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30장. 해룡방과 천살단
1.
이치마루를 향해 날아온 건 아이신 1호에서 발사한 포탄 8발이었다.
- 쾅! 획! 쾅!
- 콰쾅! 풍덩! 콰쾅!
“끄아악!”
“우아아악!”
포탄 8발 중 6발이 이치마루를 타격했다. 명중률 75%로 해상 평균 적중률 30%를 월등히 앞선다.
이런 정확도가 나온 건 아이신 1호가 정지한 이치마루를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해가 완전히 뜬 상태에서 지상 목표를 공격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 명중률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
“피해 상황 보고해!”
“함미 갑판이 모두 날아가면서 대포 6문을 잃었습니다! 게다가 갑판 전체가 뒤틀려 다른 대포를 빼 올 수도 없습니다!”
“칙쇼! 저주받을 야인 놈들!”
“전대장님! 퇴각해야 합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습니다!”
“포기하기는 일러! 아군 함의 지원을 받으면 충분히 싸울 수 있어!”
강철로 만들어진 전투함이 튼튼하다고 하지만, 포탄 6발을 맞고도 버틸 재간은 없다.
초탄 공격으로 이치마루의 전투 기능은 대부분 정지된 상태. 부관은 배를 버리고 탈출할 것을 조언했다.
그러나 3전대장 호케츠 타마후미는 끝까지 항전 의지를 꺾지 않았다. 탈출해서 목숨을 건져 봐야, 혹독한 처벌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여기서 죽는 것이 해피 엔딩.
“아야나미를 제외하고 다른 전투함도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아야나미가 전투 불능이라는 걸 알고, 야인 놈들이 일부러 공격 안 한 건가?”
“그렇다고 봐야 합니다!”
“어떤 놈이야!? 어떤 놈이 정보를 빼돌린 거야!? 당장 찾아내!”
아야나미는 시마즈 전투함 4척 중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창수가 발사한 RPG-7이 증기기관 핵심부를 정확히 타격하면서 2차 폭발이 발생한 것.
아이신 상단은 시마즈 3전대의 취약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공격하고 있는 거다.
그런데 동이 트기 전에 발생한 사건을 어떻게 알고, 아이신 상단이 아야나미를 가려낸 것일까?
호케츠 타마후미는 내부의 간자가 아이신 상단에 정보를 넘겼다고 판단했다.
“지금 색출할 방법이 없습니다!”
공격받아 아수라장인 상황에서 어떤 방법으로 간자를 집어낸다는 건가?
부관은 황망한 목소리로 현실을 일깨웠다.
“요시! 모든 전투함에 퇴각 명령을 내려! 우리 3전대를 위기로 몰아넣은 간자는 후퇴한 뒤 색출한다!”
“알겠습니다! 전대장님!”
한 가닥 희망을 발견한 호케츠 타마후미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졌다.
3전대에 배속된 병력 중에서 자신이 직접 뽑은 인원은 10%가 되지 않는다. 간자가 침투했다면, 그 책임을 타인에게 떠넘길 수 있다.
전투함 7척을 모두 잃었기에 처벌을 피할 수 없겠지만, 간자를 걸고넘어지면, 목숨을 건질 가능성이 적으나마 존재한다.
비록 그 확률이 매우 낮더라도 잡고 싶은 것이 호케츠 타마후미의 심정.
상관의 마음을 읽은 것일까? 부관은 적극적으로 퇴각 명령을 받아들였다.
- 통! 통! 통!
- 슈우욱!
명령받은 3전대 전투함 4척 생존자들이 소형정을 타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타무 님, 시마즈 병력이 퇴각하고 있습니다.”
“예상보다 포기가 빠르군요. 추적할까요?”
“거리가 멀어서 추적이 쉽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여기는 적진입니다. 시마즈가 증원군을 파견하기 전에 떠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추격 불가를 조언하는 창수.
아이신 상단 증기화물선과 도주하는 시마즈 소형정과의 거리는 약 3.7km. 증기화물선이 따라잡기 어렵고, 사정거리 내에서 대포를 발사할 기회도 한 번에 불과하다.
시마즈 병력과 다시 조우해야 한다면, 끝까지 추적하는 것이 옳지만, 지금은 류큐 인근을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군요. 그러면 시마즈 전투함은 놔두고 이동을 시작할까요?”
“적함은 확실하게 처리하는 것이 사기 진작에 좋을 거라 봅니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습니다. 가능한 한 빠르게 침몰시키겠습니다.”
전투함 4척을 침몰시키려면, 포탄과 화약 그리고 시간이 소모된다. 그러나 전투를 어정쩡하게 끝내면, 아이신 상단 병력의 사기가 떨어지고, 도주했던 시마즈 병력의 사기가 올라갈 거다.
타무는 창수가 우려하는 것을 바로 알아차리고, 포격을 지속했다.
- 콰쾅! 콰쾅!
- 수르륵!
- 와! 우리가 이겼다!
- 간악한 왜구 놈들아! 포탄 맛이 어떠냐!?
- 화물선 3척으로 왜구 전투함 7척을 격침했어! 이건 기적이야!
- 암! 기적이고말고! 타무 님의 탁월한 지휘가 있어서 가능한 거야!
- 당연하지! 그리고 대영웅 김창수 님의 활약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야!
마지막 시마즈 전투함이 폭발을 일으키며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가자, 아이신 상단 병력이 환호성을 질렀다.
무를 숭상하는 금나라 풍습에서, 압도적으로 전력이 강한 상대를 완파한 건 커다란 영광이다.
더구나 아이신 상단 측은 사망자는커녕 단 한 명의 부상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문자 그대로 완벽한 승리.
그리고 이 대승은 그들 평생, 아니 어쩌면 그들이 죽은 이후에도 후손들에 의해 무용담으로 전해질 거다.
아이신 상단 병력은 승리의 주역을 타무와 창수라고 여기고, 이름을 연호하며 환호했다.
사실 이번 전투에서 절대적인 공을 세운 것은 창수다. 하지만 고무보트와 RPG-7의 활약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타무와 동급으로 여긴 것이다.
- 슥!
- 끄덕!
양심에 찔린 타무가 겸연쩍은 얼굴로 창수를 쳐다봤다. 미안하다는 의미. 하지만 창수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양 말고 영광을 받으라는 뜻이다.
아이신 가문은 금나라 국성 아이신교로(애신각라)에서 따온 것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누루하치와 연결된다.
현재 금나라의 유력 가문의 하나며, 정치 경제 전반에 큰 힘을 가지고 있다.
타무가 이번 승리를 바탕으로 아이신 가문에서 입지를 강화면, 창수가 금나라에서 행하는 여러 사업에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창수의 공적을 온전히 인정받으려면, 고무보트와 RPG-7을 공개해야 한다. 이건 절대로 피해야 할 일.
창수는 공명심을 버리고 타무와 영광을 나누는 현명한 자세를 보여 줬다.
2.
열렬한 칭송에 화답하듯 타무가 아이신 상단 병력에 술과 고기를 풀었다. 승전 이후 거하게 잔치를 벌이는 금나라 풍습을 따른 것.
하지만 결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항해에 필요한 인력을 남겨, 증기화물선들이 최대한 빠른 속도로 금나라로 향하도록 조치했다.
그리고 2023년 1월 9일 오후 5시, 상하이에서 동쪽으로 250km 떨어진 지점을 지나게 됐다.
“타무 님, 북서쪽으로 200리 부근에 해룡방 전열함이 있습니다.”
“흠……. 공교롭군요. 마치 시마즈 함대와 공동작전을 펴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봐야 합니다. 시마즈와 해룡방이 우리가 이동할 길목을 틀어막는 것이 우연일 리 없습니다.”
현재 10척으로 구성된 시마즈 함대가 북동쪽 90km 부근에서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함대의 기함으로 보이는 전투함은 대포 82문을 가진 2급 전열함이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1급 전열함을 포함해 전투함 6척을 가진 해룡방과 합류해 아이신 상단의 진로를 틀어막을 거다.
창수와 타무는 해룡방과 시마즈 함대의 움직임이 동일한 목표를 겨냥한 합동작전이라고 판단했다.
그 목표가 아이신 상단 증기화물선이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
“이렇게 되면, 해룡방을 뚫고 지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이제 곧 어둠이 찾아옵니다. 달이 질 때를 기다리면, 우리에게 승산이 있습니다.”
오늘 일몰 시간은 오후 5시 58분이다. 고무보트와 RPG-7을 가진 창수가 다시 한번 활약할 무대가 곧 시작된다. 해룡방이 1급 전열함을 보유하고 있으나,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걸림돌은 보름달에 가까운 하현달이 새벽 3시 20분까지 밤하늘을 밝힌다는 것. 대낮보다 탐지 시야가 좁아진다 해도, 밝은 달은 창수가 가진 장점을 약화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
“속도를 줄여 해룡방에 천천히 접근할까요?”
“아닙니다. 천천히 이동하면, 시마즈 함대의 정찰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시마즈 함대는 3전대의 패배를 교훈 삼아 정찰을 강화했다. 고속 소형정 10척을 동원해 함대가 이동하는 전면을 정밀 탐색 하고 있고, 아이신 상단 증기화물선에 가장 근접한 소형정이 40km 밖에 있다.
만약 아이신 상단이 이동속도를 줄이면, 시마즈 함대에 덜미를 잡힐 수 있는 상황.
“그렇다면, 해룡방에 접근한 뒤 달이 지기를 기다려야 할까요?”
“서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시마즈 함대가 해룡방 인근에 도달하면, 전진을 멈출 겁니다. 우리는 해룡방 남쪽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달이 질 때 곧바로 공격하면 됩니다.”
“좋은 방안입니다. 즉시 서쪽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정보력이 앞서면 판단력도 상승한다. 창수는 정찰 드론과 고정익 드론이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최적의 대안을 내놨다.
타무는 자기가 생각하지 못한 공격 방법이지만, 넓은 시야를 가진 창수의 안목을 믿고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 * *
- 위이잉!
- 솨아아!
1월 10일 새벽 3시 30분, 달빛마저 사라져 완전히 깜깜해진 바다 위를 창수가 조종하는 고무보트가 미끄러지듯 달려갔다.
‘예상대로 해룡방과 시마즈가 손잡은 거야.’
현재 시마즈 함대는 해룡방에서 동쪽으로 40km 떨어진 해상에 있다. 창수의 예측대로 해룡방과 연계해 아이신 상단의 이동로를 막은 것.
‘해룡방은 경계가 없어 접근이 수월해. 하지만 시마즈 함대는 접근이 쉽지 않아, 동시에 둘을 처리하는 건 무리야.’
시마즈 함대는 정찰을 담당하던 소형정의 활동 반경을 10km로 줄이고, 방어에 치중하고 있다. 마치 창수가 야간에 기습하는 걸 대비하는 모습.
만약 시마즈 함대가 경계를 소홀히 했다면, 해룡방 전투함 6척을 처리한 이후, 연속해서 공격할 거다.
그러나 시마즈 함대의 경계망은 촘촘하고 조직적이다. 창수는 기습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해룡방이 공격받을 때 시마즈 함대가 지원할까? 아직 판단이 안 서는군. 어쨌든 부딪쳐 보면 알겠지.’
창수에게 놓인 선택지는 많지 않다. 그리고 가장 알기 쉬운 방안이 해룡방을 격파하는 것이다.
시마즈 함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대비하면서, 반응을 기다리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다.
창수는 복잡해지는 머릿속을 정리하고, 해룡방 공략에 집중했다.
- 팡!
- 슈우웅!
창수의 첫 번째 공격 목표는 1급 전열함. 700m 거리까지 접근한 뒤, 장갑이 가장 두터운 부분을 향해 RPG-7 탄두를 발사했다.
- 쾅!
- 콰쾅!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지만, 광학 조준경과 야시 장비 그리고 레이저 조준경을 갖추고 있다. 발사된 탄두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목표 지점을 타격했다.
그리고 들려오는 요란한 폭발음과 해룡방 전열함의 부산한 움직임.
‘후후후. 이제 와서 소형정을 내려야 무슨 소용이지?’
- 팡!
- 슈우웅!
- 쾅!
- 콰쾅!
창수는 경계에 소홀한 해룡방이 사후약방문식 반응을 보이는 것을 비웃으며, 추가로 탄두 한 발을 더 날렸다.
강력한 화력을 가진 1급 전열함의 심장을 완전히 파괴하기 위한 확인 사살.
- 위이잉!
- 슈우욱!
그리고 자리를 옮겨 해룡방 소속 전투함 5척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해룡방에서 고속정을 총동원해 방어에 나섰지만, 위기 상황에 급파된 것이라, 창수를 막을 수 없었다.
‘응? 시마즈가 이렇게 나온다는 건가?’
계획대로 해룡방 전투함의 기관실을 모두 파괴하고 동쪽으로 이동하던 창수에게 시마즈 함대의 이상 행동이 포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