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26장. 양안전쟁
8.
- 진먼섬에 군대를 상륙시키다니!? 공산당 놈들! 미쳤어!
- 미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기다려 보자!
- 미국 지원군이 오려면 한참 걸려! 그동안에 우리는 끝장난다고!
미국 셀든 대통령이 대만을 보호하겠다고 공개 선언했다. 그리고 미군 항공모함 전단 4개가 대만을 돕기 위해 이동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게다가 뉴욕 증시에서 USMC 주가가 19%나 반등했다. 대만인들은 양안전쟁이 종식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뉴욕 증시가 마감한 뒤 채 1시간이 되지 않아, 중국군이 전격적으로 진먼섬에 상륙한 것이다.
대만인들이 가졌던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고, 여기저기서 절규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30분 후 마쭈열도에도 중국군이 상륙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오전 9시에 열릴 예정이던 대만 증권시장이 잠정 폐쇄됐다.
대만 정부는 금융시장 안정과 투자자 보호를 위해 내린 결단이라고 설명했으나, 패닉에 빠진 투자자들은 쌍욕 하며, 정부를 비방했다.
일부에서 샨샤댐을 비롯해 중국 대도시와 공업단지에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자는 주장도 나왔으나, 대만 정부가 확전을 막아야 한다며 거부했다.
중국이 핵 보복을 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고, 대만이 선제공격했기에 명분도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대만은 마치 늪에 빠져 허둥대는 것처럼, 헤어나올 수 없는 공포에 잠식돼 점점 활력을 잃어 갔다.
[오늘 벌어진 참담한 사건의 책임은 무능한 차잉옌시 총통과 외세에 의존하는 여당에 있습니다. 저는 중화인의 동포애로 이번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중국 구축함을 공격한 것이 누구에 의한 짓인지, 베이징과 공동 조사로 밝혀내겠습니다.]
대만인들이 절망하고 있을 때, 야당 대표 뤄진샹이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이 양안전쟁을 중단시키겠다고 선언했다.
“기회를 잡은 공산당이 쉽게 전투를 중단할까요? 너무 순진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념은 구시대의 유물입니다. 베이징이 공산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나, 자본주의 요소도 많이 차용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대중화인입니다. 시쩌뚱 총서기와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면 해결하지 못 할 일이 없습니다.”
“시쩌뚱 총서기가 차잉옌시 총통의 대화 제의를 거부했다고 알려졌습니다. 과연 대표님을 만나 줄까요?”
“만나 줄 거라 믿습니다. 그것이 대중화의 화합을 위한 일이니까요.”
대만 초음속 대함미사일이 중국 구축함을 격침한 뒤, 차잉옌시가 시쩌뚱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 이야기 하려 했으나, 격이 맞지 않다고 직접통화를 하지 못했다.
이 사실을 대만 정부가 숨기려 했지만, 경로를 알 수 없는 소스로 유출돼 차잉옌시가 웃음거리로 전락한 상황.
대만 총통도 문전박대받았는데 야당 대표를 직접 상대해 줄까?
기자회견에 참석한 다수의 기자가 뤄진샹에게 이런 의문을 연달아 질문했지만, 한결같이 시쩌뚱과 면담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 역시! 정치인 놈들은 하나같이 쓰레기야! 국가가 무너지기 일보직전인데, 자기 홍보나 하고 자빠졌네!
- 그러게 말이야! 허풍도 정도껏 쳐야지! 전화 통화도 거절한 시쩌뚱이가 만나 줄 것 같아!?
- 뤄진샹 대표님! 평소 응원하던 사람인데요! 이번에 선을 넘었습니다!
중국의 침공으로 쌓인 대만인의 분노가 뤄진샹에게 쏟아졌다.
차잉옌시와 여당의 무능이 이번 사태를 부른 것이 분명하다지만, 전시 상황에서 여야 정파를 떠나 거국적으로 힘을 합해야 한다.
대만인들은 침략자 중국을 비판하지 않고 허황된 면담을 들먹이는 야당 대표가 정치 놀음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여당 지지자는 물론이고, 야당 지지자 상당수도 뤄진샹 비난 대열에 합류해, 정치 감각이 없는 멍청한 기자회견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오전 11시가 되자 상황이 바뀌게 된다.
[속보, 시쩌뚱 총서기, 뤄진샹 대표의 대화 제의 받아들여.]
[중국군 교전 중단!]
[펑후제도로 향하던 중국군 회군!]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마치 모세가 홍해를 가르는 듯한 상황.
시쩌뚱은 뤄진샹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상륙작전은 물론이고, 포격과 공습도 중단시켰다.
순식간에 휴전이 성립되고, 불안하지만 평화가 찾아온 것.
- 욕해서 미안해요! 뤄진샹 대표님!
- 위기에 영웅이 나온다고 하더니! 뤄진샹이 영웅이었어!
- 대만의 진정한 지도자는 뤄진샹이야! 차잉옌시! 꺼져!
이제 대만인에게 뤄진샹은 국민 영웅이다. 그리고 국민 진상의 자리를 차잉옌시가 차지하게 됐다.
이건 대만 정치의 주도권이 집권 여당이 아니라 야당으로 넘어갔다는 걸 의미한다.
* * *
중국의 전격적인 침공과 빠른 휴전은 글로벌 네트워크 뉴스와 인터넷, 그리고 SNS를 통해 빠르게 퍼졌다.
중국과 대만의 충돌로 천문학적인 소득을 올린 창수와 김근홍도 자연히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상황.
“창수야, 중국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기만전술일까?”
중국이 진먼현과 마쭈열도를 점령한 건 어느 정도 예측했다. 그러나 김근홍은 영토 확장을 노리는 중국이 뤄진샹의 제안을 덜컥 받아들일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제가 보기에는 점령한 섬들을 확보하고, 발 빼려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발 뺀다고? 소득이 너무 적은 것 아니야?”
중국은 3개 함대를 동원하고, 전투함 1척과 200명이 넘는 인명 손실을 봤다. 이대로 물러나는 건 수지 타산이 맞지 않은 일.
“만족할 만한 성적은 아니지만, 중국이 체면을 세울 수 있다고 봅니다. 미국 항공모함 전단들이 모두 도착하고 오키나와에서 미군 병력이 증파되면, 빈손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중국의 군사력을 너무 낮게 평가하는 것 아닐까? 군사 전문가들은 중국이 대만에 전력을 다 쏟으면, 미국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고 말하고 있어.”
김근홍이 익명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정보 네트워크에는 다수의 군사정보통이 서식하고 있다.
그들은 아마추어가 아니고 미국, 영국, 러시아, 이스라엘과 같은 국가의 군과 정보기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전문가들이다.
창수의 번득이는 판단력을 믿지만, 중국에 관해서 군사 전문가들의 판단과 너무 큰 차이가 난다.
“대만을 두고 중국이 미국과 전면전을 벌이면, 승리할 가능성도 있겠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중국 군사력이 크게 약화할 겁니다. 그때 인도와 러시아가 어떻게 나올까요?”
“흠……. 그런 문제가 있군. 인도가 악사이친으로 진격하면, 중국이 손 놓고 볼 수밖에 없겠어. 러시아도 한몫 잡으려고 이빨을 들이밀 거고.”
“미국이 항공모함 전단을 파견하고 핵무기 사용 운운할 때, 이 정도로 멈추는 것이 정해진 거라고 봅니다.”
창수는 군사 전문가가 아니다. 그런데도 최근 중국이 벌이는 군사행동을 정확히 예측한 것은, 미국을 두려워하는 중국의 소심한 자세를 캐치 했기 때문이다.
창수는 중국의 본심을 파악한 이후, 김근홍이 가져다주는 여러 가지 정보를 취합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런가? 하긴, 처음부터 네 예측은 빗나간 적이 없어. 중국이 일본을 침공할 거라고 전문가들이 헛발질할 때, 너만 훼이크라고 말했었지. 그런데 여기서 전쟁을 멈추면, 미국이 중국을 더 얕보지 않을까?”
“그럴 가능성이 있죠. 하지만 이번 일로 미국이 손해 본 게 더 클 겁니다.”
“미국의 손해라……. 중국이 미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상륙작전을 벌인 걸 말하는 거야?”
“예. 중국이 이대로 진먼현과 마쭈열도를 확보하면, 미국의 위신에 큰 타격이 갈 겁니다.”
“하지만 차잉옌시가 돌려 달라고……. 아! 그래서 뤄진샹을 키워 주는 거구만! 친중파 야당에 힘을 실어 줘, 친미파 여당을 압박하려는 거야!”
유레카. 김근홍은 창수와의 대화를 통해, 안개처럼 흐릿했던 중국의 노림수를 파악하게 됐다.
시쩌뚱이 차잉옌시를 홀대한 것, 그리고 뤄진샹의 무리한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 것 모두 사전에 계획된 큰 그림의 조각이었다.
“앞으로 대만 정치가 혼란해지고, 미국의 영향력이 약해질 게 분명합니다.”
“네 말이 맞아! 그리고 돈 냄새가 나는구만!”
“돈 냄새요?”
“대만에 중국 입김이 강해지면, USMC가 휘청거리게 돼.”
“중국도 USMC가 필요한 것 아닌가요?”
“그래서 위험하다는 거야. 미국이 대만에 기반을 둔 USMC를 반도체 공급 사슬에서 배제할 거야. 어쩌면 몇 개월 안에 USMC가 폭탄 맞을 가능성도 있지.”
“파운드리 세계 1위 업체를 배제하면, 미국도 어려워지는 것 아닌가요?”
“아니야. 아웃텔과 미리내전자가 USMC의 공백을 메울 수 있어.”
금융과 경제 분야는 김근홍이 압권이다. 군사적 움직임과 정치적 변화에서 돈벌이를 집어낸 것.
미국은 중국의 성장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 여기고, 무역 전쟁을 벌였다. 이건 민주당과 공화당이 암묵적으로 합의한 사안이기에,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상당 기간 변하지 않을 거다.
만약, 중국이 USMC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다면, 미국은 반도체 제조 장비와 특허권을 사용해 USMC를 고사시킬 거다.
이때 수혜를 받는 업체가 미국 아웃텔과 한국 미리내전자다.
CPU 강자 아웃텔은 3나노 미세화 공정에서 늦었지만, 2나노 공정에 먼저 뛰어들어 기술을 축적하고 있다.
미리내전자의 경우 3나노 GAA 공정으로 USMC를 기술적으로 앞지른 뒤, 파운드리 분야에서 매출을 급격히 늘리고 있다.
“아웃텔과 미리내전자도 옵션을 노려야 하나요?”
“아웃텔은 옵션을 노려 볼 만해. USMC가 꼬꾸라지면, 반응이 빠를 거니까. 하지만 미리내전자는 천천히 상승할 거야. 옵션으로 큰 재미를 못 보는 거지. 투자한다면 주식을 매수하는 것이 좋아.”
“그러면 아웃텔에 집중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투자금이 얼마면 될까요?”
“20억 달러면 충분할 거야. 내가 4억 달러 댈 거니까. 네가 16억 달러 투자해.”
끝나지 않는 잔치는 없다고 하지만, 금융시장은 사정이 사뭇 다르다. 돈이 돈을 부르는 곳이니까.
창수와 김근홍은 소소한 자금(?)으로 2차 대박을 준비했다.
* * *
[속보, 양안전쟁 종식! 현재 상태에서 모든 군사행동 중단!]
[대만 인근에서 중국 전투함 철수! 일본 방면으로 이동!]
[구축함 창샤호 침몰에 관해 합동 수사 실시!]
2022년 12월 2일, 시쩌뚱을 면담한 뤄진샹은 대만이 저지른 선제공격을 철저히 수사하고, 관련자에게 중형을 내리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시쩌뚱은 뤄진샹의 용기를 높이 평가하고, 평화로운 분쟁 해결을 약속했다.
- 무능한 차잉옌시는 물러나라! 대만의 진정한 총통은 뤄진샹이다!
- 차잉옌시! 양심이 있다면, 총통 자리를 뤄진샹에게 넘겨라!
- 맞는 말이야. 미국에 기대다가 나라를 통째로 말아먹을 뻔한 멍청한 인간이 총통이라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야.
대다수 대만인은 전쟁 종식에 기뻐하며, 뤄진샹을 찬양했다. 그들에게 대만의 총통은 더 이상 차잉옌시가 아니라 뤄진샹이다.
- 뤄진샹 저놈 미친 것 아니야? 제깟 놈이 무엇인데, 진먼현과 마쭈열도를 공산당 놈들에게 넘겨?
- 그건 뤄진샹이 아니라 차잉옌시가 넘긴 거야! 뤄진샹을 욕하는 건 화재를 진압한 소방관을 방화범이라고 말하는 거라고!
- 아무리 그래도, 뤄진샹에게 국토를 포기할 권한이 없어! 위법행위야!
- 어이구! 법률가 나셨네! 그렇게 잘났으면, 입으로만 나불거리지 말고, 네가 나서서 진먼섬을 탈환해 보든가?
대만인 일부는 뤄진샹의 합의가 초법적인 월권행위라는 걸 지적했다.
중국의 군사행동을 중단시켰지만, 결과적으로 진먼현과 마쭈열도가 중국군의 통제하에 놓이게 됐다.
국토를 잃어버리게 한 뤄진샹의 행위는 반역죄로 처벌받을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법률 위반이다.
그러나 대만인 다수는 뤄진샹의 합의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영토를 잃은 것이 안타깝지만, 전쟁이 길어졌다면, 더 많은 것을 잃는다는 두려움을 가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