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27장. 훈훈한 겨울
1.
“11월 암브로시아 판매액이 10월에 비해 29% 증가했습니다. 암브로시아 플러스는 35%입니다.”
“플러스 쪽 증가세가 빠르군.”
“미국에서 고가 제품 선호도가 높습니다. 미국 지사가 본격적으로 판매를 시작하면, 플러스 비중이 더 높아질 거로 예상합니다.”
12월 5일 월요일, 서울로 돌아온 창수는 뱌체슬라프로부터 11월 판매를 보고받았다.
월래스를 통해 북미 지역 판매망을 만들고 있는 도중이지만, 미국에서 적지 않은 매출이 발생했다. 특히 판매되는 암브로시아 물량 중 플러스가 차지하는 비율이 70%에 달한다.
가파른 판매 성장, 그것도 고부가가치 품목의 고속 성장에 뱌체슬라프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미국에서 고소득층 위주로 마케팅이 이루어져서 플러스 판매 비율이 높은 거야. 시간이 지나면 판매 비율이 달라질 수 있으니, 과도한 기대 하지 마.”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리고 미국 판매가 제 궤도에 오르기 전에 한국에 생산 공장을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북미 판매분은 미국에 설립하는 공장에서 공급할 거야. 사탕수수를 수입해야 하는 한국에 암브로시아 공장을 만드는 건 비효율적이야.”
“그래도 비상용으로 필요하지 않을까요? 지금 하늘길이 막혀서 우회하느라 운송비가 30%나 올랐습니다.”
중국은 대만 진먼현과 마쭈열도를 점거한 뒤 일본으로 총구를 돌렸다. 일본이 불법 공격용 미사일을 개발하고 중국을 음해한 것에 응징한다는 것이 이유.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면서 한숨 돌렸던 일본은 화들짝 놀라며 서둘러 방어 전선을 만들었고, 대만으로 향하던 미국 항공모함 전단들도 방향을 바꿔 일본으로 속속 모여들고 있다.
현재 남중국해에 몰린 중국 전투함은 59척, 반면 일본과 미국 전투함은 44척이다. 좁은 해역에 전투함 103척이 몰려 있어, 한쪽에서 우발적으로 공격을 시작하면, 대규모 전투가 벌어질 상황.
전투함뿐만이 아니다. 이 지역에 투입된 3개국 전투기 수가 1,500대를 가뿐히 넘는다. 여객기는 물론이고 화물기도 접근할 수 없다.
뱌체슬라프는 한국에서 암브로시아를 생산해 공급 불안과 운송비 상승 문제를 해소하자고 건의했다.
“뱌프야, 욕심은 금물이다.”
“예? 욕심이요?”
“그래 욕심. 너 미국 시장까지 컨트롤하려고 짱구 굴리는 거잖아. 내가 모를 것 같아? 운송비가 상승하면 이익이 조금 줄겠지만, 암브로시아 판매에 영향이 있는 건 아니야.”
암브로시아는 마진이 높은 제품이다. 게다가 오백세건강은 상장 기업이 아니다. 일시적인 비용 상승은 내부적으로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러시아로 우회 수송할 수 있는데, 하늘길이 막혔다는 이유로 한국에 생산 공장을 건설하는 건 타당성이 떨어진다.
“큼……. 욕심은 아니고요. 태국에 밀리는 것 같아서 그래요.”
“조만간 유럽이 분리되면 태국 매출이 많이 빠질 거야. 쓸데없는 데 정신 팔지 말고, 맡은 일에 열중해. 앞으로 할 일이 많으니까.”
“앞으로 할 일이요? 미국 지사가 자립하면 크게 더 할 일 없어요. 여기는 세팅이 다 끝났거든요. 이제 저도 쉬엄쉬엄 일할 거예요. 이상한 일 시키지 마세요.”
뱌체슬라프의 반응이 까칠하다. 마치 점찍어 놓은 장난감을 사 주지 않은 부모님에게 투정 부리는 아이의 모습.
“직원들에게 연말 보너스 나눠 주려고 하는데 별로 관심이 없나 봐?”
“보너스요!? 당연히 관심 있죠! 얼마 주실 건데요?”
“글쎄다. 너 안면 바꾸는 거 보니 보너스 주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나는데, 이거 어쩌지?”
“아하하하! 대표님!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내가 언제?”
“그런 말 안 하셨어요? 아무튼 유명한 말이잖아요!”
뱌체슬라프가 인용한 말은 기독교 성인 아우구스티누스가 서신에 사용한 거다. 종교적인 세계관에서 ‘용서’를 강조한 것.
좋은 말이다. 그러나 선을 선으로 대하고 악을 악으로 대하는 창수의 행동 방식과 커다란 차이가 있는 말이다.
“뱌프야, 네가 잘못했다는 건 인정하는 거냐?”
“예! 인정합니다! 제가 잠시 욕심이 과했습니다!”
“커험……. 이거 엎드려 절 받기도 아니고…….”
“에이. 그런 거 아니고요. 제가 밉더라도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을 버리면 안 되죠.”
“그러면 너만 뺄까?”
“말도 안 돼요!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왜 말이 안 돼? 직원들에게 1,000% 보너스 주려는 경영자의 선의를 무참하게 짓밟는 중간 관리자를 응징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1,000… 1,000%요!?”
암브로시아 판매로 창수가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직원에게 월급 10개월 치를 보너스로 주는 건 상식을 뛰어넘는 파격이다.
뱌체슬라프는 창수의 통 큰 보너스 계획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너 빼고 모든 직원에게 1,000% 연말 보너스 지급해. 너는 일단 보너스 500%다.”
“예!? 그건 너무…….”
“내 말 끝까지 들어. 연말까지 내가 지시하는 거 잘 이행하면, 추가로 너에게 1,000% 성과급을 지급할 거야.”
“무슨 일을 시키려고요?”
무언가 느낌이 싸하다. 창수가 당근을 흔들 때 쉬운 일이 없었다.
“서울에 여행사 설립하고 블라디보스토크에 지사 설립해. 내년 봄부터 관광객 받을 수 있도록 지역 명소 리스트 업 하고 맛집 최소 20개 선별해.”
“그건 어려운 일 아닌데요. 굳이 여행사 할 필요 있나요? 정신적으로 피곤하고 돈은 별로 안 될 거예요.”
일단은 안심이다. 창수가 지시한 작업은 코로나가 창궐하기 이전에 이미 상당 부분 준비한 거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이 든다. 창수가 암브로시아로 벌어들이는 수입과 비교해 여행사 경영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이 지극히 미미하니까.
“뱌프야, 내가 어떤 사람이냐?”
“부하 직원을 효율적으로 다루는 한국 사장님. 뭐 이런 거 아닐까요?”
“어째 말에 가시가 있다. 1,000% 그냥 날리고 싶나 봐?”
“아하하하. 그럴 리가 있나요? 대표님은 직원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계신 분이죠.”
“흠……. 그 말도 조금 거슬리는데, 일단 넘어가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근본을 잊지 않는 거야. 내가 여행사를 시작한 건 여행지를 방문하고 직접 느낀 감상과 즐거움을 다른 사람도 느끼게 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야. 이제 충분한 자금이 생겼으니, 제대로 여행사를 시작하자는 거야.”
창수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처음 여행사를 연 이유는 돈벌이와 함께, 외국 관광지의 참모습을 여행객들에게 알려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대만 침공을 이용해 재산이 900억 달러 이상으로 증가했다. 게다가 암브로시아가 매월 20억 달러 이상 수익을 가져다주고 있다.
초기 투자금이 적지 않게 들고, 아직 코로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여행사로 큰돈을 벌지 못한다 하여도,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재력이 있는 것이다.
“대표님 말씀을 들으니 블라디보스토크 하나로 끝나지 않을 것 같군요.”
“당연하지. 블라디보스토크 다음은 하바롭스크야. 그리고 이어서 울란우데와 이르쿠츠크에 지사를 열어야지.”
“예? 시베리아를 횡단할 생각이세요?”
“바로 그거야. 중국이 계속해서 설치면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관심을 받을 거야. 그걸 선점하면 전문 여행사로 자리 잡을 수 있어.”
“중국의 힘이 그렇게 강한가요?”
“중국 군사력이 아직 미국보다 아래지만, 충분히 깽판 칠 정도는 된다는 게 문제야. 이번에 중국이 설치면서 하늘길만 막힌 것이 아니라 뱃길도 영향을 받고 있는 게 증거지. 완전히 막힌 것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거리를 남쪽으로 우회해야 하잖아.”
“그렇기는 하죠. 중국 때문에 물류비용이 증가해 민폐가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그리고 이번 충돌이 해결된다고 해도,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맞짱 뜰 게 뻔해. 이래저래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뜰 수밖에 없는 거야.”
부산에서 화물선으로 유럽까지 이동하는 데 35~45일이 걸린다. 만약, 남중국해가 막힌다면, 이동 기간이 적어도 5일 추가되고, 운송 비용도 15%가량 증가할 거다.
반면,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이용하면, 20일 만에 유럽으로 화물을 수송할 수 있다. 비용이 선박보다 다소 비싸다는 단점이 있으나, 화물선 운임이 갈수록 상승하고 있어, 가격 경쟁력도 좋아질 전망이다.
창수는 중국의 무력행사가 일회성이 아니라 보고,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활성화되리라 예상했다.
“대표님의 말씀을 들으니, 제가 러시아의 가치를 너무 낮잡아 봤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번 일이 잘되면, 고려인들에게도 나쁘지 않을 거야. 암브로시아에 소홀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봐.”
“알겠습니다.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오백세건강 한국 지사 직원은 대부분 고려인이다. 창수가 세우려는 여행사의 직원 대부분도 고려인이 될 거다.
그리고 그들이 받게 될 임금은 러시아 직장인 평균보다 높을 것이 분명하다.
뱌체슬라프는 억지로 시켜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여행사 설립에 나서기 시작했다.
* * *
<반장님, 그동안 별일 없으셨죠?>
<별일 없어라. 근디 겁나게 장사가 잘되 부러 정신이 없고만요. 잉.>
12월 7일, 창수는 평행우주 한양으로 이동해, 박만수와 통화했다. 창수를 감시하는 눈이 많아져 직접 만나지 않고 통신 장비를 이용한 것.
박만수가 사용하는 장비는 마법통신구가 아니고 현대 장비다. 도청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방책.
한 달여 만에 연락하자 박만수가 앓는 소리를 한다. 만두 판매가 기록적이라는 의미이리라.
<11월 매출이 얼마인가요?>
<그랑께……. 본점이 21만 환, 2호점이 14만 환, 3호점이 13만 환잉께……. 48만 환이네요. 잉.>
<3호점이 빨리 자리 잡았군요.>
<12월만 보믄 3호점이 2호점보다 장사가 더 낫지라. 우덜도 깜짝 놀랐당께요.>
박금래 만두는 한양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애초 7만 환이면 만족이었던 월 매출이 5.8배 증가한 것.
만두가게는 늘어나는 손님을 소화하기 위해 직원 수를 늘린 뒤, 만두소를 만들고 만두를 빚는 주방을 판자촌 인근에 따로 마련했다.
그런데도 밀려오는 손님을 다 받지 못해, 종각 인근 본점 이외에 종로3가와 동대문 인근에 분점을 두게 됐다.
동대문 분점은 창수가 11월 초 미국으로 가기 전에는 영업을 시작도 안 한 곳이다. 그런데도 11월 매출이 종로3가 분점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동대문 쪽이 인구가 많습니다. 그리고 유동 인구도 종로3가 못지않죠. 동대문 밖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동대문으로 몰리니까요.>
<아하! 그러코롬 되는 거구만요. 그라문 앞으로도 3호점이 장사가 잘되것네요. 잉.>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쪽에 주방을 늘리고 인력을 더 배치해야 할 겁니다. 지금 고용한 직원 수가 얼마나 되나요?>
<199명이지라.>
만두가게에서 일하는 점원은 대부분 청계천 판자촌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다. 처음에는 본점 인근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고용했다가, 분점을 낸 뒤에 종로3가와 동대문 인근 판자촌 주민을 채용하고 있다.
창수가 만든 박금래 만두가게가 199가구에 월 500환(50만 원) 이상을 월급으로 지급한다. 총액 10만 환에 달하는 금액.
이 월급으로 청계천 판자촌 주민 1,000명의 생계가 유지되고, 풀린 돈으로 판자촌에서 2차 3차의 고용이 발생하고 있다.
현재 만두가게는 청계천 경제에 활력을 주는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199명이요? 일부러 200명을 안 채운 건가요?>
그런데 창수의 목소리는 썩 반기는 음색이 아니다. 무언가 질책하는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