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36장. 런던의 고인물
6.
거대한 폭음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이 일어난 장소는 사인드파고 센터 지하 2층과 지하 5층.
- 콰쾅! 콰쾅!
- 파파팍!
“으아악!”
“크아악!”
강력한 폭탄이 터지자 인근에 있던 병력이 죽음의 폭풍에 휘말렸다. 그리고 파편이 날아가면서 폭풍 반경 밖에 있던 병력에 치명적인 피해를 줬다.
지하 2층에는 빅벤이 가용할 수 있는 병력 대부분이 몰려 있었다. 부상자를 제외하고 지하 5층에 있던 모든 전투 병력과 옥상에서 대기하던 병력 대부분이 지하 2층에서 수색을 벌였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10곳이 넘는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폭발이 일어나니 피해가 막심했다. 그리고 지하 5층에 남아 있던 부상자와 지원 팀 역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피해 규모가 너무 방대해 사상자가 얼마나 발생했는지 파악도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지난 100년간 빅벤에 오늘과 같은 참상이 없었다는 것.
* * *
“골렘이 날뛰었다고!? 개리건은 뭐 하고 있었던 거야!? 골렘 제어 일인자가 놀고 자빠진 거야!?”
사인드파고 센터에서 벌어진 대형 유혈극은 곧바로 빅벤 본부에 알려졌다.
빅벤의 최고 의결기관인 집행위원회 의장 이언 매코이는 기습을 대비한 상태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골렘이 강력한 병기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센터장 휴 개리건은 자연계 마법을 사용하는 드루이드였고, 특히 골렘을 무력화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골렘을 상대할 수 있는 최고 전력이 책임자로 있었음에도, 무기력하게 당한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개리건이 가장 먼저 기습당했다고 합니다.”
“뭐라고? 경호 병력은 뭐 하고 있었기에 개리건이 먼저 당해?”
“경계를 뚫고 센터장실까지 침입한 겁니다. 우리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공격한 것이 분명합니다.”
“레드실드 놈들이 작정하고 나선 거구만! 도대체 이유가 뭐야!?”
이언 매코이는 사인드파고 센터를 공격한 적이 레드실드라고 단정했다. 달리 다른 상대가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빅벤이 공식적으로 창설된 것은 150여 년 전 이지만, 결사로서 활동한 것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에 달하는 장구한 세월 동안, 골렘을 사용한 상대는 단 하나 유대교 계열밖에 없었다. 그리고 유대교 세력 중에서 현재 빅벤을 공격할 만한 역량을 가진 조직은 레드실드뿐이다.
빅벤 집행위원장의 판단은 나름 합리적인 추론이라 할 수 있다.
“아무래도 우리가 오백세건강 공략을 도맡아 한 것이 문제가 된 듯합니다.”
“고작 20억 달러 때문에 우리 뒤통수를 쳤다는 거야?”
빅벤이 창수와 김근홍을 노린 건 테러 사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화 2조 3,000억 원을 받고 청부 살인의 하수인이 된 것.
빅벤의 살림을 관리하는 사무처장 핀레이 라르돈은 골렘이 사인드파고 센터를 공격한 이유를 고인물 조직 간의 이권 다툼이라 생각했다.
“단순히 의뢰 대금이 문제가 아닙니다. 오백세건강을 처리하고 버닝스톤을 잠재우면, 고객들로부터 얻게 되는 수익이 2,000억 달러가 넘어갈 겁니다.”
창수와 김근홍을 암살하라고 사주한 세력은 석유를 주 수입원으로 삼는 산유국들이다. 그들은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원이 등장할 때마다, 공식, 비공식적으로 견제해 왔다.
미국이 주도한 바이오 연료 개발에 산유 시설 투자 철회 카드를 꺼내 든 것이 좋은 예.
버닝스톤의 등장은 바이오 연료나 신재생 에너지 개발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한 충격을 줬다. 자칫 그들의 재정이 파탄 날 상황.
고객들은 청부 금액 20억 달러 이외에 100배에 달하는 추가 인센티브를 제시했다. 현금을 주는 건 아니지만, 각종 이권 사업으로 돈벌이 보장을 약속한 것이다.
“그건 5명밖에 모르는 극비 사안 아닌가? 레드실드 놈들이 그 내용을 어떻게 알았다는 거야? 우리 중에 배신자가 있다는 거야?”
“그럴 리가 있습니까? 제 생각에는 고객 중 일부가 정보를 흘린 듯합니다.”
“고객이 왜 그런 짓을 한다는 거지?”
“유전 탐색부터 개발과 판매까지 레드실드와 한 몸처럼 얽힌 고객이 여럿입니다. 그들이 우리를 견제하기 위해 나선 거라고 봅니다. 우리가 2,000억 달러를 독차지하면, 레드실드가 위험해지니까요.”
석유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전까지 산유국들은 최빈국 상태를 면하지 못했다. 그때, 레드실드가 자본과 기술을 지원한 국가가 여럿이다.
산유국들과 레드실드의 관계가 항상 좋은 건 아니나, 아직도 상당수 산유국에 레드실드의 영향력이 남아 있다.
핀레이 라르돈은 산유국 중 일부가 레드실드를 도우려 극비 정보를 흘렸다고 생각했다.
- 쾅!
“악랄한 레드실드 놈들! 언제까지 우리 앞길을 막을 셈이야!?”
“의장님, 본때를 보여 줘야 합니다.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맞아! 응징해야 해! 집행위원 전원 소집해! 한 명도 빠져서는 안 돼!”
“알겠습니다, 의장님.”
고인물에게는 철칙이 있다. 받은 것은 반드시 돌려줘야 한다. 그래야 고인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빅벤 집행위원장 이언 매코이는 보복을 실행하는 수순에 들어갔다.
7.
5월 2일 밤 11시, 시티에 위치한 레드실드 런던 본부에 서늘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경계는 어떻게 되고 있소?”
“1급 방어 태세를 가동 중입니다.”
“특급으로 올리시오. 가볍게 볼 상대가 아니오.”
레드실드 가문의 시작은 독일이다. 그리고 가문을 일으킨 가주의 아들들이 다섯 개의 화살이 돼서, 유럽 전역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그중에서 가장 성공한 지역이 영국. 워털루 전투로 천문학적인 거금을 벌어들인 영국 지부는 일약 본부로 승격했고, 그 뒤 레드실드 가문의 중심이 됐다.
지금도 마찬가지. 비록, 은밀한 곳에 총본이 있지만, 레드실드의 대외 활동을 주도하는 곳이 런던 본부다.
런던 본부가 가진 무력이 매우 높은 건 두말할 필요가 없는 사실. 그런데도 본부장 제이슨 레드실드는 심각한 목소리로 경계 태세 등급을 올렸다.
이건 강력한 적이 노리고 있는 걸 의미한다.
“알겠습니다, 본부장님. 그리고 심려 놓으십시오. 우리 방어를 드루이드 놈들은 뚫지 못합니다.”
“과신은 금물이오. 빅벤이 사생결단 방식으로 총공격에 나서면, 우리도 상당한 피해를 볼 수 있소.”
“휴……. 하긴 그렇습니다. 무식한 놈들이 독기를 품고 달려들면, 그것보다 위험한 것이 없죠. 그런데 이상합니다. 무슨 이유로 드루이드 놈들이 설치는 건가요?”
런던 본부 방어 책임자 경비실장 웨이론 크로포드는 빅벤의 살벌한 움직임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평소 빅벤이 레드실드와 으르렁거리는 건 사실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삼엄한 경비를 펼치는 장소 중 하나인 런던 본부를 공격할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다고 봤던 것.
“믿을 만한 정보에 따르면, 어제 발생한 사건의 주범을 우리라고 여기는 것 같소.”
“무식한 놈들이 생사람 잡는 거군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소.”
“예? 무슨 말씀이신지…….”
“사인드파고 센터를 공격한 것이 골렘이라고 하오. 빅벤에서 우리를 의심할 만한 거요.”
“헉! 골렘이라고요? 혹시 벤잘렝 가문에서 일을 저지른 건가요?”
“가장 의심이 가는 곳이 거기요. 그러나 아직 확실한 정보가 없소. 일단 빅벤의 공격을 막아 내고, 정보를 모아 누가 경망하게 골렘을 사용했는지 알아봐야 하오.”
골렘은 유대교의 비전이다. 구약성경에 ‘골미’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완성되지 않은 인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제조 방법은 고위급 랍비가 진흙으로 형태를 만들고, 목에 ‘emet’라는 문자를 새겨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
역사에 나타난 가장 유명한 유대교 골렘 마스터는 16세기 체코에 거주하던 벤잘렝이다. 그는 유대인에게 폭력을 가하는 체코인을 응징하기 위해, 요셉이라는 골렘을 만들었다.
요셉은 벤잘렝의 기대대로 무시무시한 무력을 사용하며 체코인들을 물리쳤다. 벤잘렝의 사후 비밀 장소에 숨겨진 요셉은, 유대인이 다시 곤경에 빠지면, 부활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제이슨 레드실드는 사인드파고 센터를 공격한 범인을 벤잘렝의 후손이라 여기고 있다.
“흠……. 이거 보통 골치 아픈 일이 아니군요. 우리도 골렘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바로 그거요. 빅벤의 공격뿐만 아니라, 벤잘렝의 공격도 대비해야 하오. 카발리스트(유대교 신비주의자)가 어떤 짓을 할지 모르오.”
“무슨 말씀인지 이제 이해가 되는군요. 골렘 2기를 배치해 경비에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비록 클레이 골렘에 불과하지만, 인간이 따라올 수 없는 괴력을 내는 존재이기에, 골렘을 상대하는 최적의 대응책은 골렘이다.
경비실장 웨이론 크로포드는 경계해야 할 대상이 빅벤뿐만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경계 수위를 특급 이상으로 올렸다.
* * *
5월 3일 새벽 3시, 템즈강의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맞으며, 레드실드 경비 병력이 삼엄한 외곽 경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밤샘 경계로 피곤할 만도 한데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레드실드 최정예 병력다운 모습.
하지만 그들은 본부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 퓩!
“컥!”
‘완전히 코코넛이구만. 겉은 돌처럼 딱딱한데, 막상 안은 맹탕 물이야.’
블링크 마법으로 레드실드 런던 본부 내부에 손쉽게 잠입한 창수는, CCTV가 감지할 수 없는 곳에서 매복 중인 레드실드 병력을 하나하나 처단하기 시작했다.
내부 병력도 경비 병력과 다를 바 없는 최정예다. 그런데도 창수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은, 외곽 방어 능력을 과신했기 때문이다.
경비 병력이 침입자를 완벽하게 퇴치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교전을 벌여 적의 위치 정도는 알려 줄 거라 확신한 것이 오히려 화가 된 것.
서로를 커버해 줄 수 없는 곳에 배치돼 있기에, 창수가 마음 놓고 편하게 처단할 수 있는 거다.
<크로포드 실장, 상황이 어떻소?>
<아직까지 별다른 움직임이 없습니다. 사인드파고 센터 인근도 아직 잠잠합니다.>
<경계를 늦추지 마시오. 빅벤이 본부 병력을 런던으로 투입했다는 첩보가 방금 들어왔소.>
새벽 3시 45분, 제이슨 레드실드는 런던 본부 외곽 경비를 진두지휘하는 웨이론 크로포드와 통화해 중요한 정보를 알려 줬다.
빅벤의 주요 전력 중 하나가 런던에 진입한다는 내용.
지난밤 창수의 공격으로 빅벤은 병력의 152명이 사망하고 33명이 중상당하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 가용할 병력이 매주 적어, 부득이 본부 병력을 빼낸 것이다.
빅벤의 무력이 약화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중무장한 타격대가 총구로 노리는 것은 레드실드이기에, 결코 달갑지 않은 소식.
<오전 7시에, 우리도 전력이 보강됩니다. 그때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방어선을 지키겠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든든하구료. 크로포드 실장만 믿겠소.>
<맡겨 주십시오, 본부장님.>
전투가 벌어질 때보다, 그 직전이 더 떨리는 순간이다.
제이슨 레드실드는 빅벤의 공격이 금방이라도 시작될 것 같다는 생각에 빠져 마음이 심란했다. 진다는 생각은 안 하지만, 피해가 얼마나 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웨이론 크로포드의 말은 큰 위안이 된다. 레드실드 런던 본부장은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느끼며, 통화를 마쳤다.
- 짝! 짝! 짝!
“준비 태세가 철저하군! 아주 좋아! 그래야 레드실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