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36장. 런던의 고인물
4.
마인드 컨트롤 아티팩트는 강력하고 유용하다. 그러나 만능이 아니고 제약이 있다. 상대방이 마나 사용자인 경우, 그리고 정신력이 매우 강한 경우 통하지 않는다.
고사누와 같은 마법사는 상대방을 약화시켜 아티팩트를 발동할 수 있지만, 마법사가 아닌 창수가 사용할 수 있는 대상은 한정돼 있다.
마인드 컨트롤 아티팩트가 있음에도 자백마법 스크롤을 자주 사용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따라서 아티팩트 사용 불가 반응이 나타난다 하여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창수가 의외라고 생각한 것은 휴 개리건의 몸에서 마나 반응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 촥!
“그만 자빠져 자고 일어나! 쓰레기 같은 놈아!”
창수는 휴 개리건의 목에 마법구속구를 채운 뒤 거칠게 따귀를 때리며 깨웠다. 자기를 비열한 방법으로 죽이려던 자에게 용서와 자비는 없다.
게다가 500억 원에 해당하는 금액을 허공에 날린 직후이기에 손이 매서웠다.
“당… 당신 누구야!? 여기가 어디라고 난동을 부리는 거야!?”
“이 새끼! 개수작 부리는 거 보소!”
통증을 느끼며 정신을 차린 휴 개리건이 목소리를 높여 창수를 힐난했다. 이건 말로 창수를 제압하려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 있는 수하들에게 구조 신호를 보내려는 잔머리 굴리기.
그러나 이미 센터장실 내부에 사일런스 마법이 펼쳐져 있었다. 창수가 돌발 행동을 예상하고 미리 마법스크롤을 사용한 것.
- 퍽! 퍽! 팍!
“으아악!”
그리고 매타작이 시작됐다. 휴 개리건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던 창수는 급소만 골라서 때리는 잔인함을 보여 줬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잔악한 테러를 저지르는 흉악범 새끼야, 잔대가리 굴리는 너 같은 비열한 인간을 왜 살려 줘야 하지?”
예상보다 의지가 약하다. 휴 개리건은 15분간 이어진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자비를 구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창수의 대답은 싸늘했다. 개인적인 감정 이외에도 딱히 살려 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뭐든지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제발 살려 주세요!”
“그렇다면 기회를 주지. 금고 어디 있어?”
“예!? 금고라니요!?”
“말귀가 어두워? 돈, 귀금속, 골동품 어디다 모아 놨어?”
“그런 건 없습니다!”
“아! 그러셔! 아직 버틸 만한가 보구만.”
- 퍽! 퍽! 팍!
“끄아악!”
비밀조직에 비밀금고가 없다고? 누구를 호구로 보나?
창수의 직업이 여행가이며 사업가지만, 금고 털이(?) 경력도 만만치 않다. 송본귀금속, 와르카 마적단, 일본계 대부업체, 그리고 공격용 미사일을 개발하던 일본 비밀 연구소에서 금고 털이로 짭짤한 소득을 올리고 유용한 정보를 얻었다.
창수는 사인드파고 센터장 휴 개리건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바로 알아차리고 다시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제발 그만 때리세요! 다 말하겠습니다!”
“금고 어디 있어?”
“저… 저깁니다!”
그러면 그렇지, 금고가 없을 리가 있나. 10분간 추가 매타작을 당한 휴 개리건은, 결국 비밀금고 위치를 실토하고 말았다. 폭력에 굴복한 것.
가리킨 곳은 여러 가지 책이 빼곡히 꽂힌 책장. 그 뒤에 비밀금고가 있었다. 만약, 실토를 받아 내지 못했다면, 찾기 매우 어려웠을 거다.
“금고 문 열고 안에 들어 있는 거 모두 꺼내.”
“저… 저를 살려 주실 겁니까?”
“네놈이 수작을 부리지 않고 내가 지시한 것을 지키면, 목숨을 건질 수 있을 거다. 그렇지 않으면 아주 처참하게 죽게 될 거야.”
“알겠습니다! 당장 꺼내겠습니다!”
- 틱틱틱!
- 철컥!
뜬금없이 나타난 강도가 금고 털이를 마친 뒤 목격자를 살려 둘 확률이 얼마나 될까?
휴 개리건은 창수의 지시를 따른다 하여도, 자기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쉽게 깨질 약속을 믿은 건 작은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기 때문이리라.
이에 더해 창수의 요구를 거절할 경우, 또다시 무시무시한 폭력이 가해질 것이 뻔하기에, 자기 스스로 세뇌한 측면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휴 개리건은 비밀금고를 신속하게 열고, 안에 보관한 것들을 빼내기 시작했다.
- 척! 척! 척!
‘오! 말로만 듣던 만 달러 지폐를 여기서 보는군!’
현재 시중에서 유통되는 최고 액면가 미국 화폐는 100달러다. 그러나 1918년부터 1969년까지는 500달러, 1,000달러, 5,000달러, 10,000달러 고액권도 발행됐다.
주로 은행 간 금융 결제와 수집용으로 사용하지만, 지금도 사용할 수 있는 법정화폐.
창수는 비밀금고에서 나오는 고액권 달러 뭉치를 보며, 쾌재를 불렀다.
‘커커커. 5억 달러짜리 무기명채권도 있네!’
런던의 고인물답게 쌓아 놓은 것이 많다. 영국, 프랑스, 스위스, 독일, 일본에서 발행한 고액 채권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이 미국 무기명채권 40장. 무려 200억 달러에 달하는 거금이 비밀금고 안에서 나왔다.
무기명채권은 채권자를 명시하지 않고, 증권을 보유한 사람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특수한 형태의 채권이다.
소위 ‘묻지 마 채권’이라 불리며, 상속, 증여, 탈세, 정치 자금, 비자금 마련 등… 드러낼 수 없는 거래에 사용한다.
빅벤의 자산이 어느 수준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무기명채권 200억 달러를 탈취당하면, 조직 전체가 휘청일 것이 분명하다.
창수는 자신을 노리는 빅벤의 힘을 약화하면서, 천문학적인 자금을 챙기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보게 됐다.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건 당연한 일.
- 슥! 슥! 슥!
창수는 휴 개리건이 비밀금고에서 빼낸 현금과 채권을 신속하게 마법자루 속으로 집어넣었다.
옆에서 그 광경을 힐끔 쳐다본 휴 개리건은 창수의 옷이 생각보다 넓은 주머니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기 생각을 말할 순 없었다. 괜히 호기심을 보이다가 매타작을 다시 당할 수 있으니까.
“좋아. 수고했다.”
“이제 풀어 주시는 겁니까?”
“아직은 아니야. 이제 1단계를 통과한 것뿐이다. 목숨을 건지고 싶으면 내가 묻는 말에 정확히 대답해야 할 거야.”
“그… 그건…….”
‘약속이 다르지 않은가?’라고 소리칠 뻔했다. 그러나 휴 개리건은 이것 역시 제대로 말할 수 없었다. 해 봐야 돌아올 건 폭력 아니면 죽음이니까.
“먼저 묻겠다. 네 이름과 직책이 뭐지?”
“제 이름은 휴 개리건입니다. 사인드파고 센터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빅벤에서의 네 지위가 어느 정도냐?”
“…….”
“대답을 안 해? 살기 싫은가 보네?”
“제… 제 위로 10명 정도가 있습니다.”
‘랭킹 11위에서 15위 수준이군. 생각보다 거물인데, 캐낼 게 많겠어.’
5억 달러, 한화 5,750억 원에 해당하는 거금을 들여 김근홍이 수집한 정보지만, 빅벤의 실체를 파악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창수가 비밀금고를 턴 건 정보를 빼내기 위한 목적도 있다. 금고 안에 문서와 서신이 상당수 있었기에 일단은 목표 달성.
그리고 휴 개리건이 빅벤의 고위급 인사이기에 추가로 챙길 정보가 상당했다.
창수는 폭력을 각인시키는 방법으로 휴 개리건으로부터 유용한 정보를 다수 뽑아냈다.
- 찌이익!
“크윽!”
초벌 질문이 끝나고 자백마법 스크롤을 사용해 2차 취조에 들어간 건 정해진 수순.
“그러니까. 스코틀랜드 서부 해안에 있는 아이오나섬이 너희 근거지라는 거냐?”
“맞습니다. 아이오나에 본부가 있습…….”
저항 의지가 완전히 꺾인 것일까? 휴 개리건은 대체적으로 사실을 말했고, 2차 검증은 빠르게 진행됐다.
- 쾅!
- 덜컥!
그리고 창수가 하려던 질문의 절반 정도를 진행할 때, 갑자기 출입문이 부서지듯 열리며 중무장을 갖춘 5명이 센터장 집무실로 뛰어들었다.
“악랄한 놈! 네놈은 여기서 끝장이다!”
“언제 수작을 부린 거지? 벌벌 떠는 손을 보면 수작을 부릴 여유가 없었을 건데?”
“어리석은 놈! 예정에 없이 금고에서 물건을 빼내면 30분 안에 자동으로 경비대가 출동하게 돼 있다! 네놈은 그것도 모르고 우쭐거린 거다!”
“비천한 놈이 안 돌아가는 머리를 굴린 거구만.”
“닥쳐라! 이놈! 네놈은 쉽게 죽지 못한다! 멜링! 어서 이놈을 체포해!”
경비대가 눈앞에 보이니 휴 개리건의 자세가 달라졌다.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순식간에 비정한 목소리를 내는 권력자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이건 휴 개리건의 연기력과 심기가 남다름을 나타낸다. 비장의 한 수를 준비해 놓고, 창수에게 당한 수모를 견뎌 낸 것이다.
하지만 원한을 잊을 순 없는지, 창수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산 채로 제압하라고 명령했다.
고문을 통해 자신이 당한 고통을 앙갚음하면서, 창수의 정체를 알아낼 요량.
현재 상황에서 최적의 대응 방법이라 할 수 있다.
- 탕! 탕! 탕!
센터장의 지시를 받은 경비대 5명이 창수의 무릎과 종아리를 향해 총탄을 발사했다. 테이저 건도 있으나 침입자의 기세가 보통이 아니라고 판단해 실탄을 사용한 것.
- 틱! 틱! 틱!
그러나 잘못된 선택이었다. 경비대가 발사한 총알은 창수에게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했다. 물리공격을 막아 주는 마법방어구와 천잠사 방호복에 가로막힌 것.
차라리 테이저 건을 사용했다면, 창수에게 전기 충격을 줄 수 있었을 거다.
- 퓩!
- 팍!
“크악!”
반격에 나선 창수는 휴 개리건을 향해 총탄을 발사했다.
눈앞에서 믿기지 않는 일을 목격한 사인드파고 센터장은 날아오는 총알을 피하지 못하고 즉사했다.
죽은 뒤에도 두 눈을 뜬 것으로 미루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사망한 것이 분명하다.
- 틱! 틱! 틱!
경비대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창수의 하반신에 총탄이 먹히지 않자, 가슴과 머리를 향해 총탄을 발사했으나, 여전히 아무런 타격을 줄 수 없었다.
창수에게 물리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
- 퓩! 퓩! 퓩!
- 팍! 팍! 팍!
“으아악!”
“쿠아악!”
창수는 경비병들이 무의미하게 쏘아 대는 총알을 담담히 받아 내며, 응사에 나섰다.
경비병들도 방탄조끼를 비롯한 방어구를 갖추고 있으나, 10m도 안 되는 거리에서 발사한 총탄을 버틸 수 없었다.
‘미련한 놈들! 상대방의 능력을 파악 못 하니 저 꼴이 되지!’
창수가 경비대 5명을 제거하는 데 걸린 시간은 채 1분이 되지 않는다. 그들이 다른 대응 방법을 사용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소총만 발사한 것이 원인.
창수는 죽은 휴 개리건에게 채운 마법구속구를 수거하면서, 능동적인 대응을 못 한 경비대를 힐난했다.
- 푹!
- 쓰윽!
그리고 휴 개리건의 뒷목에 박힌 마인드 컨트롤 아티팩트를 제거했다. 비록 다시 사용할 수 없으나,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뒤처리에 들어간 것.
빠르게 흔적 지우기를 마친 창수는 투명망토를 가동한 뒤 센터장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나머지 놈들도 처리하고 갈까?’
집무실에 사일런스 마법을 사용한 덕분에 행적이 발각되지 않은 듯 보였다. 지하 5층을 빠져나가야 할지, 공격을 계속해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지하에서 전투를 벌이는 건 위험해. 일단 옥상에 배치된 놈들부터 처단하고, 폭탄으로 날려 버리자.’
건물 구조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이기에 지하 5층에서 화염방사기를 보유한 적과 전투를 벌이는 건 피해야 한다.
지하 5층에 폭탄을 설치한 뒤, 옥상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이 안전하다. 창수는 확실한 공격 방법을 선택한 뒤 C4를 설치하며, 내부를 이동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10m 인근에 접근했을 때,
- 쿠오오!
- 획!
- 찌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