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24장. 걸려든 사냥감을 놓칠 수 없지
2.
2022년 11월 24일 목요일, 네덜란드 최대 신문사 SMG의 편집장 롤랑 헤르난트와 아시아 담당 기자 헤이첸 하우어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편집장님, 이건 확실한 증거입니다. 추축국 일본이 세계인의 눈을 속이고 불법적인 공격 무기를 개발한 겁니다.”
“내용은 그럴듯하지만, 아직 확신해서는 안 돼. 자칫 우리가 벗어날 수 없는 큰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어.”
“일본이 공격용 미사일을 개발한 동기와 과정 그리고 개발 수준까지 모두 나와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더 확인해야 한다는 건가요?”
사건의 발단은 헤이첸 하우어의 이메일로 날아온 제보였다.
책 한 권 분량의 문서에 우시다 제작소의 진면목과 일본 정부의 기만행위가 증거와 함께 자세히 적혀 있었다.
특종을 잡았다고 생각한 헤이첸 하우어는 롤랑 헤르난트를 찾아 속보로 기사화하자고 말했으나, 편집장의 입장은 달랐다.
일본의 거짓을 밝히는 기사를 내보내면, 일본은 물론이고 배후에 있는 미국으로부터 SMG가 제재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여긴 것.
“‘누가 제보했느냐?’가 중요한 걸세.”
“제보한 사람의 노림수를 조심해야 한다는 건가요?”
“그래. 만약 이 정보가 중국에서 나온 거라면, 우리가 곤란해질 수 있어.”
“우리는 사실을 전달할 의무가 있습니다. 게다가 제보자가 중국 측이라는 근거도 없지 않습니까?”
십중팔구 중국이 흘린 정보이리라. 헤이첸 하우어는 편집장이 우려하는 것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면서도, 기사화를 강하게 종용했다.
기자가 진실을 외면하면 존재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네 말처럼 중국이 아니라 다른 소스가 있을 수 있어. 하지만 세상일 만사 불여튼튼이야. 내일까지 정보 출처가 나올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 보세.”
“예? 설마……. 아이피를 추적하실 생각인가요?”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안 됩니다! 언론사는 제보자를 보호해야 합니다! 네덜란드 신문사를 대표하는 우리가 제보자를 추적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건 SMG의 존망이 달린 문제야. 정보 출처를 확인하는 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네. 그래도 제보자를 보호하고 싶다면 방법이 한 가지 있기는 하지.”
“무엇입니까? 그게?”
“이 정보를 무시하는 걸세.”
“비겁한 선택입니다! 그리고 제보자가 다른 언론사에 정보를 넘길 수 있습니다!”
“비겁해도 폭풍에 쓸려 가는 것보다 나아. 만약 다른 언론사가 이 정보를 받는다면, 나는 박수를 치며 반길 걸세.”
“…….”
헤인체 하우어가 사력을 다해 설득하려 했으나, 편집장 롤랑 헤르난트는 요지부동이었다.
설령 특종을 놓치더라도, SMG에게 닥칠 위험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 여긴 것.
* * *
[경악! 전범국 일본! 비밀리에 공격용 미사일 개발!]
- 추축국 일본이 비밀리에 미사일을 개발해!? 미친 거 아니야!?
- 중국 말이 맞은 거군! 일본이 비밀 연구소를 만들다가 들통나니까 자폭한 거야!
- 유엔헌장에 전범국이 전쟁 조짐을 보이면, 선전포고 없이 응징할 수 있다고 돼 있어! 죽으려고 용을 쓰는 거지!
11월 25일 오후 7시, 헤인체 하우어가 일본의 거짓을 폭로하는 기사를 올렸다. 중국의 주장과 다른 점은 자세한 증거가 첨부됐다는 것.
일본이 목소리 높여 부정하던 공격용 미사일 개발이 근거와 함께 드러나자, 네덜란드인들이 격한 반응을 보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게 적지 않은 피해를 본 네덜란드인들의 묵은 감정이 폭발한 것.
- 그런데 하우어 기자가 SMG가 아니라 론데트에 기사를 올렸어. 언제 이직한 거지?
- 어제도 SMG에 올린 기사가 있어. 오늘 론데트로 간 것 같아.
- 뭐라고? 오늘 SMG를 사직한 거라고? 혹시……. 이 기사 때문일까?
- 그럴 가능성이 크지. 이런 기사는 SMG에서 올리기 어려울 거야.
론데트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신생 언론사. 사전적으로 솔직함 단호함을 의미한다. 팩트 확인만 되면, 정치적 유불리와 관계없이 기사를 올릴 수 있는 곳이다.
헤인체 하우어가 네덜란드 최대 신문사 SMG가 아니라 론데트에 기사를 올렸다는 걸 주목한 사람들은, 그 이유를 기사 내용이 가진 폭발성에서 찾았다.
그들은 이 기사가 중국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일본을 벼랑 끝으로 몰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카멜링 장관님, 네덜란드가 레드팀에 합류한 겁니까?>
<레드팀이요? 그게 무슨 말이죠?>
<네덜란드가 중국의 선전 선동에 부합해 일본을 공격하고 있으니 하는 말입니다.>
네덜란드 인터넷 언론에 올라온 기사는 곧바로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세계가 네트워크 통신망으로 연결된 세상이기에 가능한 일.
그리고 기사가 올라간 지 채 한 시간이 되지 않아, 일본 외무장관 슌오크 코키가 네덜란드 외무장관 야닉 카멜링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슌오크 코키는 업무 시간 이외에 사전 약속 없이 전화한 것임에도, 미안하다는 말 대신 ‘레드팀’이라는 도발적인 말을 사용했다.
중국 공산당과 한편이 되어 일본을 공격했다는 의미.
<이거 보시오! 코키 장관! 일본의 예의 없음은 익히 알고 있지만, 이게 무슨 무례요!?>
<무……. 무례라니, 누가 누구에게 말하는 겁니까?>
<누구긴 누구요! 당신이지! 예고도 없이 불쑥 전화를 걸어서, 뜬금없이 네덜란드를 비방하는 것이 무례가 아니면 뭐요!?>
야닉 카멜링은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벌인 전쟁범죄에 강한 반감을 품고 있는 인물이다.
슌오크 코키도 그걸 알고 기선을 잡기 위해 강하게 나갔지만, 야닉 카멜링이 더 강하게 나오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일본인의 특성이 나타난 것.
<늦은 시간 연락한 건 미안합니다. 하지만 지금 론데트가 게재한 기사는 중국의 입지를 강화하고 일본을 음해하는 것입니다.>
<커흠……. 론데트에 어떤 기사가 올라간 겁니까?>
<기사 내용을 모르는 건가요?>
<론데트는 작은 인터넷 언론에 불과합니다. 거기에 올라간 기사를 모두 파악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야닉 카멜링이 폭로 내용을 모를 리 없다. 지금 헤인체 하우어가 쓴 기사가 네덜란드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까지 강타하고 있으니까.
그런데도 짐짓 모른 척하는 건 슌오크 코키에게 돌발 상황을 안겨 주려는 노림수. 매뉴얼을 신봉하는 일본인이 예상치 못한 변수를 보고 어떤 대응을 할지 던져 본 거다.
<후……. 론데트가 일본이 공격용 미사일을 만들었다는 거짓 기사를 올렸습니다.>
<그런가요? 기사를 확인해 봐야 하겠지만, 외무부가 관여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네덜란드는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국가입니다.>
돌발 상황에 당황한 슌오크 코키는 강경한 대응을 못 하고 수세적인 모습을 보였다.
일본 외무장관의 약세를 파악한 야닉 카멜링은 언론의 자유를 내세우며 네덜란드 정부의 개입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 기사는 일본과 네덜란드 양국의 우호를 해치는 악질 거짓말입니다! 네덜란드 정부가 방치한다면, 중국 편에 섰다는 비판을 받을 겁니다!>
<중국 편에 선 건 일본이지요. 말로는 중국을 비판하면서 실리를 챙겨 왔으니까요. 요새 중국과 관계가 틀어졌나 본데, 다른 나라 끌어들이지 말고, 스스로 해결하기 바랍니다.>
<말도 안 되는 억측입니다!>
<억측인지 아닌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지요. 그리고 론데트의 기사가 거짓이라고 생각한다면, 증거를 모아 법적 조치를 취하세요. 충고를 더 하면, 우리 네덜란드 사법부는 무고에 대해 매우 엄격합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만 끊죠.>
- 뚝!
<여……. 여보세요! 카멜링 장관! 여보세요!>
상대방의 페이스에 말렸다고 생각한 슌오크 코키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으나, 야닉 카멜링은 노련한 정통 외교관이다.
미국과 중국이 치열한 무역 전쟁을 치르는 상황에서, 일본이 중국과 은밀히 협력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경제 공격을 당하는 사이, 한국이 보유했던 중국 시장 지분을 일본이 가로챈 것이 대표적인 예다.
야닉 카멜링은 낙하산 외무장관 슌오크 코키를 가지고 놀면서, 냉엄한 국제 외교의 쓴맛을 보여 줬다.
그리고 덤으로 론데트를 고발할 수 있으면 해 보라는 조롱을 남기고, 매몰차게 전화를 끊어 버렸다.
3.
“총서기님, 네덜란드 언론에서 일본의 공격용 미사일 개발을 폭로했습니다.”
야닉 키멜링이 일본 외무장관을 엿 먹이던 시간, 중국 베이징 비밀 처소에서 단잠을 자고 있던 공산당 총서기 시쩌뚱에게도 소식이 보고됐다.
“뭐라고? 네덜란드? 누가 시키지 않은 짓을 한 거야?”
“그건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미친 짓을 한 놈이 누구인지! 당장 색출해!”
잠이 덜 깬 것일까? 시저뚱은 보고를 올리는 중앙판공청 주임 장슈보에게 역정을 냈다.
중국 공산당 중앙판공청은 비서실과 경호실을 통합한 역할을 하며, 통신 보안과 정책 조절 기능도 가지고 있어, 중국에서 실세 기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앙판공청을 총괄하는 장슈보는 시쩌뚱의 최측근으로 평소 대우가 나쁘지 않았다. 지금처럼 대놓고 힐난하는 건 이례적인 일.
“명 받들겠습니다! 그런데 총서기님, 일본의 거짓을 폭로한 것이 우리에게 유리한 일 아닐까요?”
“쯔쯔쯔. 이보게 슈보, 자네는 유능한 인재지만, 아직 정치에 서툴러.”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 우리에게 남은 최대 과제가 무엇인가?”
“내년 3월에 열리는 전인대(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총서기님께서 국가주석도 연임해, 14억 중국 인민을 영도하시는 겁니다!”
중국은 독재자의 출현을 막기 위해 5년 임기 총서기와 국가주석을 2번 이상 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그러나 시쩌뚱은 정적 숙청과 대미 무역 전쟁이라는 카드를 사용해, 지난달 열린 제20차 전대(전국대표대회)에서 총서기 3선 연임에 성공했다.
이제 남은 건 2023년 3월에 열리는 전인대에서 국가주석에 3연임 해, 완벽한 독재 체제를 구축하는 것.
“맞아. 나 없이 중국 공산당과 인민은 생존할 수 없어. 그런데 돼지 같은 놈들이 류커창을 국가주석으로 밀고 있단 말이야.”
“예!? 그런 불경한 일이 있었습니까?”
장슈보가 나는 새도 떨어트리는 권력자지만, 공산당 상무위원 7인은 천외천이다.
1인자 시쩌뚱과 2인자 류커창이 벌이는 기 싸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
“류커창 패거리가 하는 말이, 총리 3선이 불가능하니, 국가주석을 양보하라는 거야. 그게 말이 돼?”
시쩌뚱이 권좌에서 물러나지 않자 파트너이자 정적인 류커창의 처지가 애매하게 됐다.
중국 헌법상 총리 3선이 불가능하도록 명문화돼 있기에, 류커창이 은퇴하거나 다른 자리로 이동해야 한다.
시쩌뚱은 류커창에게 서열 3위 전인대 상무위원장(국회의장)을 맡으라고 권했으나,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게다가 파트너의 계급을 강등하고 권한을 깎는 것이 상도의(?)에 어긋난다는 생각을 가진 상무위원이 여럿 존재한다. 그들의 대안은 류커창에게 국가주석 지위를 주자는 것.
시쩌뚱의 권력이 강하다 하더라도, 상무위원 다수의 중론을 무시할 수 없는 일. 대놓고 표현은 못 하고 울화가 치미는 상황이다.
“절대 불가합니다! 지구에 태양이 하나이듯! 대중국의 영도자는 총서기님 한 분뿐입니다!”
“맞아! 국가주석을 절대 양보할 수 없어! 그래서 실적이 필요한 거야! 내 지도력을 감히 의심 못 하게 할 확고한 실적!”
“총서기님 말씀이 옳습니다. 이번 기회에 일본을 공격해 댜오위다오(조어도)를 탈환하는 것이 어떨까요?”
“아니야! 댜오위다오 정도로는 안 돼! 더 거대한 실적이 필요해!”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리는 건 시쩌뚱이 즐겨 사용하는 수법. 이번에도 국가주석 3연임을 위한 이벤트가 필요하다.
장슈보는 일본이 실제 지배하고 있는 조어도(센카쿠 열도)를 점령하자고 건의했다.
하지만 시쩌뚱은 조어도로 만족하지 않았다.
영구 집권을 꿈꾸는 독재자가 노리는 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