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36장. 런던의 고인물
3.
[먼저 공격하자는 거야? 너무 성급한 것 아닐까?]
[빅벤이 우리를 공격하려는 것 자체로 이미 전쟁이 시작된 겁니다. 어차피 싸울 거라면, 적이 대비하기 전에 기습하는 게 피해를 줄이는 일입니다.]
창수가 가진 능력은 공격에 적합하다. 적에게 공격당할 때 스스로 방어할 순 있으나, 주변 사람을 지키기에 부족한 면이 있다.
빅벤이 표적을 집요하게 공격한다면, 앉아서 당하는 것이 아니라, 선제공격하는 것이 피해를 줄이는 길.
[흠……. 일리 있는 말이야. 하지만 빅벤의 무력이 상상 이상으로 강할 수 있어. SAS보다 훨씬 강하다고 봐야 해. 우리가 가진 무력으로 빅벤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야.]
옵션거래로 천문학적인 자금을 벌어들인 뒤 창수는 김근홍에게 강력한 무력을 가진 부대를 만들라고 조언했다.
태국 정부와 군부의 보호를 받고 있으나, 적 공격을 스스로 막아 낼 역량을 가져야 하니까.
김근홍은 창수의 말이 옳다고 여기고, 특수부대 출신 PMC(용병) 100명을 모아 타격대를 만들었다.
제법 강력한 전력이다. 하지만 영국 특수부대 SAS와 미국 특수부대 델타포스 수준에 못 미치는 상황. 이 전력으로 빅벤에 선공을 가한다는 건 자살에 가까운 무모한 일이다.
[제가 따로 준비한 공격 팀이 있습니다. SAS 정도는 무리 없이 제압할 수 있습니다.]
[헐! 그런 부대가 있어? 러시아 용병이야? 아니면 체첸 용병?]
[그건 모른 척해 주십시오. 그리고 공격 팀이 실패해도 우리가 드러날 일은 없을 겁니다. 염려 마시고 선배님은 빅벤의 근거지가 어디인지 알아봐 주시면 됩니다.]
[좋아. 네가 준비를 마쳤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지. 가능한 한 빨리 빅벤의 위치를 알아낼게.]
무언가 강력한 무력이 있다. 김근홍은 창수의 담담한 말에서 철벽같은 강인함을 느꼈다.
자기에게 타격대를 만들라고 조언했다는 건 그 이전부터 창수가 특수부대를 준비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리라.
게다가 창수가 동원할 공격 팀의 선제공격이 실패하고 정체가 드러난다고 해도,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 없다. 이미 빅벤의 표적이 됐기 때문이다.
김근홍은 잠시 당황했던 마음을 추스르고, 자신이 할 일에 집중했다.
* * *
‘다시 봐도 이상하군. 너무 수수해. 이것도 눈속임인가?’
런던 시간 5월 1일 밤 10시, 시티에 진입한 창수는 예상보다 평범한 거리 모습을 의외라고 생각하게 됐다.
시티가 처음은 아니다. 영국 여행하면서 여기도 잠시 지나간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기억에 뚜렷하게 남는 게 없다.
2.9km²에 불과한 작은 면적에 5,000여 개에 달하는 금융 관련 업체가 있고, 세계 외환 거래의 40%가 이뤄지는 곳이라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다.
한국 신도시를 걷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건 아마도 시티가 가진 힘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일 터.
‘사인드파고.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건물이군.’
김근홍이 5억 달러를 들여서 알아낸 빅벤의 거점이 사인드파고 센터다. 이 건물은 한 변의 길이가 60m에 달하는 삼각형 모양을 가졌고, 높이가 10층에 불과하다.
사각형 건물이 아니기에 나름 특이한 모양이라 할 수 있으나, 세계 경제의 이면에서 암약하는 거대 집단의 거점으로는 많이 부족해 보였다.
어쩌면 잘못된 정보를 받아 5억 달러를 날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위이잉!
창수는 투명망토를 가동한 상태에서 벌새 드론을 날려, 사인드파고 센터 외부와 내부를 정찰하기 시작했다.
‘레이저 탐지기, 적외선 탐지기, 진동 탐지기, 덕지덕지 깔아 놨구만.’
사인드파고에서 일반인이 드나들 수 있는 곳에는 간단한 CCTV만 설치돼 있었다. 그러나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자, 최첨단 감시 장비들이 즐비했다.
게다가 옥상에는 중무장한 병력 100여 명이 깔려 있었다. 그것도 경비를 서는 것이 아니라, 매복하는 형태. 마치 누군가 침입하기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으로 보인다.
창수가 투명망토를 가동하고 있다고 해도, 들키지 않고 중심부로 이동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비가 촘촘하다.
‘구린내가 풀풀 나는군.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은 게 확실해.’
하지만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안도감마저 들었다. 경비가 삼엄하다는 건, 역으로 사인드파고 센터 안에 감추고 싶은 것이 있다는 걸 의미하니까.
정보를 얻기 위해 들인 돈과 노력이 제값을 한 거다.
‘저기가 좋겠군.’
창수는 벌새 드론 4개를 사용해 사인드파고 내부를 꼼꼼히 조사한 뒤, 침입할 적지를 발견했다.
3층에 위치한 곳으로 외부와 격리된 상태이기에 설치된 감시 장치가 없다. 다른 사람은 접근할 수 없는 장소이지만, 창수에게는 쉽게 이동할 수 있는 곳이다.
‘블링크’
- 슉!
각인된 마법으로 단번에 15m를 이동한 창수는 문서와 책을 보관하는 서고로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현대 과학기술로 아무리 도배해도, 마법 사용자의 침입을 막아 내기는 역부족이다.
“너무 따분하네요. 계속해서 이렇게 경비를 서야 하는 겁니까?”
“위에서 하라면 하는 거지, 우리 같은 전투병이 별수 있어?”
“아니. 아무리 그래도 말이 안 되잖아요? 누가 여기를 습격할 거라고 이 난리를 치는 겁니까?”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알 수 없는 세력이 우리 정보를 캐고 다닌다고 하잖아. 그래도 우리는 편한 거야. 다른 외곽 팀은 전부 옥상에서 대기 중이야.”
“하긴, 아직 강바람이 매섭죠.”
서고에서 나와 안쪽으로 들어가자 중무장한 병력 2명이 순찰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김근홍이 빅벤에 관해서 캐고 다닌 걸 눈치챈 듯하다.
감시 장비와 정보력 그리고 병력의 무장 상태. 빅벤이 위협적인 강적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런던의 고인물이라는 평가는 저절로 얻은 것이 아니다.
‘오늘은 그냥 물러날까?’
빅벤도 365일 경비를 강화할 순 없을 거다. 잠시 시간을 두고 경계가 누그러진 상태에서 다시 침입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아니야. 여기서 물러나면 선공을 당하게 돼.’
그러나 오늘 타격을 주지 못하면, 빅벤으로부터 먼저 공격당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무리가 있더라도 빅벤이 움찔할 만한 피해를 줘야 한다.
생각을 정리한 창수는 곧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 퓩!
“큭!”
“잭슨! 무슨 일이…….”
창수가 소음 권총으로 계급이 낮아 보이는 경비병을 처치하자, 상급자가 깜짝 놀라며 상태 파악에 들어갔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
창수는 상급자가 떠들지 못하도록 입을 막은 뒤 기절시켰다. 그리고 목뒤에 마인드 컨트롤과 도청 기능이 있는 아티팩트를 집어넣었다.
- 지이잉!
- 덜컹!
창수가 제압한 자는 루퍼트 도슨. 타격 2팀 부팀장으로 현재 상황과 사인드파고 센터의 구조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창수는 잭슨이라 불리던 자의 시체를 치운 뒤, 루퍼트 도슨에게 3층에서 계속해서 경비를 서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5층으로 내려갔다.
- 스르릉!
“뭐지!? 문이 열렸는데 아무도 없어!?”
“고장인가? 아니면 3층에서 장난질한 건가?”
“고장이겠지. 설마 비상대기 중인데 장난하겠어? 게다가 도슨 부팀장은 소심해서 이런 짓 못 해.”
“잭슨 놈이 할 수도 있잖아?”
“그런가? 부팀장에게 연락해 봐. 잭슨 그놈이 한 짓이라면, 시말서 쓰게 만들어야 해.”
지하 5층 엘리베이터 입구도 중무장한 경비병 2명이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텅 빈 엘리베이터 안을 보고 이상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엘리베이터를 움직이려면, 인식 장치에 아이디카드를 접촉해야 하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가 고장으로 오작동 했을 가능성이 있다. 다른 가능성은 누가 장난으로 아이디카드를 사용한 후 엘리베이터 밖으로 뛰어나가는 것.
조직 전체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그런 유치한 장난을 할 리 없지만, 평소 불평불만이 많은 잭슨이라면, 가능성이 충분하다.
“부팀장님, 엘리베이터가…….”
- 사사삭!
창수는 루퍼트 도슨과 통화하는 경비병들을 지나쳐 사인드파고 센터의 핵심 지역으로 진입했다.
‘정보대로 상주 인원의 숫자가 만만치 않군.’
지하 5층에는 족히 200명은 넘을 것 같은 많은 인원이 있었다. 대부분 중무장한 전투병이고 일부는 지원과 관리를 담당했다.
창수가 마법방어구와 천잠사 방호복을 착용하고 있다 하더라도, 쉽게 상대할 전력이 아니다. 그중에 화염방사기를 가진 병력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이 정보를 제공한 사람은 루퍼트 도슨. 아티팩트를 사용해 제압한 것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 * *
“우리 뒤를 캐고 있는 쥐새끼 정체를 아직도 파악 못 한 거요?”
“센터장님, 상대는 교활합니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필요한 정보만 빼 갔습니다. 본부에서 추적했지만, 꼬리를 잡을 수 없다고 합니다.”
“확인차 우회 접근이라도 했을 거 아니오?”
“그런 흔적도 없다고 합니다.”
“아니!? 5억 달러를 사용했는데, 사후 관리를 안 했다는 거요!? 돈이 넘쳐나나!?”
지하 5층 가장 안쪽에 위치한 사인드파고 센터장의 집무실에서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센터장 휴 개리건이 지원 팀장 매슈 녹스에게 짜증을 낸 것.
빅벤 관련 정보를 확보한 김근홍을 역추적하려 했으나, 성과가 없었다.
정보 네트워크는 기본적으로 익명성을 보장하고 보안이 철저하다. 하지만 정보를 구매하고 대금을 지불하는 과정에서 보안 허점이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허점은 정보를 재확인하는 과정에서 주로 드러난다.
그러나 김근홍은 5억 달러라는 거금을 사용하면서도, 정보만 받고 깔끔하게 흔적을 지워 버렸다. 빅벤의 정보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김근홍을 추적할 수 없는 상황.
“오백세건강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돈 걱정이 없는 곳이기는 하지. 하지만 그 이야기는 오백세건강이 우리 작전을 알아차렸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오. 작전에 우리 병력을 차출해야 하는데, 비밀이 누출됐다면, 좌시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오.”
대답이 궁해진 매슈 녹스가 오백세건강을 걸고넘어졌다. 이건 어떤 증거가 있어서가 아니라, 현재 빅벤이 공격하는 대상이기에 거론한 것이다.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만만한 기업이 아니니까요.”
“음……. 그렇기는 하지. 확정된 공격 날짜가 언제요?”
“5월 7일, 방센 비치에 있는 김근홍의 저택을 타격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한국으로 이동하는 김창수의 전용기도 격추할 겁니다.”
창수의 예상이 맞았다. 빅벤은 창수와 김근홍이 오백세건강의 핵심이라는 걸 파악하고, 공격 준비를 마친 거다.
“두 놈을 제거하면, 답이 나오겠지. 하지만 외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오.”
“심려하지 마십시오. 깔끔하게 제거하겠…….”
- 퓽!
- 큭!
“뭘 깔끔하게 제거해! 쓰레기 새끼야!”
듣고 있자니 짜증이 나 버렸다. 블링크 마법과 투명망토를 사용해 대화를 엿듣고 있던 창수는, 빅벤이 바로 목 밑까지 치고 들어오자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당장 응징에 들어갔다.
창수와 김근홍을 습격하려 했던 매슈 녹스는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뭐… 뭐야!?”
- 퍽!
“컥!”
그리고 창수는 당황하는 휴 개리건의 뒤통수를 쳐 기절시켰다. 마인드 컨트롤 아티팩트를 집어넣을 요량.
‘응!? 뭐지!? 이놈이 마나 사용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