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110화 (110/200)

110화 32장. 녹색마탑

2.

“함유량 99.99999%를 가진 초고순도 은입니다. 황탄 제조권과 황탄 판매권을 주신다면, 녹색마탑에 독점으로 공급하겠습니다.”

창수가 꺼낸 카드는 99.99% 은보다 1,000배 순도가 높은 은 와이어와 포일이었다.

평행우주 너머 세상에서 99.99999% 은 가격은 같은 무게 황금의 100배에 달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마탑 연합에서 책정한 잠정적인 가격일 뿐이고, 실제로는 부르는 게 값이다.

“김창수 님, 죄송하지만, 먼저 순도 검사를 해 봐도 될까요?”

“당연히 검사해야죠. 시간에 신경 쓰지 마시고 정밀 검사를 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3일 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김창수 님 같은 귀빈을 번거롭게 할 수는 없는 일이죠! 우리 녹탑에 영빈관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이틀만 머무십시오!”

‘커커커! 이 양반 똥줄이 탔구만! 눈에 흰자위가 다 돌아갔네!’

엘레크는 냉정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으나, 고위급 마법진 구성에 필수적인 귀물 앞에서 초연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99.99999% 초고순도 은의 마법 친화도는 전설로 알려진 미스릴에 버금간다. 6서클 마법사가 5서클 마법사 5명의 조력을 받아 7일간 연성해야 얻을 수 있는 귀물.

더구나 99.99%를 99.99999%로 만드는 과정에 막대한 비용과 귀중한 마법사들의 마나가 투입되는데도, 실제로 얻을 수 있는 양은 2%에 머문다.

창수는 이런 보물을 10kg씩이나 내놨다. 만약, 창수가 녹색마탑을 나간 뒤 마음이 바뀌어 다른 마탑과 접촉한다면, 엘레크는 스승으로부터 감내하기 어려운 처벌을 받을 거다.

어쩌면 후계자 지위도 박탈당할 수 있는 상황.

“흠…….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을 건데요.”

“김창수 님! 제발!”

“알겠습니다. 엘레크 님의 호의를 받아들이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고, 절실한 사람이 을이 되는 건 마법사의 세계에서도 다를 게 없다. 몸이 단 엘레크는 창수의 바짓가랑이를 잡는 애절한 모습을 보여 줬다.

창수는 녹색마탑 후계자와 적당히 밀당 한 뒤, 영빈관으로 이동했다.

- 치이익!

- 우걱! 우걱!

“여기 허르헉 맛도 괜찮군요.”

“최곱니다! 정말 맛있습니다!”

영빈관은 금나라 음식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토속 음식을 제공했다. 그중에는 몽골 전통 음식 허르헉도 포함돼 있었다.

미궁 탐험 이후 허르헉 매니아가 된 고사누는 몽골에서 맛봤던 오리지널 허르헉을 잊지 못하고, 선양 일대 음식점을 뒤지고 다녔다.

피나는 노력(?)으로 유사한 곳을 3곳 찾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오늘 제대로 만든 허르헉을 먹게 된 것이다.

“체바피 맛도 기가 막히네요. 법사님, 한번 맛을 보세요.”

- 꿀꺽!

“오! 이것도 별미입니다!”

녹색마탑 영빈관에서 나오는 음식 중에 발칸반도 국가에서 즐겨 먹는 체바피도 있었다.

체바피는 다진 고기를 소시지 모양으로 만든 뒤 불에 구운 것이다. 한국 전통 음식 떡갈비와 유사한 맛이 난다.

차이점은 체바피가 대체로 짜다는 것. 그래서 함께 나오는 구운 빵과 같이 먹어야 제맛을 즐길 수 있다.

“녹탑 음식이 전부 맛있네요.”

“영빈관 음식이 특별히 뛰어납니다. 제가 머물던 곳 음식도 나쁘지 않지만, 이 정도 수준은 아닙니다.”

“영빈관은 처음이세요?”

“예. 오늘 처음 와 봤습니다.”

“법사님은 녹탑의 귀빈 아닌가요?”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고사누는 녹색마탑 2인자이자, 이곳 선양 지부 최고 책임자 엘레크의 손님으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그런데 영빈관이 처음이란다.

“녹색마탑의 영빈관은 다른 마탑의 원로급 마법사와 강대국의 왕족을 접대하는 장소입니다. 공동 연구에 참여하는 마법사들의 숙소와 차원이 다른 곳입니다.”

“엘레크 님이 특별히 신경 써 준 거군요.”

“그렇습니다. 녹색마탑이 대표님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 성의를 보이는 겁니다.”

얄팍한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동시에 뿌듯하다. 콧대 높은 마법사에게 극상의 대우를 받는 거다.

“호의를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겠죠. 이틀 동안 푹 쉬면서 세계 음식을 맛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겁니다.”

“허르헉과 체바피 말고도 먹을 만한 것이 더 있나요?”

“그럼요. 엔칠라다, 사떼, 하차푸리, 살모레호, 나시르막, 세베체, 보쉬르 등 세계에서 유명한 음식들을 여기서 먹을 수 있습니다.”

“엄청나군요.”

“다른 건 몰라도 녹탑이 먹는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것 같습니다.”

영빈관에서 제공하는 메뉴판에 200개에 달하는 음식이 적혀 있었다. 여행 전문가인 창수는 그 음식 대부분이 한 지역을 대표하는 진미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자원 개발과 농작물 육성에 특화된 녹색마탑의 특성이 제대로 나타난 것.

창수는 일부러 세계 곳곳을 들르지 않고도 수준 높은 진미를 맛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그리고 음식에 문외한인 고사누에게 이것저것 음식 지식을 전해 주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다.

창수는 녹색마탑 영빈관의 극진한 접대와 산해진미를 즐기며, 만족스러운 이틀을 보냈다.

* * *

“대표님! 순도가 대단히 높습니다! 99.999994%가 나왔습니다!”

“평균보다 품질이 좋은 거군요.”

1월 25일 수요일 오후 3시, 엘레크의 면담 요청을 받고 지부장 집무실을 방문했던 고사누가 좋은 소식을 전해 왔다.

창수가 엘레크에게 건네준 초고순도 은이 예상보다 더 높은 순도를 나타낸 것.

“그렇습니다! 무려 0.000003%가 높습니다! 초고순도 은 중에서도 상품입니다!”

“순도가 아주 조금 차이가 나는데 거기에도 등급이 나눠지나요?”

“전체적으로 작은 성분 차이이지만, 효율성은 큰 차이가 납니다. 순도가 0.000003% 올라가면, 마나 감응력과 전도율이 10% 가까이 상승합니다.”

“그런 효과가 있군요. 가격을 10% 올려도 되겠네요.”

“50%까지 올려도 될 겁니다. 감응력과 전도율이 동시에 상승하는 중첩 효과를 고려하면, 50% 이상 가치가 높습니다.”

고사누가 흥분할 만하다. 순도가 평균보다 높아 창수가 가져온 초고순도 은의 가치가 폭등했으니까.

이미 극한까지 순도를 올린 상태에서 0.000001%를 더 올리는 건 매우 어려운 일.

마탑에서 제조하는 초고순도 은 중 99.99999%를 하급, 99.999991%를 중급, 그 이상을 상급으로 취급한다. 99.999994% 초고순도 은은 보물 중의 보물이다.

“횡재한 기분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군요. 우리에게 유리한 정보를 엘레크 님이 알려 준 이유가 뭘까요?”

“김창수 님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엘레크 님은 황탄 판매 허가 지역을 동아시아로 제한하기를 원합니다.”

“흠……. 황탄 시장을 지키면서 초고순도 은을 가지고 싶다는 거군요. 너무 얄팍한 거 아닌가요?”

“황탄은 녹색마탑의 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황탄 시장을 지키고 싶을 겁니다. 사실 엘레크 님도 이런 요청을 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법사님을 따로 부른 거군요.”

“그런 거지요.”

공짜 점심이 있을까? 창수는 지출을 50% 늘릴 수 있는 정보를 쉽게 넘겨준 엘레크에게 어떤 의도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엘리크는 녹색마탑 선양 지부가 담당하는 지역의 황탄 판매권만 내놓으려 하고 있다.

이건 황탄 지배권을 유지한 채, 초고순도 은만 챙기겠다는 욕심이 분명하다.

* * *

“황탄 판매 지역을 줄이기 원하신다고요?”

“그렇습니다. 스승님께서 김창수 님의 제안을 수정 없이 받아들이려 했지만, 황탄에 애정을 가진 원로님들이 다수라 안건 통과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부득이 요청을 드리게 됐습니다.”

“사정은 이해합니다. 녹색마탑 성장의 주축이 황탄이니까요. 하지만 황탄 매출이 동아시아로 국한되면, 오백세건강에 손해가 너무 큽니다.”

창수를 만난 엘레크는 조직 논리를 내세우며, 완곡하게 협조를 구했다. 협상가다운 노련한 모습.

그러나 호락호락 넘어갈 상대가 아니다. 창수는 자신이 아니라 오백세건강을 내세우며, 엘레크의 논리에 정면 대응했다.

“초고순도 은 가격을 황금의 200배로 올리겠습니다. 그러면 경제적으로 큰 손해 보지 않을 겁니다.”

‘오! 이 양반 잔머리 기가 막히네!’

엘레크의 판단력이 대단하다. 초고순도 은 가격이 상승하면, 황탄 판매 지역 제한으로 입는 손해를 만회할 수 있다.

게다가 가격이 후하기에 창수가 가지고 있는 99.999994% 은 대부분을 녹색마탑에 판매할 가능성이 커진다.

엘레크의 제안은 황탄 지배권을 지키면서 초고순도 은을 대량 매입하는 묘수.

“생각해 볼 만한 제안이군요. 그런데 오백세건강이 동아시아에서 황탄을 판매하면, 선양 지부 매출에 영향이 가지 않을까요?”

“경쟁자가 생기면, 매출이 줄어들겠죠. 하지만 녹색마탑을 위한 길이니, 감내해야 한다고 봅니다.”

창수가 흔들기에 들어갔다. 엘레크가 운영하는 녹색마탑 선양 지부의 주요 수입원은 황탄이다.

창수가 황탄을 제조해 동아시아 지역에 팔면, 엘레크가 직격탄을 맞을 건 자명한 일. 선양 지부 매출이 하락하면, 엘레크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엘레크는 한 치의 두려움 없이 불이익을 받겠다고 말했다.

“역시, 녹색마탑의 후계자다운 당당한 자세군요. 탄복했습니다.”

“김창수 님과 같은 영웅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좋습니다.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 황탄 판매 지역을 조선 하나로 제한하는 겁니다.”

“예!? 조선에서만 판매하신다고요!? 그렇게 되면 더 바랄 게 없죠!”

창수의 말에 엘레크가 반색한다. 녹색마탑을 위해 희생할 각오가 돼 있지만,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

선양 지부 관할 구역에서 조선이 차지하는 판매 비율은 5% 남짓이다. 창수와 경쟁을 벌여 시장 절반을 내놓는다고 가정할 때, 2.5% 판매 감소가 예상된다.

이 정도는 다른 마법물품 판매와 사업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

“그 대신 편의를 좀 봐주십시오.”

“말씀만 하십시오! 원로님들을 설득해서라도, 가능한 한 되도록 하겠습니다!”

“그 정도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녹색마탑에서 생산하는 마법물품 구매 등급을 올려 주고, 황탄 재 가공 마법진을 공유해 주면 됩니다. 조선에서 만들어질 황탄 재를 처리해야 하니까요.”

“그건 당연히 협조해야죠! 선양 지부 판매 불가 품목을 제외하고 모두 구매하실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황탄 후처리 마법진도 공유하겠습니다!”

엘레크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창수의 요구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창수가 녹색마탑 마법물품을 구매해 준다면, 쌍수 들고 환영이다. 초고순도 은을 구매하면서 창수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자금 일부를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황탄 재 처리 마법진은 수익보다는 부산물 재처리라는 측면이 강하기에 제공해도 부담이 없다.

게다가 창수가 요청한 것은 원로회의 의결이 필요 없는 지부장 전결 사항이다. 스승에게 보고만 하면 될 일.

반면, 엘레크가 얻는 것은 막대하다. 황탄 지배권을 지키면서 99.999994% 은을 독점으로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이 공적으로 녹색마탑의 차기 탑주는 엘레크가 될 것이 확정적.

엘레크는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며, 싱글벙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커커커. 이 양반 기뻐 죽을 듯한 표정을 짓고 있군. 하지만 말입니다. 진짜 대박 맞은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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