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30장. 해룡방과 천살단
3.
<타무 님, 이대로 해룡방을 공략해도 될 듯합니다.>
<먼저 시마즈 함대를 견제해야 하지 않을까요?>
<전투함들이 방어진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속 소형정을 더 투입해 주변 정찰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침투가 어려워 보입니다.>
시마즈 함대는 중앙에 2급 전열함을 배치하고 주위를 전투함 9척으로 둘러쌌다. 아이신 상단이 어떤 방향으로 공격해도 대응할 수 있는 형태.
그리고 소형정 10척을 추가 투입해 주변 해역을 샅샅이 뒤지고 있다. 창수가 소형정의 눈을 피해 시마즈 함대 전투함 인근으로 접근하는 것이 쉽지 않다.
설령 창수가 위험을 무릅쓰고 침투해 시마즈 전투함의 기관실을 파괴한다고 해도, 사각이 없는 시마즈 함대 화력을 아이신 상단이 상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해룡방과 전투를 벌이지 말고 그냥 지나치는 건 어떨까요?>
<해룡방 전투함이 기관실 수리를 마치고 우리를 추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최소한 전열함만이라도 여기서 격침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시마즈 함대의 개입은 염려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이신 상단 증기화물선들은 해룡방 선단에서 남쪽으로 15km 거리에 대기하고 있다. 해룡방이 경계를 게을리 했기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던 것.
타무는 시마즈 함대를 공격할 수 없다면, 해룡방과 전투를 벌이지 말고 우회해서 북상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해룡방을 공격하는 와중에 동쪽으로 40km 떨어진 곳에 있는 시마즈 함대가 전투에 개입하면, 큰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수의 판단은 달랐다.
<대책을 가지고 계신 건가요?>
<시마즈 함대가 방어진을 풀면, 제가 공격할 수 있는 틈이 생깁니다. 시마즈 함대도 그걸 알고 있을 거라 봅니다.>
<아! 김창수 님 때문에 우리가 해룡방을 공격해도 움직이지 못하는 거군요.>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계획대로 해룡방을 공략하십시오. 제가 시마즈 함대의 움직임을 지켜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즉시 이동을 시작하겠습니다!>
창수가 시마즈 함대를 공격하지 않은 건 견고한 방어진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방어진을 허물지 않고 시마즈가 함대가 해룡방을 도울 방법은 없다.
창수는 시마즈 함대가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면, 즉시 공격할 예정이다.
20척에 달하는 소형정이 성가시지만, 고무보트가 속도와 정숙성에서 압도적으로 뛰어나기에, 틈을 보인 시마즈 함대 진영으로 침투해 2급 전열함을 타격하고 전장을 이탈할 수 있다.
2급 전열함의 기관실이 파괴되면, 시마즈 함대의 전력이 대폭 저하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같은 전법을 3~4차례만 반복해도 시마즈 함대의 전투 의지가 꺾일 거다.
타무는 창수의 정보력과 통찰력에 다시 한번 감탄하며, 증기화물선에 진격 명령을 내렸다.
* * *
“사령관님, 해룡방에서 구원 요청을 보내고 있습니다.”
“무시하게. 멍청한 놈들이 자업자득으로 벌인 일에 우리가 말려들 수 없네.”
1월 10일 오전 5시, 아이신 상단이 포격을 시작하자, 해룡방이 시마즈 함대에 참전을 요청했다.
하지만 시마즈 1함대 사령관 나카모리 하야조는 해룡방의 도움 요청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해룡방이 경계에 소홀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야인들의 악랄함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뭐가 악랄하다는 건가?”
“예!? 그거야……. 야인들이 비겁하게 야밤에…….”
“당한 놈이 멍청한 걸세! 전장은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는 곳이네! 어둠을 이용해 적을 공격하는 건 효율적인 공격 방법이지! 그걸 비겁하다고 말하는 건 패배자의 변명에 불과해!”
시마즈 1함대가 이곳까지 온 이유는 3전대가 전멸당하는 치욕을 만회하기 위해서다.
3전대를 완파한 아이신 상단에 적개심을 가진 건 자연스러운 일. 1함대 부관은 야간 기습에 당한 해룡방에 측은함(?)을 느끼며, 아이신 상단을 비방했다.
그러나 사령관의 반응은 달랐다. 기습한 아이신 상단이 아니라 기습을 허용한 해룡방을 비난한 것.
“하지만 사령관님, 우리 함대는 해룡방과 협력해서 야인들을 격파하라고 지시받았습니다.”
“해룡방을 돕지 않으면 명령 불복종이라는 말을 하려는 건가?”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명령 불복종은 군인에게 금기된 행동으로, 전투 상황에서 즉결 처분 대상이 된다. 부관은 상부의 지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해룡방의 위기를 나 몰라라 하는 나카모리 하야조의 언행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이런. 자네는 한참 멀었군.”
“무슨 말씀이신지…….”
“본영에서 해룡방과 협력하라고 지시한 건, 1급 전열함을 보유한 그자들의 전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야. 해룡방의 형편없는 실력이 드러난 지금, 지시의 근거가 사라진 걸세.”
“본영의 명령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함대는 사쓰마 번의 주력이야. 해적 나부랭이를 돕기 위해 나섰다가 치명상을 당하면, 주군께서 잘했다고 칭찬할까?”
1함대가 본영의 지휘하에 있지만, 전력을 보존하는 책임은 사령관 나카모리 하야조에게 있다. 더구나 1함대는 본영의 군대가 아니고 시마즈 가문의 군대다.
실전과 동떨어진 본영의 판단 착오를 현장에서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 함대 사령관의 권한.
“해룡방만 돕는 것이 아닙니다. 3전대의 원한을 갚기 위해서라도 지금 출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해룡방 전력이 건재하다면, 야인들과 전투를 벌일 만하지. 하지만 해룡방은 괴멸 직전이야. 우리가 전투에 돌입할 즘에는 전멸당할 것이 뻔해.”
“그러니 늦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는 겁니다.”
“이미 늦었어. 지금 우리가 움직이면, 야간에 야인들을 상대하다가 전멸한 3전대와 똑같은 패배를 당할 가능성이 높아. 자네는 그 위험성을 생각 안 하는 건가?”
“그… 그거야…….”
“자네의 언동은 돌격대에 어울리는 걸세. 그러나 대함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부관으로서는 한참 모자란 거지.”
“…….”
“자네는 좀 더 경험을 쌓아야 해. 그래서 탓할 생각이 없네. 하지만 내 생각은 확고하네. 동이 틀 때까지 우리 함대는 여기서 자리를 지켜야 해.”
나카모리 하야조는 상대방의 힘을 알아보는 선천적인 감각을 가졌다. 30년간 수많은 전투를 치르면서 목숨을 부지하도록 만들어 준 그 감각이 야간 전투를 말리고 있다.
1함대가 막강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야간 전투를 완벽하게 소화할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방어진을 푸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를 바 없다.
부관을 비롯한 1함대 참모진은 사령관 나카모리 하야조의 단호한 명령을 따라야 했다.
* * *
- 쾅!
- 콰쾅!
- 슈르륵!
<김창수 님! 해룡방 전투함을 모두 격침했습니다!>
한 시간에 걸쳐 일방적인 포격을 가한 아이신 상단은 1급 전열함을 포함해 해룡방 전투함 6척을 모두 수장시켰다.
시마즈 3전대를 완파한 뒤 이틀 만에 거둔 또 다른 대승. 전투를 지휘한 타무는 이 소식을 즉시 창수에게 알렸다.
현재 창수는 시마즈 함대 견제를 위해 동쪽에 대기 중이다. 정찰 드론 4대를 투입해 시마즈 함대를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있기에 해룡방 전투 과정을 모르는 상황.
<축하드립니다, 타무 님. 다시 한번 대승을 거두셨군요.>
<아닙니다! 축하받아야 할 분은 김창수 님입니다! 승리의 진정한 주역이니까요!>
하지만 전투 결과는 뻔하다. 창수는 들뜬 타무와 달리 차분한 어조로 승전을 축하했다. 그러자 자기가 오버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타무가 창수를 격하게 띄워 준다.
창수의 야간 침투 공격 없다면, 아이신 상단 힘으로 해룡방에 승리할 가능성이 0%에 수렴하기에, 타무의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리 모두가 주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능한 한 빠르게 이동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시마즈 함대가 참전하려고 하나요?>
<아직은 아닙니다. 하지만 소형정들이 조금씩 서진하고 있습니다. 동이 트는 대로 해룡방 상황을 정찰하기 위해 움직일 듯 보입니다.>
<머뭇거리다가 꼬리가 잡힐 수 있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시마즈 함대의 대응이 만만치 않습니다. 어둠이 가시기 전에 충분히 거리를 벌려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즉시, 이동을 시작하겠습니다.>
2023년 1월 10일, 이 지역 일출 시간은 오전 7시 35분이다. 일출 전 여명을 고려하면, 어둠의 유효기간이 한 시간 남짓 남아 있다.
야간 전투가 아니라면, 고작 대포 24문을 보유한 아이신 상단은 시마즈 함대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시마즈 함대는 대포 82문을 보유한 2급 전열함을 포함해, 대포 352문을 보유하고 있다.
증기화물선과 전투함의 기동력 차이를 무시한다고 해도, 화력 싸움에서 이길 수 없는 강적이다.
창수는 해룡방에 완승을 거둔 성취감이 만용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다가오는 위험을 알렸다.
정신 차린 타무는 창수의 경고를 알아듣고, 곧바로 북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 * *
아이신 1호선에 복귀한 창수는 쉬지 않고 곧바로 정찰에 집중했다.
그리고 오전 8시, 시마즈 함대 소속 고속정 10척이 전투가 벌어진 장소에 도착한 것을 고정익 드론이 보내온 영상을 통해 확인하게 됐다.
“타무 님, 시마즈 소형정들이 해룡방 침몰 해역을 수색하고 있습니다.”
“우리하고 거리가 얼마나 떨어진 건가요?”
“약 70리입니다.”
“생각보다 가깝군요. 시마즈 함대 본대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아이신 상단은 2시간 전에 최대속력을 내며 전투 현장을 이탈했다. 일부에서 해룡방 전투함 6척이 침몰하면서 남긴 부스러기라도 챙겨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창수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타무가 일축하고 이동을 강행한 것.
그런데도 아이신 상단과 시마즈 소형정의 거리는 불과 28km로 줄어들었다. 가슴이 서늘해진 타무는 창수에게 시마즈 함대 주력의 움직임을 물었다.
“160리 떨어진 거리에서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정찰을 마치고 움직이려는 건가요?”
“그렇게 보입니다. 소형정들이 정보 파악에 중점을 두고 있으니까요.”
“서둘러 이동해서 다행이군요. 만약 김창수 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면, 시마즈 정찰대에 꼬리를 잡혔을 겁니다.”
전리품을 챙기려고 전투 해역에 머물렀다면, 시마즈 소형정에게 위치가 발각됐을 거다. 그러면 40km 동쪽에 있는 시마즈 함대 본대가 방어진을 풀고 아이신 상단을 추격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이동속도가 느린 증기화물선이 시마즈 전투함에 따라잡히는 건 시간문제.
타무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창수의 경고를 받아들인 것이 최상의 선택이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타무 님께서 신속하게 결단한 것이 주효했습니다. 앞으로 2~3시간 간격을 더 벌리면, 시마즈 함대의 추격을 걱정 안 해도 될 겁니다.”
“그렇군요. 선장들에게 긴장을 늦추지 말고 전진하라고 지시하겠습니다.”
지금 시마즈 정찰선들은 함대 본대에서 40km 떨어져 있다. 거리가 50km 이상 멀어질 때, 단거리 통신이 어렵다는 걸 고려하면, 현재의 28km 거리를 두 배만 늘려도 추격을 피할 수 있다.
확실한 생로를 파악한 타무는 증기화물선 선장들을 독려하며, 북쪽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