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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92화 (92/200)

92화 27장. 훈훈한 겨울

4.

“싸움이 줄어서 좋기는 하죠. 하지만 마법물품이 잘 안 팔리고 고순도 은도 매입하기 어려워요.”

“승급했으니 한숨 돌린 것 아닌가요? 으슥쾰 전투도 오래가지는 않을 거고요.”

“등급을 유지하려면 마법물품 매출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해요. 으슥쾰 전투가 길어지면, 하급으로 강등될 수 있어요.”

세상일 쉬운 게 없다. 더구나 마탑은 철저하게 성적을 보는 곳이라 꾸준히 매매 실적을 올려야 한다.

이제 막 일반등급으로 승급한 천옥금이 잠시 기쁨을 느끼고 곧바로 강등당할 수 있는 처지에 몰렸다.

“고순도 은을 납품하면, 한동안 견딜 수 있을 겁니다.”

- 척! 척! 척!

“어머! 이렇게나 많아요?”

천옥금에게 고순도 은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은 창수는 마법자루를 열고 99.99% 은을 꺼내기 시작했다.

내심 창수가 고순도 은을 가지고 왔을 거라 기대한 천옥금. 하지만 예상을 넘는 물량에 입이 벌어져 저절로 탄성을 질러야 했다.

“500kg입니다. 다 처리할 수 있나요?”

“당연하죠! 5,000kg도 할 수 있어요!”

“200kg은 현금으로 주시고요. 300kg은 마법물품으로 할게요.”

“그렇게 해 주시면 너무 좋죠!”

고순도 은 500kg은 1,850만 환(185억 원)에 달하는 거액이다. 10배도 소화할 수 있다고 당차게 말했지만, 1,850만 환을 모두 현금으로 지급하는 건 쉽지 않은 일.

200kg 대금 740만 환은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 게다가 1,100만 환에 달하는 마법물품을 판매하면, 할인을 감안해도 222만 환의 순수익이 발생한다.

창수는 천옥금에게 천사급 고객이다.

“일반등급 마법화살은 어떤 능력이 있나요?”

“공격용은 하급과 큰 차이가 없어요. 파괴력이 강화되는 정도죠. 가격이 10배 비싼 걸 생각하면, 효율이 좋다고 할 수 없죠. 그 대신 정신계 마법이 담긴 화살이 효율이 좋아요.”

“어떤 마법이 있나요?”

“슬립, 컨퓨즈, 공포…….”

천옥금은 창수에게 쓸 만한 일반등급 화살을 알려 주고, 구체적인 효과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창수는 10% 할인가로 일반등급 마법화살 20발과 하급 마법화살 1,022발을 구매했다.

러시아에서 구매한 은 99.99% 500kg 원가는 5억 원 남짓, 이 정도 지출로 마법화살 1,042발을 구매한 건 거저나 다름없다.

게다가 천옥금이 전해 준 고급 정보를 정보 단체에서 얻으려면, 200만 환은 줘야 한다. 창수의 정체가 역으로 드러날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천옥금과의 거래는 최상의 선택이다.

반면, 청옥금은 창수에게 고순도 은을 대량 매입하고, 동시에 마법물품을 다수 판매했다.

한동안 일반등급을 유지하기 충분한 실적.

윈윈 거래. 창수와 천옥금은 만족감을 느끼며 훈훈한 분위기에서 거래를 마쳤다.

* * *

12월 14일, 창수는 펑창을 떠나 금나라 수도 선양에 도착했다.

“주군! 오셨습니까!”

“츠네, 오랜만이다. 그동안 별일 없었지?”

“무탈합니다. 그리고 명하신 일, 차질 없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츠네가 창수를 반갑게 맞이한다. 5개월 만에 만나니 당연한 일. 그러면서도 자기 임무를 잊지 않고 있다.

“으슥쾰에서 3,000명 이상이 죽었다고 하던데, 흑룡회와 사사키 재단 피해가 어느 정도지?”

“흑룡회 사망자 535명, 사사키 재단 사망자 781명입니다. 지금도 지속해서 전투가 벌어져 사망자 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사사키 재단 쪽에 피해가 크군. 전력 차이가 나는 건가?”

“명나라 특작부대와 충돌해서 사사키 재단에 사망자가 늘었습니다. 흑룡회와의 맞대결에서 나온 사망자는 서로 비슷합니다.”

창수가 츠네에게 지시한 임무는, 흑룡회와 사사키 재단 내부에 정보망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마법 아티팩트와 포섭자를 활용해 핵심적인 정보를 빼내고 있다.

“명나라와 충돌했다고? 우연이야? 아니면 구원이 있는 거야?”

“사사키 재단이 명나라에 진출하면서 이권을 두고 다툼이 많았습니다. 앙심을 품은 명나라 특작부대가 기습한 겁니다.”

“명나라 특작부대 무력이 어느 정도지?”

“사사키 재단보다 한 수 위입니다. 기습이라고 하지만 명나라 특작부대 피해가 1/3에 불과합니다.”

“강호 출신 무사들이 있었나 보군.”

명나라에는 검에 마나를 집어넣어 사용하는 소드 엑스퍼트급 무사가 상당수 존재한다. 상급 무사의 경우 천잠사로 만든 방호복도 단칼에 벨 수 있다.

이들이 기습 공격했다면, 사사키 재단 병력 피해가 큰 것이 이해가 가는 일.

“그렇습니다. 명나라 특작부대는 동창이 3할이고 나머지 7할이 웨이텐이라는 거상의 사병입니다.”

“웨이텐이라……. 이름을 들어본 것도 같은데.”

“쑤저우(소주)에서 소금과 철 판매 독점권을 가지고 있는 자입니다. 표국과 기루를 운영하며 막대한 돈을 벌어들여, 강남에서의 권세가 황제 못지않다고 합니다.”

명나라의 고질적인 문제는 환관과 상인의 권력이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비대하다는 것이다.

동창은 명나라 영락제가 조카 건문제를 밀어내고 제위를 찬탈한 뒤, 정적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정보기관이다.

주축은 환관으로 체포, 수사, 판결, 처형에 이르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 동창이 부리는 횡포에 국가권력이 사유화되고 부정부패가 극에 달하는 상황.

명나라는 또한 소금과 철 같은 전매품을 국가가 독점하지 않고 민영화하는 어리석은 정책을 사용하고 있다.

상인들에게 부과하는 세금도 1.5%에 불과할 정도로 낮아 국가 재정이 피폐하고, 정국 장악 능력도 떨어진다.

“거물이 달라붙으니 사사키 재단 피해가 늘어나겠지. 지금까지 전력 손실이 얼마 정도야?”

“대략 2할입니다.”

“흑룡회 전력 손실은?”

“1할 5푼이 조금 넘습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군.”

창수가 으슥쾰에 만든 개미지옥에 흑룡회와 사사키 재단이 빠지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도 붕괴할 수준이 아니다.

이건 흑룡회와 사사키 재단이 탄탄한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습니다. 사사키 재단이 으슥쾰에서 쓸데없이 전력을 낭비하도록 방치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흑룡회 전력을 줄이기 위해 작전을 마련해야 할 듯합니다. 균형이 깨질 가능성이 큽니다.”

“아니야. 당분간 그대로 놔둬. 우리가 개입한 것이 알려지면, 판 자체가 엎어질 수 있어. 흑룡회에 힘이 몰리면 몰리는 대로 놔두는 것도 우리에게 나쁘지 않아.”

“사사키 재단을 먼저 무너트리고, 흑룡회를 나중에 치자는 말씀인가요?”

“맞아. 그리고 사사키 재단이 궁지에 몰리면, 발악할 거야. 그때 흑룡회 피해도 커질 게 분명해. 게다가 흑룡회가 약화하면 다른 승냥이들이 그냥 놔두지 않겠지.”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주군.”

흑룡회가 사사키 재단의 숨통을 끊는다 하여, 개미지옥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전설급 미궁이 눈앞에 있으니까.

흑룡회는 러시아, 오스만, 무굴과 같은 강대국 특작부대와 미궁 입구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해야 할 거다.

창수는 사사키 재단과 흑룡회가 으슥쾰 개미지옥에서 자멸할 거라 예상하며, 최적의 공격 타이밍을 기다렸다.

5.

츠네와 향후 대응 전략에 대해 논의를 마친 창수는 선양 밤거리로 나왔다. 먹거리 투어를 시작한 것.

와르카 마적단을 퇴치한 이후, 아오툰산업 대표 언치엉이 열어 줬던 성대한 잔치 덕분에 금나라 수도에서 유명한 산해진미를 충분히 맛봤다.

그러나 여행 전문가인 창수는 잔칫상에 올라오는 음식이 그 지역 음식 전부를 대표하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길거리 음식, 야시장의 허름한 매장에서 파는 음식, 서민 음식을 접하지 않고, 해당 지역 음식을 섭렵했다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12월 중순 선양의 밤거리는 영하로 한기가 넘치지만, 발열 조끼를 입은 창수의 발걸음을 막을 수 없었다.

‘선양은 손좌빙이 대세구만. 점포도 많고 종류도 다양해. 자오쯔는 생각보다 별로고.’

손좌빙은 ‘손으로 잡는 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밀가루 반죽으로 얇은 전을 만들고 그 위에 고기, 야채를 비롯한 여러 가지 토핑을 올린 뒤, 접어서 먹는다.

기름에 구워진 얇은 전 자체가 맛있는 손좌빙. 그리고 여러 가지 토핑이 어우러지면, 독특한 풍미를 나타낸다.

창수는 선양 길거리 음식의 1/3을 차지하는 손좌빙을 보고 인기를 실감했다.

반면, 한국의 만두와 유사한 자오쯔(교자)의 맛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박금래 만두와 비교해 2~3단계 아래.

“손좌빙 하나에 얼마인가요?”

“50문 입니다.”

“6개 주세요.”

금나라 50문은 한국 돈 500원에 해당한다. 창수는 여러 가지 길거리 음식을 먹어 이미 배가 부르지만, 특별히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손좌빙을 발견하고 대량 주문(?)을 냈다.

숙소로 돌아가서 츠네와 같이 먹을 요량.

“저……. 손님. 재료가 모자라서 4개밖에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면 4개라도 주세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손님!”

눈대중으로 반죽 양을 보면 6개는 충분히 만들 수 있을 듯 보여 주문한 것인데, 주인이 만들 수 없다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창수는 약간 기분이 언짢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손수레를 점포로 삼은 영세한 길거리 행상이기에 다른 재료가 부족한 것이라 생각하며.

- 치이익! 치이익!

“다 됐습니다, 손님.”

주인은 능숙한 솜씨로 손좌빙 4개를 만들어 창수에게 들려 줬다.

냄새와 형태만 봐도 맛있을 것이 분명하다. 창수는 만족하며 200문을 주인에게 건네줬다. 그리고 아직 충분한 양의 밀가루 반죽과 토핑 재료가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

“어…….”

“…….”

토핑이 담긴 재료통을 바라보다가 주인의 얼굴을 보며 두 눈이 마주치자,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흐른다.

- 슥!

그리고 우측으로 고개를 돌려 누군가를 바라보는 점포 주인.

그곳에는 10살 정도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슬픈 얼굴로 점포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마치 세상을 다 잃은 듯한 표정.

“저 아이 주려고 재료를 남긴 건가요?”

“예. 형편이 어려운 아이라, 장사하고 남는 것을 조금 주고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진즉 말하시죠! 나머지 재료로 다 만들어서 아이에게 주세요. 값은 제가 치르겠습니다.”

“아이구. 그러실 것까지는 없는데…….”

“추위에 떨고 있는 아이에게 이 정도는 해 줄 여유가 있습니다. 걱정 말고 만드세요.”

점포 주인이 주문을 4개로 제한한 건 창수를 무시하고 홀대한 것이 아니라, 배고픈 아이에게 손좌빙을 만들어 주기 위함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창수는 양보하는 걸 넘어, 비용까지 지불했다. 아이의 얼굴에서 송연희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거도 받아라.”

마음씨 좋은 점포 주인은 빠르게 손좌빙 2개를 만들어 아이에게 줬다. 그리고 창수는 100문을 추가로 주인에게 지불하고, 동시에 가지고 있던 손좌빙 4개도 아이에게 건네줬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정말 감사합니다!”

아이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창수.

* * *

- 헉! 헉!

“조금만 더 가면 돼.”

비일라가 거주하는 천막은 선양 외곽 빈민촌에 위치해 있다. 손좌빙을 얻어 온 길거리 점포에서 1시간 거리. 아이에게 만만치 않은 행군이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 먼 거리를 걸어온 건, 여기 아니면 달리 먹거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다리를 다쳐 제대로 거동을 못하고, 거리에서 행상하던 어머니는 일주일 전부터 심한 독감에 걸려 앓아누웠다.

5살짜리 동생을 합해 4식구가 손좌빙이 없다면 꼬박 굶어야 하는 상황. 다행히 손좌빙 6개를 얻었다. 아껴 먹으면 2일은 버틸 수 있을 터.

비일라는 굶주리고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숨 가쁘게 걸음을 옮겼다.

“어!”

그리고 빈민촌 입구에서 누군가를 보고 놀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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