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26장. 양안전쟁
4.
[진먼현, 마쭈열도, 그리고 펑후제도에 중국군의 공격이 시작됐습니다! 해당 지역 주민 여러분은 가까운 방공호로 대피하십시오!]
대만의 주요 방송국들이 정규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긴급 방송을 송출했다. 내용이 충격적이다. 중국이 대만해협에 위치한 섬들을 전격적으로 공격한다는 것.
진먼현은 한국에서 금문도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진먼섬을 포함한 지역으로 중국 샤먼시와 불과 1.8km 떨어져 있다.
대만해협 북쪽 입구에 위치한 마쭈열도는 중국과 30km 거리에 있고, 펑후제도는 대만에서 서쪽 50km에 위치해 있다.
- 돌았네! 펑후제도를 공격해!
- 공산당 놈들이 대만을 집어삼키려고 작정한 거야!
- 우리군은 뭐 하고 있는 거야!? 코앞까지 공격당하는데 두더지처럼 숨어 있는 거야!?
진먼현과 마쭈열도는 지리적으로 대만보다 중국에 가깝다. 중국이 대만을 공격한다면, 초반에 공격하리라 예상된 지역.
반면, 펑후제도는 중국에서 150km 거리에 있다. 이곳이 무너지면, 대만 정문을 지키던 대문이 사라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대만인들이 놀라는 건 당연한 일이리라.
대만인들은 중국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대만군의 무능함을 비난하며, 그들에게 다가올 어두운 미래에 절망감을 느꼈다.
- 던져! 무조건 던져!
- 이미 늦었어! 던져 봐야 받을 놈이 없어!
- 빌어먹을! 2% 손해 봤을 때 모두 정리하는 건데!
- 우린 망한 거야! 끝장이라고!
중국의 전격적인 공격에 대만 전체가 들썩였으나, 그중에서도 극단적으로 민감한 반응을 보인 곳이 금융시장이다.
-2%까지 낙폭을 줄였던 대만 증시는 쏟아지는 투매로 급락하게 됐다. 서킷 브레이커에 걸려 15분간 매매가 중단됐지만, 곧바로 추락을 지속해, 오전 10시 30분에 하한가를 기록했다.
매도가 폭주해 주문 체결을 못 한 상태로 그대로 하한가를 두들겨 맞은 투자가도 적지 않다.
더 큰 문제는 내일 장도 하한가가 기정사실이라는 점. 오늘 요행히 하한가 매매가 체결돼 -10%로 손실을 막을 수 있다면, 그것이 행운일 거다.
대만 증시에 발 담은 투자자들이 패닉에 빠져 비명을 질러 댔다.
- 풋 옵션을 사는 거야! 그거 말고 달리 손실을 만회할 방법이 없어!
- 하지만 그러면 증시는 더 박살 날 거야!
- 성인군자 나셨네! 우리가 죽게 생겼는데, 증시가 문제야!? 그리고 이미 바닥이야! 더 나빠질 게 뭐가 있어!?
- 젠장! 알았어! 풋 옵션에 여유 자금 다 집어넣는 거야!
주가의 향방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최고 선택은 옵션 구매다.
주가 하락에 공매도와 리버스로 수익을 얻는 방법이 있지만, 일반 투자자가 접근하기 어렵고, 레버리지 효과도 낮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옵션의 기능을 알고 있는 일부 투자자들은 대만 증시 추가 폭락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풋 옵션 매수를 선택했다.
풋 옵션으로 자금이 몰리면, 주가 하락을 가속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대만 주가는 중국의 전격적인 공격으로 하한가에 갔다.
난파하는 배에서 문짝을 뜯어 살길 찾은 승객에게 기물 파괴 책임을 물을 수 없듯이, 살길을 찾아 풋 옵션을 매수하는 투자자들을 비난하기 어렵다.
* * *
창수와 김근홍은 태국 시간 11시 30분에 일어나 여유롭게 아점을 먹으며, 밤에 열릴 뉴욕 증시를 대비하려 했다.
그러나 그들이 목도한 것은 중국이 대만을 공격했다는 뉴스였다.
김근홍은 예상하지 못한 돌발 변수에 느긋한 마음을 버리고 즉시, 현황 파악에 들어갔다.
“창수야, 대만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전쟁이 시작됐으니 나빠지는 건 당연하죠. 그리고 이미 하한가잖아요? 더 나빠질 것이 있나요?”
“교전이 치열해지면, 증권 거래가 강제로 중단될 가능성이 높아. 중국이 너무 급발진해서 일이 꼬이게 된 거야.”
김근홍이 예상한 포지션 정리 시간은 12월 2일 금요일이었다. 중국 3개 함대가 대만을 포위하고 푸젠성에 육군이 배치되는 시간이 3일은 걸릴 거라 예상한 것.
하지만 중국은 상식을 넘는 빠른 속도로 대만해협에 위치한 섬들에 폭격을 가했다.
대만 정부가 금융시장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증권 거래를 제한할 수 있는 상황.
“증권 거래가 중단돼도 단기간 아닐까요? 설령 중국이 대만을 점령한다고 해도, 증권시장이 폐쇄되는 건 아닐 거고요.”
“네 말이 맞아. 전쟁에 어떤 결과가 나와도 대만 증권시장이 없어지지는 않을 거야. 주가도 지금보다 폭락할 가능성이 크고. 하지만 문제는 옵션에 수명이 있다는 거야. 우리가 매입한 풋 옵션은 현재 주가에서 최소 2%가 더 빠져야 행사할 수 있어. 이대로 옵션 만기일이 지나면, 15억 달러 대부분을 날리는 거지.”
“옵션 거래에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군요.”
“옵션은 투자가 아니야. 고위험 고수익을 노리는 투기지. 아무튼 오늘 안으로 풋 옵션 정리를 마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괜히 욕심부리다가 원금도 못 찾을 수 있으니까.”
“어쩔 수 없죠. 대만에서 이익이 줄더라도 안전하게 정리하고, 뉴욕을 노려야죠.”
도박과 투기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 고점 수익에 연연해 발 뺄 타이밍을 놓치는 거다. 그러나 여유 자금이 넘치는 창수는 급변한 대만 증시의 환경 변화에 목매지 않았다.
그리고 창수의 느긋한 자세는 김근홍이 운신할 폭을 넓혀 줬다.
김근홍은 자신이 가진 정보 네크워크를 통해 현재 중국과 대만이 벌이는 교전 상황을 체크하고, 대만 증권시장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하며, 매도 타이밍을 가늠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대만 증권시장 마감 30분을 남긴 시점.
“커커커! 창수야! 우리 운이 아직 살아 있나 보다!”
“중국이 공격을 멈춘 건가요?”
“아니야. 아직도 중국이 산발적으로 폭격하고 있어. 짐먼섬에 중국군이 곧 상륙한다는 말도 나오고.”
“그러면 어떤 운이 좋다는 건가요?”
“풋 옵션 프리미엄이 급속히 올라가고 있어.”
“아……. 공포가 작동하는 거군요.”
“바로 그거야! 내가 가르친 보람이 있구만! 커커커!”
대만 증권시장에서 하루 주가가 떨어질 수 있는 한계는 10%다. 하지만 주가지수를 기초 자산으로 하는 옵션의 가치 변동에는 제한이 없다.
풋 옵션 프리미엄은 대만 증권시장 장기 하락을 예상한 투자금이 들어오면서, 꾸준히 증가하다가, 폐장 40분을 남기고 급격히 오르기 시작했다.
창수와 김근홍에게 풋 옵션 매도 타이밍이 온 것이다.
- 탁! 탁! 탁!
“좋아! 모두 체결됐어!”
김근홍은 인간이 한계를 초월한 것 같은 빠른 키보드질과 판단력으로 매입가 15억 달러에 달하는 풋 옵션을 제시간에 모두 매각했다.
김근홍이 기뻐하는 걸 보면, 만족할 만한 성과를 이룬 것이 분명하다.
“선배님, 수고하셨습니다.”
“당연히. 수고했지. 나 아니면 이렇게 빨리 정리 못 해. 그런데 말로만 수고했다고 끝내는 건 아니겠지?”
“술이라도 사 줄까요?”
“술은 나도 많아. 그건 됐고, 성과급으로 10억 달러만 줘라.”
기분이 좋아 오버액션 하는 걸까?
김근홍은 창수에게 한국 돈 1조1,500억 원에 달하는 거금을 보너스로 요구했다.
김근홍도 투자한 금액이 있기에, 수익의 20%를 가져간다. 여기에 보너스 10억 달러를 더 지급하라는 건 무리한 욕심으로 보일 수 있다.
“알겠습니다. 보너스 드리죠.”
“오! 화통한데! 안 준다고 뻐팅길 줄 알았는데 말이야!”
“선배님이 보너스 달라고 하면, 합당한 이유가 있겠죠. 우리가 얼마큼 번 건가요?”
“놀라지 마라.”
“안 놀랍니다. 얼마예요?”
“400억 달러!”
“와! 목표 수익보다 100억 달러를 더 번 거예요?”
“그러니까 추가 수익의 10%를 보너스로 달라고 한 거지.”
매수한 주가지수 풋 옵션은 모두 15억 달러. 김근홍은 20배인 300억 달러 수익을 타깃으로 설정했다. 주가지수가 20% 하락하면 달성할 수 있다고 예상하며.
그런데 주가지수가 10%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목표보다 100억 달러를 더 벌었다. 400억 달러 수익을 올리려면, 주가지수가 25% 하락해야 한다.
이런 비정상적인 수익이 발생한 것은, 대만 증권시장에 참여하는 투자자들이 3일 연속 하한가를 예상했기 때문이다.
공포가 이성을 완전히 압도한 상황.
“10억 달러 보너스는 당연히 드려야죠. 선배님의 능력과 끈기가 없었다면, 100억 달러 초과 수익은 불가능한 거니까요.”
“커커커. 그렇게 대놓고 말하니 쑥스럽구만.”
암브로시아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으나, 불과 2일 만에 4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수익을 얻으니, 감회가 새롭다.
창수와 김근홍은 예상 못 한 수익을 즐기며 덕담을 이어 갔다.
* * *
대만 시간 오후 8시, 미국 시간 오전 7시, 백악관에서 호튼 재무장관이 셀든 대통령과 배석자 없이 독대했다.
“대통령 각하, 중국의 대만 침공을 이대로 좌시해서는 안 됩니다.”
“나도 중국의 작태에 치가 떨리오! 하지만 대만 차잉옌시가 멍청한 짓을 하는 바람에 개입할 명분이 없어졌소!”
미국은 대만이 중국을 기습 공격한 것을 무마하려고 노력했다. 볼링튼 장관을 통해 ‘중국 첩자 자작극’ 설을 구체화하라고 대만에 훈수까지 뒀다.
그러나 대만 총통 차잉옌시가 ‘레이더 오작동’이 만든 문제라고 시쩌뚱 측에 통보하면서, 중국을 견제할 힘을 잃고 말았다.
가뜩이나 짜증나는 판에 군사-외교와 관계없는 재무장관이 무리한 요구를 하자, 셀든의 목소리가 저절로 높아졌다.
“명분이 없더라도 만들어야 합니다. 이대로 대만이 공격당하도록 방치하면, 월가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월가가 무너져? 그건 무슨 말이오?”
“오늘 대만 증권시장이 폭락하면서 파생 금융에서 월가가 입은 손해가 700억 달러에 달합니다.”
“미친! 로만브라더스 사태를 당하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거요!? 당신들!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옵션은 제로섬게임이다. 창수 일행이 400억 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올렸다면, 누군가가 400억 달러 손해를 봐야 한다.
이번에 손해 본 대상은 풋 옵션을 대거 매도한 세력이고, 그 대부분이 올드만 같은 월가의 거물 투자은행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손해 본 금액 중 57%가 창수와 김근홍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셀든은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부른 로만브라더스 사태를 떠올리며, 투자은행들의 무모한 행태를 힐난했다.
“월가의 잘못이 아닙니다. 중국의 치밀한 함정에 걸린 겁니다. 대만이 중국을 공격하기 전에 뉴욕 증시에 상장된 USMC 주식이 20%나 폭락했습니다. 이건 중국이 사전에 공작하지 않고서는 발생할 수 없는 일입니다.”
“흠……. 나도 USMC 주식이 이상하게 추락했다는 보고를 받았소. 그런데 그것이 중국의 소행이라는 말이오?”
“차익을 가져간 세력을 추적하니, 대부분 중국과 연결됐습니다.”
“자금 흐름이야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소. 그것만으로 중국이 공작을 벌였다고 단정하기는 이르오. 추가 조사를 해 보고 결정합시다.”
USMC가 대만 업체이기는 하지만,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를 선도하는 업체이기에 셀든도 주가 폭락을 보고받았다.
비서실에 원인을 알아보라고 지시했으나, 아직까지 후속 보고를 받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올드만 대표 출신 호튼이 중국과의 관계를 언급하자, 솔깃해졌다.
그러나 세계 2위의 경제력을 가진 중국을 상대해야 하는 일이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확실한 증거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
“추가 조사를 기다리다가는 늦습니다. 아직 터지지 않은 폭탄이 남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