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25장. 때리는 놈, 맞는 놈, 그리고 돈 버는 놈
3.
“중국은 미군 기지가 있는 국가를 침공하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동북아시아에서 미군 기지가 없고 중국과 대척하는 곳은 하나뿐이죠.”
“대만!? 중국이 양안전쟁을 일으킨다는 거야!?”
“전쟁인지? 무력시위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겨눈 칼이 대만을 향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흠……. 대만을 방심하게 만들고 뒤통수치려는 건가?”
김근홍은 창수에게 위탁받은 다이아몬드를 대만 부호들에게 판매했다.
일본이 공격용 미사일을 개발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 전에 대만 부호들은 웃돈을 주고 다이아몬드를 고가에 매입했다. 중국이 대만을 노리고 있다는 위기감이 원인.
하지만 중국이 일본에 선전포고에 가까운 선언을 발표하고, 실제로 전투함 69척을 동원하자, 대만에서 다이아몬드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어제 오후 이후는 이전에 계약했던 다이아몬드 거래마저 모두 파기됐다.
중국이 일본과 대결하는 상황에서 당분간 대만을 공격할 여력이 없다는 안도감이 부유층 사이에 널리 퍼진 것.
김근홍도 고객의 분위기에 편승해 대만에 닥친 위험을 잊고 있었다.
“중국 함대가 일본을 치는 척하다가 대만으로 이동하면, 대만 군사력으로 막아 내기 어려울 겁니다.”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야. 잠시만 기다려 봐. 상황 좀 알아보고 올게.”
김근홍은 예전부터 창수의 예측을 존중했다. 중국이 노리는 대상이 일본이 아니고 대만이라는 말도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창수의 주장을 무조건 받아들일 수 없는 일. 김근홍은 중국군의 정확한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정보 수집에 들어갔다.
“창수야, 남해함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대만 함선을 공격하려는 건가요?”
“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하지만 하이난성에 배속된 전투함들이 대만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어.”
한 시간이 흐른 뒤 김근홍이 최신 정보를 가지고 돌아왔다.
하이난성 산야에 배치된 전투함 10척이 대만과 필리핀 사이 바시해협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것.
“수상한 움직임이군요.”
“그렇지. 군사 전문가들 중론은 하이난성의 전투함이 필리핀해로 빠져나간 뒤 북상해, 일본을 압박할 거라는 거야. 그런데 네 말을 듣고 상황을 다시 보니, 대만 섬 전체를 포위할 가능성이 커 보여.”
“중국 주력 함대는 어디에 있나요?”
“상하이에서 4시 방향 수역에 집결 중이야. 일본은 3개 함대를 동원해 견제하고 있어. 그리고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요코스카에 있는 미군 7함대 주력이 규슈 방면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어.”
중국은 일본 규슈를 공격할 수 있는 거리에 전투함 48척을 배치했다.
일본 해상자위대 전투함 24척보다 중국 해군 전력이 두 배 많기에, 세계 군사 전문가와 대중의 이목이 여기에 쏠려 있다.
산야 기지에서 출발한 전투함 10척도 일본을 남쪽에서 압박하는 용도라 판단했다.
“주력 함대와 대만의 거리가 멀지 않군요.”
“500km 거리야. 남해함대가 대만 남쪽과 동쪽을 틀어막으면, 단번에 협공할 수 있는 거리지.”
중국 동해함대와 북해함대가 집결한 장소는 일본을 공격할 수 있는 위치이면서, 동시에 대만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중국이 대만을 공략하려는 것이 확실합니다. 암브로시아 운송 루트를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겠지. 대안 루트는 3개야. 필리핀 일본을 거치는 것. 러시아로 보낸 뒤 한국으로 운송하는 것. 유럽 미국을 거쳐 한국으로 보내는 방법.”
“일본을 거치는 건 위험합니다. 지구 반대편으로 도는 건 시간이 너무 걸리고요. 러시아를 통해 한국으로 운송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확실히 김근홍은 유능하다. 단시간에 암브로시아 운송을 재개할 대안들을 마련했다.
그리고 창수는 그중에서 시간 단축과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러시아 루트를 택했다.
“좋은 선택이야. 내일 선적부터 러시아로 보내면, 일본에서 전쟁이 벌어지든, 대만에서 전쟁이 벌어지든, 공급에 차질이 없을 거야.”
“그러면 선배님만 믿습니다.”
“왜? 가려고?”
“그래야죠. 저도 저녁 비행기 타고 러시아 거쳐 한국으로 돌아갈 겁니다.”
업무적인 대화를 마치고 떠나려는 창수를 김근홍이 붙잡는 모습을 보였다.
창수는 오랜만에 만나 술자리를 하자는 것으로 알아듣고, 귀국해야 한다는 걸 알렸다.
평행우주 한양은 수시로 들렀지만, 금나라 선양을 마지막 방문한 날짜가 4개월이 넘었다.
선양에서 마법사 고사누를 만나야 암브로시아 생산 마법진을 가져올 수 있고, 다이아몬드도 조달할 수 있다. 가능한 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여기서 일주일 정도만 더 있어. 너에게 큰돈이 굴러올 거야.”
“예? 태국에서 돈벌이한다고요?”
“그래. 1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큰돈 벌이 기회가 왔어.”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창수가 10월에 암브로시아 판매로 벌어들이는 순수익이 20억 달러에 달한다. 한국 판매량을 알아봐야겠으나, 11월 순수익이 25억 달러에 이를 가능성이 크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김근홍이 ‘큰돈’이라고 말하고 있다. 도대체 어떤 건수일까?
“대만에 전쟁 위기가 닥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거라 생각해?”
“경제 위기가 오겠죠. 사람들이 탈출하려고 아우성칠 거고요. 혹시, 다이아몬드를 더 고가에 팔려는 건가요?”
“아니야. 다이아몬드 수량이 한정돼 있어. 그리고 고객의 사정이 나빠졌다고. 무작정 가격을 올려 버리면, 평판이 완전히 쓰레기가 되지. 소탐대실이야. 창수야, 내 전공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
“아! 금융시장 폭락에 베팅하자는 거군요!”
중국이 대만을 봉쇄하려는 조짐만 보여도 대만 금융시장은 폭격받은 것처럼 무너질 거다.
금융 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김근홍과 같은 인물에게 더없이 좋은 돈벌이 찬스.
“맞아. 바로 그거야. 주가지수 선물과 옵션에 대거 하방 포지션을 가지면,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어.”
“IMF 때 대만에 당한 걸 이번에 복수할 수 있겠군요.”
1998년 한국에 불어닥친 IMF 사태로 2만 개가 넘는 한국 기업이 도산했고,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로 인해 한국인이 겪은 고통은 6.25 이후 최고 수준. 1998년 자살률이 1997년에 비해 42%나 급상승했다.
한국에 닥친 IMF 사태는 1997년 7월 태국 바트화 폭락으로 촉발된 아시아 금융 위기의 연장선에 있다.
태국, 인도네시아에 연속적으로 외환 위기가 도래하자, 한국 원화에도 가치 하락 압력이 발생한 것.
이때 한국 정부가 원화 가치를 달러당 800원으로 유지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무리하게 개입하면서, 가지고 있던 외화를 탕진했다.
외환 보유고가 바닥을 보이자, 승냥이처럼 기회를 노리던 일본이 뒤통수를 쳤다. 일시에 한국에서 자금을 빼면서 IMF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한국 공격에 동참한 것이 대만계 자금.
“그렇지! 절호의 기회가 온 거야! IMF 때 내가 영국에서 개고생한 걸 생각하면, 지금도 자다가 쌍욕이 나와!”
“저도 어렸지만, 분명히 기억합니다. 정말 살벌한 시기였죠.”
1998년 당시 영국에 유학 중이던 김근홍은 갑자기 생활고에 빠지게 됐다.
부친이 경영하던 중견 기업이 IMF 사태로 도산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얼마 남지 않은 저금을 탈탈 털어 영국으로 보냈으나, 원화 가치 하락으로 김근홍이 받은 돈은 반 이하로 줄었다.
게다가 지원도 몇 개월 가지 못하고 중단돼, 한국으로 귀국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그 위기에서 김근홍은 온갖 궂은일을 하며 영국에서 버텼다.
평생 고생이라고는 모르고 자랐던 부잣집 도련님이 인생의 쓴맛을 알게 된 것이 바로 그때.
“창수야, 40억 달러 정도 투자해라. 내가 10억 달러 정도 넣을게.”
“좀 더 담가도 되지 않을까요?”
“대만 경제 규모로 50억 달러면 충분해. 더 투입해 봐야 리스크만 증가하고 수익은 큰 차이가 없어.”
“알겠습니다. 40억 달러로 하죠.”
현재 창수가 보유하고 있는 여유 자금은 100억 달러가 넘는다. 마음 같아서는 가진 자금 모두를 투입하고 싶었으나, 김근홍이 말렸다.
주식시장 규모 1조 6천억 달러에 달하는 대만 금융시장을 50억 달러면 충분히 털어먹을 수 있다고 자신한 것.
그리고 창수의 예측이 틀렸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 여유 자금이 넉넉해야, 최악의 상황에서도 피해를 줄이면서 후퇴할 수 있다.
창수는 김근홍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자기 말을 지킬 줄 아는 몇 안 되는 금융 전문가이기에.
4.
11월 29일 홍콩 시간 오전 11시 30분, 투자은행 올드만 동아시아 본부장 패트릭 우가 본사 대표이며 최고운영책임자 소이어 칼슨에게 긴급 보고를 올렸다.
<대표님, 출처를 알 수 없는 자금이 대만 금융시장에 유입되고 있습니다.>
<규모가 어느 정도요?>
<조금 전에 20억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20억 달러? 겨우 그 정도 자금 가지고 이 밤중에 나를 깨웠다는 거요?>
올드만의 운용 자산은 2조 달러가 넘는다. 20억 달러가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대표에게 긴급히 보고할 정도로 비중 있는 금액은 되지 못한다.
더구나 소이어 칼슨이 거주하는 뉴욕은 현재 오후 10시 30분. 개인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는 미국에서 늦은 밤에 전화 거는 건 매우 무례한 일이다.
소이어 칼슨은 소심한 패트릭 우가 호들갑을 떨고 있다 생각하며, 직설적으로 불쾌감을 나타냈다.
<단잠을 깨워 죄송합니다. 하지만 유입 흐름이 모두 하방입니다. 선물 매도와 풋 옵션에 자금이 몰리고 있습니다. 특히 주가가 15% 이상 빠져야 실행이 가능한 극외 가격 풋 옵션에 1억 달러 이상이 투입되고 있습니다.>
<극외가 옵션에 1억 달러? 누가 돈을 버리기라도 한다는 말이오?>
옵션은 기초 자산을 미리 약정한 행사 금액에 사거나 파는 권리를 칭한다. 살 수 있는 권리를 콜 옵션, 팔 수 있는 권리를 풋 옵션이라고 한다.
풋 옵션을 예로 들면, 주당 10,000원의 가치가 있는 주식을 10일 후 10,000원에 팔 수 있는 풋 옵션을 프리미엄 400원을 주고 구매했다고 가정하자.
10일 후 주가가 11,000원으로 오르면, 구매자는 풋 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된다. 이때 수익은 주가 상승분 1,000원에서 프리미엄 비용 400원을 차감한 600원.
반대로 10일 후 주가가 9,000원으로 떨어지면, 구매자는 풋 옵션을 행사해 9,000원짜리 주식을 10,000원에 팔 수 있다. 이때 수익은 주가 차액 1,000원에서 프리미엄을 제외한 600원이 된다.
옵션은 예측할 수 없는 기초 자산의 가격 변동 위험을 피하려고 만든 파생 상품이다.
하지만 기초 자산을 보유하지 않고 옵션 자체만 거래하면 단기간에 투자금 전체를 잃을 수 있는 높은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외가격 옵션은 그 위험이 한층 강화된 형태를 가진다. 예를 들면, 10일 후에 9,000원에 팔 수 있는 권리를 100원에 구매했다고 가정하자.
10일 후 주가가 8,900원으로 떨어져야 본전을 찾을 수 있다. 주가가 9,000원이 돼도 차익이 0원이기에 프리미엄 100원을 손해 보게 되는 것.
소이어 칼슨은 주가가 15% 떨어져야 실행이 가능한 극외가격 풋 옵션에 1억 달러라는 거금을 투입한 것이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했다.
<황당한 일입니다. 하지만 두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요?>
<대만 지사에서 매도한 극외가격 풋 옵션이 5,000만 달러입니다. 만약 대만 주가가 15% 이상 폭락하면, 400억 달러 이상 손실이 날 수 있습니다.>
실행 가능성이 낮으면서도 극외가격 옵션을 구매하는 이유는 한 방에 수백 배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로또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옵션을 매도한 당사자는 받아먹은 프리미엄 가격의 수백 배 이상 지불해야 하는 악몽 같은 상황에 몰릴 수 있다.
패트릭 우는 대만 지사가 벌인 일로 올드만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400억 달러라고!? 당장! 포지션 정리하시오!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