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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126화 (126/200)

126화 37장. 깡그리 불태우다

1.

허공에서 박수 소리가 들리고 자신을 칭찬하는 말이 나올 때, 어떤 생각이 들까?

그것도 3중 4중으로 펼쳐진 삼엄한 경계를 뚫어야 도달할 수 있는 심처에서 들리는 소리라면?

런던 본부장 제이슨 레드실드는 신출귀몰한 강적이 집무실에 침투했다는 걸 즉각 알아차렸다.

“누구냐!? 감히 여기…….”

하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레드실드 가문의 일원답게 번개처럼 머리를 굴려 대처 방안을 생각해 냈다. 적을 비난하는 척하면서 주의를 분산한 뒤, 70cm 거리에 있는 비상 버튼을 누르는 것.

- 퓩!

“크악!”

그러나 뜻대로 할 수 없었다. 허공에서 날아온 총탄이 오른쪽 어깨를 가격했으니까.

“이거 좋은 말로 하려 했더니, 수작 부리고 자빠졌네?”

“으윽……. 누가 보낸 거냐? 빅벤이냐? 벤잘렝이냐?”

“닥쳐! 질문은 내가 한다! 내가 묻기 전에 한 마디라도 더 지껄이면, 네놈 대가리에 총알을 박아 줄 거다! 알겠냐!?”

“…….”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다. 세상 사람을 아랫것으로 여기며 오만하게 살아온 제이슨 레드실드지만, 상대방이 뿜어내는 기세에 오금을 저려야 했다.

“긴말 안 하겠다. 내 말을 따르면, 너는 살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 거다. 어느 쪽인지 선택해라.”

“정말 살려 주는 거요? 이용해 먹고 죽이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소?”

“그걸 구분하는 것이 네 안목이지. 레드실드의 차기 지도자를 노리는 자가 그 정도 능력도 없는 건가?”

죽음의 위기에 몰린 제이슨 레드실드는 초인적인 평정심을 보이며, 상대방의 제안에 나타난 허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상대는 제이슨 레드실드보다 한 수 위였다. 삶과 죽음을 구분하는 능력을 언급하며, 숙제를 던진 것.

“후……. 선택의 여지가 없군. 좋소. 당신을 믿어 보지.”

비굴해도 악착같이 살아남아야 한다. 꿈에 그리던 레드실드 가주 자리가 눈앞에 보이기 때문이다.

런던 본부장은 레드실드에서 서열 5위이지만, 차기 가주가 될 수 있는 1순위 직위다. 현재 가주가 2~3년 안에 은퇴하는 것이 유력한 상황에서 허무하게 죽을 수 없다.

“현명한 선택이군. 그러면 먼저 묻지. 비밀금고는 어디에 있나?”

“여기에 비밀금고는 없소. 이곳 자체가 비밀금고니까.”

“그래? 그러면 현금, 채권, 귀금속, 골동품은 어디에 있지?”

“책장들에 나뉘어 보관돼 있소.”

“모두 꺼내.”

“모두 말이오? 당신이 들고 갈 수 있는 분량이 아닐 거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니, 시키는 대로 하기나 해.”

- 척! 척! 척!

“후우! 후우!”

오른쪽 어깨에 박힌 총알이 까무러칠 것 같은 고통을 만들었다. 왼손으로 물품을 집어내는 것은 힘겹고, 시간이 지날수록 악력이 약해지고 있다. 호흡이 거칠어지며 입에서 단내가 난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허공 속에서 보이지 않는 눈이 노려보고 있으므로.

* * *

중노동 끝에 제이슨 레드실드는 간신히 작업을 마쳤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두 차례에 걸친 심문이 남아 있었다.

“여전히 레드실드 총본부가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거군. 런던이나 뉴욕으로 옮기지 않은 이유가 뭐지? 대도시로 근거지를 이동하는 것이 활동에 유리하지 않나?”

“프랑크푸르트도 광역 인구 600만 명에 이르는 대도시요. 그리고 우리 가문의 뿌리가 있는 곳이오. 다른 곳이 대체할 수 없소.”

“뿌리라……. 사업을 시작한 장소라는 상징성을 말하는 건가? 아니면 특별한 장소나 물건을 말하는 건가?”

“중심부에 신성한 정원이 있소.”

“그곳에 무엇이 있지?”

“그건 나도 모르오. 정원에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가주뿐이니까.”

심문은 충돌 없이 진행됐다. 허공의 목소리가 레드실드의 사업 현황과 병력 배치 그리고 근거지에 대해 물어도, 제이슨 레드실드는 순순히 답해 줬다.

“의외로 술술 털어놓는군. 그러면 마지막으로 질문하지. 이렇게 협조적으로 나오는 이유가 뭔가?”

“다른 이유는 없고……. 끄아악!”

그대로 잘 넘어가나 했는데, 막판에 사달이 났다. 제이슨 레드실드가 거짓말을 하려고 하자, 온몸에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시작된 것.

“쯔쯔쯔. 미련한 놈. 내가 경고했지. 거짓말하면 바로 티가 나고, 너만 손해라고.”

“거짓이 아니라……. 크아아악!”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했으나, 상대방은 노련했다. 제이슨 레드실드가 빠져나갈 수 없는 질문을 연속으로 던지며 궁지로 몬 것이다.

강한 정신력을 가졌으나, 연속된 고통을 버틸 순 없었다. 결국 레드실드 런던 본부장은 감추고 있던 모든 사실을 털어놔야 했다.

- 퍽!

“큭!”

정보를 뽑아낸 상대방은 제이슨 레드실드의 뒤통수를 가격해 기절시켰다. 죽이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킨 거다.

2.

- 슥! 슥! 슥!

‘양이 엄청나군. 마법자루를 업그레이드 안 했다면, 다 담기 어려웠을 거야.’

제이슨 레드실드를 쓰러트린 창수는 숙련된 솜씨로 지폐, 채권, 귀금속, 골동품 그리고 각종 서류를 마법자루에 담기 시작했다.

워낙 양이 많아 시간이 걸리는 상황. 만약, 마법자루를 2차 업그레이드하지 않았다면, 상당 부분을 남기고 가야 했을 거다.

창수는 상급 미궁에서 마법자루를 가로 2.5m, 세로 2m, 높이 2m로 업그레이드해 기본형보다 성능을 10배 향상했다.

그리고 99.999994% 초고순도 은과 녹색마탑에서 구매한 희귀 재료를 사용해, 가로 7m, 세로 5m, 높이 3m 크기로 마법자루를 2차 확장했다. 무게 경감도 1/100에서 1/1,000로 상승해 휴대가 한결 간편해졌다.

2차 업그레이드에 들어간 비용은 초고순도 은을 제외하고 한국 돈 5조 원에 달한다. 이처럼 막대한 지출을 한 이유는 청강석 골렘을 휴대하기 위해서다.

창수는 사탕수수를 싣고 금나라로 귀환하던 중, 천살단 부단주 관시엔과 전투를 벌이다가 죽을 고비를 넘겼다. 절정 고수의 능력이 예측을 뛰어넘어 벌어진 일.

마법사 고사누는 전설의 3대 미궁에서 마지막 보스 역할을 담당했던 골렘이 절정 무사를 넘어 초절정 무사를 상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마법자루에 골렘을 집어넣으면, 무기와 물품을 저장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창수는 초고순도 은과 넉넉한 자금을 사용해 이 난제를 해결했다. 그리고 금고 털이에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문밖에 레드실드 졸개들이 대기하고 있다는 거지. 영악한 놈들.’

런던 본부장 집무실에서 쓸 만한 것은 모두 챙긴 창수는 굳게 닫힌 출입문을 바라봤다.

저 너머에 중무장한 레드실드 병력이 깔려 있다. 제이슨 레드실드가 감추고 싶어 한 진실이 이것. 그리고 창수에게 술술 정보를 털어놓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집무실에 있는 제이슨 레드실드와 경비실장 웨이론 크로포드가 1시간 이상 연락이 두절되면, 외부 침입을 받은 것으로 여긴다는 사전 규칙이 있었다.

‘신박한 잔머리기는 한데, 나에게 통할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지.’

집무실은 11층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입구를 막으면 빠져나갈 방법이 마땅치 않고, 빠져나가도 배치된 병력과 치열한 교전을 벌여야 한다.

그러나 창수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소롭게 여길 정도.

- 찌익! 찌익! 찌익!

출입문 앞에 선 창수가 마법자루에서 스크롤 3개를 꺼낸 뒤 마법을 발동했다.

- 덜컥!

- 파바박! 타다닥!

창수가 집무실 입구를 열자 늑대 3마리가 빠르게 달려 나갔다. 하급 소환수를 불러낸 것.

- 크왕!

- 덥썩!

예상대로 문밖에 병력이 대기하고 있었다. 늑대 3마리가 병력 한가운데로 뛰어 들어간 뒤,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 시팔! 드루이드 놈들이다! 어서 사격해!

- 아군이 섞여 있어, 사격이 어렵습니다!

- 빌어먹을! 나이프라도 사용해! 어서!

집무실 입구 앞에 배치된 병력은 40명에 달한다. 주위까지 합하면 100명이 넘는 인원이 있기에 늑대 3마리 정도는 가볍게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병력이 많다고 항상 좋은 건 아니다. 늑대 3마리가 전투병들을 물어뜯으며 뒤엉키자, 총기 사용이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원초적인 무기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

- 푹!

- 흐드득!

“크아악!”

레드실드 병력은 개개인이 영국 SAS와 미국 델타포스를 능가하는 전투력을 가지고 있다. 총기는 물론이고 단검도 능숙하게 사용한다.

전투병들이 길이 30cm에 달하는 나이프를 사용해 늑대들을 찔렀다. 하지만 소환수들은 칼이 몸에 박혀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그 대신 자신을 공격한 전투병에게 반격을 가하며, 순식간에 주위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 사사삭!

전투병이 지르는 비명, 지휘관이 치는 고함 소리 그리고 늑대들의 흉흉한 입질 소리를 들으며, 창수는 조용히 본부장 집무실을 빠져나가 창가로 이동했다.

창가로 가는 동안에도 경계 태세를 유지한 병력을 다수 만났으나, 무시하고 지나쳤다. 모두 처치할 수 있지만, 이쯤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현명하니까.

- 퓩! 퓩! 퓩!

- 챙강!

병력이 배치되지 않은 사각에 도달한 창수는 소음 권총으로 유리창을 깼다.

- 팀장님!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 어디야!?

- 회의실 쪽입니다!

- 어서 이동해! 빨리!

청각이 유달리 뛰어난 전투병 한 명이 작은 소음을 감지해 냈다. 그리고 이어서 병력 10명이 창수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비록 창수가 투명망토를 가동하고 있으나, 전투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

‘제법 유능한 놈들이군. 하지만 너희와 놀아 줄 시간 없다.’

레드실드 병력이 빠르게 다가왔으나, 창수는 전투태세를 갖추지 않았다. 그렇다고 항복하려는 것도 아니다.

창수에게 어떤 대안이 있는 걸까?

- 획!

- 슈욱!

병력이 10m 거리로 다가오자 창수가 깨진 창문으로 몸을 날렸다. 11층 높이에서 뛰어내린 것.

- 창문이 왜 깨진 건가!?

- 누가 일부러 깬 것 같습니다!

- 외벽에 뭐가 붙어 있나 살펴봐! 어서!

창수가 뛰어내린 창문에 도착한 5타격 팀장은 누군가가 빌딩 벽면을 타고 이동할 가능성을 생각했다.

하지만 벽면은 물론이고, 주위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 슈욱!

한편, 11층에서 뛰어내린 창수는 중력의 영향을 받아 90km/h의 속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물리 충격을 막아 주는 마법방어구를 믿고 뛰어내린 건가?

- 블링크!

- 팟!

- 척!

창수는 지면에서 10m 떨어진 높이에 이르자 블링크 마법을 사용했다. 몸에 붙었던 가속도가 사라지고, 원하는 장소에 몸이 사뿐하게 이동했다.

사실 마법방어구를 믿고 빌딩에서 뛰어내리는 건 현명한 일이 아니다. 낙하 충격은 막을 수 있지만, 소음을 막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추락하는 바닥에 마나가 담긴 물체가 있다면, 치명상을 당할 수도 있다.

창수는 15m 이내라면 어디든지 이동할 수 있는 블링크의 특성을 살려,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었다.

물론, 이건 방금 떠오른 아이디어가 아니다. 사전에 가능성을 생각하고, 폭포에서 수백 번 연습해 몸에 익힌 거다.

- 사사삭!

무사히 레드실드 런던 본부 건물을 벗어난 창수는 투명망토를 가동한 채 500m를 걸어갔다.

‘이쯤이면 적당하군. 불꽃놀이를 시작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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