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135화 (135/200)

135화 39장. 일본의 숨통을 조르다

6.

긴급회의를 소집했지만, 총리 집무실로 달려온 장관은 절반에 불과했다. 부총리와 재무 장관이 불참한 것은 물론이고, 그 세력을 따르는 장관들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회의에 불참했다.

일본 총리 후지다 카즈아키는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는 모멸감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을 욕보인 부총리가 주도한 일을 도맡아 해결해 줘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책임을 가리는 건 다음으로 미뤄도 됩니다. 하지만 사회 혼란을 막지 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올 겁니다.”

“지금 책임을 못 가리는데 나중에 책임을 가릴 수 있을 것 같소? 그리고 예금 봉쇄를 주장한 장관들의 의견도 듣지 않고, 내가 무효화하면, 그때 발생할 혼란을 어떻게 수습할 거요?”

“그… 그것은…….”

일본 국가 채무는 GDP의 280%에 달한다. 300%를 넘는 건 시간문제.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자산 가치를 떨어트리는 정책을 10년 이상 추진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이제 남은 방법은 예금 봉쇄와 재산세 부과뿐이다.

사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의 문제였다. 부총리가 나서서 총대를 메 주니 반대하는 척하면서도 예금 봉쇄를 승인한 거다.

문제는 시간을 두고 국민을 설득할 계획이 갑자기 폭로되는 바람에 대처하기 어렵게 됐다는 점.

그렇다고 해도 예상된 부작용이다. 이제 와서 예금 봉쇄를 철회하는 건 우둔한 짓이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이 자리에 부총리를 불러,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약아빠진 토노오 오키무네가 눈치채고 참석을 거부했다는 것.

“총리 각하, 일단 소요 사태를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위대 병력을 동원하자는 거요?”

“그렇습니다. 중무장한 병력이 폭도를 처리하면, 나머지는 알아서 잠잠해질 겁니다. 그 뒤에 정부 정책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하면 됩니다.”

국가 공안 위원장이 침묵을 지키자, 국방 장관 나오노 마사토키가 나섰다. 일본 국민의 불만을 무력으로 제압하자는 것.

이건 재산을 지키려고 몸부림치는 국민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것이 아니라, 폭력으로 억압하려는 거다. 국민을 개돼지로 여기면서.

“조금 과격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군. 다른 장관들의 의견은 어떻소?”

“…….”

“반대가 없으니, 찬성하는 것으로 알겠소. 나오노 장관, 즉시 자위대를 투입해, 공공질서를 어지럽히는 폭도를 제압하시오.”

“알겠습니다! 총리 각하!”

척하면 척이다. 총리가 자위대 투입을 결심한 상황에서 간 크게 반대하며 나설 장관은 없었다.

* * *

“주민 여러분! 진정하십시오! 지금 현금 수송차가 오고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리면 현금을 인출할 수 있습니다!”

- 지금 2시간째예요! 언제 온다는 거죠!?

- 이러다가 날밤 새운다고요! 아침에 면접 봐야 하는데 떨어지게 생겼어요!

- 우리 아이 수술비가 모자랍니다! 제발 빨리 뽑게 해 주세요!

5월 23일 새벽 3시, 도쿄 인근 사이타마에 있는 편의점에 2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 편의점 내부에 배치된 현금인출기에서 예금을 인출하려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현금이 고갈된 지 오래됐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불만이 높아 가고 있다.

출동한 경찰 4명이 현장을 수습하려고 애쓰고 있으나, 패닉에 빠진 사람들을 관리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 그래도 분위기가 흉흉하지 않아 다행이기는 하다.

- 부우웅!

- 척!

- 타다닥! 후다닥!

“모두 해산하라!”

기다리는 현금 수송차는 오지 않고, 군용 트럭이 도착했다. 그리고 무장한 병력이 내리더니, 주민들에게 강제 해산 명령을 내렸다.

“당신들 누구입니까? 어디서 온 병력인데 주민을 통제하려 드는 거죠?”

“우리는 폭도들을 진압하러 온 자위대 병력이오! 당신네 경찰이 낄 자리가 아니니까 나서지 마시오!”

“무슨 말도 안 되는…….”

- 턱!

“말이 되고 안 되고는 내가 알 바 아니고! 작전을 방해하려 든다면, 당신부터 체포할 거야! 말로 할 때 저리 비켜!”

일본 경찰과 군은 과거부터 앙숙 관계다. 제국주의 시절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가 경찰을 학살한 예가 있고,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뒤, 부랑아로 전락한 군인들을 경찰이 집단 구타한 예도 있다.

사이타마는 한국으로 치면 성남시 분당구와 같은 곳으로 경찰이 치안을 담당하는 민간인 지역이다. 자위대가 주민을 통제하려 드는 건 경찰 관점에서 월권행위.

경찰이 자위대 병력을 제지하려 했으나, 막무가내였다. 총을 움켜쥐며, 체포를 경고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에까지 다다랐다.

“좋소! 일단 물러나지! 하지만 당신들 행위가 위법이라면, 각오해야 할 거요!”

“각오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할 수 있으면 해 보든지!”

자위대 인원 12명, 소총 무장은 기본이고, 기관총과 유탄 발사기를 보유하고 있다. 빈약한 무장을 한 경찰 4명이 무력으로 어찌해 볼 수 없는 상대.

힘에서 밀린 경찰은 결국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 폭도라고!? 어디서 개소리야!?

- 해산하라니! 내 돈 묶이면 너희가 책임질 거야!?

- 현금 인출하기 전까지, 여기서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어! 꺼지는 건 네놈들이야!

자위대 병력이 강제로 경찰 병력을 밀어내는 과정을 지켜본 주민들이 격앙한 반응을 보였다.

예금 봉쇄가 시작되기 전에 예금을 인출해야 하기에 신경이 곤두선 상태였다. 그래도 경찰이 신경 써 줘 참고 있었는데, 자위대 병력이 자신들을 폭도로 매도하고 해산시키려고 하니 강한 반발심이 생긴 것이다.

- 우루루!

주민 200명 중, 성미 급한 50여 명이 자위대를 둘러쌌다. 비록 비무장이지만, 숫자가 많으니 위압감이 상당하다.

“모두! 물러나! 어서!”

자위대는 정식 군대라 보기에 손색이 있다. 훈련이 부족하고, 전투병으로서 자각도 부족하다.

중무장하고 민간인을 상대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 않겠지만, 지금처럼 다수가 강하게 반발하며 포위하자, 더럭 겁이 나 버렸다.

그리고 자위대 병력의 위축된 모습이 주민들에게 그대로 드러났다. 자신감을 얻은 주민들의 압박이 더 거세지는 상황.

- 탕!

- 팍!

“크악!”

압박을 견디지 못한 자위대원 한 명이 엉겁결에 방아쇠를 당기고 말았고, 종아리에 총을 맞은 주민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 미친놈이 총을 쐈어!

- 자위대 새끼들이 사람 잡는다!

- 쳐 죽여! 개새끼들!

어설픈 대응이 화를 불렀다. 자위대 12명이 대형을 갖추고 공포탄을 쐈다면, 주민들이 반발하기 어려웠을 거다.

하지만 자위대 병력은 흐트러진 상태에서 주민 통제에 나섰고, 주민들이 반발하자 주저하는 나약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발사한 총탄에 주민 한 명이 부상을 입자, 주민들은 공포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분노를 느끼게 됐다.

- 퍽! 팍!

“으윽!”

“큭!”

주민 50여 명이 일제히 달려들어 자위대 12명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 못한 자위대원 대부분은 무방비 상태로 몰매를 맞았고, 일부는 반격하려 했지만, 자위대 병력과 주민들이 뒤엉키는 바람에 발포하기 어려웠다.

“주민 여러분! 진정하십시오! 이대로 가면 정말 폭도가 됩니다! 저들이 원하는 대로 해 주실 겁니까!?”

자위대 12명이 제압당하자, 공격을 주저하던 주민 50여 명이 추가로 합세해, 100명이 넘는 주민이 집단 폭력을 가했다. 자칫하면 자위대 12명이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상황.

이 위기에서 자위대 병력의 목숨을 구한 것이 경찰이었다.

경찰 4명은 집단행동을 주도한 주민들을 일일이 찾아가 말리며, 폭행 중단을 설득했다.

처음에는 분노한 상태라 경찰의 말이 먹히지 않았지만, 자위대 병력이 실신 상태가 되자, 설득이 통하기 시작했다. 분풀이를 충분히 한 뒤, 귀찮은 일을 경찰에게 맡기려는 의도를 보인 것.

예금 봉쇄에 반발하는 주민들과 자위대 병력의 충돌은 이곳만 아니라, 일본 전역에서 벌어졌다. 이곳처럼 주민이 승리한 곳도 있지만, 상당수 지역에서 자위대가 발포해 사상자 수백 명이 발생했다.

화요일 새벽, 일본 열도는 폭력과 죽음이 난무하는 무정부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 * *

예상하지 못한 사태에 일본 정부도 당황했다. 자위대 투입으로 국민 불만을 힘으로 누르려던 계획이 빗나가고 혼란만 가중된 상황.

창수는 심어 놓은 정보망을 통해 이 사실을 파악하고 태국에 있는 김근홍에게 연락을 취했다.

[선배님, 일본 상황이 급격히 혼란해지고 있습니다.]

[시민들과 자위대 병력이 충돌한다는 소식은 들었어. 얼마나 심각한 거야?]

[현재까지 민간인 사망자 273명, 자위대 사망자 51명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날이 밝아 집계가 정확해지면, 사망자가 더 늘어날 겁니다.]

[헐……. 어이가 없구만, 일본이 이렇게 취약한 나라였다니……. 내가 너무 심한 짓을 한 건가?]

일본 정부가 예금 봉쇄를 추진한다는 것을 언론에 알린 건 김근홍이다. 미국 재무 장관 트레비스 호튼의 개입으로 일본 금융시장 공략에 차질이 발생하자, 대안으로 흔들기에 나선 것.

김근홍은 자신이 벌인 일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에 심적인 부담을 느끼게 됐다.

[어차피 터질 일입니다. 선배님이 그걸 앞당긴 건 사실이지만, 책임질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일본이 일으킨 IMF 사태로 한국인 1만 명 이상이 자살했다는 걸 잊지 마세요.]

[하긴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 그리고 더러운 일본 놈들이 자기들 암습에 한국이 당한 것인데도, 조롱하느라 바빴지. 동정할 가치도 없는 놈들이야.]

IMF 사태가 일어나기 전, 한국의 10만 명당 자살 수가 12.9명이었다. IMF 사태를 맞은 1997년 후반부터 자살이 급증해 1998년 18.4명을 기록했다.

IMF 사태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3년간 21,746명이 자살했고, 그중 1만 명을 IMF 사태로 인한 자살자로 분류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IMF 사태를 조기에 극복했지만, 그 여파로 노동시장의 불안정이 만성화되면서, 이후 10만 명당 31.7명까지 자살 수가 급증했다.

창수는 324명 죽은 걸로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걸 알렸다. IMF 사태의 참상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김근홍은, 잠시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고 전의를 불태웠다.

[지금 일본 내각에서 두 가지 방안을 논의 중입니다. 하나는 미군을 동원해 치안을 복원하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은행을 열지 않고, 금융시장을 잠정 폐쇄하는 방안입니다. 풋 옵션 정리하는 데 문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일본 은행은 오전 9시에 영업을 시작한다. 지금과 같은 혼란에 은행 문을 연다면, 뱅크 런이 발생할 수 있다. 자칫 일본 경제 붕괴로 이어질 수 있기에, 은행 영업을 중단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금융시장도 마찬가지, 주식을 비롯한 대부분의 금융 상품이 추락할 것이 분명하기에, 일본 금융시장 전체를 당분간 셧다운 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미군 투입은 가능성이 높고, 일본 은행이 막힐 가능성도 있어. 하지만 금융시장을 폐쇄하는 건 불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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