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37장. 깡그리 불태우다
5.
[기회가 왔으면 잡아야죠. 공격 팀 체력은 걱정하지 마세요. 아직 쌩쌩합니다. 부상자도 없고요.]
자신과 김근홍을 노렸던 빅벤을 역으로 기습하고, 덤으로 레드실드를 공격했다. 양측 모두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고, 상잔의 씨앗을 뿌렸기에 어느 정도 분풀이가 된 상황.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사달을 만든 원흉이 테러를 사주한 산유국들이라는 점이다.
단시간에 다수의 적을 응징하는 것이 무리이기에 자제하고 있으나, 유리한 공격 타이밍을 잡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이 바로 그때. 창수는 정보 분석에 집중하려던 생각을 바꾸고 다시 응징으로 방향을 바꿨다.
[커커커. 엄청난 인간 병기를 모아 놨구만. 내 생전에 빅벤과 레드실드 놈들을 찜 쪄 먹는 병력이 있을 줄 몰랐다.]
[절대 강자는 없는 거죠. 선배님 병력도 자질이 우수하니, 좋은 장비를 투입하고 훈련을 강화하면, 충분히 고인물 놈들을 상대할 수 있을 겁니다. 그건 그렇고 누구를 공격해야 좋을까요? 본보기로 하나를 처단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테러를 가장 강하게 밀어붙인 곳이 이라크야. 응징 효과가 가장 좋은 곳은 사우디고.]
[그러면 이라크를 쳐야겠네요.]
[좋은 선택이야. 이라크에서도 강경파를 주도하는 놈이 두르감 아트만 석유 장관이야. 그 쓰레기를 제거하면, 다른 물주 놈들도 정신 차릴 거야.]
두르감 아트만은 군사령관 출신으로 매우 호전적인 성격이다. 그가 석유 장관에 오른 것은 그의 강한 추진력과 군부 추종 세력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총리를 비롯해 기존 정치인을 무능력자라고 비난한 두르감 아트만은, 석유 판매로 자금을 만들고 가시적인 경제 성장을 이룬 뒤, 차기 총리에 도전할 계획이다.
버닝스톤의 등장은 두르감 아트만이 권좌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제거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백세건강과 버닝스톤을 타격하려는 흉심을 품고 있다.
걸림돌은 버닝스톤이 미국과 캐나다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는 점. 두르감 아트만이 아무리 노려 봐도 손댈 수 없는 곳에 있는 거다.
이라크 야심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유국 석유 장관들을 부추겼다. 그리고 고인물 중에서 가장 호전적인 빅벤에 사주해 창수와 김근홍을 죽이려 했다.
김근홍은 두르감 아트만을 처단하면, 산유국들의 폭주를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창수는 김근홍의 생각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며, 이라크로 목적지를 변경했다.
6.
5월 3일 오후 4시, 창수가 이라크로 날아갈 때, 프랑스 라데팡스에 중무장한 병력 200명이 전투준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 삐익!
“당신들 뭡니까? 오늘 영화 촬영한다는 통보는 없었습니다.”
라데팡스는 14km² 면적에 인구 25,000명, 유동 인구 25만 명을 가진 곳이다. 비즈니스 구역에서 볼 수 없는 중무장 병력이 등장하자 구경꾼들이 여럿 모였고, 뒤이어 경관 한 명이 다가왔다.
경관은 병력 200명이 영화 촬영을 위해 동원한 엑스트라고 여기며, 허가받지 않은 행위를 저지하려 했다.
“영화 촬영? 당신 지금 잠꼬대하는 거야?”
“자… 잠꼬대라니?”
“지금 그랑다스 빌딩에 테러범들이 잠입했다는 첩보를 받고, 진압 작전을 시작할 참이야. 영화 같은 덜떨어진 소리 하지 말고, 시민들 접근하지 못하도록 외곽 통제나 하고 있어.”
“하지만 그런 통보는 받지…….”
“어허! 이거 말귀가 안 통하는 작자로구만! 비밀 작전을 어디다 통보한다는 거야!?”
“그래도 치안을 책임진 경찰에 통보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테러범들이 도주하면, 당신네 경찰이 책임질 거야?”
“그거야…….”
“거치적거리니까 한쪽으로 비켜서. 아니면 테러범들하고 합류해서 그냥 뒈지든가?”
“…….”
무언가 이상하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금융가에 테러범이 무엇을 노리고 잠입했다는 건가?
영화나 드라마일 가능성이 큰데, 전문적인 촬영 장비가 보이지 않는다. 정말 그랑다스 빌딩에 테러범이 있는 걸까?
경관 아르노 브르동은 테러 진압 부대를 자처하는 무리에 의심을 품으면서도,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상부에 보고하고, 저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지켜볼 요량이다. 만약 영화 촬영이라면, 공권력의 뜨거운 맛을 보여 줄 테다.
- 위이잉!
상부에 보고했지만, 거기도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다며, 아르노 브르동에게 지켜보라고 말했다.
보고하는 사이 무장 병력이 그랑다스 빌딩을 완전히 둘러쌌다. 그리고 차륜형 장갑차 2대가 빌딩 앞뒤로 접근했다.
- 투투투! 투투투!
게다가 그랑다스 빌딩 상공을 공격 헬기 3대가 선회하고 있다. 영화라면, 제대로 준비한 대작이 분명하다.
- 탕! 탕! 탕!
- 팅! 팅! 팅!
전투 장면도 화끈하다. 다가오는 장갑차를 향해 건물 안에서 총탄을 발사했고, 날아온 총탄이 장갑차에 맞고 튕겨 나갔다. 실전을 방불케 하는 연출이다.
- 척!
- 타다닥!
건물 정문에 도착한 장갑차 뒷문이 열리면서 무장 병력 10명이 신속하게 뛰어나왔다. 그리고 전투병 한 명이 로켓포를 어깨에 메고 발사 준비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연출을 어떻게 할까?
아르노 브르동은 역동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움직임이 어떻게 표현될지 잔뜩 기대를 가졌다.
- 팡!
- 쓩!
기대 이상이다. 발사된 로켓포탄이 건물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마치 진짜처럼.
- 콰쾅!
“우아악!”
건물을 가격한 로켓탄이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내부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고, 일부 인원은 죽은 듯 보였다.
- 투투투!
- 탕! 탕! 탕!
로켓탄에 의해 그랑다스 빌딩 방어선에 구멍이 뚫리자, 집중 공격이 시작됐다. 장갑차에 장착된 기관총이 총탄을 토해 냈고, 장갑차에서 하차한 병력이 사격을 시작했다.
이에 더해, 건물을 포위했던 병력이 일제히 사격하며 달려갔다.
- 드르륵! 드르륵!
- 와창창!
그랑다스 빌딩 상공을 선회하던 공격 헬기 3대도 일제히 30mm 기관포를 발사했다. 포탄에 가격당한 창문이 단번에 깨지고, 건물 내부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경관 아르노 브르동의 눈이 커지고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그렇다. 이건 영화 촬영이 아니라 실전이다. 대테러 부대가 테러범을 공격하고 있는 거다.
경악한 아르노 브르동은 아득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고, 목격한 내용을 상부에 보고했다.
* * *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포로는 필요 없다!”
건물 내부로 진입한 병력에 살벌한 명령이 떨어졌다. 항복을 받아 주지 말고 모두 사살하라는 것. 아무리 테러범이라고 해도 인권을 무시한 무도한 명령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휘관의 부적절한 지시를 받은 병력은 누구 하나 반발하지 않고, 충실하게 따랐다.
“크아악!”
“우아악!”
자칭 테러 진압 부대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건물에 진입한 병력이 무기를 들고 저항하는 테러범뿐만 아니라, 무방비 상태인 민간인마저 살해했다.
무고한 시민들이 살려 달라고 애원했지만, 돌아온 답은 총탄과 죽음뿐이었다. 이쯤 되면 누가 테러범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상태.
- 쿠오오!
“드루이드 놈이 소환수를 풀었다! 모두 조심해!”
아르노 브르동의 판단이 다시 한번 틀렸다. 공격당한 것은 테러범이 아니고, 빅벤 유럽 본부 병력이었다. 그리고 자칭 테러 진압 부대의 정체는 레드실드 총본부에서 파견한 특전대였다.
레드실드가 살육을 목적으로 공격한다는 걸 알아차린 빅벤 소속 드루이드가 코디악 베어를 소환했다.
야생 곰은 인간이 상대하기 어려운 공격력을 가진 짐승이다. 더구나 소환수는 능력이 월등히 향상된다.
특전대가 중무장한 병력이라 해도 허투루 상대할 수 없는 강적.
- 탕! 탕! 탕!
- 팍! 팍! 팍!
레드실드 병력이 코디악 베어를 향해 아낌없이 총탄을 쏟아부었으나, 쓰러트리지 못했다. 총탄을 맞으면서도 꿋꿋이 버티며 다가온 거다.
- 벌떡!
- 크와아!
코디악 베어가 뒷발로 일어선 뒤, 포효를 지르며 커다란 앞발을 레드실드 병력을 향해 휘둘렀다.
특전대 병력이 우수한 방호복을 착용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적지 않은 피해를 볼 것이 확실한 상황.
- 척! 척! 척!
하지만 히든카드는 빅벤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레드실드 역시, 히든카드를 꺼내 들었다.
크레이 골렘.
장갑차가 확보한 지역으로 다가온 화물차 트레일러에 3m 높이의 관들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 그 관들 속에 레드실드의 진정한 무력이라 할 수 있는 골렘이 들어 있었다.
등장할 상황을 기다리던 골렘은 드루이드가 소환수를 사용하자, 즉시 전투에 투입됐다.
- 슈욱!
- 쾅!
코디악 베어가 휘두른 앞발을 골렘이 막자, 요란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 다다닥! 후다닥!
소환수에게 공격당하기 직전 골렘에게 구원받은 병력은 자신들이 낄 전투가 아니라 여기고,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 쿠오오!
- 캉!
- 휘청!
강화된 코디악 베어와 클레이 골렘의 힘은 비슷했다. 정면충돌에 누가 우위를 가졌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하게 대치했다.
단 4방으로 코디악 베어를 역소환시킨 청강석 골렘과 비교해 큰 차이를 보인다.
- 슈욱! 슈욱! 슈욱!
- 쾅! 쾅! 쾅!
- 키야악!
그렇다고 클레이 골렘이 쓸모없는 건 아니다. 단독으로 적을 제압할 수 없다는 걸 아는 듯, 골렘 3대가 동시에 소환수를 공격했다.
다구리에 장사 없다. 힘이 비등한 골렘 3대로부터 몰매를 맞은 코디악 베어는 비명을 지르며 방어에 집중했다.
그러나 승기를 잡은 골렘에게 헛된 몸부림에 불과했다. 10분간 무수히 많은 펀치에 가격당한 곰은 결국 생명력을 잃고 역소환당했다.
“1특전대는 드루이드 잔당을 처단하라! 2특전대는 확보한 지역에 선물을 설치하라!”
코디악 베어는 빅벤이 가진 주력 무기다. 레드실드에서도 경계하는 강적. 다행히 레드실드의 전투력이 집중된 곳에 등장했기에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지휘관은 전투의 승패가 완전히 갈렸다고 판단한 뒤, 다음 단계 공략에 들어갔다.
* * *
<모두 건물 밖으로 대피하라! 빨리 움직여!>
<단장님! 살아남은 적들이 있습니다! 시간을 좀 더 주십시오!>
그랑다스 빌딩은 지상 30층, 지하 5층 구조로 만들어졌다. 레드실드 병력 개개인이 우수하다고 하지만, 방어에 유리한 지점을 잡고 작정하고 수비에 집중하면, 단시간에 빅벤 병력을 처단하기 어렵다.
전투의 현장 지휘를 전담한 1특전대장은 시간을 들여서라도 확실하게 빅벤 병력을 몰살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번 공격은 런던 본부를 공격한 적에게 앙갚음하는 것이다. 이대로 물러나면 제대로 분풀이했다고 할 수 없기에, 1특전대장의 주장은 나름 타당하다.
<어차피 전부 날려 버릴 거니까! 상관없다!>
<공격 헬기 3대로 여기를 전부 파괴하기 어렵습니다!>
<공격 헬기가 아니야! 2특전대가 설치한 선물이 더러운 드루이드 놈들 서식지를 끝장낼 거다! 그러니 여러 생각 말고 내 명령에 따라!>
<알겠습니다! 단장님!>
1특전대장은 선물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했다. 정보가 새 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빅벤과 직접 충돌하는 병력에 비밀을 유지한 것.
조금 기분이 상하기는 하지만, 전술적으로 옳은 일이기에, 1특전대장은 단장의 지시를 충실히 따랐다.
- 타다닥!
- 후다닥!
<모두 건물에서 빠져나왔나?>
<1특전대 전원 철수 완료!>
<2특전대 모두 빠져나왔습니다!>
<좋아! 악랄한 드루이드 놈들을 날려 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