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38장. 버닝스톤의 위엄
2.
훈훈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던 특별 대담에 파문이 생겼다. 버닝스톤이 국제 문제를 만들 수 있다고 미래 경제 연구소장 류정수가 주장한 것.
긍정적인 효과로 가득한 버닝스톤에 대한 부정적인 발언이 나오자, 사회자가 발끈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동의할 수 없다는 의미이리라.
[2022년 중국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03억 탄소톤입니다. 전 산업에 걸쳐 이산화탄소 배출을 억제해야 하는 형편이죠. 반면 대한민국은 1억 탄소톤의 여유를 바탕으로 경쟁 제품을 원활히 생산할 수 있습니다. 산업 경쟁력에서 뒤진 중국이 반발할 가능성이 큽니다.]
[아……. 그런 말씀이군요. 하지만 중국이 우리를 비난하는 건 억지 아닐까요?]
[직접 대한민국을 비난하지는 않을 겁니다. 버닝스톤 생산국인 미국과 캐나다를 겨냥하겠죠.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할 겁니다.]
[미중 경제 전쟁의 불똥이 한국에 떨어질 수 있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미국에 한 발짝 더 가까이 가게 될 겁니다.]
버닝스톤이 에너지 산업 자체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건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
그리고 대두되는 것이 버닝스톤을 확보하지 못한 국가들의 산업 경쟁력이 필연적으로 저하된다는 점이다.
류정수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생산하는 버닝스톤을 한국이 공급받으면서, 탈중국화가 가속화될 거라 예측했다.
[중국에서 버닝스톤을 생산할 가능성은 없는 건가요?]
[버닝스톤 근거지가 미국과 캐나다입니다. 절대 불가능은 아니지만, 중국에 버닝스톤 생산 공장을 건설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라 봅니다. 게다가 오백세건강이 중국을 불신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불신이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시장조사 기관 헤럴드 리포트에 따르면, 암브로시아 전체 판매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이 21%라고 합니다. 하지만 오백세건강은 중국에 지사는커녕 콜센터도 운영하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 소비량이 대단하군요. 그러면, 중국은 어디서 암브로시아를 공급받는 건가요?]
[주로 한국 지사를 거쳐 갑니다. 그리고 한국 콜센터에 중국어 가능 상담원을 일부 배치해, 중국 소비자를 상대하고 있습니다.]
[중국으로서는 굴욕적인 조치겠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오백세건강도 중국 시장을 온전하게 찾아 먹지 못하는 것 아닐까요?]
[매출 손해를 감수하겠다는 거지요. 오백세건강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따르면, 언제 정책이 변할지 모르는 소위 ‘공산당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중국에 지사를 두지 않는다고 합니다. 버닝스톤 생산 공장은 더 말할 것도 없겠죠.]
경제 전문가답게 안목이 날카롭다. 미래 경제 연구소장 류정수는 창수가 중국을 믿지 않는다는 걸 제대로 파악했다.
창수는 태국에서 여행사를 창업해 자리 잡은 이후, 중국 지사를 설립하려 했다. 그 과정에서 고압적이고 오락가락하는 중국 정부 때문에 속앓이를 진하게 한 경험이 있다.
게다가 창수의 지인 중 중국 시장에 진출해서 끝이 좋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대부분 중도에 망했고, 초반에 성공한 듯 보이던 사람들도 공산당의 횡포로 빈털터리가 되는 상황을 여러 번 목격했다.
중국에서 오백세건강 지사를 열라고 수시로 꼬시고 있지만, 한번 발 들이면, 중국 공산당에 휘둘린다는 걸 알기에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있다.
이런 창수가 중국에 버닝스톤 공장을 세운다는 건,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리라.
[하긴 그렇습니다. 암브로시아 생산 공장도 중국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면 중국이 한국에서 버닝스톤을 수입할 가능성은 있는 건가요?]
[한국 정부와 맺은 공급 계약에 재판매 불가 조항이 있습니다. 오백세건강 한국 지사를 통하는 것은 가능해도, 한국 정부를 거치는 건 불가능합니다.]
[유통 통제가 엄격하군요. 중국을 생각하면, 한국이 행운을 잡은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백세건강 수뇌부에 한국인이 있다는 것이 다행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잡은 행운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정부의 지원과 국민의 성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창수는 한국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다. 암브로시아 동북아 판매 거점을 한국에 만들어 막대한 세금을 납부하고, 서민 지원과 의료 지원으로 수조 원을 기부했다.
하지만 창수의 선행은 언론의 무관심이라는 장막에 가려 대중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공헌에 걸맞은 대접은커녕 인지도도 미미한 상황.
그런데도 창수는 버닝스톤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해, 한국 경제 발전을 도우려 한다.
류정수는 경제 전문가로서 이 점을 지적하려 했다. 한국에 호의를 보여 준 창수와 오백세건강에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해야, 한국에 온 행운이 지속될 거라 생각한 것.
[소장님의 말씀을 들으니,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버닝스톤 대량 도입으로 한국 경제와 산업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여기에 오백세건강이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 저 말이 맞아! 그동안 우리가 호의를 권리로 착각하고 있던 거야!
- 생각해 보니 그러네. 오백세건강에 최소한 감사하는 마음은 가져야 해.
- 마음 정도로는 안 되지! 세제 혜택하고 훈장 정도는 줘야지!
- 그것도 방법이군. 어쨌든 도덕적이든, 실리적이든, 오백세건강을 우대하는 것이 사리에 맞는 일이야.
특별 대담을 지켜본 시청자들이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오백세건강을 잘나가는 외국계 기업이라고 여긴 시각에서, 한국에 도움을 주는 협력자로 인식을 바꾼 것이다.
물론, 이런 움직임은 경제 전문가와 파워 블로거 그리고 너튜버를 중심으로 태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 국민을 상대로 방송하는 특별 대담 프로그램이기에 파급력의 수준이 달랐다.
결과적으로 버닝스톤은 한국에서 오백세건강과 창수의 입지를 급격히 강화하는 역할을 하게 됐다.
3.
“뱌체슬라프 이사님! 이거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닙니까!?”
5월 9일 화요일 오전 10시, 오백세건강 한국 지사 사무실에 중국 부대사 바오샤오가 들이닥쳤다. 뱌체슬라프에게 강한 불만을 가진 듯한 언행을 보이며.
“다짜고짜 무슨 말씀인가요?”
“김창수 대표님과의 면담 건 말입니다! 대사님과 면담을 주선하겠다고 말했잖습니까!?”
“제가 언제 그런 말을 했나요? 그리고 목소리 좀 낮추시죠. 여기는 중국 대사관이 아니라, 오백세건강 사무실입니다.”
중국 외교관은 오만하다. 과거에도 인구 대국이라고 거들먹거리던 경향이 있었는데, 경제 발전이 이뤄지면서 본격적으로 타국을 깔보는 ‘전랑 외교’를 펴고 있다.
상대방 사정을 살피고 합리적인 대화로 문제를 풀어 가는 것이 아니라, 힘을 바탕으로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것이 전랑 외교.
바오샤오는 창수와 면담을 잡지 못하자, 전랑 외교 수법에 따라, 뱌체슬라프에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순순히 당하고 있을 뱌체슬라프가 아니다. 담담하지만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자중을 요구했다.
“흥! 지금 나와 싸우자는 건가요? 이런 식으로 나오면, 우리 중국으로 암브로시아 수출하는 것이 어렵게 될 겁니다.”
중국이 상대방을 굴복시키려고 사용하는 주무기가 경제다. 중국에 불리한 발언을 하거나, 중국의 어두운 면을 언급하는 정부와 기업에 중국 시장을 닫아 버리는 무역 보복을 즐겨 사용한다.
지금도 마찬가지, 뱌체슬라프가 뻣뻣하게 나오자, 바오샤오가 암브로시아 수입 금지를 언급했다.
“무언가 착각하고 계시는군요. 오백세건강은 중국에 암브로시아를 수출한 적이 없습니다.”
“오백세건강이 판매하는 암브로시아 전체 물량 중에서 21%가 중국에서 소비됩니다. 통계로 나와 있는 걸 우기는 건가요?”
“그건 오백세건강이 수출한 것이 아니라, 개인이 타국에서 구매해 중국으로 들여간 거죠.”
“하아! 정말 말이 안 통하는군요! 중국으로 들어오는 암브로시아 대부분이 오백세건강 한국 지부에서 판매한 겁니다! 중간상인이 구매한다고 나 몰라라 하면, 그것도 전면으로 막을 겁니다!”
중국 부대사가 짜증을 폭발했다. 뱌체슬라프가 의뭉스럽게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
바오샤오도 오백세건강이 공식적으로 중국에 암브로시아를 수출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4월에 한국을 거쳐 중국으로 유입한 암브로시아 물량만 7억 달러에 달한다. 통계 예측에 따르면, 2023년 중국으로 수입되는 암브로시아 총액이 100억 달러에 달한다.
비록 무역 주체가 중간상인이지만, 오백세건강에서 관리하지 않을 수 없는 물량이다.
실제로 대형 중간상인의 경우, 통관 업무를 전담하는 직원을 오백세건강 한국 지부에 파견하고 있다.
꼭지가 돈 바오샤오는 최후통첩으로 중간상인을 규제하겠다고 말했다.
“해 보시죠.”
“뭐… 뭐라고요!?”
“중간상인 막아 보세요. 할 수 있으면 말이죠.”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내가 수출규제를 못 할 거라고 보는 건가요!?”
“시쩌뚱 총서기님을 비롯해서 상무위원 모두 암브로시아 없이 식사를 못 한다고 하더군요.”
“그… 그거야…….”
“그리고 중간상인이 보통 중간상인인가요? 중국에서 힘깨나 쓰는 분들이 뒷배로 있더군요. 부대사님 직급이 공사참사관인데, 까마득하게 높은 분들 밥그릇 뺏을 수 있을까요?”
“…….”
절실한 사람이 을이 되는 것이 세상 이치. 이미 중국 상류층이 암브로시아에 깊이 빠져 있다. 오죽하면 청나라 말기에 유행한 아편보다 중독성이 더하다는 말이 나올까?
암브로시아는 일개 공사참사관 따위가 손댈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게다가 중국 권부 실권자들이 암브로시아 수입을 주도하고 있다.
대형 중간상인의 실체는 실권자의 비자금 관리인이다. 그리고 이 관리인들은 뱌체슬라프의 눈치를 보고 있고, 심지어 떠받들고 있다. 뱌체슬라프 재량으로 우수 고객에게 10%까지 할인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뱌체슬라프에게 바오샤오는 피라미에 불과하다.
“계속 헛걸음하는데 충고 하나 드리죠. 대표님과 면담하려면, 직급을 높이세요. 대사님 정도로는 안 됩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대사님은 중화인민공화국 특명 전권을 가진 분입니다.”
“에이. 그래 봐야, 부국장급이잖아요. 우리 대표님은 꼰대 기질이 있어서, 직급 무지하게 따지거든요. 최소 장관급 아니면 면담하기 어려울 겁니다. 대국 어쩌고 소국 어쩌고 생각하면, 평생 대표님과 면담 못 할 겁니다.”
“킄…….”
중국 외교가 가지는 고질병의 하나는 직급 가지고 장난친다는 것이다. 중국이 한국에 파견하는 대사는 부국장급으로, 동남아시아 국가와 유사한 수준이고, 북한보다 직급이 낮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며, 군사력 순의 6위에 랭크된 한국을 약소국 취급하는 거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한국이 아니라 중국에게 손해가 되는 어리석은 짓이다. 한국 외교부가 중국 대사와 실무적인 수준의 논의를 나누지만, 정치권과 재계에서 중국 대사를 패싱 하는 일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장관급을 대령하라는 뱌체슬라프의 요구는 중국 외교가 가지는 취약점을 정확히 가격한 말이다.
부대사 바오샤오는 목에 울컥하고 치미는 것을 간신히 참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