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127화 (127/200)

127화 37장. 깡그리 불태우다

3.

- 꾹!

- 쾅! 콰쾅!

- 화르르!

창수가 버튼을 누르자, 레드실드 런던 본부 건물 곳곳에서 폭탄이 터지고 불꽃이 타올랐다.

“크아악!”

“우아악!”

불길에 휩싸인 전투병들이 비명을 질렀다. 일부는 근처에 배치된 소화기를 사용해 몸에 붙은 불을 껐으나, 상당수가 대응할 타이밍을 놓치고 죽어 갔다.

마치 판타지 영화와 게임에서 나오는 불지옥과 유사한 광경이 펼쳐진 것이다.

“소화기 가지고 와! 어서!”

“보통 불이 아닙니다! 휘발유 냄새가 나는 것을 보아 네이팜탄을 사용한 것이 분명합니다.”

“지옥에 떨어질 드루이드 놈들! 이런 악랄한 짓을 하다니!”

레드실드 건물은 뛰어난 소방시설을 갖췄다. 지금도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며 물을 뿌리고 있다. 하지만 소화기로 잡을 수 없는 불이다.

네이팜탄은 도쿄 대공습과 월남전에서 미군이 적군을 섬멸하기 위해 사용한 소이탄이다. 나프텐산과 팔미트산을 섞고 거기에 휘발유를 넣어 만든다.

네이팜탄은 점토처럼 끈끈한 형태를 가져 휘발유가 흘러내리지 않고 지속해서 탈 수 있게 한다. 불을 피할 엄폐물이 없는 상대에게 치명적인 무기.

집무실 내부에서 화를 피한 경비실장 웨이론 크로포드는 빅벤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날뛰던 늑대 3마리를 간신히 처치해 역소환시켰다. 그리고 늑대를 소환한 침입자를 찾으려 건물 출입구를 봉쇄한 뒤, 내부를 샅샅이 수색하는 과정에서 폭발과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레드실드 런던 본부 병력 대다수가 화마에 휩싸인 참사가 발생했다. 경비실장은 치밀하게 계획된 공격이 빅벤의 짓이라 단정했다. 그러나 이건 완전히 잘못된 판단.

‘기화폭탄 조합 성능이 확실하군.’

레드실드 런던 본부에 폭발물을 설치한 건 창수였다. 창수는 집무실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사각지대에 매복한 병력을 제거하고, 그 인근에 열 압력탄과 소형 네이팜탄을 설치했다.

한 종류만 터져도 피해가 막심한 데, 두 종류가 시너지 효과를 보이니 오죽할까?

건물 500m 밖에서 불구경하고 있던 창수는 예상보다 효과가 좋은 조합에 고개를 끄덕였다.

설치한 폭탄을 들키지 않기 위해, 지름 1m 넓이를 투명화하는 마법물품 20개를 사용했지만, 충분한 성과를 올렸으니 대만족. 비용 200억 원은 창수가 거둔 성과에 비하면 미미한 소액에 불과하다.

“실장님! 본부장님을 모시고 탈출하셔야 합니다!”

“옥상에 플라잉 카를 대기시켜! 그리고 훈련받은 대로 전원 탈출한다!”

“알겠습니다! 실장님!”

웨이론 크로포드는 이 불이 쉽게 잡히지 않을 거라는 부관의 판단을 받아들였다. 지금 중요한 건 화마를 피하는 것.

빌딩 옥상에 비상용 드론이 3대 있다. 4인승이기에 현재 집무실에서 치료받고 있는 본부장 제이슨 레드실드와 의료진을 대동하고 탈출할 수 있다.

방화로 레드실드 런던 본부를 통째로 날려 버리려 획책하는 빅벤의 수작이 가증스럽지만, 살아야 복수도 할 수 있다.

웨이론 크로포드는 건물을 포기하고 탈출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적이지만 대단하군. 다음번에 상대할 때는 준비를 더 해야겠어.’

투명한 상태에서 고성능 망원경으로 레드실드 병력의 움직임을 지켜본 창수는 예상보다 신속하게 대응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오늘 창수가 손쉬운 대승을 거둔 것은 정보가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기습했기에 가능했다.

상대에게 투명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레드실드가 대책을 마련할 건 자명한 일.

게다가 레드실드 병력이 착용한 방어 장비는 미래 보병 체계를 80% 이상 갖춘 것이다. 머리 부분을 포함해 일부만 개선하면, 총탄 방어는 물론이고, 화염에 대한 방어력도 급속히 높일 수 있다.

레드실드 병력이 준비 태세를 갖춘 상태에서 같은 공략 방법을 사용하면, 지금 같은 대승을 다시 거두기 어려울 거다.

물론, 골렘을 사용하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빅벤과 레드실드를 상잔시켜야 하기에 당분간 사용하기 어렵다.

‘일단 시간을 벌었다는 데 만족하자. 그리고 정보 분석에 집중해야 해.’

창수는 빅벤과 레드실드에 치명타를 가했고, 두 고인물이 서로에게 원한을 품고 전쟁을 벌일 토대도 마련했다. 고인물들이 상당 기간 오백세건강에 위해를 가하기 어려울 거다.

또한 창수는 사인드파고 센터장 휴 개리건과 레드실드 런던 본부장 제이슨 레드실드로부터 정보를 다량 뽑아냈다.

이걸 바탕으로 비밀금고에서 탈취한 서류와 USB를 분석하면, 보다 효과적인 공략 방법을 만들 수 있으리라.

창수는 지금 단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며 런던을 빠져나갔다.

4.

“런던 본부가 불타고, 제이슨이 중상을 입었다고!? 어떻게 된 일이야!?”

시티에서 발생한 사건이 곧바로 레드실드 총본부로 보고됐다. 가주 베르너 레드실드는 런던 본부가 공격당해 불타고 있다는 보고에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총본부 못지않은 방어 능력을 갖춘 런던 본부가 당했다면, 어디도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은신술을 사용한 드루이드가 집무실에 침입해 제이슨 본부장을 제압하고, 늑대를 소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열 압력탄과 소이탄을 동시에 터트린 것 같습니다.”

“런던 본부가 은신술에 뚫렸다고? 제이슨이 사틴을 사용하지 않은 건가?”

집사장 프란츠 슈미트의 설명을 들은 베르너 레드실드의 목소리가 격앙에서 어리둥절함으로 바뀌었다.

드루이드는 자연 친화를 바탕으로 투명 상태를 만든다. 사틴은 그걸 감지하는 장치로, 빅벤의 암살에 시달리던 레드실드가 각고의 노력 끝에 개발한 탐색 장비다.

런던 본부가 보유한 사틴은 모두 20대. 설령 몇 대가 오작동을 일으킨다고 해도, 드루이드 은신술을 감지하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런던 본부가 은신술에 당하려면, 사틴 대부분이 작동을 안 한 상태여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그 책임은 런던 본부장 제이슨 레드실드에게 있다.

“아닙니다. 사틴은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었습니다.”

“뭐라고!? 그러면 드루이드 놈들이 사틴의 감시를 회피하는 은신술을 개발했다는 거야!?”

“현재로서는 그렇게 봐야 합니다.”

“흠……. 보통 일이 아니군. 프란츠, 라우더 개발은 어느 정도 진척됐지?”

라우더는 진동 감지기를 발전시켜 감도와 감시 범위를 향상한 레이더의 일종. 사틴을 사용할 수 없을 때 보조할 탐색 장비로 개발 중이다.

사틴이 무력화된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가주 베르너 레드실드가 라우더에 관심을 가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

게다가 프란츠 슈미트가 라우더 개발을 제안하고 주도하고 있기에, 적임자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

“현재 완성도 90% 수준입니다.”

“당장 사용할 수 없는 건가?”

“사용은 가능합니다. 아직 미완성이지만, 기존 진동 감지기보다 400% 이상 성능이 좋습니다. 그러나 사틴을 대체하기 어려울 겁니다.”

“사틴과 비교해 성능이 어느 정도지?”

“30% 수준입니다.”

“어쩔 수 없지. 아쉽지만 그 정도라도 만족해야지. 테스트용으로 만든 것 모두 실전 배치 하고, 추가 생산을 시작해.”

“알겠습니다.”

30%면 실전에 투입하기 애매한 수준이다. 버리자니 아깝고, 믿고 쓰기에 구멍이 너무 크다.

그러나 런던 본부가 은신술을 감지하지 못해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같은 일이 총본부를 비롯해 다른 지부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베르너 레드실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한 뒤, 라우더를 즉각 투입하라고 지시했다.

프란츠 슈미트는 이 명령이 라우더 개발을 방해할 수 있다는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도 가주에게 반대 의견을 내놓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인 건, 다른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흉악한 드루이드 놈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가능한 한 빨리 보복해야 합니다. 우리의 응징이 늦어지면, 다른 세력에게 얕보일 수 있습니다.”

“맞는 말이야. 우리가 잠자코 있으면, 드루이드 놈들에게 패배한 것으로 여겨질 거야. 그러면 승냥이 놈들이 달려들겠지.”

고인물 세계에서 레드실드가 정상에 서 있는 건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레드실드가 쇠락하기를 기다리는 세력이 다수 존재한다.

만약, 레드실드가 빅벤을 즉각 공격하지 못하면, 합동 공격 하는 승냥이 떼에게 갈가리 찢겨 공중분해당할 수 있다.

런던에서 심각한 피해를 입었지만, 내부적으로 추스르기보다는 무리해서라도 서둘러 반격해야 하는 상황.

“라데팡스에 제1특전대를 보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라데팡스는 프랑스의 수도 파리 중심지에서 10시 방향으로 8km 떨어져 있다. 1958년부터 개발을 시작해 1990년대 조성을 마친 최첨단 비즈니스 지구.

브렉시트 이후 유럽 금융 허브로 위상을 굳히며, 프랑스의 맨해튼이라 불린다. 빅벤은 이곳에 30층 높이의 빌딩을 보유하고 있다.

빅벤이 유럽 본부로 사용하는 이 건물을 파괴하면, 가시적인 응징으로 보일 수 있다. 실질적인 가치에서 레드실드 런던 본부가 월등히 앞서지만.

“제1특전대로 드루이드 놈들 거점을 박살 낼 수 있을까?”

“가능하다고 봅니다.”

“가능하다 정도로 하면 안 돼. 누가 봐도 완벽하다고 인정할 정도로 철저하게 분쇄해야 해.”

“그렇다면, 병단을 추가해야 할까요?”

“제2특전대도 함께 보내. 골렘 20기면 드루이드 놈들이 어떤 짓을 해도 박살 낼 수 있으니까.”

“명. 받들겠습니다, 가주님.”

1조 달러가 넘는 재산을 보유한 레드실드는 무력도 강하다. 그리고 이 무력의 핵심이 골렘이다.

비록 몸체가 약한 클레이 골렘이지만,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괴력과 뛰어난 내구력을 가지고 있다.

가주 베르너 레드실드는 가문이 보유한 골렘 40기 중 절반을 투입해, 라데팡스에 있는 빅벤 거점을 말살하라고 지시했다.

방어용 골렘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전력을 모두 투입한 것. 그러나 이번에도 프란츠 슈미트는 가주의 명령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무리지만, 현재로서 최상의 선택이니까.

* * *

[창수야, 말레이시아에 잠입했던 빅벤 병력이 모두 철수했다.]

[잘됐군요. 당분간 시간을 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5월 3일 오전 10시, 런던 히스로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던 창수에게 김근홍이 비밀 메신저로 연락해 왔다.

내용은 5월 4일 김근홍의 저택을 공격하려 했던 빅벤 타격대가 영국으로 되돌아갔다는 것.

나름대로 대비하고 있었지만, 빅벤의 공격을 방어하는 데 버거움을 느끼던 김근홍에게 기쁜 소식임이 분명하다.

[다 네 덕분이지. 지금 고인물들이 난리 났어.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외부에 파견된 병력을 전부 불러들이고 있어.]

[피아가 구분 안 되니, 당황스러울 겁니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우리를 치려고 했던 물주 놈들 참교육하는 게 좋지 않을까?]

[물주라면 테러를 사주한 자들을 말하는 건가요?]

[그래. 고인물 병력이 빠지면서, 물주 놈들 공략할 틈이 생겼어. 공격 팀이 피곤하겠지만, 이번 기회를 살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김근홍은 단순히 안부를 물으려 연락해 온 것이 아니다. 자신과 창수를 공격하라고 사주한 자들을 응징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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