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30장. 해룡방과 천살단
4.
“주군, 고속 소형정 10척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1월 10일, 오후 2시, 점심 식사 뒤 잠시 눈을 붙이고 있는 창수에게 츠네가 추적자의 등장을 알렸다.
“소형정이 따라온다고? 시마즈 함대는 물러간 것 아닌가?”
시마즈 정찰정 10척은 해룡방이 수장된 해역 인근을 수색하다 오전 9시경 퇴각했다. 그리고 오전 11시에 시마즈 함대 전체가 동쪽으로 이동했다.
고정익 드론을 통해 이 과정을 직접 지켜본 창수는 시마즈 함대가 추격을 포기하고 사쓰마 번으로 복귀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3시간이 지난 뒤 고속 소형정 10척이 고정익 드론의 감시에 포착된 것이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 들 수 없다.
“시마즈 함대는 정찰 범위에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지금 다가오는 소형정들은 서쪽에서 출현한 것입니다.”
“해룡방 잔당인가? 츠네, 전투 과정에서 도주한 해룡방 소형정이 얼마나 되지?”
“모두 7척입니다.”
“숫자가 모자라는군. 그렇다면 해룡방 배후에 있던 놈이 예비대를 보낸 건가?”
고정익 드론의 정찰 반경은 100km. 시마즈 함대는 그 범위를 벗어나 동쪽 사쓰마 번 방향으로 갔고, 새롭게 등장한 소형정 10척은 상하이 방면에서 온 것이다.
해룡방 1급 전열함이 침몰하기 전 다수의 구명정과 고속 소형정 2척이 탈출했다. 나머지 전투함 5척에서 빠져나온 고속 소형정은 고작 5척.
이들이 도주하다가 생각을 바꿔 아이신 상단을 추적한다고 해도 3척이 추가돼야 한다.
최소 3척에서 어쩌면 10척 전부 시마즈 함대 소속도 아니고 해룡방 소속도 아닐 가능성이 높다. 창수는 이 소형정들의 정체가 해룡방의 배후 세력이 보낸 추가 병력이라 판단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소형정 내부 움직임을 자세히 살펴봐야겠어. 지휘 체계가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우리를 어떤 방법으로 따라오고 있는지 알아봐야 해.”
“알겠습니다, 주군. 자세히 감시하겠습니다.”
소형정들이 맹렬한 속도로 아이신 상단을 추격하고 있다. 적의를 가진 것이 분명하다.
새로운 적이 출현했다면, 정보를 취합해 대응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 먼저 해야 할 일. 게다가 어떤 방법으로 소형정들이 아이신 상단을 추적하고 있는지도 밝혀내야 한다.
창수는 언제나 그렇듯 자신이 가진 독보적인 힘, 정찰을 통해 달려드는 불나방을 상대했다.
* * *
- 통통통!
- 슈우욱!
“단주님! 목표가 육안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흥! 굼벵이 놈들! 도망가 봐야 천살단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지!”
오후 5시 30분, 일몰을 27분 남겨 둔 시점에서 고속 소형정에 탑승한 추적자들의 눈에 아이신 상단의 증기화물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25리 떨어진 거리입니다. 전투 준비할까요?”
“아직은 아니야.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다가가야 해. 너무 가까이 가면 야인들이 눈치챌 수 있어.”
해상에서 수평선 길이는 4.5km지만, 해수면 위에서 8m 높이를 가진 증기화물선이 해상에서 포착되는 거리는 10km에 이른다.
화물선의 높이가 수평선 길이를 늘인 것. 그리고 이건 역으로 화물선에서 고속정을 발견할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났다는 걸 의미한다.
고속정의 크기가 7.5m에 불과하기에 웬만큼 집중하지 않으면, 10km 밖에서 발견하기 어렵다.
하지만 아이신 상단이 진류방과 시마즈 3전대에 이어, 강력한 전력을 가진 해룡방을 연파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천살단 단주 닝이천은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조만간 해가 집니다.”
“완전히 해가 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아.”
“하지만 해룡방의 말에 따르면, 야인들이 야간전투에 능하다고 합니다.”
“덩치만 믿고 거들먹거리는 해룡방 멍청이들과 우리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자는 건가?”
“그럴 리가 있습니까? 다만 야인들의 전투 능력을 낮잡아 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검기를 다룰 줄 알아. 야간에 전투를 벌이면 야인은 절대로 우리 상대가 되지 못해. 게다가 지금 접근하면, 야인의 대포에 당할 수 있어. 그걸 생각 못하는 건가?”
“그건…….”
검에 마나를 집어넣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른 자를 2류 무사라고 부른다. 기초 단계라도 마나를 사용할 수 있기에 칠흑 같은 야간에서 적과 아군을 어렴풋이나마 구분할 수 있고, 장애물을 피할 수 있다.
천살단은 모두 2류 무사 이상 능력자로 구성돼 있다. 마나 사용을 못 하는 일반인과 야간에 전투를 벌이면, 압도적으로 승리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증기화물선에 접근하면, 포격을 받을 수 있다. 아이신 상단 포병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상황에서 위험을 무릅쓸 이유가 없다.
단주의 말에 부단주 관시엔은 마땅한 반론을 내놓지 못했다.
“노을이 완전히 진 후 공격을 시작할 거야. 단원들에게 준비하라고 지시해.”
“알겠습니다, 단주님.”
현재 상황에선 단주의 명령이 합리적이다. 부단주는 꺼림칙한 느낌이 들면서도, 지시를 따라야 했다.
* * *
- 통통! 통통!
“단주님! 이제 10리 남았습니다!”
“하오! 지금 속도로 이동하다가, 1리 남으면 전속력으로 전진한다!”
1월 10일 오후 8시, 천살단이 속도를 죽이며 아이신 상단과 4km 떨어진 거리에 도착했다.
조용한 밤바다에선 작은 소리도 멀리 퍼진다. 속도를 높여 증기기관 소리가 크게 나면 기습이 들통날 수 있기에, 페이스를 조절하는 거다.
닝이천이 400m에 접근한 이후 최고 속력을 내라고 지시한 것은, 탐지에 걸릴 것을 각오하고 돌진하라는 의미.
“예! 지시대…….”
- 쾅! 풍! 풍!
- 콰쾅!
부단주 관시엔도 단주의 지시가 합당하다고 생각하며, 지시를 실행하려는 순간 포탄이 날아왔다.
“산개해! 모두 포탄을 조심해!”
기습당한 닝이천은 속으로 놀라면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포격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은 상황. 날아온 포탄 숫자는 모두 24발, 그중에서 3발이 고속정 3척에 명중해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길이 7.5m에 불과한 작은 고속정에 포탄이 직격하자, 탑승자 전원이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단주님! 적에게 발각됐습니다! 우리 움직임을 훤히 보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빌어먹을! 야인 놈들 함정에 빠진 거구만! 어쩔 수 없다! 전속력으로 전진해!”
신중함이 오히려 독이 됐다. 증기화물선과 고속정의 속도 차이가 크지 않아 포격의 정확성이 높아진 거다. 만약 속도를 죽이지 않고 정상 속도로 접근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터.
부단주 관시엔은 아이신 상단이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이용해 천살단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이신 상단의 야간전투 능력을 무시한 단주에게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천살단주 닝이천은 자신이 판단 착오했다는 걸 깨달았으나, 실수를 인정하는 대신 최고 속력으로 증기화물선에 접근하라고 명령했다.
위기를 벗어나 체면을 세울 요량.
- 통통통!
- 슈우욱!
- 풍덩! 풍덩! 풍덩!
속도를 올리고 650m 전진한 시점에서 2차 포탄들이 날아왔으나, 단 한 발도 천살단 고속정을 타격하지 못했다.
고속정 3척을 잃어 피해가 막심하지만, 닝이천의 신속한 판단으로 추가 피해를 막은 것.
“간악한 야인 놈들! 반드시 피의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
천살단이 사용하는 고속정은 진류방이 가지고 있던 소형정보다 출력이 높다. 중무장한 5명이 탑승하고도 27km/h 속도를 낼 수 있다.
오늘 작전에 동원된 인원은 모두 50명, 진류방이 보유한 전력 8할을 투입했다.
그런데 단 한 번의 포격으로 15명을 눈 깜짝할 사이에 잃어버렸다. 지난 3년간 입은 인명 손실을 순식간에 당한 닝이천은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했다.
하지만 시시비비를 따지면 아이신 상단을 증오하는 천살단주의 행동은 무능력한 푸념이라 할 수 있다.
부단주 관시엔은 닝이천의 언행에 살짝 얼굴을 찌푸리며, 무관심한 듯 작전에 집중했다.
“뭐야!? 썅…….”
단주가 결의를 보이면, 부단주가 맞장구쳐 주는 것이 국룰이다. 무안을 당했다고 생각한 닝이천이 관시엔에게 분노를 터트리려는 순간.
- 쾅!
- 콰쾅!
어둠 속에서 날아온 포탄 하나가 단주와 부단주가 탑승한 고속정을 타격했다.
고속정 옆면을 강타한 탄두가 폭발을 일으키며 강한 열 풍압을 만들어 냈고, 탑승 인원 5명을 공중으로 날려 버렸다.
‘잔챙이 사냥은 열 압력탄이 최고군. 위력이 어마어마해.’
천살단 대장선을 공격한 건 창수였다. 고정익 드론과 정찰 드론으로 꾸준히 관찰한 결과 닝이천이 지휘자라는 걸 알고, 매복하고 있다가 공격을 가한 것.
창수가 사용한 무기는 RPG-7이지만, 탄두는 관통력에 중점을 둔 대전차 고폭탄이 아니라, 분진폭발 형태를 가진 특수탄이다.
열 압력탄은 프로필렌 같은 인화성 물질을 담아 목표물 주변에 확산시킨 뒤, 증기를 폭발시키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 과정에 강력한 열 폭풍이 발생해 건물도 날려 버리는 파괴력을 보인다. 관통력이 약한 것이 단점이지만, 7.5m 길이를 가진 고속정이 버텨 낼 수 없는 위력을 보여 줬다.
- 퓽!
- 쾅!
- 콰쾅!
대장선이 파괴되고 단주와 부단주의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자, 천살단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전진을 멈추고 고속정에 배치된 조장들이 대응책을 마련하려고 의견을 주고받은 것.
창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연속해서 열 압력 탄두를 날려 보냈다.
- 통통통!
- 스륵! 샤악!
대장선이 침몰한 시점에서 천살단의 작전은 실패한 거다. 추가로 3척이 침몰하자, 상황을 깨달은 나머지 고속정 3척이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살아남은 조장 중에 머리가 돌아가는 자가 있었는지, 지그재그 형태를 띠며 경로를 변경해 생존율을 높였다. 더구나 3방향으로 갈라져 도주하는 영리함까지 보였다.
창수는 고무보트를 이용해 추격전을 벌였으나, 츠네와 동승하고 있기에 이동속도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1시간을 추격했지만, 추가로 고속정 1척을 격침하는 것에 만족하고, 매복 작전을 마쳤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김창수 님! 그리고 번번이 죄송합니다.”
고속정 10척 중 2척을 놓치기는 했으나, 8척을 격침한 건 대승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아이신 상단이 포격으로 3척을 제거했기에, 승리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한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무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창수에게 지워진 짐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아닙니다. 제가 원해서 시작한 상행입니다. 몰려드는 진드기를 처리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이번 상행에서 받은 도움 선양으로 돌아가서 반드시 갚겠습니다.”
“저도 타무 님과 아이신 상단의 도움을 잊지 않겠습니다.”
아마도 사탕수수 수송을 방해하는 세력과의 전투는 이번이 마지막이리라.
길고 힘들었던 상행의 끝이 다가오자, 창수와 타무는 미래에 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원수처럼 지내던 사이라도 여러 차례 힘을 합해 전투를 벌이면, 신뢰가 쌓이고 정이 들게 마련이다.
더구나 창수와 타무는 서로 존중하는 관계였다. 이번 상행을 계기로 친밀한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는 건 당연한 일.
* * *
“주군, 남쪽에서 고속정이 다가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