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38장. 버닝스톤의 위엄
1.
“오백세건강이 확보할 곳은 인도의 행정력과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지역이 될 겁니다. 대사관을 확장한 것이라 이해하면 될 겁니다.”
“흠…….”
차정웅의 얼굴이 핏기를 잃으며 노랗게 변했다. 창수가 말한 조건이 영토 할양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장관님, 한국에선 이런 조건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거라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대한민국 국민과 정부가 받아들이기 불가능한 조건입니다. 다른 방안이 없을까요?”
“오백세건강이 회사 차원에서 버닝스톤 생산 공장을 세우는 조건은 정해져 있습니다. 정부에서 이 조건에 상응하는 다른 무언가를 제시하면 되겠지만, 현재 한국 상황에서 그런 걸 찾기도 어려울 거라 봅니다.”
“대표님께서 대한민국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해 왔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염치없지만 이번에도 도움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생산 공장 설립은 제 독단으로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그 대신 한국에 버닝스톤이 원활히 공급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애국심과 인정 때문에 한국에 버닝스톤 공장을 세우면, 인도와 벌이는 담판이 깨질 수 있다.
게다가 호의를 권리로 아는 건 개인 간 인간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국가 대 국가, 국가 대 개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 정부가 구체적인 당근을 제시하기 전에 성급히 버닝스톤 공장을 건설하면, 창수가 두고두고 호구 노릇을 해야 할 거다.
“그러면 버닝스톤 공급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까요?”
“연간 3,000만 톤을 한국에 판매할 수 있습니다.”
“4,000만 톤으로 늘려 주실 수 없나요?”
판단이 빠르고 임기응변에 능하다. 차정웅은 버닝스톤 공장 설립이 자기가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라 판단하고, 버닝스톤 확보로 방향을 돌렸다.
“현재 한국에서 사용하는 발전용 석탄이 연간 8,000만 톤으로 알고 있습니다. 버닝스톤은 석탄보다 4배 높은 열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3,000만 톤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연간 사용하는 석탄이 총 1억 4,000만 톤입니다. 여기에 버닝스톤으로 대체할 분야가 나올 수 있습니다.”
“LNG 발전을 버닝스톤으로 돌리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버닝스톤 4,000만 톤을 공급해 주시면, 오백세건강 이사급 이상에게 외교관에 준하는 지위를 드리겠습니다.”
차정웅은 지금이 협상의 핵심 포인트라 여기고, 준비한 히든카드를 꺼냈다.
2023년 1분기를 기준으로 한국 전체 발전 용량에서 LNG가 차지하는 비율은 12%. 버닝스톤 1,000만 톤을 추가로 확보하면, LNG 발전 전체를 버닝스톤으로 대체할 수 있다.
한국이 연간 4,000만 톤을 공급받으면, 생산 공장을 세우지 못하더라도, 버닝스톤이 주는 달콤한 과실의 상당 부분을 누릴 수 있는 거다.
반면, 외교관에 준하는 대우는 창수와 같은 사업가에게 활용도가 높은 특혜다. 정부의 간섭을 배제하고 사업에 몰두할 수 있으니까.
“오백세건강이 보유한 건물과 토지는 어떤가요? 치외법권에 준하는 대우를 받을 수 있나요?”
“현재 오백세건강 지사 건물과 대표님 자택까지는 가능합니다. 다른 건물과 토지는 어렵습니다.”
“제가 거주하는 집이 비좁아 확장이나 이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1,000m²까지는 괜찮습니다. 그 이상은 국민 정서상 곤란합니다.”
“좋습니다. 한국에 연간 버닝스톤 4,000만 톤을 공급하겠습니다. 공급 가격은 톤당 700달러로 하고, 분기별로 에너지 시장 상황에 따라 협의해서 결정했으면 합니다.”
“그렇게 하시죠. 아주 합리적인 가격정책입니다.”
2023년 1분기 평균 석탄 가격은 톤당 210달러, 발열량만 보는 단순 계산으로 버닝스톤 톤당 가격이 840달러가 돼야 한다. 창수가 제시한 금액은 저렴한 가격.
석유와 비교하면 더 저렴하다. 1분기 평균 유가가 배럴당 60달러. 톤으로 환산하면 420달러, 발열량으로 계산하면, 버닝스톤 가격이 톤당 1,050달러가 돼야 한다.
연소 중에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인다는 특성을 제외하고도 순수한 발열량에서 버닝스톤이 석탄보다 20%, 석유보다 50% 저렴한 거다.
산업 자원부 장관 차정웅은 버닝스톤 공급 가격이 톤당 1,100달러만 돼도 다행이라 여겼다. 그런데 창수가 제시한 금액은 가장 좋은 예상보다 400달러가 저렴하다.
차정웅은 횡재했다는 기분으로 공급 가격 톤당 700달러에 합의했다.
* * *
5월 8일 월요일 오전, 창수와 차정웅이 버닝스톤 공급 계약을 정식으로 체결했다.
그리고 오후에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가 열려 버닝스톤 수입과 관련된 계약과 특권 부여에 대해 승인 절차가 마무리됐다.
말 그대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스피드. 창수가 제시한 조건이 워낙 좋기에, 일사천리로 계약이 마무리된 거다.
창수가 마음을 바꿔 계약이 틀어지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행정절차를 간소화한 것.
그리고 계약 내용이 언론에 공표됐다.
[속보! 오백세건강! 한국에 버닝스톤 4,000만 톤 공급!]
[버닝스톤 코인에 올라탄 한국 경제!]
[성큼 다가온 버닝스톤! 톤당 700달러에 잡았다!]
언론은 한국이 버닝스톤을 대량으로 수입한 최초의 국가라는 것에 집중했다. 비록 생산 국가는 아니지만, 석탄 대부분과 발전용 LNG를 대체해, 에너지 혁명 시대에 선도적으로 진입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그리고 버닝스톤 공급 가격이 톤당 700달러에 불과하다는 것도 화제가 됐다. 오백세건강은 해외에 근거지를 둔 기업이지만, 한국을 위해 크게 양보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 캬! 이 정도면 오백세건강이 국민 기업 아니냐? 나 같으면 1,400달러는 불렀을 거야.
- 맞아, 맞아. 주둥이로만 국민 기업이라고 나불거리고, 국가에 공헌을 안 하는 기업보다 100배는 국민 기업이지.
- 오백세건강에서 기부도 많이 한다고 하더군. 작년에는 2조 원 했고, 올해는 벌써 3조 원이 넘는대.
- 주식 상장이나 직원 모집 안 하나?
인터넷과 SNS의 반응은 언론보다 더 뜨거웠다. 에너지 관련 분야 전문가로 알려진 파워 블로거와 너튜버가 예측한 버닝스톤 가격이 톤당 1,300달러에서 1,500달러였기 때문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오백세건강이 제시한 버닝스톤 가격은 한국 경제를 살리는 목적을 가진 것이라 보이기 충분하다.
게다가 대규모 기부를 해 오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오백세건강의 인기와 위상이 급격히 높아졌다.
- 오백세건강 이사급에게 외교관 대우 해 준다고? 너무 우대하는 것 아니야?
- 외국 기업이 한국에 공헌하는 걸 생각하면, 그 정도 대우는 해 줘야지.
- 그래도 한국 기업하고 역차별이잖아.
- 한국 기업이 절반 가격으로 물건 팔았어? 같은 제품을 외국에 싸게 파는 바람에 직구매하기도 하잖아. 역차별을 말하기 전에 자기 처신을 살펴야지.
일부에서 오백세건강이 받는 특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외교관 대우가 오백세건강의 기업 활동에 도움이 되지만, 그로 인해 한국 기업이 불리한 입장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 이유.
나름 타당한 지적이었으나, 큰 호응을 받지 못했다. 역차별을 먼저 행한 것이 한국 기업이라는 시각이 주류였기 때문이다.
같은 기업이 만든 동일한 제품의 판매 가격이 외국에서 30% 이상 저렴한 것이 흔하다.
특히 대규모 할인 이벤트가 벌어지는 블랙 프라이데이가 되면, 미국에서 한국보다 50%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이 팔리는 경우도 있다.
공이 있으면 상을 주는 것이 타당하다. 인터넷과 SNS의 주류 목소리는 한국에 저렴한 가격으로 버닝스톤을 공급하는 오백세건강이 받는 특혜가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 * *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오늘은 에너지 전문가와 경제 전문가를 모시고 버닝스톤 수입의 의의를 주제로 논의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관악 대학 정기창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미래 경제 연구소장 류정수입니다.]
버닝스톤 대량 도입으로 한국 전체가 들썩이자, 방송국에서도 나섰다. 국영방송 K 본부가 특별방송을 편성한 것.
참가자는 관악 대학 에너지자원 공학과 학장 정기창과 미래 경제 연구소장 류정수, 둘 다 해당 분야에서 명망 높은 전문가다.
[먼저 정기창 학장님께 질문하겠습니다. 버닝스톤을 연간 4,000만 톤 수입한다고 하는데요. 우리나라 에너지 분야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 건가요?]
[버닝스톤 4,000만 톤은 석탄 1억 6,000만 톤과 같은 발열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발전용 석탄은 물론이고, 민수용 석탄도 모두 버닝스톤으로 대체할 것으로 보입니다.]
[대기 오염이 확실히 줄겠습니다. 하지만 국내 석탄 산업에 큰 파장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2022년 국내에서 채굴한 석탄은 100만 톤입니다. 전체 사용량 1억 4,000만 톤의 0.7%에 머뭅니다. 채굴 기업과 종사자들에게 큰 타격이 가겠지만, 국가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겁니다.]
[채굴 기업과 종사자들에게 보상이 필요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채굴 관련 분야에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석탄을 가공하고 유통하는 산업이 버닝스톤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버닝스톤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분야가 석탄 산업이다. 발열량이 4배에 달하고 연소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버닝스톤이 석탄 산업을 잠식할 건 명약관화.
진화라는 것이 그렇듯, 다방면에서 우월한 버닝스톤이 석탄을 대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석탄 산업 몰락이 끼칠 파장을 염두에 둬야 한다.
정기창은 한국에서 생산하는 석탄의 양이 적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
다만 중점을 둬야 할 것이, 몰락이 예견되는 채굴 기업 관련자들에 대한 보상이다. 그리고 석탄 유관 산업이 버닝스톤 유관 산업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서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류정수 소장님, 버닝스톤 대량 도입이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 압력이 줄어들면서, 기업 활동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입니다. 버닝스톤 4,000만 톤을 사용하면, 대한민국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67%를 재흡수할 수 있습니다.]
[2030년까지 줄여야 하는 탄소 배출량을 단번에 달성하는 건가요?]
[달성하고도 1억 탄소톤가량 여유가 있습니다. 이산화탄소 배출 때문에 생산을 중단하거나 축소해야 했던 제품들이 구제받을 수 있게 된 겁니다.]
유엔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해,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0년 배출량보다 55% 줄여야 한다.
한국에 할당된 목표는 3억 1,000만 탄소톤. 버닝스톤 4,000만 톤을 사용하면, 연간 탄소 배출량을 2억 1,000만 탄소톤으로 줄일 수 있다.
경제 전문가 류정수는 1억 탄소톤의 여유가 한국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말했다.
[버닝스톤이 가진 부가적인 효과가 대단하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런 특성 때문에 국제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예!? 버닝스톤이 국제분쟁을 유발한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