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29장. 류큐 해전
4.
“전대장님, 전력을 너무 분산하면 각개격파당할 수 있습니다.”
즉각 반발이 나왔다. 평소라면 감히 호케츠 타마후미의 말을 거역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특별한 상황.
통신이 끊긴 타나미함처럼 3전대 소속 전투함이 하나씩 당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기에, 부관과 참모들이 입을 모아 전력 분산에 반대했다.
“야인 놈들이 가진 대포가 20문 남짓이라고 했어. 우리 전투함은 멍청한 타나미처럼 당하지 않을 거다.”
“타나미함에도 대포가 20문 배치돼 있었습니다. 금나라 상단의 무력을 과소평가하시는 건 위험합니다.”
“아니야! 상단이 중무장해 봐야 대포 40문이야! 우리 전투함이 2척 이상 움직이면 각개격파당하지 않아!”
3전대 소속 전투함 한 척이 대포 30문을 가지고 있다. 2척이면 대포 60문. 대형 상단이라도 대포 보유 수가 40문을 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3전대장 호케츠 타마후미는 전투함 2척으로 아이신 상단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전단을 셋으로 나누자는 말씀인가요?”
“그래. 3척을 남쪽으로 보내고 2척으로 서쪽을 틀어막고, 가운데 2척을 배치하면, 야인 놈들이 빠져나가지 못할 거다.”
“그렇군요! 묘안이십니다! 전대장님!”
합리적인 작전이다. 아이신 상단과 조우할 확률이 가장 높은 곳에 전투함 3척을 투입하고 나머지 전투함으로 길목을 차단하면, 효과적으로 포위망을 만들 수 있다.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던 3전대 지휘부 모두 생각을 바꿔 전대장의 작전에 동의했다.
* * *
“시마즈 함대가 3개 조로 갈라졌습니다.”
3전대가 전력을 분산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정찰 드론에 포착됐다. 창수는 이 사실을 타무에게 알렸다.
“우리를 포위할 생각으로 흩어지는 겁니까?”
“그렇게 봐야겠죠.”
“지휘관이 영리한 자로군요. 지금 상황에서 포위망을 뚫고 북상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시마즈가 그물망을 펼치면, 이동속도가 느린 증기화물선이 무탈하게 빠져나가기 어렵다. 증기화물선의 취약점을 제대로 찌른 것.
“주간에 정면 대결 해 봤자 승산이 없습니다. 해가 떨어질 때까지 회피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마침 남쪽에 작은 섬들이 모여 있는 곳이 보이더군요.”
“아! 거긴 칭량지앤 제도입니다! 이목을 숨기기 좋은 곳이죠!”
월등히 뛰어난 정찰 능력을 활용해 시마즈 함대를 따돌리려던 계획에 차질이 발생했다. 호케츠 타마후미의 전술적 판단이 걸림돌로 다가온 것.
하지만 아직 포기하거나 절망할 단계가 아니다. 창수는 자연이 만들어 준 엄폐물을 대안으로 떠올렸다.
칭량지앤 제도는 게라마 제도라고 불리는 곳으로, 류큐 남부 나하에서 서쪽으로 40km 떨어져 있다. 섬 20여 개가 얽히듯 뭉쳐 있는 형태를 가지고 있어 은폐가 쉽다.
시마즈 전투함의 추적을 회피할 최적의 장소.
“지리를 아시니 다행입니다. 거기서 밤까지 버티면 승산이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즉시 함수를 남쪽으로 돌리겠습니다.”
“잠시만요. 한 식경 정도 더 서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어떨까요?”
“우리 항로가 노출될 걸 염려하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침몰한 시마즈 전투함의 생존자가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을 겁니다. 그자들에게 우리가 이동하는 경로가 드러나면, 꼬리를 잡힐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김창수 님 말씀이 옳습니다. 서쪽으로 이동한 뒤에 방향을 바꾸겠습니다.”
활로를 찾았다고 생각한 타무가 급히 항로를 바꾸려 했다. 이건 근시안적인 행동이다.
창수의 판단대로 타나미함 승무원 소수가 살아남아 아이신 상단의 이동을 지켜보고 있다.
시마즈 전투함 3척이 그들을 구조하면, 증기화물선의 이동 정보가 넘어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육중한 덩치를 가진 증기화물선이 타나미함 승무원들의 이목에서 벗어나려면, 서쪽으로 최소 30분 이동해야 한다.
타무는 자신이 성급했다는 것 깨닫고 창수의 조언을 따랐다.
* * *
“구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당연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어찌 된 일인지 소상히 말해 보게!”
“우리 타나미함이 야인 화물선을 추적하고 있었습니다. 화물선이 대포 사정거리에 들어와서 발사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배가 우현으로 선회하더니 포탄이 떨어졌습니다. 저는 폭발 충격에 바다로 튕겨 나갔습니다.”
“포탄 한 발에 타나미함이 침몰했다는 건가?”
“아닙니다. 족히 포탄 수십 발이 타격했습니다.”
“흠……. 수십 발이라……. 자네는 운 좋게 바다에 빠져 목숨을 건진 거로군.”
“죄송스럽게도. 그렇습니다.”
침몰한 타나미함의 생존자는 5명에 불과했다. 그들은 모두 초반에 함선에서 바다로 떨어져 나간 인원들이다.
그들은 바다에 빠졌다는 사실보다, 눈앞에서 타나미함이 처참하게 파괴되는 광경에 공포를 느껴야 했다.
그리고 죽지 않고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옥쇄하지 않은 것에 처벌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가지고 있었다.
“죄송할 게 있나? 살아서 정보를 주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일세.”
“그……. 그런가요?”
“당연히 그렇지. 그리고 야인 놈들 화물선이 어디로 이동했는지 알고 있나?”
시마즈는 전투에서 패배한 장병에게 혹독한 처벌을 가하기로 유명하다.
지금 즉결 처분 당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 그래도 다행인 건 생존자들이 증기화물선의 항로를 알려 주는 데 쓸모가 있다는 것이다.
“예. 똑똑히 알고 있습니다. 서쪽으로 갔습니다.”
“확실한 건가?”
“확실합니다. 화물선이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끝까지 지켜봤습니다.”
거짓을 말할 조짐도 없고 동기도 없는 상황에서 생존자 5명이 모두 같은 내용을 증언하고 있다. 증기화물선이 서쪽으로 이동했다는 걸 믿을 수밖에.
시마즈 3전대 모든 전투함은 생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서쪽으로 이동했다.
5.
창수의 재치로 추적하는 시마즈 함대를 따돌린 아이신 상단 증기화물선들이 남쪽으로 항해해, 오후 5시, 목적지 칭량지앤 제도에 도착했다.
“시마즈 전투함들이 200리 밖에 있습니다. 식사하고 한동안 휴식을 취해도 될 듯합니다. 본격적인 전투를 하려면, 지금 힘을 아껴야 합니다.”
전투의 승패를 좌지우지하는 요소는 전술, 정보, 무기, 병력의 훈련 상태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쉽게 간과하는 것이 휴식이다. 훈련 상태가 좋은 병력이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해 피곤하다면, 전투에서 승리하기 매우 어렵다.
아이신 상단 병력은 급한 출항, 교전, 회피 과정을 거치며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곤한 상태다.
피로를 해소해 주지 않으면, 시마즈 함대와 전투를 벌일 때 제 능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고정익 드론으로 시마즈 함대의 움직임을 손바닥 보듯이 파악하고 있는 창수는 타무와 아이신 상단 병력에게 휴식을 권했다.
“그리하겠습니다. 김창수 님도 잠시 눈을 붙이십시오.”
“저는 츠네와 교대로 휴식하고 있습니다. 시마즈 함대가 100리 안쪽으로 다가오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염려 마시고 쉬세요.”
“알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고정익 드론과 정찰 드론을 연속해서 운용하기에 창수도 피곤하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창수는 작업을 분담할 츠네가 있다.
드론 운용에 익숙해진 츠네는 닌자 훈련 받은 전문가답게 빼어난 정보 수집 능력을 보여 줬다. 표적의 동선 파악과 세세한 디테일은 오히려 창수보다 뛰어나다.
창수와 츠네가 맞교대로 정찰을 계속하기에 아이신 상단이 시마즈 함대에 기습당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아이신 상단 병력은 창수와 츠네를 믿고 제대로 된 휴식에 들어갔다.
* * *
1월 7일 11시 30분, 츠네가 잠이 든 창수를 깨웠다.
“주군, 50km 거리에서 시마즈 전투함 3척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른 전투함 4척은 어디에 있지?”
“북서쪽에 위치한 섬들로 향하고 있습니다.”
“도박하는 심정으로 수색하는 건가?”
3시간 전 창수가 츠네에게 정찰 임무를 인계했을 때만 해도 시마즈 함대는 서북쪽 해역에서 헤매고 있었다.
창수의 정보 교란에 넘어가 엉뚱한 곳을 수색한 것.
이제 시마즈 함대가 3개로 나뉘어 칭량지앤 제도뿐만 아니라 류큐 인근 섬들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
창수는 시마즈 병력의 행동이 확실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작전이 아니라, 궁지에 몰려 던져 보는 심정으로 나선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밤샘 도박판에서 판돈은 떨어져 가고, 해가 떠오르자 이판사판 심정으로 올인하는 그런 모습.
“그렇습니다. 그리고 명분을 남기려는 행동이기도 합니다.”
“작전 실패를 예상하고, 핑곗거리를 만든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시마즈 가주의 성향을 보면, 작전 실패 시 함대 수뇌부에서 몇 명은 중벌을 받아야 할 겁니다. 명분을 남기는 건 처벌 대상을 줄이려는 몸부림입니다.”
흑룡회에서 11년간 정식 단원으로 활동한 츠네는 시마즈의 행동 양식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결론이 나온다.
시마즈 함대는 전투를 상정하고 남하하는 것이 아니다.
* * *
“함장님, 이 해역은 암초가 많은 곳입니다. 속도를 줄여야 합니다.”
“빌어먹을, 여러 가지로 되는 일이 없군.”
전투함 3척을 이끄는 토쿠마루함장 오카야 유키토는 부관의 조언에 짜증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온종일 아이신 상단 증기화물선을 찾아 헤맸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3전대 수뇌부는 8일 정오까지 수색에 성과가 없을 시 후퇴한다는 방침을 각 전투함에 하달했다. 증기화물선이 이미 빠져나간 것으로 간주한다는 의미.
오카야 유키토는 칭량지앤 제도를 수색하는 것을 요식 행위라 여기고, 내심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가능한 한 빨리 한 바퀴 돌아본 다음 복귀해야겠다고 생각한 것.
이런 마음을 가진 건, 작전이 실패해도 자신은 처벌 대상자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칭량지앤 제도는 달빛 없는 깜깜한 밤에 최대 속도를 내기에는 너무도 위험한 곳이다.
“함장님! 이 속도로는 위험합니다!”
“알았다. 이동속도를 절반으로 줄여. 그리고 단죠함과 오소소함에도 속도를 줄이라고 해.”
전투도 못 해 보고 암초에 걸려 좌초한다면, 불명예도 이런 불명예가 없을뿐더러, 처벌 대상자에 올라간다.
오카야 유키토는 토쿠마루함은 물론이고 다른 전투함 2척에도 서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 슝! 슝! 슝!
- 첨벙! 첨벙! 쾅!
- 콰쾅!
속도를 줄인 뒤 30분 후, 어둠 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포탄이 나타나 토쿠마루함을 노렸다.
포탄의 수는 모두 8발. 7발이 빗나가 물속에 빠졌으나, 1발이 후미를 타격했다.
“어디서 날아온 포탄이야!?”
“동남쪽에서 날아왔습니다!”
“거리는!?”
“시야 밖이라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달빛이 없는 어둠에서 토쿠마루함의 가시거리는 300m 남짓에 불과하다. 그 외곽에서 벌어지는 일을 감지하지 못한다.
“함수를 우현으로 틀어! 거리를 모르더라도 일단 포탄을 발사해!”
“알겠습니다! 함장님!”
토쿠마루함은 선수에 대포 6문, 좌우에 각각 대포 12문을 가지고 있다. 함장 오카야 유키토는 좌측 대포 12문을 사용해 반격하라고 지시했다.
어둠 때문에 적의 거리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응사한다는 시늉이라도 하려는 요량.
- 휘청!
- 솨아악!
포탄에 타격당해 인명 피해가 발생했으나, 함선 조종에 문제는 없다.
함장의 지시에 따라 우측으로 급선회하는 시마즈 전투함.
- 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