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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133화 (133/200)

133화 39장. 일본의 숨통을 조르다

3.

“미카미 장관, 아직도 범인을 색출하지 못한 거요?”

“죄송합니다, 총리 각하.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해 조사하고 있지만, 범인이 워낙 신출귀몰해 아직까지…….”

- 쾅!

“변명 집어치우시오! 내각 정보 조사실 인원을 지원해 주면, 주말까지 반드시 범인을 잡아내겠다고 큰소리치더니! 지금 월요일인데, 아직도 변명이오!?”

5월 22일 월요일 오전 9시, 일본 총리 집무실에서 심한 고성이 터져 나왔다. 총리 후지다 카즈아키가 재무 장관 미카미 타게루를 질책한 것.

지난주 초부터 위조인 듯 위조 아닌 일본 국채가 시중에 유통된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처음에는 소량에 불과하기에 일반적인 조사를 지시했으나, 하루가 지날수록 규모가 커져, 특별 조사 팀을 꾸려야 했다.

그리고 그 지휘를 주무 부처장인 재무 장관이 담당했는데 1주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성과가 없는 거다. 총리로서는 열불 나는 상황.

“총리, 고정하십시오. 나쁜 소식만 있는 건 아닙니다.”

“예? 좋은 소식이라도 있다는 겁니까?”

재무 장관이 고양이 앞의 쥐처럼 벌벌 떨면서 아무 말도 못 하자, 부총리 토노오 오키무네가 나섰다. 자민당 간사장 출신으로 총리조차도 소홀히 대할 수 없는 실력자.

“국채를 면밀히 조사한 결과, 위조가 아니라 진품이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다만, 채권에 표시된 채권자 이름이 등록된 것과 조금씩 다를 뿐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변조된 진품 국채입니다.”

“그렇다면, 그대로 국고에 환수하면 되겠군요.”

“행정절차가 조금 복잡해, 당장 국고 수입으로 삼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채무가 동결되는 효과가 있으니, 국고에 도움이 되기는 할 겁니다.”

“정말 좋은 소식이군요. 그런데 지금까지 파악한 변조 국채가 3조 엔입니다. 누가 그 돈을 버리려고 장난질하고 있다는 건가요?”

멀쩡한 국채를 훼손하면, 채권자의 권리가 제약받는 것은 물론이고, 금융시장 교란 행위에 책임을 지고 처벌받아야 한다.

일본 총리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버리면서 범죄자가 되려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중국이라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일본 국채 시장을 교란하기 위해 고육지책을 사용했다는 건가요?”

“3조 엔이 엄청난 금액이지만, 중국이 가진 경제력을 생각하면 미미한 수준입니다. 1,100조 엔에 달하는 우리 국채 시장을 흔든다면, 남는 장사라고 봅니다.”

“흠……. 생각해 볼 문제로군요.”

양안전쟁이 벌어진 뒤 6개월이 지났지만, 긴장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군사적 승리로 자신감을 얻은 중국이 대만과 일본을 동시에 압박하고 있다.

지금도 동중국해에 전투함을 배치해, 일본 상선의 운항을 가로막은 상태. 토노오 오키무네는 중국이 일본에 경제 전쟁을 시도한 것이라 판단했다.

현재 일본은 GDP의 280%에 달하는 국가 채무를 짊어지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일본 국채다.

가뜩이나 취약한 국채 시장에 위조 논란이 발생하면, 파국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여파가 일본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후지다 카즈아키는 부총리의 가설이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에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 중국 물량 공세를 막아 내기 어렵습니다.”

“음……. 도움이 필요하지만, 요새 미국은 공짜로 도와주지 않습니다. 지난번 미국 신재생 에너지 사업에 2,000억 달러를 투입한 뒤 국고가 바닥을 보이고 있는데, 어떤 요구를 해 올지 막막하군요.”

“자금이 모자라면, 추가 국채 발행이라도 해야 합니다.”

“그게 쉽지 않다는 건 잘 알지 않습니까?”

월급 600만 원을 받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수입 자체로 상위 20% 안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 사람의 지출은 연간 1억 3,200만 원에 달한다. 매월 500만 원 적자가 나는 거다.

적자를 메우려고 돈을 빌렸다. 은행권에서 빌린 돈이 11억 원이고, 이것저것 밀린 돈이 3억 원이다. 부채 총액 14억 원에, 매달 나가는 은행 이자만 250만 원이다.

참으로 암울하다. 이런 상황에서 추가로 빚을 내고 싶은 마음이 들까?

일본 경제가 이 모양 이 꼴이다. 2023년 일본 세수는 60조 엔에 불과한데, 지출 예산이 110조 엔이다.

총부채가 1,400조 엔이고, 발행한 국채가 1,100조 엔이다. 매년 25조 엔을 이자로 지급하고, 모자라는 돈을 메우기 위해 매년 신규로 50조 엔 이상 추가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한마디로 말해 대환장 빚잔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이 일본에 군사적인 위협을 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도움을 얻기 위해 2,000억 달러에 달하는 거액을 사용했다.

총리 후지다 카즈아키는 호주머니가 빈 상태에서 미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에 공포심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부총리가 추가로 빚을 내자고 한다. 알 만한 사람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국가 부채는 예금 봉쇄로 정리하면 됩니다. 300% 채운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다고 봅니다.”

“너무 급하게 생각하는 것 아닙니까? 국가 부채 해소 방안은 시간을 두고 연구해야 합니다.”

“저도 저번 주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변조 국채를 보고, 제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국가 부채를 정리하지 않으면, 이런 일은 계속해서 반복될 겁니다.”

경기 부양을 비롯한 경제 정책을 펴기 위해 국가가 부채를 일으킨다. 개인보다 돈을 빌리기 쉽고, 필요성도 일정 부분 존재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한도가 있다.

국가 부채가 GDP 대비 50%가 넘어가면, 위험 신호가 오기 시작하고, 100%에 다다르면, 특별한 관리를 해야 한다.

국가 부채가 200%를 넘어가면, 자연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이때 국가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방법과 국민 재산 몰수라는 방법을 사용해 부채를 정리할 수 있다.

전자는 독일이 사용한 방법이고, 후자가 일본이 사용한 방법이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후 국가 부채가 GDP의 204%에 달하자, 전격적으로 예금 봉쇄를 단행하고 최고 90%에 달하는 재산세를 과세했다.

부총리 토노오 오키무네는 280%에 달하는 일본 국가 부채를 300%로 늘리고, 77년 전에 사용한 예금 봉쇄 정책을 다시 사용하자고 말하고 있다.

“예금 봉쇄를 함부로 언급하면 안 됩니다. 이 말이 외부로 새 나가는 것만으로, 일본 경제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해야 합니다.”

“우려하시는 것 모르는 바 아닙니다. 하지만 국가 지도자로서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총리가 예금 봉쇄의 위험성을 언급했지만, 제지할 수 없었다. 오히려 부총리는 지도자의 덕목을 언급하며 총리를 압박했다.

이건 자민당의 주류를 대변하는 힘에서 나온 자신감이리라.

이후 총리와 부총리는 국가 부채와 관련된 사안에 지루한 언쟁을 이어 갔고, 별다른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회의를 마쳐야 했다.

* * *

- 와장창!

“빌어먹을! 내가 지 꼬붕이야!? 권력 잡더니 개지랄 떨고 있어!”

회의를 마치고 재무 장관실로 돌아온 미카미 타게루는 분통을 터트리며, 집기를 부쉈다. 한심한 짓이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화병으로 숨이 넘어갈 지경.

후지다 카즈아키가 총리에 오르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이 미카미 타게루다. 동등한 입장에서 손잡고 새로운 정치를 해 보자는 말을 믿고 전폭적으로 지지해, 불리한 위치에 있던 3등을 총리직에 올렸다.

집권 초반 후지다 카즈아키는 겸손한 자세를 보이며, 약속을 지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비밀 미사일 연구소 폭파와 중국과의 대립 과정을 거치면서 저열한 본성을 드러냈다.

위기 상황에서 힘이 쏠리자 동료로 여기던 미카미 타게루를 졸개 취급하며 막 대하고, 언사도 거칠어진 것.

“내가 더러워서 때려치우고 만다! 장관이 무슨 대수라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 이치에 맞다. 미카미 타게루는 재무 장관직을 던지고 의원직에 충실하기로 결심했다.

그렇다고 곱게 물러날 생각은 아니다. 자민당 내부에서 힘을 길러, 다음번 선거에서 후지다 카즈아키를 밀어낼 요량.

- 삐!

<장관님, 미국 트레비스 호튼 재무 장관이 통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연결해.>

배신자 총리를 어떻게 엿 먹일까 궁리 중이던 때, 뜬금없는 전화가 걸려 왔다.

이미 재무 장관직에 마음이 떠났기에 통화를 거부하고 싶었으나, 상대는 초강대국 대통령 계승 순위 5위의 실력자. 거부하면 어떤 불이익이 올지 모른다.

미카미 타게루는 짜증이 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아야 했다.

<미카미 장관님, 어떻게 지내십니까?>

<아주 죽을 맛입니다.>

<골치 아픈 일이 있나 보군요.>

<일도 일이지만, 사람이 안 맞아서 못 해 먹겠습니다.>

<후지다 총리하고 요새 소원하다고 하더니, 충돌이 있었나 보죠.>

<휴……. 충돌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깨지고 있습니다. 별 볼 일 없는 3류를 총리 만들어 줬더니, 저를 아예 노예 취급하고 있습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권좌에 오르면 다 그렇게 됩니다. 자기에게 집중된 권력이 천년만년 간다고 착각하면서 마음껏 휘두르는 겁니다.>

트레비스 호튼과 미카미 타게루는 제법 친분이 있다. 일본이 미국에 2,000억 달러에 달하는 조공(?)을 바치면서 여러 번 접촉한 것이 원인.

국가 주요 정책이 대통령과 총리 위주로 결정되지만, 그걸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건 재무 장관의 몫이다.

미국 재무 장관은 일본 재무 장관이 총리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있다는 걸 아는 듯 위로의 말을 건넸다.

예상 밖의 응원을 받은 미카미 타게루의 마음속에 급격한 변화가 왔다. 트레비스 호튼에 대한 호감도가 급상승한 것.

<셀든 대통령님도 만만치 않은 분이죠.>

<깐깐하기는 하지만, 신사분이라 견딜 만합니다. 그건 그렇고 일본에서 이상한 국채가 유통된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어휴! 말도 마십시오! 멀쩡한 채권에 이름을 살짝 변조해 시중에 돌리고 있습니다! 범인을 색출해야 하는데, 꼬리가 잡히지 않아 환장할 지경입니다!>

<일련번호와 액면가는 손대지 않은 건가요?>

<그렇습니다. 이름도 꼼꼼히 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교묘하게 장난을 해 놨습니다.>

친근감을 느껴서일까? 미카미 타게루는 골칫덩어리로 떠오른 일본 국채에 관해 자세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삼가야 하는 언동이지만, 트레비스 호튼을 우군으로 여겼기에, 거리낌 없이 정보를 풀어 놨다.

<채권자를 추적할 수 있지 않나요? 기명채권이니까 등록기관에 채권자 신상이 있을 건데요.>

<상식적으로는 그래야 합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원주인을 찾기도 어렵습니다.>

<흠……. 이건 일본 금융시장을 교란하려는 조직적인 공격이군요.>

<저희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짐작이 가는 세력이 있나요?>

<아직은 추측이지만, 중국이 유력한 용의자입니다.>

<일리가 있는 추론이군요. 그런데 왜 이런 중요한 사건을 우리와 상의하지 않는 건가요? 셀든 대통령님께서 알면 심기가 안 좋을 것 같습니다.>

<하아……. 총리가 문제입니다. 지난번 신재생 에너지 투자를 떠올리고, 미국과 상의하는 걸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푼돈 때문에 일본 금융시장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일을 쉬쉬한다고요? 제정신인가요?>

자초지종을 들은 미국 재무 장관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 목소리를 들은 일본 재무 장관 미카미 타게루의 눈이 번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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