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34장. 만우절 농담이 실현되면
1.
[지구온난화여, 안녕! 연소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흡수하는 신물질 개발!]
앨버타 시간 2023년 4월 1일 0시, 너튜브에 충격적인 제목과 함께 3분 분량의 영상이 올라왔다.
황색빛을 띠는 그래뉼탄이 강렬한 열기를 내며 타오르는 장면과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하는 장면이 나온 것.
- 신박한 개소리네. 불에 타면서 탄소를 흡수해? 차라리 연금술을 개발했다고 하지?
- 거짓말 아닌 것 같아. 이산화탄소 수치가 정말 줄어들었어.
- 오늘 만우절인 거 몰라? 저거 다 조작이야.
- 그런가? 만우절 농담인가?
- 농담은 농담으로 받아들여야지. 저런 거에 낚이면 멍청하다는 소리 듣는 거야.
만우절을 맞아 너튜브 알고리즘이 영상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댓글 창이 폭발했다. 만우절에 맞춰 그럴싸한 가짜 뉴스를 만들었다고 여긴 것.
일부에서 이산화탄소 농도를 보고 사실일 가능성을 말했으나, 압도적인 다수가 가짜라 평가했다. 사실이기에 너무 좋은 신기술이 만우절에 맞춰 공개될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영상 정말 잘 만들었어. 깜박 속을 뻔했다니까.
- 맞아. 오늘 나온 만우절 영상 중에는 이게 최고야.
- 나만 당할 수 없지. 여기저기 확 뿌릴 거야.
- ㅋㅋㅋ 인성하고는.
- 너는 안 할 거야?
- 당연히 해야지 ㅋㅋㅋ
그리고 제대로 낚였다고 생각한 시청자들이 복수(?)를 벌이기 시작했다. SNS와 인터넷 그리고 지인들에게 영상 주소를 알리기 시작한 것.
[오늘 화제의 뉴스는 만우절 농담입니다. 온실가스를 제거하는 꿈의 연료가 나왔다고 합니다.]
[허허허. 역시, 올해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군요. 몇 년 전 세계 1위 자동차 회사가 사명을 바꾼다는 만우절 농담으로 주가가 12%까지 뛰는 사건이 있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단순히 장난을 넘어서 주가조작 의혹까지 받았습니다. 오늘 나온 농담은 파괴력으로 치면 몇십 배는 더 강할 겁니다.]
너튜브에서 화제가 된 영상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러 나라 방송국을 거쳐 CMM과 같은 글로벌 네트워크 뉴스에도 등장하게 됐다.
방송 진행자와 리포터는 입을 모아 만우절 농담의 폐해를 말하며, 가짜 뉴스에 속아 문제가 됐던 사건들을 열거했다.
시청자들에게 주의를 환기한 것.
[관련 화면 보시죠.]
- 사르륵
[오! 정말 그럴듯한데요! 오늘이 만우절이 아니었다면, 주식 사려고 달려들 뻔했습니다!]
[저도 처음에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의뢰했습니다. 하지만 저런 물질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고 답변하더군요.]
[하긴 탄소를 흡수하는 연료를 개발하면 노벨상 10개를 줘도 아깝지 않죠. 아무튼 영상 퀄리티가 아주 높네요. 저런 재능을 가지고 만우절 농담이나 만든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에너지 관련 전문가라 해도 모든 것에 통달한 것은 아니다. 리포터에게 자문을 요청받은 전문가는 억지로 결함을 만들어 영상이 가짜라고 결론 내렸다. 진짜라고 말했다가 전문가로서 인생 전체가 날아갈 수 있으니까.
비겁한 선택이지만, 현실적인 선택이기도 하다.
[그래도 너튜브 영상에 순기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순기능이요?]
[이 영상을 보고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깨닫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꿈보다 해몽이 좋으시네요. 모쪼록 가짜 영상에 현혹되는 시청자 여러분이 없기를 바랍니다.]
탄소 중립이 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른 상황에서 너튜브 영상은 시의적절한 일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만우절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안 된다. 방송 진행자는 너튜브 영상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며, 화제의 뉴스 코너를 마무리했다.
* * *
“실장님, 너튜브에 올라온 신물질 영상 보셨습니까?”
“조회 수가 엄청나고 청원이 올라왔다고 해서 봤습니다. 화제가 될 만큼 잘 만들긴 했더군요.”
4월 2일 일요일 오후 2시,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백악관에서 회의가 열렸다. 월요일 오전 셀든 대통령에게 주요 안건을 보고하기 위해 백악관 참모진이 모인 것.
화두가 된 것은 너튜브 영상. 공개된 지 20시간 만에 1,000만을 돌파한 조회 수가 어느덧 4,000만을 돌파했다. 내일 아침이면, 1억 이상 조회 수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미국 백악관 청원 사이트인 위 더 피플(We the People)에 신물질의 진위를 가려 달라는 청원이 단숨에 50만을 넘었다.
청원 수가 10만 명을 넘으면, 답변을 해 줘야 하기에 백악관 참모진이 너튜브 영상을 안건으로 다룰 수밖에 없다.
“영상을 올린 곳은 앨버타 주도 캘거리입니다. 앨버타 자원 평가 연구소의 탄소 저감 기술과 연관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그 영상이 페이크가 아니고 사실이라는 겁니까?”
“탄소 농도가 줄어든 연구소와 영상이 올라온 호텔 거리가 700m에 불과합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공교롭죠.”
비서실장 데이븐 포드는 너튜브에 올라온 영상이 가짜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매년 반복되는 그럴싸한 만우절 농담의 하나라고 여긴 것.
하지만 안보 보좌관 라파엘 맥길의 생각은 달랐다. 영상을 올린 장소가 자원 평가 연구소 인근이었기 때문이다.
“영상이 사실이라면, 만우절에 공개한 이유가 뭘까요? 앨버타주가 탄소 저감 기술을 캐나다 중앙정부에 알리기 싫어서 대중에 공개한다는 건가요?”
“정확한 이유를 판단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합니다.”
“정보기관들은 어떻게 판단하고 있나요?”
“여러 가지 가능성으로 의견이 갈리고 있습니다.”
“흐흠……. 이거 골치 아픈 일입니다.”
연소 중에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물질이 존재한다면, 자원 평가 연구소 인근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낮은 것이 설명된다. 데이븐 포드도 그 가능성을 인식하게 됐다.
그러면 앨버타주가 만우절에 탄소 저감 기술을 공개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 물음에 라파엘 맥길을 비롯해 누구도 확실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중앙정부 예산이 투입되어 개발된 기술을 대중에 공개하는 것은 자칫 간첩 행위로 몰릴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니까.
“실장님, 캐나다 총리실에 운을 띄워 보는 건 어떨까요?”
“음……. 하긴 그 방법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이겠군요.”
캐나다 총리실에 압박을 가해 탄소 저감 기술을 미국으로 빼내려 한 것이 비서실장 데이븐 포드다.
너튜브 영상에 나온 신물질이 탄소 저감 기술의 실체라면, 일이 쉽게 풀릴 가능성이 있다. 이미 협조를 얻어 낸 건의 연장선이기 때문이다.
2.
<쿠루니 주 총리! 당신이 하는 행동이 반역 행위라는 것 알고 있소!?>
<부이용 총리님, 반역이라니요? 만우절이 어제인데 아직도 농담하시나요?>
<뭐… 뭐요!?>
4월 2일 오후 5시, 캐나다 총리 로랑 부이용이 앨버타주 총리 마이클 쿠루니에게 전화를 걸어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정적이기는 하지만, 수위가 너무 강하다. 반역을 운운하는 언동은 사생결단을 내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공격당한 마이클 쿠루니는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되치기에 들어갔다. 상황이 뜻대로 돌아가지 않자 오히려 당황한 건 로랑 부이용.
<너튜브에 올라온 영상이 자원 평가 연구소에서 개발한 탄소 저감 기술이라는 것 알고 있소! 그 기술은 캐나다 연방 정부의 재산이오! 그걸 무단으로 유출했으니 반역이라고 말하는 거요!>
<글쎄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자원 평가 연구소는 앨버타주에서 설립한 앨버타주의 자산입니다.>
<연방 정부에서 탄소 저감 기술 연구비를 지급했소! 그러니 연방 정부 재산이지!>
<이것 보세요, 부이용 총리님. 자원 평가 연구소의 탄소 저감 연구는 다른 5개 프로젝트와 함께 현재 진행 중입니다. 어디서 어떤 잘못된 정보를 듣고 설치는지 모르겠는데, 헛다리 짚으셨네요.>
로랑 부이용이 탄소 저감 기술을 요구하는 근거는 자원 평가 연구소에 연구 자금을 지급한 것에 기인한다.
비록 전체 연구 자금의 30%에 불과하지만, 연방 정부 자금이 들어간 연구이기에 그 성과를 공유할 권리가 있다고 여긴 것.
캐나다 총리는 이걸 앞세워 앨버타주 총리를 압박했지만, 상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자원 평가 연구소에서 탄소 저감 기술을 개발하지 못했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건 로랑 부이용의 압박을 근본부터 부정하겠다는 의미를 가진다.
<허! 그것참! 어이가 없군! 연구소 인근에서 탄소 농도가 급감했는데도 발뺌할 거요!?>
<그것이 자원 평가 연구소에서 개발한 기술 때문이라는 증거가 있나요?>
<연방 정부 연구진을 파견하면 당장 들통날 일이오!>
<그러면 파견해 보시죠. 그리고 캘거리 인근에 중앙정부에서 파견한 연구원이 없는데 무슨 방법으로 탄소 농도를 측정한 거죠? 그게 궁금하군요.>
<그… 그건 알 것 없소! 국가 비밀이니까!>
마이클 쿠루니가 훅 치고 들어오자 움찔하는 캐나다 총리. 로랑 부이용이 가지고 있는 탄소 저감 기술에 관한 첩보는 미국 백악관 비서실장 데이븐 포드로부터 넘겨받은 것이다.
절대로 출처를 말해 줄 수 없다.
<국가 비밀이요? 그 말을 들으니 더 궁금해지는군요. 국회에도 궁금해하는 의원들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 나를 협박하는 거요?>
<협박이라니요? 궁금증을 풀자는 거죠. 그리고 그 궁금증이 제대로 안 풀리면, 앨버타주가 캐나다 연방에 계속 남아야 할지 숙고해 봐야겠지요.>
<…….>
예상하지 못한 강펀치의 연속에 정신을 차리기 어렵다. 로랑 부이용이 속한 자유당이 다수당이기는 하지만, 제1여당인 보수당이 국정조사를 요구하면, 거부하기 어렵다.
국회 차원의 조사에서 미국과 커넥션이 드러날 때, 어떤 정치적 후폭풍이 발생할지 모른다. 게다가 마이클 쿠루니는 앨버타주의 독립을 언급했다.
캐나다 총리는 사냥감을 쫓던 사냥꾼 입장에서 삽시간에 역으로 사냥당하는 처지에 빠지게 됐다.
- 쾅!
“일개 주 총리 주제에 감히 나를 가지고 놀아!? 도저히 묵과할 수 없군! 내일 당장 조사단을 꾸려서 앨버타에 파견하도록 하시오!”
“총리님, 서두르면 일을 그르칠 수 있습니다. 먼저 보수당 지도부와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어떨까요?”
모욕당했다고 느낀 로랑 부이용은 곧바로 응징에 들어가려 했다. 마이클 쿠루니가 부정하고 있으나 조사를 시작하면 진실이 드러날 거라 확신하며.
그러나 보좌관의 생각은 달랐다. 미국에서 받은 첩보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미국과 우리는 파이브아이즈로 묶여 있소! 우리가 미국 정보를 가지고 활용한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이 없는 거요!”
“총리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러나 탄소 저감 기술은 파이브아이즈만으로 커버할 수 없는 중대 사안입니다. 보수당과 협력해야 뒤탈이 없습니다.”
“시끄럽소! 당신은 내가 시키는 일만 하면 되는 거야! 이러쿵저러쿵 떠들 거면, 당장 자리에서 물러나!”
보좌관의 말이 옳다. 아무리 캐나다가 미국이 주도하는 정보 공동체의 일원이라고는 하지만, 에너지 혁명을 가지고 올 수 있는 사안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야당의 협조를 받아 거국적으로 다뤄야 할 사안.
그러나 분노로 이성을 잃은 로랑 부이용은 보좌관의 충언을 귀담아들을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호통을 들은 보좌관은 어쩔 수 없이 조사단을 급하게 꾸려야 했다.
* * *
“김 대표님, 부이용이 조사단을 파견할 기세입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부이용 총리는 예상한 범위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대책이 있으신 건가요?”
“부이용 총리가 미국으로부터 정보를 받고 압박을 가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보수당 지도부를 설득해 국정조사를 실시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그리고 제가 준비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