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25장. 때리는 놈, 맞는 놈, 그리고 돈 버는 놈
1.
[속보! 왕밍 외교부장 경질!]
[중국 권력 중심에서 친일파 숙청!]
[중국, 읍참마속 심정으로 일본에 전의 다져!]
일본 정부의 우려는 곧바로 현실화됐다. 28일 오후 5시, 왕밍의 실각을 알리는 소식이 홍콩 언론을 통해 나오기 시작한 것.
읍참마속은 중국 3국시대 촉나라 재상 제갈량이 신임하는 장수 마속을 눈물 흘리며 처형한 것에서 유래한 말이다.
제갈량은 전투에 패배한 책임을 물어 마속을 처단하고 군심을 다잡을 수 있었다.
언론사 기사들은 이구동성 왕밍을 숙청한 것이 일본과의 협상을 거부하고 전면전을 각오한 중국의 결의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이 내용은 AAB, CMM, 울프네트워크 등을 통해 전 세계로 송출됐다.
- 헐! 이거 장난 아닌데! 진짜 전쟁 나는 거 아니야?
- 중국이 칼을 간 것 같아.
- 왕밍을 제거한 건 전쟁 각 잡은 거야!
뉴스를 접한 사람들의 반응도 오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중국이 뒷북치며 형식적인 반응을 한다는 인식이 완전히 사라진 것.
그만큼 왕밍 경질이 충격적이 소식이리라.
- 멍청한 일본 놈들은 무슨 배짱으로 거짓말을 한 거지?
- 이번만 한 게 아니라, 그동안 쭉 해 온 거야. 그러다가 들통난 거지.
- 중국이 재수 없지만, 이번에는 일본을 두둔할 수 없겠어.
그리고 자연스럽게 중국이 강공을 펼치는 이유에 대해 의견이 오갔다.
중론은 ‘일본이 맞을 짓 했다’로 모아졌다.
1937년 시작된 중일전쟁에서 일본에 의해 2,000만 명 이상 살해당한 중국은 전범국 일본의 재무장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일본은 공격용 미사일 개발을 부정하면서, 중국을 비밀 연구소 폭발 사고 배후로 지목했다.
코로나 창궐 이후 중국에 대한 세계인의 여론이 나빠졌다고 하지만, 명백한 증거가 폭로된 현시점에서 일본을 옹호할 수 없는 일.
일본은 중국의 군사적 위협과 국제적인 조롱이라는 이중고에 빠지게 됐다.
* * *
왕밍이 실각했다는 소식을 접한 일본 외무장관 슌오크 코키가 미국 국무장관에게 긴급 전화를 걸었다.
<볼링튼 장관님! 중국의 협박과 군사행동은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폭거입니다! 미국이 나서야 합니다!>
<글쎄요. 중국의 움직임이 일본에 위협이 되는 건 알겠지만,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말에 동의하기 어렵군요.>
미국은 중국을 무력으로 압도하는 유일한 국가이고, 일본과 안전보장조약을 맺은 당사자다.
더구나 중국의 확장을 경계하고 있기에, 미국이 발 벗고 나설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미국 국무장관의 대답은 싸늘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미합중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저지른 패악질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범국이 전쟁 준비에 돌입하면, 유엔 회원국이 선전포고 없이 공격할 수 있는 유엔헌장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안전보장조약은 일본이 침략당했을 때 도와준다는 것이지, 전쟁 준비 하는 제국주의를 돕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전……. 전쟁 준비라니요!? 오해입니다!>
<무엇이 오해라는 거죠? 일본이 뒷구멍으로 개발한 공격용 미사일이 전쟁을 대비한 것이 아니라는 건가요?>
일본이 흔하게 범하는 착각은 미국이 과거를 잊고 일본을 우방으로 여긴다는 것.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일으킨 만행을 기억하고 있다. 단지, 일본이 공산 진영의 확장을 막는 데 필요하기에 우호적인 자세를 보였을 뿐이다.
중국의 확장을 막기 위한 도구로 일본이 유용하지만, 지금처럼 일본의 불법행위가 만천하에 드러나면, 미국도 마냥 일본 편을 들어 줄 수 없다.
<미사일 개발은 적 공격을 원점 타격하기 위한 자위 수단입니다!>
<전쟁이 발생하기 전에 선제공격하려 한다는 것이 바로 전쟁 준비입니다. 실행하면 불법 침공이고요.>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일본은 전쟁을 영원히 포기하는 소위 ‘평화 헌법’을 만들었다.
일본은 군대 자체를 보유할 수 없어, ‘자위대’라고 말하고 있다. 자위대가 할 수 있는 일은 일본을 공격하는 적을 격퇴하는 것. 해외 파병이나 선제공격은 헌법위반이다.
과거 전란이 횡행하던 일본은 미국의 보호와 평화헌법에 의해 역사상 유례없는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제국주의 일본의 영광(?)을 잊지 못하는 일본 우파는 평화 헌법을 개정해, ‘전쟁할 수 있는 보통 국가’를 만들자고 선동하고 있다.
그리고 자위권을 적극적으로 확대해 ‘선제타격은 공격이 아니라 방어’라는 황당한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하지만 이런 헛소리가 국제적으로 통할 리 없다. 갈라파고스 사고방식에 빠진 일본에서나 통용되는 주장.
<그러면 우리 일본은 적이 공격하기 전까지 참고 기다려야 한다는 겁니까!?>
<당연하죠. 세계대전을 일으킨 죄악을 생각하면, 응당 그래야 합니다.>
<…….>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패배한 전범국의 업보. 볼링튼은 작심하고 일본이 처한 국제적인 현실을 여과 없이 까발렸다.
지난 주말 통화와 너무도 달라진 볼링튼의 자세에 일본 외무장관은 대꾸를 못 하고 침묵해야 했다.
<더 할 말 없으면, 이만 끊죠.>
<잠깐만요!>
<뭔가요? 서로 바쁜 상황이니, 할 말 있으면 핵심만 말하세요.>
<미국이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외교는 웃는 얼굴로 상대방에게 총알을 날릴 수 있는 살벌한 정글이다.
정통 외교관이 아닌 슌오크 코키는 상대방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대화 중단 통보를 듣고 불현듯 깨달은 것이 있었다.
일본의 위기를 틈타 미국이 얻어 내려는 것이 있다는 걸.
<원하는 거라……. 이제 좀 감을 잡으시는군. 그런데 말입니다. 아직 일본이 처한 위기를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군요. 미합중국에 일본이 무엇을 줄 수 있는지 말하는 것이 순서 아닐까요?>
<미국 국채를 대량 매입하겠습니다!>
<우리 국채는 사고 싶다는 나라가 넘칩니다. 꼭 일본이 아니라도 팔 데 많아요.>
<그렇다면 미국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적극 투자하겠습니다!>
<오! 그거 반가운 소리군요. 일본 자본이 클린 에너지 사업에 투입되면, 일본에 부정적인 미국인의 시각도 많이 변할 겁니다. 최소 2,000억 달러 정도는 투입해야 할 겁니다.>
미국 셀든 대통령이 추진하는 중점 사업이, 태양광발전과 풍력발전 같은 신재생 에너지 분야다.
셀든은 2035년까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발전을 전면 중단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막대한 설비 투자 비용이 들어가는 상황.
일본이 2,000억 달러 이상을 신재생 에너지 사업에 투자한다면, 셀든의 정치적 입지가 강화되면서 재선 성공에도 큰 도움이 될 거다.
미국 국무장관은 슌오크 코키가 제대로 맥을 짚었다고 생각하며, 할당된 액수까지 불러 주는 친절함(?)을 보여 줬다.
<맡겨 주십시오! 그러면 중국 해군 견제는…….>
<군사적으로 움직이려면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일본이 추진 중인 전투기 개량 사업을 빠르게 추진한다든가 하는 움직임이 있어야 하죠.>
<하지만 그건 너무 고비용이라…….>
<세계 3위 경제 대국이 그 정도 돈도 없나요? 국방력 강화에 돈을 아끼니 중국이 만만하게 보는 거 아닐까요?>
국익 앞에는 피도 눈물도 없고, 우방국도 소용없다. 호주와 650억 달러에 달하는 잠수함 공급 계약을 맺은 프랑스의 뒤통수를 친 것이 미국이다.
하물며 전범국 일본은 어떠하랴?
볼링튼은 미국의 도움이 절실한 일본의 처지를 이용해, 받아들이기 어려운 강매를 요구했다. 업그레이드 비용이 전투기를 새로 구입하는 것과 유사한 수준.
슌오크 코키는 일본이 중국에 맥없이 당하면 미국의 국익에도 이롭지 않다는 걸 말하며,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고 싶었다.
<아닙니다. 전투기 개량 사업 추진하겠습니다.>
<현명한 결정입니다. 조만간 미합중국 함대가 일본 보호를 위해 움직일 겁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약속한 것, 차질 없이 지키겠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맺은 안전보장조약이 유명무실해진 지금 객기를 부릴 때가 아니다.
중국의 압박으로 일본이 더 수세에 몰리면, 미국에게 더 많은 것을 양보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감당할 수 있는 요구를 할 때 들어주는 것이 현명하다.
2.
“창수야. 이번 달도 대박이다! 매출액 25% 증가야!”
“예상보다 매출 상승이 가파르군요.”
“당연하지! 암브로시아는 합법적인 마약이야! 시간이 갈수록 매출이 오를 수밖에 없어!”
11월 29일 오전 7시, 태국에 도착한 창수는 김근홍과 만나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암브로시아가 공식 판매된 지 4개월이 다 돼 가지만, 열기가 식지 않고 오히려 강렬해지고 있다.
그리고 김근홍은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차다. 창수가 건네준 다이아몬드가 골치 아픈 일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암브로시아 재고는 어떻게 되나요?”
“아직은 넉넉하지만, 매출 추세로 보면 5개월 안에 공급 부족이 올 거야. 그 전에 생산량을 늘려야 해.”
현재 가동되고 있는 암브로시아 제조 공장은 모두 5개. 생산량이 매출보다 많지만, 판매 추이를 보면 내년 2월에 매출이 생산을 능가하고, 4월에 쌓아 놓은 재고가 소진될 가능성이 크다.
3월 말까지 생산량을 늘려야 공급 부족을 면할 수 있다. 문제는 창수가 가지고 있는 암브로시아 변환 마법진을 모두 사용했다는 것.
“3월 중순에 대규모 증설이 가능해집니다. 지금부터 공장 매입에 주력하세요. 태국에서 7개, 캄보디아 4개, 그리고 말레이시아에서 4개 정도 인수해야 합니다.”
“좋아! 공장 15개를 추가하면 당분간 공급 문제는 없을 거야!”
“그렇죠. 공급은 염려 마시고, 판매에 집중하세요.”
“흠……. 그러고 싶은데 일이 조금 꼬이고 있어.”
“예?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요?”
2023년 3월이면 기존 생산량의 3배로 늘어난다. 풀가동해 재고를 쌓으면 적어도 2023년에 공급이 달리는 일을 없을 거다.
그런데도 김근홍은 판매에 집중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일 처리가 탁월한 그가 고민할 정도면 제법 큰 문제일 터.
“중국 전투함이 일본으로 몰려가면서 동아시아로 가는 하늘길이 막혔어.”
“중국이 막은 건가요?”
“아니. 항공사들이 자체적으로 결정한 거야. 자칫 전쟁에 휘말리면 배상금으로 회사가 도산할 수 있으니까.”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발생했다. 중국이 외교부장 왕밍을 경질하면서 전쟁 결의를 보이자, 보험사들이 경기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 여파로 항공사들이 동아시아 노선 운항을 중단한 상태.
태국과 캄보디아에서 생산한 암브로시아를 한국으로 보내기 어려워진 거다.
“중국과 일본이 전쟁을 벌일 거라 예상하는 건가요?”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왜? 너는 아닐 것 같아?”
“일본에는 미군 기지가 있습니다. 중국이 미국과 충돌하려 할까요?”
중국은 창수가 흘린 정보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다. 일본의 거짓말을 밝힐 수 있는 명백한 증거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창수는 중국이 일본의 공격용 미사일 개발 사실을 강하게 추궁하지 않은 이유가, 미국의 개입을 두려워해서라고 생각했다.
중국이 일본에 강경하게 나오는 건 ‘보여 주기 쇼’일 가능성이 크다.
“지금 미국에서 일본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아. 중국이 싫지만, 일본을 응징하려는 것에 수긍하는 사람이 많아.”
“하지만 중국이 일본을 공격하는 상황에서 미군이 손 놓고 바라본다면, 셀든 대통령 탄핵 소리까지 나올 겁니다. 중국도 그걸 알기에 일본을 공격할 수 없는 거고요.”
“흠……. 네 말도 일리가 있군. 그러면 중국이 무얼 노리고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