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109화 (109/200)

109화 32장. 녹색마탑

1.

‘어!? 저걸 석회처럼 사용한다고!?’

1월 20일, 절기상 대한을 맞은 선양의 온도가 영하 15도까지 떨어졌다.

창수는 나이 어린 비일라와 투이나가 잘 지내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선양 외곽 빈민촌에 들렀다.

고사누가 1주일 전 빈민촌에 충분한 식량을 지원했다고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추위에 허름한 천막이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되어 찾아간 것.

그리고 마을에서 뜻밖의 장면을 보게 됐다. 황탄을 태우고 남은 재를 절구로 부숴서 가루로 만드는 모습.

물에 섞어 반죽을 만든 뒤, 천막 아랫부분과 군데군데 난 틈을 꼼꼼히 메우는 모습을 발견한 거다.

“촌장님, 황탄 재로 만든 반죽이 굳으면 단단해집니까?”

“그렇습니다, 대인. 서서히 굳히면 나무보다 강합니다.”

“이것이 석회인가요?”

“석회하고 비슷하지만 조금 다릅니다. 불에 구운 석회에 물을 타면 뜨거운 열기가 나오지만, 이건 아닙니다.”

흔히 석회 또는 생석회라고 불리는 산화칼슘은 석회석 원석을 고온으로 가열해 이산화탄소를 빼내고 만든다.

생석회는 물과 접촉하면 90도 이상의 열을 낸다. 밀폐된 공간에서는 200도 이상이 되기에, 취급에 주의해야 한다.

생석회에 물을 넣어 발열 과정을 거친 뒤 남은 것을 소석회(수산화칼슘)라 부른다. 소석회는 벽면 미장과 지붕 마감과 같은 건축용으로 사용한다.

빈민촌 주민들이 사용하는 황탄재는 생석회가 아니라 소석회와 유사한 성질을 가졌다.

“다루기가 쉬워서 여기저기 많이 사용하겠군요.”

“그렇습니다. 저희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주 귀중한 재료입니다. 그리고 마법 처리 하면 더 좋은 건축 재료가 됩니다. 돌만큼 단단해지죠. 창고나 공장에 쓰는 상아색 벽돌이 황탄 재로 만든 겁니다.”

“촌장님께선 황탄에 대해 잘 아시네요. 관련된 일을 하신 겁니까?”

“예. 제가 5년 전까지 황탄 제조하는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햇수로는 30년이 조금 넘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촌장님이 황탄 전문가였군.’

황탄에 대해 술술 말하는 걸 보니 관련자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이 맞았다. 30년 이상 황탄 공장에서 근무했다면, 허드렛일을 했다고 해도 전문가가 분명하다.

“황탄은 어디서 캐는 건가요?”

“황탄은 자연 상태로 나오지 않습니다. 만드는 겁니다. 석탄, 석유, 황토를 섞은 뒤에 마법 처리를 거쳐 생산됩니다.”

“황탄의 화력이 강한 것이 마법의 영향이군요.”

황탄이라는 광물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 광물을 섞어서 만든 가공 제품이었다.

창수는 황탄이 마법의 산물이라는 걸 알고, 뛰어난 성능을 이해하게 됐다.

“그렇습니다. 황탄은 녹색마탑의 위대한 발명품입니다. 일반 석탄보다 화력이 4배 이상 강하고, 유독가스도 나오지 않습니다.”

“사용할 때는 유독가스가 나오지 않지만, 만들 때는 유해가스가 나오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만들 때 탄산을 흡수해서, 공장 근처 공기가 아주 맑습니다. 탄산을 너무 빨아들여 주변에 농사가 잘 안될 정도입니다. 그래서 황탄 공장은 곡창지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헉! 대박!’

황탄은 화력이 좋을 뿐만 아니라 연소 과정에서 가스가 발생하지 않아, 밀폐된 공간에서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

아이신 상단이 보유한 증기화물선의 연료가 황탄이라, 효용성과 안전성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가격도 비교적 저렴해, 서민들도 사용할 수 있는 뛰어난 에너지원이다. 이것만 해도 슈퍼 연료라 불릴 만하다.

그런데 생산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단다.

창수는 황탄이 대박 아이템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 * *

“녹탑 지부 규모가 대단하군요.”

“선양시 면적의 1/5입니다. 웬만한 지방 도시보다 큽니다.”

1월 23일 월요일, 창수는 고사누와 함께 녹색마탑 선양 지부를 방문했다. 이곳은 선양 동쪽에 위치하며, 면적이 303km²에 달한다.

“경비가 삼엄하고 도시 정비가 잘돼 있군요. 마치 독립된 도시국가에 들어온 것 같네요.”

“바로 보셨습니다. 이곳에 거주하는 인구가 30만 명에 달합니다. 그중에서 27만 명이 금나라 사람이지만, 대부분 녹색마탑 주민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녹색마탑 지부는 높이 20m에 달하는 장벽으로 선양시와 구분돼 있다.

정문에는 창과 소총 그리고 마법으로 무장한 200명에 달하는 병력이 상시 대기하고 있었다. 웬만한 병력으로 단숨에 돌파하기 어려운 중무장.

그리고 선양 지부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체크하고 검색했다. 5서클 유저 고사누와 함께 온 창수는 몸수색을 면했으나, 원칙적으로 금나라 귀족도 몸수색을 받아야 한단다.

정문의 조사 강도가 타국을 방문하는 출입국 검사보다 엄했다.

서울 절반 면적, 30만 명에 달하는 인구. 녹색마탑은 선양 인근에 도시국가를 건설한 것이다.

“금나라 왕실에서 녹탑을 눈엣가시로 여길 만하네요. 영토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일 테니까요.”

“인재 유출도 심각합니다. 금나라의 유능한 인재들이 녹색마탑의 주민이 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인재들이라면 금나라에서도 대우가 좋지 않은가요?”

“녹색마탑이 지원을 더 많이 해 주고 자유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력이 출중하면, 녹색마탑 본부를 포함해 전 세계 원하는 지부로 갈 수 있습니다.”

“허허. 그 정도라면 인재들이 녹탑으로 몰릴 만하네요. 인간에게 자유만큼 매력적인 것이 없죠.”

금나라는 신분 차별이 심하고, 약육강식 힘의 논리가 횡행하는 곳이다. 녹색마탑의 주민이 되면, 자유와 안전을 보장받는다.

게다가 실력을 인정받으면, 녹색마탑의 후원을 받으며 세계 어느 곳이라도 갈 수 있다. 금나라 인재들이 녹색마탑으로 몰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

“금나라 왕실과 귀족은 가능하면 녹색마탑의 세력이 커지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누리는 안락한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녹색마탑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녹탑 무력도 상당하겠죠?”

“그렇습니다. 금나라가 전력을 쏟아부어도 녹색마탑에 승리하기 어려울 겁니다.”

녹색마탑에 영토와 인재를 빼앗기고 있음에도 금나라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것은 온전히 실력 때문이다.

녹색마탑의 마법 없이 금나라가 유지되기 어렵고, 전쟁을 벌여도 이길 확률이 높지 않다. 금나라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금나라가 녹색마탑 대신 다른 메이저 마탑을 받아들일 수 있으나, 쓸 만한 대안이 못 된다.

힘자랑을 꺼리고 외부 활동을 자제하는 녹색마탑이기에 그나마 부작용이 덜한 거니까.

* * *

“처음 뵙습니다. 김창수라고 합니다.”

“칭송이 자자한 영웅을 직접 만나게 돼 영광입니다. 저는 선양 지부를 책임지고 있는 엘레크라고 합니다.”

“과찬이십니다. 녹색마탑의 차기 주인께서 환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엘레크는 녹색마탑주의 3번째 제자이며 5서클 익스퍼트 경지에 오른 마법사다. 상황 판단력이 뛰어나고 경제적 감각이 있어, 사형과 사제를 제치고 후계자로 낙점받았다.

선양에서 창수의 명성이 대단하다고 하지만, 메이저 마탑의 실질적인 2인자가 극찬하는 건 보기 드문 환대라 할 수 있다.

“외부에 알려진 만큼 제 입지가 탄탄한 건 아닙니다. 김창수 님께서 도와주시면, 큰 힘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고사누 님께 이미 말씀드린 대로, 랴오쩌 개발에 필요한 마법물품 상당량을 녹색마탑에서 지원받을 계획입니다.”

“우리 녹탑을 선택해 주신 점 감사합니다. 그런데 정말 핵심적인 사업은 암브로시아 판매 아닐까요?”

‘호! 이 양반 보통내기가 아닌데!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훅 치고 들어오네!’

마법사 대부분이 외골수에 자기중심적인 행동을 한다.

그런데 엘레크는 달랐다. 창수를 띄워 주고 자신의 약점을 일정 부분 보여 주면서, 필요한 부분을 기분 나쁘지 않은 방법으로 요구했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여행사를 운영하며 적지 않은 사람을 상대해 본 창수는, 엘레크가 선천적으로 뛰어난 협상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바로 알아봤다.

“암브로시아 판매는 아이신 상단에 우선권이 있습니다. 사탕수수를 구하는 데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아서 보답해야 합니다.”

“역시 김창수 님은 신의를 아시는군요. 당연히 아이신 상단이 우선권을 가져야죠. 제가 말씀드리는 건 아이신 상단이 접촉하지 못하는 다른 지역에 관한 것입니다.”

“음……. 어느 지역 판매권을 원하십니까?”

“유럽과 신대륙 그리고 무굴제국의 암브로시아 판매권을 얻고 싶습니다. 이 지역은 아이신 상단이 거래하지 않는 곳이라 알고 있습니다.”

엘레크는 치밀했다. 아이신 상단의 영향력이 적은 지역 중에서 알짜배기를 고른 것.

만약 창수가 엘레크의 청을 들어주면, 설탕 소비량이 높은 유럽과 남북아메리카 그리고 인구 강국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 지역을 할당받게 된다.

암브로시아 판매량에서 아이신 상단을 능가할 가능성이 크다.

“무굴은 제외하시고, 러시아와 오스만 지역 판매권을 추가로 가지는 건 어떨까요? 현재 아이신 상단에서 무굴 상단과 접촉 중입니다.”

“아! 그렇군요. 제가 정보가 늦었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우리 녹탑이 유럽, 신대륙, 러시아 제국 그리고 오스만 제국에 대한 암브로시아 판매권을 받겠습니다.”

엄청난 순발력이다. 엘레크는 마치 창수의 역제안을 예상이라도 한 듯이, 조금도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어쩌면 아이신 상단이 무굴 상단과 협상을 벌인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일부러 무굴 지역 판매권을 언급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시죠. 좋은 선택입니다.”

“하하하. 역시 김창수 님은 영웅답게 화통하시군요. 덕분에 녹탑에서 제 입지가 강화될 겁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녹색마탑과 추가로 협력할 사업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말씀하십시오. 제가 처리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겠습니다.”

성공적인 협상이 이루어진 순간, 창수가 우호적인 분위기를 놓치지 않고, 오늘 엘레크를 찾아온 핵심 사안을 꺼내 들었다.

노련한 엘레크는 창수의 기습적인 제안에 뜨끔하면서도, 외교적인 화법을 사용하며 빠져나갈 여지를 남겼다.

자기 힘으로 처리할 수 없는 일이라면,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의미.

“황탄을 제조해 판매하고 싶습니다.”

“아……. 황탄은 제힘으로 어쩔 수 없는 품목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스승님도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고, 원로회에서 2/3이 넘는 찬성을 받아야 외부 판매가 가능합니다. 더구나 제조는…….”

황탄은 150년 전 군소 마탑에 머물렀던 녹색마탑이 일약 메이저 마탑으로 성장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보물이다.

엘레크가 일부러 협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12명으로 구성된 원로회에서 8명 이상 찬성표를 받아야 판매권을 준다.

더구나 황탄을 제조하는 권한은 150년 이래 단 한 번도 외부에 주어진 적이 없다.

암브로시아 판매권이 소중하기는 하지만, 엘레크의 힘으로 황탄 제조 권한을 창수에게 줄 수 없다.

“황탄이 녹색마탑의 보물이라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상응하는 보물을 드리려 합니다.”

- 척!

“헉! 이… 이건!”

창수는 고사누로부터 황탄이 녹색마탑에서 받는 대접과 가치를 자세히 파악했다.

암브로시아 판매권으로 황탄 제조권을 얻기 어렵다고 판단한 창수는 녹색마탑이 거절하기 어려운 물품을 준비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 물품을 본 엘레크는 격한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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