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26장. 양안전쟁
1.
<속보. 중국 정부 중대 발표 임박.>
베이징 시간 11월 30일 오전 6시 30분, AAB, 울프네트워크, CMM을 비롯한 글로벌 네트워크 뉴스와 주요 통신사에 중국이 특별 선언한다는 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 중대 발표? 본격적으로 일본을 친다는 건가?
- 걱정이야. 중국이 일본을 공격하면 미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건데.
- 이러다가 3차 세계대전 나는 것 아니야?
- 그럴 가능성이 크지. 세계의 화약고 동북아시아에 격발장치를 누르는 꼴이야.
동북아시아에서 중동까지 아시아 대부분 지역이 깊은 잠에 빠진 시간에 나온 속보는 아시아인들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중국이 대규모 함대를 동원해 일본을 압박하면서 동북아 하늘길이 막혀 여행과 운송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중국이 일본에 대대적인 공세를 취한다면, 바닷길도 막힐 가능성이 높다. 한국과 일본이 차지하는 경제적 위상을 생각하면 매우 심각한 상황.
게다가 중국이 일본을 공격하면, 미국이 참전하는 건 정해진 것이고, 한국과 러시아도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
세계 군사력 TOP 6개 국가 중, 5개가 편 갈라서 전쟁을 벌이면, 그것이 바로 제3차 세계대전.
아시아인들은 중국의 발표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 전쟁할 거면 빨리 하지, 시간만 질질 끌면서 주가만 떨어트리고 있어!
- 너 USMC에 물렸냐?
- 물린 게 아니야! USMC는 초우량 기업이라고!
- 하루에 20%나 빠지는 개허접이 퍽이나 우량 기업이다.
- 속 긁지 마! 그게 다 우유부단한 중국 때문이야!
미국인과 유럽인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의 관심은 시가총액 5,500억 달러에 달하던 USMC가 하루 만에 1,1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가치를 잃어버렸다는 것에 쏠렸다.
USMC는 IT 관련 분야에 관심 있는 투자자에게 우량주로 통했다. USMC 주식이 10% 하락하자, 바닥이라고 생각한 투자가들이 대거 몰려든 건 자연스러운 일.
그러나 10%는 바닥이 아니라 또 다른 추락의 기점이었다. 3% 기술적 반등 이후 USMC 주식이 다시 폭락하기 시작해 15%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더 많은 투자자가 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더 이상 추락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것.
투자자들은 USMC 주가가 20%까지 하락한 뒤에, 자신들이 헤어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에 빠졌다는 걸 알게 됐다.
세칭 증권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USMC 주가 하락을 중국과 일본의 함대가 대치하는 것에서 찾았다.
세계 경제의 25%를 차지하는 동북아시아의 불확실성 증가가 USMC의 미래 가치를 떨어트려 주가 폭락이 왔다는 것.
사실과 동떨어진 헛소리지만, USMC에 발목이 잡힌 수많은 투자자자가 전문가의 말을 믿었다.
투자자들의 바람은 중국이 전쟁을 벌이든, 협상하든, 빠른 시간에 결판을 내,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거다.
* * *
[오늘 오전 5시 35분, 대만성 반란군이 바시해협을 통과하는 인민해방군 구축함지대를 향해, 10발에 달하는 초음속 대함미사일을 기습적으로 발사했습니다.
천인공노할 암습을 받은 인민해방군은 모든 수단을 다해 피해를 줄이려 했으나, 간악한 마수를 피하지 못하고 수백 명에 달하는 장병이 전사했습니다.
중화 인민의 당, 군, 정부는 대만성 반란군의 폭거를 규탄하며, 응징에 나설 것을 천명합니다.
그리고 경고합니다. 반란군을 돕거나 옹호하지 마십시오. 누구든 반란군을 이롭게 하는 세력이 있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응징할 것입니다.]
오전 7시 정각,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기자회견을 열어 바시해협에서 벌어진 전투를 공개했다.
- 척! 척! 척!
“여기요!”
진중하면서도 비장미가 넘치는 대변인의 발표가 끝나자, 기자들이 일제히 손을 들어 질의 권리를 요구했다.
“AAB 기자님.”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주관하는 기자회견의 첫 번째 질의는 중국 관영 언론이 도맡아 왔다.
하지만 오늘은 이례적으로 영국계 글로벌 뉴스 네트워크 AAB에 첫 질의 권리를 줬다.
“타이베이가 아무런 경고나 조짐 없이 초음속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인민해방군 구축함지대는 평화롭게 바시해협을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사전에 아무런 충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기습을 당한 겁니다.”
“믿기지 않는군요. 증거가 있습니까?”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질의응답이 끝나고, 각 언론사에 증거물이 제공될 겁니다.”
AAB 기자는 다소 공격적인 어투로 대만의 공격이 사실인지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에 비해 현격히 약한 군사력을 가진 대만이 선제공격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당황하지 않고 담담하게 증거가 있다고 대답했다.
“타이베이가 공격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인민해방군 구축함지대는 필리핀해로 진입해 북상할 예정이었습니다. 간악한 대만성 반란군이 우리 전투함들이 전범국 일본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고 여겨, 기습을 감행한 것이라 봅니다.”
“중국 전투함이 타이베이 해안에 과도하게 접근한 것이 원인 아닐까요?”
“아닙니다. 인민해방군 구축함지대는 대만성 해안에서 90km 떨어진 위치에 있었습니다. 이에 관한 증거 역시 배포할 예정입니다.”
AAB 기자가 대변인 주장의 허점을 찾으려 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건 기자가 무능하거나 중국에 매수된 것이 아니라, 중국 측이 사실을 발표했기에 나타난 현상이다.
- 헉! 대만 놈들 미쳤네! 초음속 대함미사일을 10발이나 발사해!
- 지대 하나를 몰살하려고 작정한 거지!
- 아무리 친일이라고 하지만,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네.
- 이렇게 되면, 중국 주장이 모두 사실 아닌가?
- 맞아. 일본이 비밀리에 공격용 미사일을 개발한 게 사실이고, 대만이 일본을 돕는다는 주장도 맞는 말이야.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발표와 질의응답을 생중계로 지켜본 아시아인들이 입을 모아 대만을 성토했다.
이들 대다수는 평소에 중국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로 웬만하면 중국 편에 서지 않으려 했으나, 드러난 증거가 확고하기에 대만을 옹호할 수 없었다.
- USMC 주가가 폭락한 원인이 바로 이거군! 대만이 중국을 기습한다는 정보가 미리 샌 거야!
- 환장하겠네! 이런 야바위가 있는 줄도 모르고 피 같은 내 돈을 USMC에 바쳤어!
- 풋 옵션에 뭉텅이 돈 들어갔는데, 그거 대만 놈들 비자금 아닐까?
- 분명해. 쌍놈의 새끼들이 풋 옵션 들고, 사고 친 거야!
미국과 유럽은 USMC 주가 폭락과 대만 기습 공격의 연관성에 집중했다.
우량 기업 주가가 특별한 악재 없이 하루 만에 20% 폭락한 것에 가졌던 의문이 대만의 기습 공격으로 풀린 것이라 여긴 것.
사실 이것 또한 근거 없는 억측에 불과하다.
하지만, 진실이 드러나진 않은 지금, 현 상황을 가장 그럴듯하게 설명해 주는 가설임은 분명하다.
2.
기자들의 질의응답 시간이 끝나고 중국 측에서 제시한 증거가 신빙성이 높다는 판단이 나오자, 국제 정세가 급박하게 움직였다.
<중국에 선제공격을 하다니요!? 지금 제정신입니까!?>
<그……. 그것이…….>
오전 8시, 미국 국무장관 볼링튼은 대만 외교부장 자오즈샹을 힐난하며 왜 일을 벌인 것인지 다그쳐 물었다.
볼링튼의 언행은 외교적으로 매우 무례한 것이나, 자오즈샹은 반발은커녕 제대로 말을 잇지도 못했다. 지은 죄가 있으니까.
<뭐라고 변명이라도 해 보세요!>
<레이더의 오작동이 있었습니다. 중공군이 선제공격한 것으로 표시돼 자위권 차원으로 부득이 반격한 것입니다.>
<레이더 고장이라고요? 허허……. 황당하군요. 게다가 해안선에서 90km 떨어진 전투함 10척을 향해 슝퍼3 미사일 10발을 날리고서 자위권 차원이라고 말하면, 누가 그 말을 믿을 거라 생각하나요?>
<…….>
대만 정부는 중국 전투함을 공격하라고 명령하지 않았고, 계획하지도 않았다. 사건을 보고받은 것도 오전 6시, 중국군을 기습한 지 25분이 지난 후였다.
첫 보고에 놀란 차잉옌시 대만 총통은 긴급 안보 회의를 소집하고, 국방부장(국방장관)과 참모총장에게 사건의 진상을 밝히라고 추궁했으나, 그들도 어떻게 선제공격이 시작됐는지 명확하게 답하지 못했다.
차잉옌시를 비롯해 안보 회의 참석자들이 군부를 성토한 건 당연한 일. 그러나 비난한다고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
중국의 보복을 무마하고 세계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변명거리가 필요했고, 안 돌아가는 짱구를 굴려 만든 것이 ‘레이더 오작동’이다.
하지만 어설픈 핑계가 미국 국무장관에게 통할 리 없다.
<이번 사건은 대만군 내부의 중국과 내통한 자가 벌인 자작극입니다. 반역자를 색출하고 중국의 흉계를 밝히십시오. 무슨 말인지 알겠죠?>
<좋은 충고 감사합니다! 반드시 배신자를 잡아내겠습니다!>
볼링튼은 자오즈샹과 상의하기 위해 통화한 것이 아니다. 현시점에서 중국의 반발을 효과적으로 삭감할 방안을 대만에 통보하려고 통화한 거다.
물론, 대만군 내부에 중국과 내통한 간자가 있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자오즈샹은 없는 배신자라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며, 볼링튼에게 사의를 표했다.
* * *
“선배님! 난리 났습니다! 어서 일어나 보세요!”
“끄응……. 무슨 일인데 그래?”
볼링튼과 자오즈샹이 통화할 무렵, 창수는 트레이딩 룸에 마련된 간이침대에서 퍼질러 자고 있는 김근홍을 급히 깨웠다.
창수와 김근홍은 뉴욕 증시에서 벌어지는 고래들의 혈투를 흥미롭게 지켜보며, 새벽까지 거하게 술자리를 가졌다.
그리고 태국 시간 오전 8시에 시작되는 대만 증시에 대비하기 위해, 트레이딩 룸에 간이침대 2개를 들여놓고 쪽잠을 잤다.
서로 비슷한 양을 마셨지만, 14살이 어린 창수가 먼저 일어나 김근홍을 깨우고 있는 거다.
“새벽에 대만이 중국 전투함을 기습 공격해서, 사망자가 2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뭐라고!? 걔네들 미쳤나!?”
판단이 빠르고 냉철한 김근홍이지만, 놀라기는 마찬가지. 아니 오히려 그런 성격 때문에 더 놀랐다.
김근홍의 상식에서 대만이 중국을 공격하는 그림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중국이 보복을 다짐하고, 동지나해에 있던 함대를 대만 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푸젠성으로 전투기와 미사일부대, 그리고 육군 병력이 모인다고 뉴스에서 방송하고 있습니다.”
“창수야, 혹시 이거 네가 관여한 일이냐?”
“예? 제가 무슨 수로 대만을 조종해요? 그리고 저와 쭉 같이 있었잖아요.”
“흠……. 이상하기는 한데, 자꾸 네가 영향을 미친 것 같은 생각이 든단 말이지.”
“실없는 말 그만하고요. 대만 증시 열리는 시간이 1시간도 안 남았습니다. 거래 준비 해야죠.”
김근홍이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상식을 파괴하는 인물이 존재한다.
바로 옆에 있는 창수.
김근홍은 창수가 자신과 함께 있으면서 타인을 만나거나 따로 연락하지 않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창수가 대만의 기습 공격에 관여했을 거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사실 거슬러 올라가면, 창수가 퍼트린 기밀 정보가 방아쇠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김근홍이 USMC 풋 옵션을 매수하면서 발생한 주가 폭락 사건이 시쩌뚱을 자극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대만이 중국을 공격한 것은 우연과 필연이 교묘하게 뒤섞인 결과물이다.
“창수야, 오늘 대만 증시에서 거래할 일 없다. 푹 자고 이따가 아점이나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