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83화 (83/200)

83화 25장. 때리는 놈, 맞는 놈, 그리고 돈 버는 놈

8.

“트레이딩 룸에서 술 안 마신다면서요?”

“그사이 USMC에 고래 한 마리가 더 들어온 것 같아. 고래 싸움은 관전해 주는 게 예의야. 그리고 싸움 구경 하면서 술 마시는 게 최고지.”

김근홍이 트레이딩 룸에서 술을 삼가는 것은 감정을 제어 못해 덜컥수 매매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매매를 중단하고 지켜만 보는 상황. 게다가 창수가 곁에 있기에 돌발 행동 할 위험도 적다.

무엇보다 트레이딩 룸에서 술을 마시려는 근본적인 이유는 김근홍이 세력 간 돈 싸움을 매우 흥미롭게 여긴다는 것.

“다른 큰손이 USMC 풋 옵션을 매입하는 건가요?”

“맞아. 벌써 20억 달러나 집어넣었어.”

“이미 풋 옵션 가격이 많이 올랐잖아요. 지금 들어오는 건 무리수 아닐까요?”

“일반 투자자에게는 부담스럽지. 저 20억 달러는 풋 옵션 등가격이나 내가격을 매도한 세력이 헤지 하는 걸 거야.”

“위험을 분산한다고요? 매도한 걸 그냥 환매하는 게 빠르지 않나요?”

“지금 환매하면 손실이 어마어마할 거야. 환매할 돈으로 외가격 풋 옵션을 사면, 주가가 하락할 때 손실을 만회할 수 있어.”

김근홍은 금융 공학을 전공한 전문가답게 USMC 풋 옵션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난타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단숨에 20억 달러를 투입한 곳은 스위스에 기반을 둔 투자은행 TBS. USMC 풋 옵션 등가격과 내가격을 매도해, 15억 달러에 달하는 평가 손실을 입고 있다.

TBS는 손실을 상쇄하기 위해 외가격 풋 옵션 매집에 나선 거다.

“저 세력도 USMC 주가가 떨어질 거라 생각하는 건가요?”

“하방으로 75억 달러 이상이 투입됐으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거야. 게다가 실제로 USMC 주가가 떨어지는 ‘왝더독’이 나타나고 있어.”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거 말하는 건가요?”

“맞아. 우리가 투입한 5억 달러라는 꼬리가, USMC를 흔들어 주가를 폭락시키고 있어.”

풋 옵션과 같은 파생 상품은 기초 자산의 변화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 하지만 반대로 파생 상품이 기초 자산의 가치를 움직일 때가 있다.

이런 현상을 금융시장에서 왝더독이라 부른다. 주객이 전도됐다는 의미.

5,500억 달러에 달했던 USMC 시가총액은 풋 옵션에 95억 달러가 몰리면서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그러면 풋 옵션을 매도한 다른 세력도 환매를 안 하고 더 외가격 풋 옵션을 구매하려 들겠네요.”

“빙고!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아! 그래서 느긋하게 술 마시면서 싸움을 지켜보자는 거야! 이건 메이저리그 월드 시리즈급 이벤트라고!”

생존을 위해서 세계 금융계의 거물들이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판돈을 걸고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는 상황.

이건 몇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진풍경이다.

게다가 거물들이 피 터지는 싸움을 하면, 설령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지 않더라도, USMC 주가와 대만 증시를 폭락시킬 거다.

김근홍은 눈이 즐겁고 실익도 챙기는 장면을 술과 함께 즐기려 했다.

창수는 말리려다가 포기했다.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좋아하는 김근홍을 차마 제지하지 못한 것.

* * *

베이징 시간 11월 30일 새벽 5시, 중앙판공청 주임 장슈보가 다급한 발걸음으로 시쩌뚱의 침실을 찾았다.

“총서기님, 아무래도 정보가 새 나간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야! 그게?”

“뉴욕 증시에서 USMC 주가가 20%나 빠졌습니다. 종합주가지수가 보합인데 유독 USMC만 폭락했습니다. 우리 작전이 노출된 것이 분명합니다.”

창수와 김근홍의 예측대로 USMC 풋 옵션을 둘러싸고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다. 그 여파로 왝더독 현상이 강화돼 주가가 추락했다.

중앙판공청 산하 해외정보수집팀은 이 내용을 특이한 경제 사건의 하나로 여겨 보고했으나, 장슈보는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작전을 알고 있는 사람은 너와 나를 포함해서 모두 5명뿐이야. 우리 중에 배신자가 있다는 거야?”

대규모 함대를 동원해 일본을 압박한 것은 기만책이다. 시쩌뚱도 미국이 일본을 도울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대규모 함대를 투입한 것은 일본과 긴장을 강화시켜 미국을 압박한 뒤, 암묵적인 합의를 맺고 대만을 공략하려는 큰 그림의 일환이었다.

USMC 주가가 폭락한 건 대만 공격 작전이 누출돼 국제금융시장에 흘러갔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작전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모두 시쩌뚱의 수족과 다름없다.

그들 중에 배신자가 나온다는 건 대만 침공 작전뿐만 아니라, 시쩌뚱의 향후 행보에 두고두고 화근이 될 가능성이 크다.

“꼭 배신이 아니더라도, 은연중에 흘릴 수 있습니다. 대만성에 관한 언행에 작은 변화를 눈치 빠른 자가 알아차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밤이 길면 꿈도 많다더니, 잘 나가다가 막판에 틀어지는군.”

장슈보의 말에 일리가 있다. 작전 시간이 길어지면서 필연적으로 문제가 발생한 것.

관건은 ‘어떻게 돌발 변수를 해결하는가?’이다.

“아직은 실망하실 때가 아니라고 봅니다. 플랜 C를 실행하면 단숨에 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습니다.”

“플랜 C라……. 수많은 장병이 희생되겠군.”

“모두 대중국을 위한 일입니다. 총서기님께서 중화의 영원한 태양으로 우뚝 솟을 때, 그들의 희생은 역사에 영광으로 남을 겁니다.”

“슈보! 네 말이 맞아! 어차피 대업을 이루려면 희생이 불가피한 거야! 당장 플랜 C를 실행해!”

약간의 양심이 남아 있는 것일까?

무고한 사람이 희생당해야 하는 플랜 C 실행에 잠시 주춤하는 시쩌뚱. 하지만 영구 집권을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욕심에 작은 양심의 소리가 설 자리는 없다.

잠시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던 시쩌뚱은 단호한 어조로 플랜 C 실행을 지시했다.

9.

대만 시간 새벽 5시 25분, 중국 남해함대 소속 전투함 10척이 대만에서 남쪽으로 90km 떨어진 바시해협 해상에 도착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필리핀해로 진입하고, 남쪽에서 일본을 압박할 수 있다.

“오키나와 미군의 움직임은 어떤가?”

“이렇다 할 변화가 없습니다. 우리 쪽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허! 방심은 금물이야! 우리 부대 역할이 이번 전쟁의 승패를 가를 수 있어! 미군도 그걸 모를 리 없고, 어떻게든 방해하려 들 거야! 정신 똑바로 차리고 경계에 집중해!”

“명심하겠습니다! 지대장님!”

전투함 10척을 지휘하는 제9구축함지대장 가오카이 소장은 태평한 자세를 보인 부관을 강하게 질책했다.

중무장한 전투함 10척은 웬만한 국가의 전체 해군력을 능가한다.

일본 해군 전력이 동지나해에 몰린 상황에서 제9구축함지대가 일본 남부에 등장하면, 일본에 숨 막히는 압박이 될 것이 분명하다.

가오카이는 오키나와에 주둔한 미군이 자신의 부대를 견제하려 들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가오카이의 판단은 합리적이다. 불호령을 들은 부관은 질책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장병들을 독려하며 경계를 강화했다.

그렇게 10분이 지날 무렵.

- 삐! 삐! 삐!

“지대장님! 대만성 남부에서 적 미사일 10발이 날아오고 있습니다!”

“뭐라고!? 타이베이 놈들이 선제공격해!?”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미군이 아니라 대만이 기습 공격을 시작한 것.

제9구축함지대에 내려진 명령은 가능한 한 대만을 자극하지 말고 일본 남부 해역으로 진입하라는 것이었다.

가오카이는 상부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기 위해 대만 해안에서 90km를 떨어트려 부대를 이동시키고 있다.

휘하 전투함 10척도 대만에 아무런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선제공격을 당했다.

뒤통수가 얼얼하다.

“대공미사일 발사! 그리고 적에게 대응 공격 하라!”

당황했지만, 허둥대지는 않았다. 수없이 반복한 연습대로 대응에 나섰다.

날아오는 대만 대함미사일을 요격하고, 동시에 대만에 응징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

- 퓽! 퓽! 퓽!

- 슝! 슝! 슝!

가오카이의 지시를 받은 제9구축함지대 전투함 10척에서 대공미사일 20발과 함대지미사일 20발이 발사됐다.

중국이 사용하는 대공미사일은 아음속으로 날아오는 대함미사일 90%를 요격한다.

적 미사일 한 발에 대공미사일 두 발을 발사하면 대부분 제거할 수 있고, 요행히 살아남은 미사일은 2차 요격으로 제거할 수 있다.

대공미사일 20발을 발사하면서, 방어에 한숨 돌린 셈이다.

“우리가 기습당한 것을 즉시 본부에 알려!”

“알겠습니다! 지대장님!”

선조치 후보고. 가오카이는 방어와 공격을 먼저 실행 뒤, 상부에 전투 상황을 보고했다. 기습받은 상황에서 지휘관으로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실행한 것이다.

- 삐! 삐! 삐!

“지대장님! 적 미사일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7발을 놓쳤습니다!”

“빌어먹을! 남아 있는 모든 대공미사일을 쏟아부어! 간악한 놈들이 초음속 대함미사일을 발사한 거야!”

그러나 위협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만이 발사한 미사일은 아음속이 아니라, 슝펑3 초음속 대함미사일.

슝펑3은 6톤에 달하는 육중한 몸체를 가지고 있고, 마하 2.5 속도로 날아간다. 사거리는 150km.

중국 대공미사일로 초음속 대함미사일을 요격하는 확률은 매우 낮다. 지금도 20발 발사해 3발만 요격했을 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슝펑3이 90km거리를 1분 45초 만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

반격할 수 있는 시간이 아음속 미사일에 비해 1/3로 줄어든다. 이건 공격당하는 전투함에 치명적이다.

가오카이는 초음속 대함미사일의 무서움을 알아보고, 남은 대공미사일 전부를 사용하라고 명령했다.

- 퓽! 퓽! 퓽!

- 슝! 슝! 슝!

제9구축함지대 소속 전투함 10척은 지시에 따라 보유하고 있는 공대공미사일을 모두 발사해 슝펑3 요격에 나섰다.

- 쾅! 쾅! 획!

“지대장님! 미사일 2발을 놓쳤습니다!”

“젠장! CIWS 사용해!”

가오카이의 지시로 슝청3 미사일 7발 중 5발을 제거했다. 하지만 여전히 2발이 남아 있다. 이제 사용할 수 있는 건 CIWS(close-in weapon system)라 불리는 근접 방어 시스템뿐이다.

중국이 사용하는 CIWS는 SGE-30 골키퍼를 무단으로 복제한 H/PJ-14이다. 유효사거리 2km, 발사 속도 분당 4,200발, 30mm 개틀링건을 사용한다.

- 투! 투! 투! 투!

- 휭! 휭! 휭! 휭!

전투함에서 30mm 탄이 비처럼 쏟아져 나왔지만, 골키퍼 자체가 초음속 대함미사일에 취약성을 보이는 상황에서 데드카피가 뛰어난 성능을 발휘할 리 없다.

슝펑3을 요격하지 못하고 모두 허공으로 날아가는 30mm탄.

- 쾅!

- 콰쾅!

“쿠아악!”

“우아악!”

슝펑3 초음속 대함미사일 한 발이 중국 052D형 구축함 창샤의 몸통을 직격했다.

다른 한 발이 052D형 구축함 허페이를 가격했지만, 높이 조절에 실패해 레이더를 타격했다.

“피해 상황 보고해!”

“창샤호! 침몰했습니다! 허페이호! 5명 부상! 사망자 없습니다!”

“생존자 구조 시작해! 그리고 본부에 연결해! 내가 직접 지원 요청 할 거니까!”

구축함 창샤는 강렬한 폭발과 함께 가운데가 절단되면서 바다로 침몰했다.

구축함 허페이는 부상자가 발생했으나 사망자가 없고 침몰을 면한 상황.

격분한 가오카이가 대만에 보복을 다짐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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