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136화 (136/200)

136화 40장. 일본 몰락의 날

1.

[일본 금융시장 폐쇄가 어려운 이유가 있는 건가요?]

[일본은 역외시장이 발달해 있어. 특히, 우리가 집중적으로 투자한 통화 옵션은 일본에서 막아 봐야 실효성이 없는 거야.]

[그래도 안전장치가 있지 않을까요? 정부가 나서도 외환 거래를 막지 못한다는 건 통화 주권을 잃는 거잖아요.]

[안전장치가 없어. 일본 정부 통제에서 벗어나 24시간 자유롭게 엔화 거래 할 수 있으니까.]

[이해가 안 가네요. 일본 정부는 왜 역외시장을 방치하는 거죠?]

[국제금융 세력이 주도하는 선진국 지수에 편입하려면, 선결 조건이 자유로운 역외 통화 거래야. 명분은 투자자가 정부 간섭 없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건데, 실상은 고인물들이 만든 함정이지. 일본은 함정에 걸린 거고, 우리에게 그걸 이용해 먹을 기회가 온 거야.]

금융 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전문 투자가로 수십 년간 활동해 온 김근홍은 일본의 문제점을 단번에 꿰뚫어 봤다.

국제금융시장 유동자금 규모는 15조 달러로 추산된다. 여기에 각국의 국부 펀드와 연기금, 투자 펀드 그리고 개인 투자가들이 참여한다.

이 자금 중 85%가 추종하는 것이 ‘선진국 지수’. 메이저급 투자은행이 만든 것으로 23개국이 포함돼 있다.

선진국 지수에 포함된 국가 금융시장은 제외된 국가와 비교해 자금 유동성이 풍부하고 변동성이 적다. 여기에 들어가는 것이 월등히 유리한 상황.

하지만 선진국 지수에 편입하려면, 국제금융 세력이 요구하는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자유로운 역외시장 통화 거래’, 이것이 선진국 지수라는 달콤한 꿀에 섞인 독약이다. 그리고 일본은 이미 중독돼 있다.

[아……. 그러고 보니 한국은 선진국 지수에 편입 안 하고 있죠. 이유가 함정을 피하기 위해서 인가요?]

[맞아. 국제금융 세력이 당근을 흔들면서 아양을 떨고 있지만, 역외 원화 거래에 제한을 두고 있어.]

한국은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이고, 일인당 국민소득 37,000달러로 선진국으로 분류된다. 이에 더해 한국 증권거래소 시가총액은 2조 2,000억 달러에 달해 세계 11위에 랭크돼 있다.

명실상부하게 선진적인 경제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증시는 23개국이 포함된 선진국 지수에서 제외돼 있다.

‘역외 원화 거래’를 자유롭게 풀어 달라는 국제금융 세력의 요청을 한국 정부가 거부한 것이 원인.

[한국도 선진국 지수에 편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제 전문가들이 있더군요. 그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가요?]

[헛소리하는 거지. 한국은 무역 의존도가 높아서 원화가 역외에서 자유롭게 거래되면, 국제 환투기 세력의 표적이 될 수 있어. 선진국 지수에 편입되고 주가가 올라서 좋을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야.]

한국이 선진국 지수에 편입되면, 코스피 지수가 5,000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전망이 있다.

이 예측은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나 감내해야 할 위험이 너무 크다. 환투기 세력의 공격에 취약한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한국이 일본보다 외부 공격에 견디는 힘이 강한 거군요.]

[그렇지. 지금 이 시간에도 역외시장에서 일본 환율이 폭락하고 있어. 우리가 목표한 수익의 30%를 이미 달성한 거야.]

[오늘 안으로 목표 수익을 달성하겠네요.]

[당연하지. 그리고 어쩌면 수익이 한참 더 오를 수 있어.]

역외시장에서 국제 투기 세력이 엔화를 공격하고 있다. 수익을 올릴 절호의 찬스가 왔다고 여기고 하이에나처럼 몰려온 것.

2023년 5월 기준 일본의 신용 등급은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보다 한참 낮은 A- 등급이다. 투자 부적격 평가를 받기 일보 직전.

이런 상황에서 시대착오적인 예금 봉쇄와 그에 따른 소요 사태가 발생하니, 국제 투기 세력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는 거다.

미리 엔화 폭락에 베팅한 김근홍은 단기간에 막대한 투자 수익을 올릴 거라 확신했다.

* * *

5월 23일 오전 7시, 일본 금융시장이 개장하기 2시간 전, 일본 총리 후지다 카즈아키가 주재하는 내각회의가 열렸다.

사망자 집계가 450명이 넘어가는 상황이기에, 부총리와 재무 장관을 비롯해 장관 모두가 참석했다.

“미카미 장관! 당장 모든 금융시장을 폐쇄하시오!”

“불가능합니다.”

“뭐라고!? 당신 지금 나에게 항명하는 거야!?”

“정신 좀 차리시죠! 항명이 아니라 현실을 말하는 겁니다! 지금 금융시장에 손대면, 일본은 국가 부도에 빠지게 됩니다! 뭘 좀 알고 말하기 바랍니다!”

“뭐… 뭐라고!?”

더 이상 고양이 앞의 쥐가 아니다. 재무 장관 미카미 타게루는 총리의 개념 없는 지시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게다가 말투가 불량스럽기 그지없다. 이건 상관을 대하는 자세가 아니라, 정적을 대하는 자세.

불과 하루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자, 후지다는 일순간 할 말을 잊었다.

“미카미 장관의 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오늘 국채를 발행해야 합니다. 금융시장을 폐쇄하면, 국채 발행이 어려워 자칫 디폴트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국채 발행만 따로 진행하면 될 것 아니오?”

“은행과 금융사가 폐쇄되면, 국채 입찰 자체를 진행할 수 없습니다.”

“일본 은행 단독으로 입찰 진행이 안 된다는 거요?”

“그렇습니다. 예전에 아벨 총리 시절에는 편법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불가합니다.”

총리와 재무 장관이 감정 대립으로 치달으려 하자, 중립적인 경산성 장관 니오 시게오미가 나섰다. 그는 도쿄대를 졸업하고 투자은행에서 20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는 전문가.

일본 국채는 공개시장을 통해 은행과 금융사 같은 민간에 매각한다. 그리고 소화하지 못한 잔여분을 일본 은행이 매입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아벨노믹스를 내세우며, 일본 경제를 벼랑으로 몰고 간 아벨이 이 절차를 무시했으나, 지금은 내규로 금지된 상황.

“흠… 이것 참……. 할 수 있는 게 없구만.”

“시중은행 창구를 일시적으로 막는 건 가능합니다. 나머지 조치는 국채 발행을 마무리하고 실행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뱅크 런이라도 막자는 거요? 후…. 외통수에 걸린 느낌이구려.”

“오늘 고비만 넘기면, 수습할 수 있습니다.”

“그러길 바라오.”

현재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지극히 한정돼 있다. 시기적으로 공교로운 점이 있으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일본의 기초 체력이 그만큼 약해졌다는 것.

후지다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절망감을 느껴야 했다. 경산성 장관이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총리, 가장 시급한 건 질서를 회복하는 겁니다. 즉시, 예비군을 소집하고, 미국에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그건 이미 조치를 한 겁니다.”

“중대한 조치를 내각 결의도 없이 했다는 겁니까?”

“부총리가 참석 안 했다고 내각 결의를 못 하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무얼 말입니까?”

“지금 이 사달이 난 건, 모두 부총리가 제안하고 밀어붙인 예금 봉쇄 정책 때문입니다.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게 어째서 제 책임입니까? 예금 봉쇄는 불가피합니다. 문제가 되는 건, 기밀 사항이 외부로 흘러 나갔다는 겁니다. 책임질 대상은 제가 아니라, 예금 봉쇄를 준비하기도 전에 언론에 터트린 사람입니다.”

밉살스러운 부총리 토노오 오키무네가 수습을 말하며 의뭉스럽게 넘어가려 하자, 총리가 걸고넘어졌다.

최초 제안자인 부총리가 정책 실패의 결과를 떠맡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 후지다의 말은 나름 타당한 면이 있다.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은 토노오 오키무네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언론 제보를 내가 했다는 의미입니까?”

“그건 누구도 모르죠. 다만 알 수 없는 범인을 잡아내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엉뚱한 사람을 희생양 삼으려 들면 안 된다는 겁니다.”

불신의 골이 너무 깊다. 일본 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위기가 닥쳤음에도, 총리와 부총리는 영양가 없는 말싸움으로 귀중한 시간을 날려 보내고 있었다.

* * *

8시 30분, 주식시장 개장을 30분 앞두고 창수가 최신 정보를 김근홍에게 전달했다.

[선배님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질서 유지를 위해 미군이 긴급 투입됐고, 은행이 업무를 중단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식을 포함한 나머지 금융시장은 정상적으로 열립니다.]

[생각대로군. 그런데 소요 사태가 수그러들까?]

[예. 미군이 효과적으로 대응해서 빠르게 안정돼 간다고 합니다.]

일본에 파견된 미군 상당수는 실제 전투를 경험한 베테랑이다. 정규전은 물론이고 게릴라 소탕 경험도 풍부한 병력이 중무장하고 조직적으로 들이닥치자, 겁먹은 일본인들은 대항을 포기하고, 도주하기 바빴다.

일부 범죄자들이 자위대로부터 탈취한 무기를 가지고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순식간에 사살당했다. 장비와 훈련 그리고 정신력에서 상대가 되지 않은 것.

그리고 미군이 투입됐다는 사실이 인터넷과 SNS를 통해 빠르게 전파됐다. 미군을 두려워하는 DNA가 뼛속 깊이 새겨진 일본인들은 감히 나서지 못하고, 음지로 몸을 숨겼다.

[양키 놈들이 쓸데없이 유능하구만. 이거, 거래 타이밍 잡기 곤란해지는데.]

[미국은 끊임없이 전쟁을 해 온 나라입니다. 군대가 유능한 건 당연한 거죠. 이제 일본 치안은 안정됐다고 봐야 합니다.]

[알았다, 알았어. 공짜 점심을 더 바라면 안 되겠지.]

일본의 소요 사태가 조금만 더 진행됐다면, 좀 더 수월하게 거래를 할 수 있었을 거다. 아쉬움이 남지만, 어쩔 수 없는 일. 현실을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한다.

[그러면 청산을 언제 하실 건가요?]

[통화 옵션은 일본 주식시장 추이를 보고 결정할 거야. 주가가 하한가로 떨어지면, 그때 청산해야지. 다른 풋 옵션은 계속 지켜볼 거야. 하한가가 나오더라도 프리미엄이 더 붙을 수 있으니까.]

[이번에도 타이밍 싸움이군요.]

[당연하지. 금융 거래의 시작과 끝은 타이밍이야. 그래서 네 역할이 중요해. 시장을 움직일 만한 정보가 있으면, 사소한 거라도 즉시 알려 줘야 해.]

[알겠습니다, 선배님.]

일본 엔화는 달러당 115엔에서 16엔 오른 131엔에 거래되고 있다. 단기간에 가치가 13.9% 폭락한 것.

이것만으로 목표 수익의 70%를 달성한 상황. 김근홍은 일본 주식시장이 열리고 하한가로 떨어질 때가 통화 옵션을 청산할 적기라고 판단했다.

미세한 청산 타이밍 차이로 천문학적인 금액이 오갈 수 있다. 김근홍은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아이처럼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일본 주식시장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10, 9, 8, 7, 6, 5, 4, 3, 2, 1. 거래 시작입니다!]

[하하하! 쭉쭉 빠지고 있어! 이대로만 가라!]

23일 오전 9시 정각, 일본 주식시장이 열리면서 급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식시장 폭락에 발맞춰 일본 엔화도 추가 하락하기 시작했다.

양쪽에서 돈 버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오자, 김근홍의 입에서 기쁨의 함성이 저절로 나왔다. 목표를 넘는 수익을 올리는 것이 이제 정해진 거나 다름없으니까.

게다가 일본 증시가 개장한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서킷 브레이커가 걸렸다. 시장이 공황에 빠지는 걸 막기 위해 15분간 거래가 중단되는 조치가 발동한 것이다.

서킷 브레이커가 나오면, 그날 주식시장은 회생이 어려운 것이 일반적이다. 오늘 시장 환경을 고려하면 하한가는 떼 놓은 당상이다.

하지만 남의 돈 먹기가 그리 수월할까?

[선배님! 미국이 일본 금융시장에 개입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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