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26장. 양안전쟁
3.
“금융거래는 타이밍이라면서요? 오늘 1/3은 정리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새벽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대만과 중국의 교전이 벌어졌기 때문인가요?”
“그래. 대만 증시는 하루 변동 폭이 10%야. 제대로 뽑아 먹으려면 최소 2일은 기다려야 할 거야.”
국가마다 주식시장의 룰이 조금씩 다르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주가가 오르고 내릴 수 있는 변동 제한.
한국 증시는 하루에 주가가 상하로 30%까지 변동할 수 있다. 미국과 유럽 대부분 국가는 가격 변동 제한이 없고, 대만은 10%에 불과하다.
김근홍은 대만이 중국을 기습하는 돌발 변수가 생겼기에, 대만 증시가 20% 이상 하락하리라 판단했다.
오늘 대만 시장에서 거래하면 수중에 들어올 수익을 뭉텅이로 내동댕이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대만 증시가 얼마까지 떨어질까요?”
“일단 오늘 하한가 가는 건 확정이라고 봐야지. 그다음은 중국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달라질 거야. 오늘밤 열리는 뉴욕 증시를 보면, 대충 윤곽이 나오겠지.”
“오늘 밤도 일찍 자기는 글렀군요.”
“당연하지. 그러니까 여유가 있을 때 푹 쉬어야 해. 어쩌면 오늘 뉴욕 시장에서 대규모 거래 할 수도 있어.”
“오늘 밤에 USMC 주가가 최저로 떨어진다고 예상하는 건가요?”
며칠 더 지켜보자며 대만 증시를 관망하는 모습을 보인 것과 다르게, 뉴욕 증시에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USMC 풋 옵션 매각까지 언급했다.
이건 오늘밤 열리는 뉴욕 증시에서 USMC 주가가 바닥을 칠 거라는 이야기와 같다.
창수는 김근홍이 어떤 근거를 가지고 확신하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주가가 최저가인지 아닌지는 아직 몰라. 하지만 여기서 USMC 주가가 10% 더 빠지면, 풋 옵션 프리미엄 가치가 최고가를 찍을 가능성이 높아.”
“옵션 가격은 기초 자산에 따라 결정되는 것 아닌가요?”
“일반적으로 그렇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니야. 미래 예측이 가격에 포함되니까. 풋 옵션의 경우 공포 지수가 높을 때 프리미엄이 포동포동 살찌는 거야.”
“옵션이 알면 알수록 오묘하네요.”
“초보자가 발 담글 영역이 아니야. 금융 공학을 공부하고 적어도 실무에서 5년은 경험해야 옵션에 손댈 수 있어.”
본래 기초 자산 위험 회피 수단으로 개발된 옵션은 본연의 쓰임이 아니라 투기적인 목적으로 전용되면서, 수많은 투자자를 파산으로 이끌었다.
옵션을 단순한 위아래 50% 확률 게임으로 보거나, 교과서적인 가격 결정이 항상 나타날 거라 생각하는 초보자가 옵션 매매에 뛰어들면, 패가망신으로 달려가는 급행열차를 타는 꼴이 된다.
김근홍은 창수가 섣불리 개인적인 옵션 거래를 시도하지 못하도록 특별히 시간을 내 옵션의 위험성을 설명했다.
* * *
베이징 시간 오전 8시 30분, 미국 국무장관 볼링튼이 중국 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 웨이첸과 통화했다.
중국은 공산당이 정부보다 상위에 있는 체제. 외교 담당 정치국원은 외교부장(외무장관)을 지휘하며, 중국 외교를 총괄하는 자리다.
<즉시, 중국 함대 이동을 중단하십시오. 대만에 대한 적대 행위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오클라호마 연방 청사에 폭발물을 터트린 티모시 맥베이를 미국이 어떻게 처리했나요?>
<그자는 반사회적인 테러리스트입니다. 지금 언급하는 의도가 뭔가요?>
<대만성 반란군의 테러를 가볍게 여기기에 하는 말입니다. 미국이 티모시 맥베이를 처형한 것처럼, 중국도 기습 공격한 대만성 테러범들을 응징할 권리가 있는 겁니다.>
볼링튼은 말 돌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대만을 위협하는 군사행동을 멈추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상대는 만만치 않은 인물. 주미 대사직을 역임해 미국의 흑역사를 꿰뚫고 있는 웨이첸은, 1995년 168명이 사망한 테러 사건을 언급하며, 볼링튼의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오클라호마 테러는 개인의 일탈에 불과합니다. 인구 2,300만 명을 가진 대만과 비교는 어불성설입니다.>
<아니죠. 티모시 맥베이가 폭발 사건을 일으킨 건 미국 연방 정부가 다윗파 신도 82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웨이코 참사에 반감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양식 있는 지성들이 이구동성 웨이코 참사를 비판하고 있죠. 티모시 맥베이의 행동은 개인 일탈이 아니라, 미국 연방 정부를 응징하려는 수많은 사람을 대변한 것입니다.>
테러범 티모시 맥베이는 1993년 벌어진 신흥종교 집단 사망 사건이 자기가 범죄를 저지른 원인이라고 말했다.
미국 연방 정부의 악행에 복수하려고 오클라호마 테러를 벌였다고 주장한 것.
티모시 맥베이가 웨이코 참사 항의 시위에 참여한 것이 뉴스 영상에 잡힌 것을 보면, 범행 동기는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상당수 미국인이 웨이코 참사에 미국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여기고 있다.
하지만 테러범 티모시 맥베이의 행동이 옳다고 말하는 미국인은 소수에 불과하다. 웨이첸은 사실과 거짓을 적절하게 혼합하며 볼링튼을 공격했다.
<궤변이 심하군요! 웨이코 광신도들은 온갖 악행을 일삼다가 스스로 불을 질러 자살한 겁니다!>
<정말 그럴까요? 미국 정부는 다윗파가 마약을 유통하고 미성년자를 성폭행했다고 주장하지만, 제대로 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파 신도들이 보호 장비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건물 안으로 무리하게 최루탄을 투입해서 참사가 일어난 겁니다.>
<아니요! 광신도들의 악행을 나타내는 증거는 충분히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건물 진입은 51일간 이어진 대화가 결렬됐기에, 부득이 단행한 겁니다!>
<무고한 어린아이들 수십 명이 희생된 것도 부득이한 일인가요?>
29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웨이코 참사에 관한 평가는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극과 극이다.
미국 연방 정부가 평화적 해결을 위해 충분히 노력했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비록 신흥종교지만 종교의 자유가 있는 사람들을 과도하게 탄압했다는 평가도 있다.
특히, 연방 정부가 신도들이 모인 건물 안에 최루탄을 투입할 당시, 어린이 25명도 있었다는 것 때문에 집중적으로 비판받았다.
진압을 주도한 FBI에게 영아 살해범(baby killer)이라는 오명이 내려지기도 했다.
<중국이 언제부터 인권에 관심을 가졌나요?>
<중국은 어린아이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의 인권을 항상 존중합니다.>
<중국이 인권을 존중해서 위구르인 수백만 명을 불법 감금했습니까? 강제 노동, 세뇌 학습, 성 고문, 강제 혼인, 고문, 살인, 중국이 저지른 반인류 범죄 목록이 한가득입니다.>
웨이첸이 웨이코 참사를 물고 늘어지자, 볼링튼이 반격에 나섰다. 인권 침해로 보면 중국은 미국과 비교가 안 된다.
중국은 위구르인에게 직업교육을 하고, 이슬람원리주의 침투를 사전에 막는 것을 목표로 ‘신장 재교육 캠프’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캠프 입소와 출소가 자유롭지 않고, 정신적 육체적 학대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곳을 ‘강제수용소’라 부르는 것이 보편타당한 평가.
<위구르 자치구 관련 건은 중국 내부 일입니다. 미국이 관여할 이유가 없고, 자격도 없습니다.>
<미합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오랫동안 지지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중국이 무력이 아닌 대화로 여러 민족을 포용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억압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면, ‘하나의 중국’을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진상 규명이 될 때까지 대만에 무력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대만성 반란군이 테러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이미 차고도 넘칩니다. 무슨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는 건가요?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중국 내부의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합니다. 내정간섭 삼가기 바랍니다.>
서로 상대방의 약점을 찌르는 치열한 공방이 지나고, 다시 대만 문제로 돌아갔다.
볼링튼이 원하는 건 중국 전투함의 이동을 막아 대만에 가해지는 압박을 해소하는 것. 그러나 대만을 응징해야 한다고 결심한 웨이첸은 단호했다.
<진상 규명의 의미를 모르는군요. 대만군 내부 인사를 중국이 매수했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그 정보가 사실이라면,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명분이 없는 거죠.>
<후후후. 그런 얄팍한 핑계로 대만성 반란군의 만행을 가릴 수 있을 거라 보나요? 그런데 어쩌죠. 이미 늦었는데.>
<무슨 말인가요? 그게?>
<반란군 수괴 차잉옌시가 ‘레이더 오작동’이라고 이미 실토했습니다. 그 내용이 미국에 전달 안 됐나 보죠?>
웨이첸의 말대로 타이밍이 늦었다. 볼링튼이 대만 외교부장에게 작전을 하달하기 전에, 대만 총통이 베이징에 사과 메시지를 전하면서 ‘레이더 오작동’을 사고 원인으로 지목했던 것.
<음……. 여러 가능성 중 하나를 말한 거겠지요.>
<볼링튼 장관님, 미국은 대만성과 방위조약을 맺지 않았고, 대만성에 군사기지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테러를 자행한 반란군을 위해 미군 장병이 피 흘린다면, 미국 내 여론이 어떻게 될까요?>
<지금 협박하는 겁니까?>
<협박이 아니라 당면한 현실을 말하는 겁니다. 미국이 우리 중국의 정당한 응징을 막는다면,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에서 당한 실패를 아득히 넘는 참담한 지옥을 맛봐야 할 겁니다.>
<핵전쟁이라도 하겠다는 말 같군요?>
<못 할 것 없죠.>
<…….>
웨이첸은 중국 공산당 고위급 중에서 온건하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하지만 핵무기 사용을 언급할 정도로 강경한 자세를 보였다. 이건 웨이첸이 진정으로 대만의 기습 공격에 분노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외교는 국가의 힘이 강하게 투사되는 영역이지만, 동시에 명분도 강한 영향력을 가진 분야다.
대만의 기습 공격이 명확한 상황에서, 볼링튼이 웨이첸을 압박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 * *
같은 시각, 중국의 군사적 압박이 시시각각으로 강해지는 시점에서, 대만 방송국에서는 전문가들을 초청해 토론 시간을 가졌다.
[중국 동해함대와 북해함대가 대만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중국 전투기 수백 대가 이미 푸젠성에 집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육군과 미사일부대도 푸젠성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차잉옌시 총통은 뭐 하고 있나요? 당장 베이징으로 날아가, 사죄하고 무력 충돌을 면해야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중국군은 종이호랑이예요! 미국이 대만을 돕는 이상 중국군은 우리를 공격하지 못합니다!]
[너무 낙관적인 생각입니다! 대만군이 중국군을 선제공격한 것이 사실이라면, 미국도 우리를 섣불리 도울 수 없는 겁니다!]
[미국은 절대로 대만을 버리지 못합니다! 과도하게 위기 조장하지 말고, 침착하게 상황을 보세요!]
중국이 목을 조여 오는 위기에서도 대만의 국론은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 중국과 손잡아야 한다는 야당과 대만 독립을 추구하는 여당이 극렬히 대립한 것.
- 염병할! 저런 매국노가 전문가라고!?
- 상황이 그런 걸 어쩌겠냐? 이참에 공산당이 득세하면, 저런 놈도 한자리할 거 아니야? 지금 눈도장 찍어야겠지.
- 저렇게 공산당 손들어 주는 놈이 있으니, 미국이 우리를 의심하는 거야!
홍콩 민주화시위 강제 진압과 코로나 창궐을 거치면서, 중국에 대한 대만인의 혐오가 극에 달한 상황.
대만 시청자들은 중국과 화해를 추진하자는 야당 측의 주장에 분노하며, 비판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30분이 흐르고 오전 9시가 되면서 대만 증권시장이 거래를 시작했다.
장 초반 -4%에서 시작한 대만 증시는 공방을 지속하다가 20분 만에 -6%에 이르렀다. 이후 바닥을 다지는 모습을 보인 대만 증시는 대규모 자금이 유입되면서 반등을 시작해 -2%까지 하락폭을 줄였다.
그리고 오전 10시.
[긴급 속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