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81화 (81/200)

81화 25장. 때리는 놈, 맞는 놈, 그리고 돈 버는 놈

5.

<지금 정리하면, 손실이 1억 달러에 달합니다.>

<빌어먹을! 벌써 그렇게 움직인 거요?>

<작전 세력이 닥치는 대로 풋 옵션을 사들이고 있어, 프리미엄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극외가를 합해서 우리가 매도한 풋 옵션 금액이 얼마요?>

<3억 달러입니다. 하지만 지금 정리하면 손실이 10억 달러에 이를 겁니다.>

첩첩산중. 올드만 대만 지사가 발행한 풋 옵션은 극외가격만이 아니었다. 외가격, 등가격, 내가격 등 기초 자산이 되는 주가지수에 따라 빼곡하게 많은 수량을 매도했다.

미지의 세력이 대만 주가지수 풋 옵션에 전격적으로 투입한 6억 달러 중 절반이 올드만에서 발행한 것이다.

<일단 극외가를 모두 정리하시오. 그리고 시장 상황 봐서 나머지 풋 옵션도 환매하시오. 실행 순서는 외가격이 먼저요.>

<하지만 손실이…….>

<지금 그걸 따질 때가 아니오! 즉시! 내 지시대로 하시오! 만약 어물쩍거리면 당신은 해고야!>

<아……. 알겠습니다.>

하루 거래로 10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하면, 동아시아 본부 관계자는 물론이고, 본사 대표 소이어 칼슨도 문책당할 수 있다.

그런데도 빠른 정리를 지시한 것은 최악의 경우 올드만 전체가 파산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소이어 칼슨은 치열한 전투가 수시로 벌어지는 국제금융시장이라는 정글에서 살아남아 정상급 지위를 차지한 인물이다.

수많은 위기를 헤쳐 나온 생존 전문가의 감각이 말해 주고 있다.

지금은 후퇴해야 할 때다.

<그리고 동아시아 본부에 있는 모든 정보 역량을 동원해, 대만에 닥칠 악재가 무엇인지 알아보시오. 특히 대만 지사에 경고를 전하시오. 계속해서 멍청하게 군다면, 지옥까지 쫓아가서 대가를 치르게 할 거라고.>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대표님!>

금융시장에서 우연은 없다. 20억 달러라는 뭉텅이 돈이 주가 폭락에 베팅한 것은 대만에 모종의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소이어 칼슨은 대만 지사 임직원들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적은 돈에 연연하다가 올드만 전체를 위기에 빠트렸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실수를 만회하려면, 대만 증시를 강타할 위협이 무엇인지 밝혀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해고는 물론이고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치러야 할 거다.

* * *

[트레비스, 출세하니 연락하기도 힘들구나.]

[이 친구야! 지금 자정이 넘었어! 네가 보낸 문자를 빨리 확인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

[재무장관 되기 전에 밤새워 콜걸 파티 하자고, 문자질하던 작자가 누구였더라?]

[어험……. 왜 옛날이야기를 들먹이고 그래? 객쩍은 소리 하지 말고 무슨 일인지 말해 봐.]

동아시아 본부에 정보 수집을 지시했으나,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소이어 칼슨은 인맥을 동원해 대만 경제 상황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연락한 인물이 미국 재무장관 트레비스 호튼.

소이어 칼슨은 은밀한 사생활까지 들먹이며 친우를 압박했다. 익명이 보장되는 문자 서비스를 사용하기에 가능한 일.

[대만 지사 놈들이 일을 저질렀어. 극외가 풋 옵션을 5,000만 달러 매도했는데, 누군가가 단숨에 낚아챘다는 거야.]

[대만 극외가 풋 옵션이면, 7%는 빠져야 손실이 날 거야. 소이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아닐까?]

트레비스 호튼은 올드만의 전직 최고운영책임자였다. 절친 소이어 칼슨에게 자기 자리를 물려주고, 셀든 정부에 입각한 거다.

현역에서 떠난 지 2년이지만, 아직도 시장구조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

[대만 장이 시작하자마자 20억 달러가 일제히 하방으로 몰렸어. 풋 옵션에만 6억 달러가 들어갔고.]

[단기자금이 대만 주가 폭락을 예견한 거군. 하지만 대만 경제는 튼튼해. 무역수지와 경상수지도 흑자 행진하고 있어.]

[흠……. 경제 문제가 아니라면, 이유가 뭘까? 어떤 미친놈이 20억 달러를 그냥 태우려는 건 아닐 건데. 혹시……. 일본에 중국군이 상륙할 가능성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

대만 정부 부채 비율은 GDP의 40%가 안 된다. 수출이 수입보다 많아 해외에서 지속적으로 자금이 유입되는 상황.

미국 재무장관은 대만 주가 폭락을 이끌 경제 문제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렇다면, 다음 가능성은 군사적인 문제다. 중국 해군이 일본 해상자위대를 격파하고 일본을 본격적으로 침공하면, 대만 증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그건 불가능해. 우리 병력이 일본을 도울 거니까.]

[7함대 전력으로 중국의 무력을 막을 수 있을까?]

[7함대가 다가 아니지. 밖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 미국이 가진 군사력이 막강해.]

[그렇다면 도대체 뭐지?]

[내가 보기에, 중국이나 대만 권력 상층부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질 것 같아. 그쪽에 깔아 놓은 네트워크를 잘 활용해 봐.]

[올드만이 만든 네트워크가 붕괴 직전이야. 네가 좀 도와주면 안 될까?]

[재무장관 지위를 사적으로 쓸 수 없어. 지금 전해 주는 조언 정도가 한계야.]

미국 재무장관은 권력 승계 서열 5위에 랭크된 고위직이다. 미국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자리로 마음만 먹으면, 중국과 대만에서 흘러나오는 고급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

그러나 권한에는 책임이 따른다. 민간인 소이어 칼슨에게 고급 정보를 넘겼다가 정치적으로 저격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가 정보를 말하는 게 아니야. 네가 관리하던 중국 VVIP있잖아. 그중에서 한 명만 연결시켜 줘.]

[야! 밑천을 내놓으라는 거냐!?]

올드만에서 트레비스 호튼이 승승장구한 비결은 세계적인 대부호들의 비자금을 관리해 뛰어난 실적을 올린 것이다.

고객 중에 중국 고위층도 상당수 있으며, 비자금 관리는 물론이고 더 깊은 일까지 관련돼 있었다.

시쩌뚱이 독재 체제를 굳히기 위해 정적을 제거하면서 올드만이 구축한 중국 네트워크가 고사 직전이지만, 트레비스 호튼이 관리하던 핵심 고객 상당수는 여전히 건재하다.

이 사실을 어림짐작이나마 알고 있던 소이어 칼슨이 직설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트레비스 호튼이 반발하는 건 당연한 일.

[트레비스, 아끼면 똥 되는 거야. 이번 일이 잘못돼 올드만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너에게도 좋을 일 없어.]

[큼……. 이거 단잠 자다가 날강도를 만난 격이군…….]

국제금융업계의 큰손 올드만은 지금까지 5명의 미국 재무장관을 배출했다. 그들의 개인 역량이 뛰어나 요직에 오른 것이지만, 올드만의 후광도 무시할 수 없다.

소이어 칼슨의 말대로 올드만이 휘청거리면 트레비스 호튼의 지위도 흔들릴 수 있다.

미국 재무장관은 투덜거리면서도 자신이 가진 히든카드 하나를 친우에게 넘겨줬다.

6.

- 타다닥! 탁!

“휴! 겨우 제시간에 매수를 끝냈군!”

“금융거래도 보통 중노동이 아니군요.”

“쉬운 일이 아니야. 체력과 정신력이 없으면 아무리 지식이 좋아도 망하기 십상이야. 거래 중 실수가 나오기 마련이고, 그거 대처 못 하면 한 방에 골로 가는 거니까.”

태국 시간 오후 1시 30분, 대만 시간 오후 2시 30분, 김근홍은 쉴 새 없이 자판기를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만족하는 걸 보니 대만 증권시장 마감 시간에 맞춰 하방 포지션 구성을 마친 것 같다.

옆에서 전문가의 거래 솜씨를 지켜보던 창수는 ‘불로소득’으로 알려진 금융 투자가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선배님.”

“수고랄 게 있냐? 나도 돈 벌자고 하는 일이고, 복수도 곁들인 일인데.”

“하하하. 그래도 고생한 건 고생한 거죠. 이제 느긋하게 술 한잔 하시죠. 중국이 대만 뒤통수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술자리는 밤 11쯤 하자.”

“예? 술 마시는 걸 미루자고요? 그렇게 피곤하세요?”

선물 매도, 풋 옵션 매입 등 대만 금융시장에서 할 일을 마쳤다면, 이제 남은 건 중국이 대만으로 전투함을 돌리는 걸 기다리는 것뿐이다.

창수는 오늘 안으로 중국의 노림수가 실행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김근홍에게 술자리를 제안했다.

쉽지 않은 일을 마쳤기에 김근홍에게 쌓인 긴장을 풀어 주면서, 상황설명을 들으려 한 것.

그런데 참 별일이다. 미녀만큼이나 술을 좋아하는 김근홍이 창수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8시간 후에 뉴욕 증권시장이 열려. 그때까지 맨정신으로 기다려야 해.”

“뉴욕 증시가 대만 증시와 연관돼 있나요?”

“전체는 아닌데, USMC가 대만과 뉴욕에 동시에 상장돼 있어. USMC 시가총액이 5,500억 달러이니, 그냥 넘길 수 없지.”

“그건 대만 증시에서 처리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대만 증권시장은 개별 기업 파생 상품을 거래하기 어려워. 제대로 목줄을 잡으려면 뉴욕에서 처리해야 해. 5억 달러가 남았으니, 충분히 뽑아 먹을 수 있을 거야.”

USMC는 반도체 전문 업체로 대만 경제의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시가총액이 단일 종목으로 대만 증권시장 전체 가치의 1/3을 차지하는 공룡 기업.

김근홍은 뉴욕 증권시장에서 USMC 풋 옵션을 대량으로 매수할 계획이다.

“노른자가 남아 있었군요. 좋습니다. 확실하게 마무리하고 거나하게 한 상 하시죠.”

“좋지! 오늘 술 창고 대량 개방하는 날이다!”

“아르망드 브리냑을 마시는 건가요?”

“당연하지! 그건 기본이고 데낄라 레이 925 먹는 거야!”

“세계에서 제일 비싸다는 술을 말하는 건가요?”

“맞아! 오는 같은 날에는 최고의 술을 마셔야지!”

아르망드 브리냑은 최고급 샴페인으로 한 병에 3억 원이 넘는다. 게다가 데낄라 레이 925는 한 병 가격이 40억 원에 달한다.

100억 달러가 넘는 돈을 가지고 있지만, 소주와 막걸리를 좋아하는 창수에게는 별천지에 있는 술들이다.

“아파트 몇 채 가격을 마신다는 게 어색하네요.”

“야! 쩨쩨하게 굴지 마! 앞으로 네가 벌 돈이 얼마인데, 고작 40억 원에 손을 벌벌 떠는 거냐? 게다가 비용은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거야!”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과소비는 체질에 안 맞아요. 하지만 오늘은 조금 무리해도 되겠죠.”

“알긴 아는구만! 비용 아끼지 말고 최고로 노는 거야! 그리고 창수야! 네 여친 불러라! 이런 때는 여러 사람 불러서 같이 보내야 해!”

“예!? 여친이요? 저 여친 없는 거 잘 아시잖아요?”

“까오가 네 여친 아니야?”

“아닙니다! 까오와 저는 어디까지나 비즈니스 관계입니다!”

“까오는 그런 눈치가 아니던데…….”

김근홍은 창수가 천문학적인 돈을 가진 거부답지 않게 너무 수수하게 생활한다고 생각했다.

고집 센 창수가 몸에 밴 서민적인 생활 습관을 바꾸려면, 사람들이 몸을 돌려 쳐다볼 만큼 빼어난 미모를 가진 여친이 있어야 한다고 봤다.

아름다움은 가꿀수록 높아지고 덩달아 소모되는 비용도 증가한다. 까오 정도 되는 미모를 가진 여친을 제대로 건사하려면, 창수가 호주머니를 열고, 거부다운 라이프 스타일을 택할 거라 생각한 것.

그러나 창수는 김근홍의 흉계(?)를 미리 예측한 듯, 단호하게 까오와의 관계에 선을 그었다.

“아시잖아요. 제가 여자 사귈 마음 없다는 걸.”

“하긴, 워낙 뒤통수를 얼얼하게 맞아서 아직은 무리겠지. 하지만 언제까지 혼자 지낼 수는 없어. 세상에 예쁘고 착한 여자도 많으니까, 피하지 말고 찾아 봐.”

“커험! 선배님! 저 여성 혐오주의자 아닙니다!”

“알았다! 알았어! 여자 이야기 그만하고 오늘은 너하고 나하고 밤새도록 마시는 거야!”

인간에게 받은 상처는 치유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김근홍은 창수가 전 약혼자에게서 받은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럴 때는 강요하기보다 기다리는 것이 현명하다.

언제나 그렇듯 창수가 올바른 해결책을 찾을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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