입하지 못했다. 매뉴얼에 내부로 들어가 조사하는 내용이 들어 있지 않기에.

사무관 아리시마 이요와의 육성 대화를 통해 기밀실 안 상황을 파악한 경비병은, 그 내용을 당직실에 보고했다.

- 스르륵!

“아! 여기는 멀쩡하네! 다행이야!”

경비병이 당직실에 보고를 마치자, 아리시마 이요가 이것저것 추가로 조사했다. 이건 매뉴얼에 있기에 행한 일.

그리고 북미 지역 자료가 놓여 있던 책장 바로 뒤를 열더니, 안에 있는 자료를 살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기밀실 내부에 또 다른 비밀공간이 있었다. 일본 특유 과도한 디테일의 산물.

- 팍!

“큭!”

하지만 아리시마 이요의 안도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창수가 뒤통수를 갈겨 기절시켰으니까.

‘데이븐 포드의 자료가 여기에 있었군! 빨리 챙기고 뜨자!’

아리시마 이요가 창수에게 큰 도움을 줬다. 비밀공간에 백악관 비서실장 데이븐 포드의 금품 수수 내용이 담긴 서류철이 있었다. 만약, 그가 비밀공간을 살피지 않았다면, 창수 혼자서 자료를 찾기 어려웠을 거다.

도난 사건이 발생한 현장을 보존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기밀실 사용 매뉴얼에는 이런 사건이 벌어지면, 발견한 당사자가 추가 조사를 하도록 명시돼 있다.

일본에 만연한 매뉴얼 만능주의의 폐해가 다시 한번 발생한 것이다.

- 타다닥!

아리시마 이요가 갑자기 쓰러진 것을 발견한 경비병이 당직실에 보고하자, 현장 경비병에게 기밀실로 진입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당직사령이 재량권을 사용해 신속한 대응에 나선 것.

허가가 떨어지자 경비병 4명이 빠르게 기밀실 안으로 들어와 아리시마 이요의 상태를 살피고 기밀실 내부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암습을 받았다고 여기면서.

이 자체로 나쁜 판단은 아니지만, 상대는 투명망토를 착용했다. 탐지 장비가 없는 경비병들이 창수를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 사사삭!

창수는 경비병의 움직임을 역이용해, 기밀실을 가볍게 빠져나왔다. 오히려 경비병들이 안으로 진입한 것이 방 탈출을 수월하게 만들었다.

“주위를 샅샅이 수색해! 어서!”

창수가 기밀실을 빠져나와 1층 로비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다가가는 사이, 중무장한 병력 20명이 지하 1층으로 달려 내려왔다.

지하 1층을 정밀 수색할 요량.

적외선 탐지기와 레이저 감지 장비를 보유했기에, 본격적인 수색이 시작되면, 투명망토를 착용한 창수라도 발각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창수는 이미 포위망을 벗어난 상태. 계단 한편에서 조용히 대기하고 있다가, 병력이 정밀 수색을 시작하자, 살며시 계단을 이용해 1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진입했던 경비병 휴식 장소로 이동했다.

‘블링크.’

- 슥!

‘후후후.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군. 하긴 일본의 심장부가 뚫리니 발광할 만하지. 당분간 재침입은 어렵겠어.’

블링크 마법을 사용해 총리 관저 밖으로 나온 창수는, 주위로 몰려오는 무장 병력을 보고 고소를 금치 못했다.

아마도 저들은 총리 관저 주위를 이중 삼중으로 둘러쌀 거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없는 헛손질.

목표를 달성한 창수는 밤새도록 고생할 병력에게 썩소를 날리며,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7.

총리 관저에서 발생한 소동은 곧바로 후지다가 거주하는 총리 공저로 알려졌다.

총리 관저와 총리 공저는 인접해 있다. 후지다는 기습을 방비하기 위해 총리 공저의 경비를 강화하고, 내각 정보관 사키야 쿠니무네를 거실로 불러들였다.

“기밀실에서 자료가 없어졌다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이 없습니다! 내부 소행이 분명합니다!”

CCTV는 물론이고, 첨단 감시 장비에 창수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사키야 쿠니무네는 총리 관저에 배치된 내부자가 기밀실에서 북미 지역 자료를 빼돌렸다고 생각했다.

“없어진 자료가 미국 정가에 자금을 제공한 내역이야! 우리 내부에서 누가 그걸 탈취한다는 거야!?”

“토노오 부총리 일당의 짓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금 봉쇄 문제로 궁지에 몰리니, 셀든 대통령과 미국 정치인들을 협박하기 위해 증거물을 확보한 겁니다.”

“칙쇼! 빌어먹을 놈들! 아예 나라를 말아먹으려고 작정했구만!”

일본 부총리와 재무 장관이 손잡고 총리를 견제하는 구도는 미국 재무 장관이 뒷받침하면서 대세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부총리가 야심 차게 추진한 예금 봉쇄 정책이 대혼란을 만들었고, 혼란을 수습하는 과정에 미국 대통령이 개입하면서, 다시 일본의 권력이 총리에게로 쏠리게 됐다.

사키야 쿠니무네는 부총리가 정치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기밀 자료를 탈취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 토노오 오키무네가 일을 벌였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총리는 내각 정보관의 주장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이건 매뉴얼에 없는 돌발 사건이 발생할 때, 제대로 된 대처를 못하고 책임 회피에 급급한 일본인의 평면적인 사고방식이 그대로 드러난 대목이다.

“백악관에 이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아니야. 알려 봐야 득이 될 게 없어.”

“그래도 대비를 하게 만드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 백악관이 지금 상황을 알게 되면, 우리를 가장 먼저 추궁할 거야. 자금을 제공한 자료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게 분명해.”

“음……. 그럴 가능성이 높군요.”

“오늘 벌어진 일은 조용히 묻어. 증파된 병력 모두 철수하고, 단순 해프닝으로 처리해.”

“알겠습니다, 총리 각하.”

냄새나는 건 덮는다. 문제 해결보다는 문제 회피를 택하는 일본 속담이다.

일본 총리 후지다는 탈취당한 자료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외면하는 방안을 택했다.

그 자료가 어떤 사달을 만들지 모르지만, 괜히 앞장섰다가 덤터기 쓰는 일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 * *

[충격! 백악관, 일본 자금에 매수됐다!]

[사사키 재단으로부터 3,000만 달러 수수한 비서실장!]

[백악관은 자판기인가? 돈 먹고 일본 봐주기!?]

워싱턴 시간 5월 25일 오후 5시, 미국 언론에서 일제히 백악관 비서실장 데이븐 포드의 자금 수수 사건을 기사로 올렸다.

이건 단순한 가능성과 주장이 아니라, 확실한 증거물이 첨부된 폭로였다.

미국 언론은 데이븐 포드가 일본 자금에 놀아난 것에 분노하며, 강경한 어조로 비판했다.

이런 날 선 반응은 백악관 비서실장이 가지는 상징성과 권력에서 기인한다. 그동안 소문으로 알려졌던 미국 정치인의 금품 수수와 차원이 다른 문제로 인식한 것이다.

- 어쩐지 수상하더라 했다! 망해 가는 일본에 미국인의 혈세를 들여 처부을 때부터 알아봤다고!

- 일본은 진주만을 기습한 적성국가야! 그 돈을 받았다고!? 이건 반역 행위야!

- 맞아! 데이븐 포드 저놈을! 감옥에 처넣어야 해!

대다수 미국인도 격한 반응을 보였다. 미국 정치권이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과 협력하고 있으나, 미국인 정서 깊은 곳에 일본이 적이라는 인식이 박혀 있다.

데이븐 포드가 일본으로부터 3,000만 달러에 달하는 거액을 받았다는 건, 단순한 금품 수수가 아니라, 적성국에 매수된 반역 행위로 취급받기 충분하다.

“이보게 데이븐, 어떻게 된 일인가?”

“면목 없습니다, 대통령님.”

언론과 여론이 들끓는 상황에서 셀든이 나 몰라라 할 수 없다. 셀든은 데이븐 포드와 독대한 자리에서 사실관계를 물었다.

결과는 일본 자금을 수수한 것이 사실.

“흠……. 3,000만 달러를 정말 받은 거군. 그 돈 어디에 썼나?”

“모두 미합중국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저를 위해 단 한 푼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건 믿어 주십시오.”

“자네를 믿네. 하지만 일 처리를 그렇게밖에 못 한 이유가 뭐야? 자네답지 않게 너무 허술하잖아?”

데이븐 포드가 받은 3,000만 달러는 모두 대통령 선거에 사용된 것이다. 셀든은 자기 최측근이 검소하고 청렴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권력이 생기면, 잡음도 늘어난다. 조그만 시에도 시장이 바뀌면, 기업이 만들어졌다가 파산하는 상황에, 초강대국 미국의 권력 핵심은 오죽할까?

문제는 잡음을 대비하지 못하고, 기습적으로 당했다는 점.

“비열한 일본 놈들의 술수에 넘어간 겁니다. 절대로 안전한 자금이고,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감언이설에 속았습니다.”

“휴……. 내가 잽을 조심하라고 누누이 말하지 않았나? 언제든지 등 뒤에 칼을 꽂을 놈들일세!”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당분간 휴식을 가지게. 잠잠해지면 내가 다시 부를 거니까,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여론이 너무 험악하다. 데이븐 포드를 안고 가다가, 자칫 정권이 무너질 수 있다.

셀든은 비서실장을 경질했다. 그리고 데이븐 포드도 대통령의 결정이 불가피한 것임을 알기에 군말 없이 물러나는 길을 선택했다.

* * *

<대통령님, 변조된 일본 국채가 유통된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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