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129화 (129/200)

129화 37장. 깡그리 불태우다

7.

단장이 지시를 내리자, 선물(?)을 설치한 2특전대장이 무언가를 눌렀다.

- 꾹!

- 콰콰쾅! 쿠쿠쿵!

- 화르륵! 스와왁!

기화폭탄이 터지면서, 그랑다스 빌딩 외벽에 붙은 모든 유리창을 날려 버렸다. 이어서 화염이 쏟아지며, 건물 전체를 뒤엎어 버렸고 매캐한 휘발유 냄새가 사방으로 퍼졌다.

레드실드가 열 압력 탄두와 네이팜탄 조합을 사용해 빅벤 유럽 본부 건물을 불바다로 만든 것이다.

<어떤가? 이거야말로 완벽한 복수 아닌가?>

<그렇습니다! 단장님! 답답한 속이 확 뚫리는 것 같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원초적이지만, 사이다를 보장하는 응징이다. 레드실드 특전대 지휘부는 런던 본부가 당한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복수한 것에 기꺼워했다.

물론, 이건 창수의 치밀한 공작에 넘어간 착각이지만.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테러범을 격퇴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 전체를 파괴하다니요!?”

레드실드가 벌인 살육 작전을 처음부터 지켜본 아르노 브르동이 강하게 반발했다.

애초부터 테러를 저지하기 위해 나선 것이 아니라, 그랑다스 빌딩 안에 있던 사람들을 죽이려고 작정했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어이! 경관 나리! 무슨 개소리야!? 테러범 놈들이 자폭한 걸, 왜 우리보고 책임지라는 거지!? 우리가 만만한 호구로 보이는 거야!?”

“그… 그건 아니고…….”

“아무튼 우리는 할 일 다 했어! 소방서에 연락했으니까 불 끄러 올 거야! 그리고 기동대가 뒷정리하러 올 거니까, 그때까지 시민들 접근 막고, 현장 보존 하도록 해!”

“…….”

괜히 나섰다가 핀잔만 들었다. 무언가 이상하기는 한데 워낙 당당하게 나오니, 주눅이 들어 더 캐묻기가 겁난다.

무엇보다 웬만한 군대는 박살 낼 것 같은 강력한 무장이 두렵다. 괜히 자극했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상부에 이자들의 존재를 알리고 답을 기다리고 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불안한 상황.

- 삐익!

“시민 여러분, 접근하지 마십시오! 위험합니다!”

정체 모를 살인 집단의 행동이 거칠기 이를 데 없고, 말하는 싸가지도 없지만, 헛소리만 한 것은 아니다.

불타오르는 그랑다스 빌딩 인근으로 호기심 많은 행인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이들을 빨리 해산하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 거다.

건물 안에 가스가 생성돼 2차 폭발이 일어나면, 자칫 대규모 인명 피해가 나올 수 있다.

아르노 브르동은 어쩔 수 없이 행인 접근을 막고, 현장 보존에 힘써야 했다.

그러는 사이 레드실드 병력은 차량을 동원해 이동을 시작했다. 누구도 그들을 막지 않았다.

* * *

“가주님, 라데팡스 작전이 성공했습니다. 빅벤 유럽 본부를 완전히 파괴하고, 적병 대부분을 처단했습니다.”

“우리 손실은 어느 정도인가?”

“골렘 2기에 경미한 파손이 있습니다. 투입한 병력 중 사망자는 없고, 7명이 부상당했습니다.”

“좋아! 그 정도면 완벽한 승리라 할 수 있겠군!”

특전대가 그랑다스 빌딩을 불태웠다는 소식이 곧바로 프랑크푸르트 레드실드 총본부로 보고됐다.

반응은 대만족. 가주 베르너 레드실드는 칭찬과 만족에 인색한 사람이다. 그가 ‘완벽한 승리’라고 말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며, 동시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는 걸 나타낸다.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대원들에게 포상하는 것이 어떨까요?”

집사장 프란츠 슈미트가 좋은 분위기를 알아보고 보상을 조언했다. 상벌이 엄격해야 가주의 영이 제대로 서기 때문이다.

실패한 자에게 벌이 아니라 상을 주면, 가주를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우습게 여길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성공을 거둔 자에게 상을 주지 않으면, 불만이 쌓여 가주에 대한 충성심이 대폭 떨어질 거다.

“당연히 해야지. 모든 대원에게 10개월 치 급료를 보너스로 지급하도록.”

“정말 훌륭한 보상입니다. 대원들 사기가 올라갈 겁니다. 그리고 가주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질 겁니다.”

“암, 그래야지.”

구두쇠로 소문난 베르너 레드실드가 무려 월급의 10배를 보상으로 지급하라고 말했다.

복수의 쾌감이 이토록 강한 것일까?

보너스가 잘해야 월급 3개월 치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프란츠 슈미트는, 예상을 능가하는 금액에 살짝 놀라면서도, 찬사를 잊지 않았다. 그래야 가주가 돈 쓴 보람이 있을 거니까.

“그런데 가주님, 조금 우려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응? 뭔가 걸리는 게 있어?”

“해가 지기 전에 작전을 펼친 것은 무리 아니었을까요? 프랑스 정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레드실드가 대낮에 그랑다스 빌딩을 공격하고 파괴한 건 무리수다. 프랑스 경찰과 군이 개입하는 걸 막기 위해, 레드실드가 보유한 인적 네트워크를 상당 부분 소비했다.

만약 야간에 작전을 진행했다면, 부담이 덜했을 거다. 그런데도 주간에 강행한 것은 가주 베르너 레드실드가 공격 시간을 직접 지정했기 때문이다.

프란츠 슈미트는 승리의 기쁨을 접고 후속 처리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있지 않으면 어쩔 건데? 마카롱이 이걸 공론화할 수 있을 것 같아?”

마카롱이 19세 모델과 만나고 있다는 건 레드실드도 파악하고 있다. 고인물 사이에 널리 알려진 정보를 레드실드가 모를 리 없다.

게다가 다른 고인물이 알지 못하는 약점을 2개나 더 확보하고 있다. 레드실드 가주는 프랑스 정부가 이번 작전을 문제 삼지 못할 거라 확신했다.

“마카롱이 직접은 아니더라도 EU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까요?”

“EU도 마찬가지야. 감히 우리 작전을 입방아에 올리는 자는 없을 거야. 만약 그런 자가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매장해야겠지.”

“그렇게 되면 우리가 쌓아 놓은 인적 네트워크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프란츠, 너는 다 좋은데 시야가 좁은 게 흠이야.”

“예!? 무슨 말씀이신지…….”

“드루이드 놈들이 런던 본부를 파괴하면서, 우리가 만든 인적 네트워크는 이미 무너진 거야. 내가 대놓고 낮에 작전을 벌인 건 드루이드 놈들뿐만 아니라, 우리를 배신하려는 놈들에게 공개 경고를 보낸 거다. 만약 내 경고를 못 알아먹고, 경거망동하는 놈이 있다면, 드루이드 놈들과 똑같은 운명이 될 테지.”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가주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역시, 지도자는 지도자다. 가주는 레드실드가 가진 힘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레드실드에 협력하는 자들은 대부분 호감과 애정이 아니라, 힘에 굴복한 거다. 그리고 레드실드가 가진 힘은 런던 본부가 파괴되면서 급속히 약화됐다.

이걸 단숨에 만회하는 방법은 레드실드가 압도적으로 강한 힘을 가졌다는 걸 공개적으로 알리는 것.

집사장 프란츠 슈미트는 대낮에 그랑다스 빌딩을 공격한 것에 단순한 보복을 넘어 고도의 노림수가 있음을 알게 됐다.

“말귀를 알아먹었다니 다행이군. 그러면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도 알겠지?”

“흔들리는 네트워크를 재점검하는 겁니다. 만약 배반의 낌새가 보이면, 신속히 제거해야 합니다.”

“맞아, 바로 그거야. 드루이드 놈들과 전면전을 벌이기 전에, 점검을 마쳐야 해.”

빅벤이 유럽 본부를 잃으면서 큰 타격을 받았으나, 로마 시대부터 이어져 온 조직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리 없다.

빅벤과 긴 싸움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중점을 둬야 할 것이 내부 단속이다. 베르너 레드실드는 확고한 전의를 보이며 미래를 대비했다.

8.

“만나서 반갑습니다, 장관님.”

“피곤하신데도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표님.”

2023년 5월 6일, 한국으로 돌아온 창수는 산업 자원부 장관 차정웅과 면담했다.

빅벤과 레드실드 거점을 박살 낸 데 이어, 이라크 야심가 두르감 아트만을 처단하는 강행군을 마치고, 미국을 경유해 귀국했기에 매우 피곤했다.

차정웅은 창수가 시차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라 생각하며, 면담이 연기되거나 취소되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피로는 경제인의 숙명이죠. 그런데 괜찮으신 건가요? 토요일에 업무를 보면, 집에서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요.”

“사실 집사람과 아이들이 성화입니다. 어린이날 연휴 끼고 여행 갈 계획이 펑크 났으니까요. 그래도 공무원으로서 나랏일이 우선이죠.”

“자녀들이 아직 분가를 안 했나 보군요.”

“큰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고, 작은아이가 3학년입니다. 늘그막에 결혼에 아이들이 어립니다.”

“이런, 이런. 제가 본의 아니게 빌런이 된 거군요.”

“하하하. 아닙니다. 면담 요청을 받아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산자부 차관도 그렇고, 장관도 그렇고 사리 분별 할 줄 아는 사람들이군.’

산업 자원부 장관 차정웅은 행정 고시를 거친 엘리트 공무원이다. 올해 나이 57세로 장관 평균 나이 62세보다 5살 어린 소장파로 분류된다.

45세에 11살 어린 부인과 결혼해 슬하에 12살 딸과 10살 아들이 있다. 5월 5일 금요일 어린이날부터 5월 7일 일요일까지 이어지는 황금연휴를 가족과 보내기 위해 연초부터 준비해 온 상황.

하지만 창수를 만나기 위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과의 약속을 어겨야 했다. 짜증이 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

그런데도 차정웅은 창수에게 싫은 기색을 보이지 않고, 정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건 창수를 귀빈으로 여기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면담을 생산성 있게 빨리 끝내는 것이 장관님께 도움이 될 거라 봅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미 짐작하고 계시겠지만, 버닝스톤 생산 공장 유치 때문에 찾아뵌 겁니다.”

창수가 운을 띄우자,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온다. 협상 능력이 만만치 않다.

“한국에 버닝스톤을 공급하는 건 제 선에서 처리할 수 있지만, 생산 공장 설립은 쉽지 않습니다. 텍사스주, 앨버트주 그리고 본사와 협의해야 합니다.”

“그 점 충분히 숙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도에도 생산 공장이 들어선다는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정보가 빠르시네요.”

“버닝스톤은 국가 산업 체제를 뒤바꿀 수 있는 슈퍼 아이템입니다. 동향 파악을 소홀히 한다면 주무 장관으로서 자격 미달일 겁니다.”

차정웅은 김근홍이 인도와 협상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한국 정부가 보유한 첩보망과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통해서 알아낸 정보.

차정웅이 창수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버닝스톤을 언급한 것은 다급한 마음을 반영한 것이다.

“인도에 버닝스톤 생산 공장이 설립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공짜가 아닙니다. 오백세건강과 인도 정부가 무엇을 놓고 협상 중인지 아시나요?”

“구체적인 내용은 알지 못합니다.”

“인도에 버닝스톤 생산 공장 2개를 세우고, 반대급부로 서울보다 넓은 지역의 운영권을 받으려 합니다.”

“에너지 특구를 만드는 건가요? 생각보다 면적이 넓군요.”

텍사스와 앨버타는 각각 4km²를 에너지 특구로 지정하고 오백세건강에 50년간 임대했다. 인도에 에너지 특구를 만들고 운영권을 가지는 건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면적이 너무 넓다. 텍사스와 앨버타보다 최소 150배 큰 넓이를 임대로 내준다는 건, 한국 국민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

“에너지 특구가 아닙니다. 독립 지역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겁니다.”

“예!? 독립 지역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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