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87화 (87/200)

87화 26장. 양안전쟁

5.

“폭탄? 또 뭐가 남아 있다는 말이오?”

“USMC 풋 옵션입니다. 오늘 뉴욕 장이 열리면, 월가의 손실이 1,300억 달러가 추가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미합중국을 지탱하는 금융 산업이 무너지게 됩니다.”

USMC의 주요 생산 시설은 대만에 있다.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는 상황에서 어제에 이어 오늘도 20% 주가 하락이 예상된다.

2일간 기초 자산이 40% 하락하면, 극외가 풋 옵션에서 1,000배 이상 수익이 나게 된다.

그리고 이건 풋 옵션을 매도한 월가 투자은행에게 천문학적인 손해가 발생한다는 걸 의미한다.

“미쳤군! 미쳤어! 월가 미치광이들! 모두 잡아들여서 평생 감옥에서 썩게 만들 거야!”

“대통령 각하, 죄지은 자들은 처벌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월가가 무너지고 금융 산업이 붕괴하면, 더 이상 미합중국은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성적인 대처를 하셔야 합니다.”

“이성적인 대처가 월가를 물갈이하는 거야! 2,000억 달러 손실 정부가 떠안고! 이참에 썩은 물을 갈아 버릴 거야!”

셀든은 진심으로 분노했다. 월가의 큰손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 국가의 통제도 받지 않고 멋대로 일을 벌였다.

그리고 문제가 터지니 뒷감당을 정부에서 하라고 미루는 뻔뻔한 작태를 보이고 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

게다가 중국이 핵전쟁을 불사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에서 미국이 대만을 돕자고 나서면, 어떤 불상사가 발행할지도 모른다.

차라리 월가 투자은행들이 도산하는 걸 지켜보는 것이 나은 선택이리라.

“대통령 각하, 대단히 외람된 말씀이지만, 현실을 봐야 합니다.”

“현실? 무슨 현실을 말하는 거지?”

“지난 대선에서 월가가 대통령 각하 측에 지원한 자금이 20억 달러가 넘습니다. 이거 모두 토해 내실 겁니까?”

“뭐……. 뭐라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자세한 내역은 비서실장이 알고 있습니다. 따로 불러 조용히 물어보시지요.”

“…….”

“이번 일만 잘 처리되면, 다음 대선 지원금이 40억 달러가 넘을 겁니다. 그러면 대통령 각하를 따르는 많은 사람에게 골고루 혜택이 가겠지요.”

“커험……. 내가 뭘 해 주기 바라나?”

“그건…….”

미국 재무장관 자리는 미국 대통령이 지명하지만, 자기 심복을 기용하기 어렵다.

대부분 호튼처럼 월가의 큰손들과 교류가 있는 인물이 차지한다. 그리고 재무장관이 담당하는 역할 중 하나가, 대통령과 월가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것.

물론, 세계 최고의 권력을 가진 미국 대통령을 월가와 재무장관이 꼭두각시처럼 좌지우지하기 어렵다.

하지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호튼이 지금 하는 것처럼.

* * *

“창수야. S 등급 정보가 들어왔다.”

“S 등급 정보요? 정보에 등급이 있나요?”

“당연히 있지. F 등급부터 S 등급까지 있어. F 등급은 1,000달러 정도로 구할 수 있지만, S등급 가격은 1억 달러야.”

“헐……. 황당한 가격이네요.”

“뭘 그리 놀라? 너에게 1억 달러는 아무것도 아니잖아?”

“지금이야 1억 달러가 별거 아니지만, 작년만 해도 1억 원만 있어도 세상 부러울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국 시간 9시, 30분 뒤 열릴 뉴욕 증시를 기다리고 있던 창수에게 김근홍이 황당한 말을 건넸다.

한화 1,150억 원 가치가 있는 정보를 입수했다는 것.

아무리 21세기가 정보화 시대라고 하지만, 1억 달러 가치가 있는 정보가 정말 존재하는지? 의구심이 드는 창수.

“창수야, 서민적인 건 좋은데 좀팽이는 되지 마라. 돈 쓸 때는 써야 하는 거야?”

“무슨 정보인데 그러세요?”

“지금 백악관에서 비둘기파와 매파가 크게 충돌했다는 정보야. 국가정보실장과 국가안보보좌관은 대만 사태에 미국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야. 반대로 국방장관과 재무장관이 대만에 4개 항공모함 전단을 파견해 대만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예? 재무장관이 무력 개입을 주장한다고요? 그거 월권행위 아닌가요?”

언뜻 들으면 이게 무슨 1억 달러짜리 정보인가 싶지만, 조금 깊이 생각하면 매우 이상한 상황을 전해 주는 정보다.

국가정보실장, 국가안보보좌관, 국방장관이 대만 사태 개입 여부를 두고 설전을 벌이는 건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비전문가인 재무장관이 왜 적극적으로 군사개입 논의에 끼어드는 걸까?

“재무장관이 주제넘은 짓을 하는 거지. 그런데 이상한 건 대통령과 비서실장이 재무장관의 월권을 말리지 않는다는 거야.”

“재무장관이 대만을 보호할 필요가 있나요? 혹시 USMC 생산 차질 때문에 그럴까요?”

“그럴 가능성이 있지. 하지만 중국이 대만을 점령한다 해도 USMC를 건들지는 않을 거야. 꼭 필요한 기업이거든.”

“하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일 이유가 없겠죠. 그러면 재무장관이 나서는 이유가 뭘까요?”

“재무장관 트레비스 호튼이 올드만 대표 출신이야. 그리고 우리가 대만에서 털어먹은 투자은행 중에서 가장 큰 호갱이 올드만이었어.”

김근홍은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 조세회피처 5곳과 중국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우회망을 통해 자금을 이동시켰을 뿐만 아니라,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세력을 역추적하기도 했다.

역추적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 월가의 거물 올드만.

“미국이 대만에 항공모함을 파견하면 올드만에게 도움이 되는 건가요?”

“약간은 도움이 되겠지, 하지만 큰 도움은 안 될 거야. 이미 큰 손실을 봤을 거니까. 다른 가능성은 뉴욕 증시에 상장된 USMC 주가를 방어하는 것인데, 이상하게도 올드만이 USMC 풋 옵션을 대량 매집했어. USMC 주가가 떨어지면, 수익이 나는 포지션이야.”

김근홍이 뛰어난 정보 수집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월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세세히 알지는 못한다.

김근홍은 호튼이 USMC 주가 방어를 위해 미국의 대만 사태 개입을 몰아붙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음에도, 올드만의 이익과 상충하는 행동이기에,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선배님, 트레비스 호튼의 목적보다 우리 일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자의 목적은 제쳐 두고, USMC 주가에 집중하자는 거니?”

“예. 미국이 대만에 항공모함 전단을 파견한다는 발표가 나오기 전에 풋 옵션을 모두 정리하면, 트레비스 호튼이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있든 상관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오! 듣고 보니 그러네!”

때로는 정보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가 있다. 오만한 김근홍이 예전부터 창수의 의견을 존중한 이유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뛰어난 직관을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 핵심은 USMC 주가가 반등하기 전에 풋 옵션을 정리하는 것이다.

* * *

“거래 시작 1분 남았어!”

“아직까지 백악관에서 성명을 발표한다는 뉴스가 없습니다.”

“좋아! 초반은 일단 관망이다! 뉴스 나오면 즉시 알려!”

뉴욕 시간 오전 9시 29분, 김근홍은 트레이딩 룸에서 풋 옵션 매도 준비를 마치고, 뉴욕 증권시장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만약, 9시 30분 이전에 백악관에서 대만을 지원한다는 뉴스가 나오면, 시초가에 풋 옵션을 모두 정리할 계획이다.

그렇지 않다면, USMC 주가 흐름은 지켜본 뒤, 매매할 요량이다.

“쭉쭉 빠지고 있어! -5%! -6%! -7%!”

뉴욕 증권시장이 열리자마자 USMC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반면, 군수 업체를 비롯해 전쟁과 관련된 기업의 주식이 가파르게 올라, 전반적으로 뉴욕 증권시장이 상승세로 출발했다.

“-8%, -9%, -10%! 좋아! 여기서 청산이다!”

- 탁! 탁! 탁!

9시 37분 USMC 주가가 10% 하락하자, 김근홍이 풋 옵션 정리를 시작했다. 더 떨어질 가능성이 있지만, 만족함을 알아야 한다.

욕심부리다가 미국 개입 뉴스가 나오면, 주가가 급반등하면서, 확보한 수익 대부분을 잃을 수 있으니까.

“선배님! 셀든 대통령이 10시 정각에 특별 성명을 발표한다고 합니다!”

“올 게 왔군! 시장가로 모두 던져야겠어! 너는 주가 지켜봐!”

“맡겨 주세요!”

9시 50분, 10분 후에 미국 대통령이 기자 앞에 등장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셀든이 무슨 말을 할 건지 안 봐도 뻔하다.

김근홍은 아직 정리하지 못한 풋 옵션 1/3 분량을 시장가에 내놨다. 이렇게 되면 최고가를 받기 어렵지만, 단숨에 정리가 가능하다.

“좋아! 모두 체결됐어!”

“-8%에서 정리된 것 같아요. 수고하셨습니다, 선배님.”

“커커커. 이 맛에 옵션 한다니까! 이 스릴 죽여주잖아!”

김근홍이 USMC 풋 옵션을 모두 정리한 시간은 9시 51분. 그는 야구에서 홈스틸에 성공한 3루 주자처럼 득의양양한 모습을 보였다.

“USMC 주가가 계속 오르고 있습니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김근홍이 시장가로 던진 풋 옵션 물량을 소화하느라 -8%까지 회복한 USMC 주가는 등락 공방을 벌이다가, 9시 54분에 본격적으로 상승해 10시 정각이 되자 -1%가 됐다.

이건 증권시장에 셀든이 발표할 내용이 퍼지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 * *

[미합중국 시민 여러분.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세계 시민 여러분. 오늘 저는 대만의 자유와 평화에 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

중국 구축함 침몰에 관한 결론을 지금 내리는 건 위험합니다. 중국, 대만, 그리고 유엔 전문가들의 정밀 조사를 거쳐 원인을 밝혀야 합니다.

확실한 결론이 나오기 전까지 중국은 대만에 가하는 공격을 멈춰야 합니다.

평화를 담보하기 위해 미합중국은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입니다. 중국이 오판하지 않기를 기대합니다.

갓 블레스 아메리카.]

<대통령님, 대만에 항공모함 전단이 파견되는 건가요?>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렵습니다. 기밀 사안이니까요. 하지만 우리 군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력의 하나가 항공모함 전단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중국은 대만을 지원하는 국가에 핵무기 사용도 불사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미국의 개입이 자칫 핵전쟁을 유발하지 않을까요?>

<중국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이걸 알아야 할 겁니다. 미합중국은 중국보다 더 강력한 무기를 수십 배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걸 말입니다.>

11월 30일 오전 10시, 예고대로 미국 대통령 셀든이 대만을 돕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기자들은 중국의 반발을 우려했으나, 셀든은 항공모함 전단은 물론이고 핵무기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미국 대통령이 대만을 돕겠다고 발표하자, 뉴욕 증시에 상장된 USMC 주가가 급상승을 시작해 단번에 +10%가 됐다.

만약, 김근홍과 창수가 제때 대응 못 했다면, 수익은커녕 원금 5억 달러 대부분을 날렸을 거다.

“캬. 저 양반 연설 하나는 기가 막히네. 내가 미국인이 아닌데도, 미국에 대한 애국심이 술술 생기는군.”

“선배님이 금융에 특출한 능력이 있듯이, 셀든 대통령은 대중 연설에 특화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거죠.”

“하긴 저런 능력이 없다면 미국 대통령이 되기 어렵지. 하지만 네가 가진 능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USMC에 담았던 풋 옵션을 모두 청산했기에, 이제 주가가 어떻게 움직이든 상관없다.

창수와 김근홍은 편안한 자세로 셀든의 연설을 들으며 느긋하게 감상평을 했다.

그리고 뜬금없이 김근홍이 창수를 추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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