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40장. 일본 몰락의 날
4.
[선배님, 일본이 빠르게 안정되고 있습니다.]
[그래? 은행은 얼마나 열었어?]
[심하게 파괴된 곳을 제외하고 모두 열었습니다. 어제 국채 발행도 순조롭게 끝났고, 피켓 시위도 없습니다.]
일본 시간 5월 24일 수요일 오전 10시, 창수가 보안 메신저를 통해 일본 현황을 김근홍에게 알렸다.
미국의 전격적인 개입으로 일본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이 안정된 데 이어, 업무를 중단했던 은행들이 다시 문을 열었다.
23일 롤 오버(만기가 된 금융 상품 재발행)용 국채 10조 엔이 정상적으로 발행됐다. 그리고 폭력 시위는 물론이고, 정부를 비난하던 평화적 시위조차 사라졌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일본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상황.
다른 말로, 일본을 공격하는 창수와 김근홍에게 매우 불리한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예금 봉쇄를 백지화한 것이 크군. 일본 정부가 너무 빨리 정책을 철회했어.]
[셀든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강경합니다. 후지다는 일찌감치 마음을 돌렸고, 토노오가 끝까지 버텼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셀든이 일본에서 비자금이라도 받아먹은 거야? 왜 이렇게 감싸고돌지?]
[셀든 대통령은 일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만, 장관들과 참모들이 일본이 무너지는 걸 막아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다고 합니다.]
[빌어먹을 양키 놈들! 끝까지 진상 짓이네! 하긴 양키 정치권에 일빠들이 수두룩하지! 그놈들 관리하는 데 들어가는 예산이 1조 원이 넘어!]
일본은 조직적으로 미국 내 친일파를 양성한다. 표적으로 삼는 1순위는 국무부와 국방부 관련 인사들이다.
이들에게 돈과 향응을 제공하고, 일본에 유리한 정책이 나오도록 로비하고 있다. 매수를 경계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워싱턴 정가에서 출판물로 나올 정도로 심각하다.
이어서 일본이 노리는 대상은 정치 로비스트. 합법을 가장해 유명 인사들을 고용하고, 그들을 통해 국회의원과 보좌관을 포섭하고 있다.
예금 봉쇄 정책을 철폐한 건 셀든의 자의적인 판단이지만, 그 이외에 일본을 지원한 배경에 친일파들의 준동이 있었다.
당장 장관과 백악관 참모진에 친일파가 존재한다. 본인이 친일파가 아니더라도, 싱크 탱크와 보좌진에 퍼진 광범위한 친일파 세력의 영향을 받는다.
[미국 개입은 상수로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풋 옵션 매집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포지션 구축은 아주 수월해. 지금 개인 투자자부터 고인물까지 일본 시장으로 몰려와 복작거리고 있거든.]
[그나마 다행이네요.]
[다행이 아닐 수도 있어. 자칫하면, 1,000억 달러를 날릴 수 있으니까.]
[상황이 그렇게 어려운가요?]
[예금 봉쇄로 일본 민심이 흉흉해야 우리가 가진 무기도 제힘을 발휘할 수 있어. 셀든이 제대로 초를 친 거지. 게다가 일본 편에 서서 베팅하는 놈들이 기가 살아서 날뛰고 있어. 어지간한 공포에 꿈쩍도 안 할 거야.]
[어제보다 난이도가 몇 배 상승하는 거군요.]
[맞아. 어제 실패 확률이 30% 정도라면, 지금 실패 확률은 90% 이상이야. 창수야, 지금 투입한 금액이 400억 달러 정도다. 철수하면 40억 달러 손해 보고 정리할 수 있는데, 중단하는 것이 어떨까?]
전사의 심장이 사라지고, 두려움이 엄습했다. 김근홍이 미국 개입에도 불구하고, 일본 2차 공략을 준비한 이유에는, 예금 봉쇄가 상당 기간 지속된다는 가정이 있었다.
이건 김근홍의 바람이 아니라, 국제금융시장에서 모인 공통된 예측이었다. 280%에 달하는 일본 국가 부채를 해소하는 방안이 예금 봉쇄뿐이니까.
하지만 셀든이 독단으로 예금 봉쇄 정책을 철회시켰다.
국제금융계의 큰손을 대변하는 트레비스 호튼이 말렸으나, 일본이 디폴트에 빠지는 것도 감수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며, 자기 뜻을 관철했다.
셀든의 행동은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 같은 것이다. 김근홍은 1,000억 달러를 투입하는 2차 공략을 중단하고, 물러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했다.
[이왕 시작한 일, 끝을 봐야 한다고 봅니다.]
[셀든의 개입은 오래가지 못해. 출구가 없는 일본은 조만간 더 큰 위험에 봉착할 거야. 그때를 노리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럴 가능성이 높죠. 하지만 우리가 가진 무기의 유효기간이 한 달 남짓입니다. 그 안에 공략 기회가 다시 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흠……. 네 말도 일리가 있구나. 지금 같은 기회를 다시 잡기 어렵지.]
[선배님. 1,000억 달러가 날아가도 수익 3,700억 달러가 남습니다. 시장에 개평 준다는 셈 치고 진행하시죠.]
[푸하하. 너는 역시 황당한 놈이야! 좋아! 전주가 깡다구를 보여 주는 데 트레이더가 몸 사릴 수 없지!]
[선배님 지분도 20% 있으니, 전주 아닌가요?]
[20%는 전주가 아니라, 추진력이 좋은 너를 추종하는 몫이야. 내 깜냥으로 이런 거래는 못 한다. 너나 되니 하는 거지.]
[하하하. 얘기가 그렇게 되는 건가요?]
1차 공략에서 벌어들인 4,700억달러 수익 중, 김근홍의 몫은 940억 달러에 달한다. 여기서 200억 달러를 잃는 것이 무슨 대수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금융 전문가의 직업병을 생각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계산이 빠르기에 940억 달러를 확정된 수입으로 여기고, 실패 확률 90%에 달하는 투기에 2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할 수 없는 거다.
반면, 창수는 800억 달러를 모두 잃어도, 2,960억 달러 이익이 남는다고 생각했다.
이건 1차 공략과 2차 공략을 별개로 보지 않고, 연결되는 작업이라 여기는 경영자적 자세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김근홍이 투자하는 지분이 20%에 머무는 이유다.
[그런 거지. 그리고 셀든에게 약점 같은 것 없냐?]
[셀든과 협상하려는 건가요?]
[아니. 그 작자는 협상이 안 통해. 그냥 폭로해서 일본에 더 이상 개입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해.]
[셀든이 사용한 것인지 모르지만, 일본에서 백악관 비서실장 데이븐 포드에게 흘러간 돈이 3,000만 달러라고 합니다.]
[오! 그거 아주 좋은 정보네! 증거 확보할 수 있어?]
[장담은 못 하지만, 시도는 해 보겠습니다.]
[좋아. 그리고 꼭 그 건이 아니더라도, 셀든 주변에 비리가 있는지 알아봐 줘. 어떻게 해서든 한 방 먹여야 하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최대한 모아 보죠.]
가능하면 초강대국 미국과의 충돌을 피하려 했다. 그러나 이제 1,000억 달러를 베팅하고 건곤일척의 승부를 봐야 하는 상황.
김근홍은 약해진 마음을 다잡고, 셀든과 미국 정부의 목에 비수를 들이밀려 했다.
5.
“회장님, 손실이 1,500억 달러입니다.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결단!? 이 판국에 무슨 결단을 내리라는 거야!?”
24일 오전 11시, 도쿄 구라다증권 회장실에서 고성이 터졌다. 회장 이마에 스바루가 자산 운용 본부장 노다카 아키라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호통친 것.
“우리 자산 총액이 1,000억 달러입니다. 손실을 만회할 방법이 없습니다. 고객들을 보호하기 위해 파산 신청을 해야 합니다.”
“노다카 군! 자네는 아직도 이 바닥 생리를 모르나!?”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가 파산하면, 고객들이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은 10%도 안 돼. 그걸 고객들이 원할까?”
“빈손이 되는 것보다 낫지 않습니까?”
구라다증권의 자본금은 1억 달러에 불과하다. 1,000억 달러에 달하는 자산 대부분은 고객이 맡긴 투자금.
일본을 대표하는 투자회사 구라다증권은 예금 봉쇄와 소요 사태로 인해 통화 옵션에서 1,500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보았다. 창수와 김근홍이 올린 수익의 32%가 여기서 나온 것.
자본 잠식은 말할 것도 없고, 보유 자산을 500억 달러나 초과한 대규모 손해가 발생했다. 회사가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
노다카 아키라는 파산 신청한 뒤 적은 돈이라도 건지자고 말했으나, 이마에 스바루는 의미 없는 짓이라 여겼다.
“아니야. 고객이 바라는 건 반등에 성공해 원금 회복은 물론이고, 투자 수익을 받는 거야. 내 말이 틀린가?”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그러나 반등할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미국이 본격적으로 개입했어. 엔화가 강세일 것이 분명해, 우리가 상승 방향으로 포지션을 구축하면, 손실분을 충분히 만회할 수 있어.”
“하지만 자금이 없습니다. 우리가 쓸 수 있는 신용 한도가 넘었습니다.”
“위탁 주식과 채권을 정리하면 자금을 만들 수 있어.”
“예!? 그건 공적 연금 펀드에서 위탁한 겁니다! 우리 자산도 아닌 걸 정리했다가 손실이 나면…….”
“손실이 나면 자네와 나는 끝장이지. 그러나 이대로 파산해도 우리는 끝장이야. 해 볼 만한 도박 아닌가?”
“…….”
일본 공적 연금 펀드(GPIF)는 운용 자산이 1조 7,000억 달러에 달하는 세계 최대 연기금이다. 자산 1조 3,000억 달러를 운용하는 노르웨이 국부 펀드(GPFG)와 오랫동안 투 톱을 유지하고 있다.
공적 연금 펀드는 주식 50%, 채권 35% 비중을 두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자금을 운용한다. 그리고 일본 국채를 제외하고 대부분 투자를 전문적인 운용사에 위탁하고 있다.
구라다증권 자산으로 잡히지 않은 공적 연금 펀드 위탁 주식과 채권이 1,000억 달러에 달한다. 이걸 활용해 엔화 강세에 베팅하면,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거다.
물론, 실패할 경우 감옥행과 인생 파멸이라는 혹독한 대가가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회장 이마에 스바루는 구라다증권을 살리기 위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각오를 보였다.
자산 운용 본부장 노다카 아키라는 암담함을 느끼면서도 회장의 폭주를 제지하지 못했다.
이마에 스바루의 주장이 나름 타당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더 나은 대안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도 이유 중의 하나.
* * *
5월 25일 새벽 2시, 창수가 일본 총리 관저 인근에 도착했다.
총리 관저는 2002년 완공된 지상 5층 건물로 대지 46,000㎡에 연건평 25,000㎡에 달한다. 총리 집무실과 국가 위기 관리 센터 그리고 각국 정상들을 맞이하는 귀빈실이 자리 잡고 있다.
‘확실히 경비가 강화됐군.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아.’
청와대와 유사한 기능을 가진 곳이기에 평소에도 경비가 삼엄했다. 그리고 총리 측에서 정보가 새 나간다는 의심을 받은 이후, 경비 병력이 3배 이상 증가했다.
투명망토와 블링크 마법을 사용하는 창수도 들키지 않고 잠입하기 어려울 정도.
‘한번 와 본 곳이라 다행이군. 만약 초행이었다면, 들어갈 엄두를 못 냈을 거야.’
창수에게 다행인 건, 잠입한 경험이 있어 내부 병력 배치와 감시 사각지대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블링크.’
-슥.
창수는 단숨에 15m 공간을 이동해, 총리 관저 경내 경비병이 휴식을 취하는 장소 옆으로 넘어갔다. 경비병이 다수 모여 있어, 역설적으로 감시가 취약한 곳.
- 사사삭!
휴식 장소에서 총리 관저 본관으로 가는 길에 적외선 탐지기와 레이저 센서가 배치됐지만, 창수를 막을 수 없었다. 경비병이 이동하는 길을 따라갔으니 감시에 걸릴 일이 없다.
총리 관저 보안을 설계한 당사자가 창수의 행동을 알게 된다면, 분통이 터졌을 거다.
취약점을 이용해 무사히 본관 지하 1층에 도달한 창수는 다시 한번 블링크를 사용해, 굳게 닫힌 문을 넘어갔다.
‘여기까지 오니까 오히려 편하군.’
창수가 진입한 장소는 기밀 정보가 보관된 곳으로, 소수만이 출입할 수 있다.
현재 총리 관저에 적지 않은 인원이 상주하고 있지만, 이곳에는 단 한 명도 없다. 게다가 감시 장치도 출입구에 설치된 레이저 센서 이외에 하나도 없다.
감시 장비를 통해 보관한 기밀이 유출되는 사건을 사전에 막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역작용을 일으켜 창수에게 자유를 줬다.
- 스스슥!
‘어! 사사키 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