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평행우주 독식-76화 (76/200)

76화 24장. 걸려든 사냥감을 놓칠 수 없지

1.

플로리다 상원 의원 산체스를 설득한 창수는 영업 이사 모리스가 컨트롤할 수 있는 열성팬 20명을 추가로 초대해 개량한 볼트22를 기증했다.

이번에는 창수가 직접 나서지 않고 모리스가 암브로시아 판매 계획을 설명했다. 20명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것은 당연한 수순.

창수는 암브로시아 북미 론칭 실무 업무를 모리스에게 맡기고 기타 일정을 소화한 뒤, 태국으로 이동했다.

“선배님, 피곤해 보이시네요. 여친들 건사하기에 슬슬 기력이 달리는 건가요? 하긴 내일모레면 50대에 접어드는 양반이, 20대 청춘 체력을 감당하기 어렵겠죠.”

“시끄러워, 인마! 여친들이 아니라, 바로 너 때문에 내가 피곤한 거야!”

11월도 10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나이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리라. 하지만 49세에서 50세로 넘어가는 상황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평소라면 가볍게 넘길 농담에 김근홍이 까칠하게 반응했다.

“예? 저 때문이라고요? 제 능력을 과대평가하시는군요.”

“뭘 과대평가했는데?”

“선배님 나이 먹는 것과 신체적 노화를 제가 조절할 능력은 없습니다.”

“어쭈! 깐죽거리고 있네! 네가 일거리를 왕창 밀어준 걸 말하는 거야! 암브로시아 때문에 여친들하고 조촐한 파티 하기도 힘들어!”

김근홍은 태국을 포함한 동남아시아는 물론이고, 중동과 유럽 암브로시아 판매를 총괄하고 있다.

만나는 인물들이 고위급이고, 지역별로 처리해야 할 일도 많아 심신이 피곤해진 상황.

여친들과 함께 보낼 시간이 빠듯한 데, 여친 때문에 기력이 달린다는 창수의 말은 밉상스러운 야유이리라.

“일에 과부하가 걸리면, 서포트할 사람을 영입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마땅한 놈이 없어. 영악한 놈을 데리고 오면 당장 써먹기는 좋은데 뒷감당이 어려워. 멍청한 놈을 쓰면 일거리만 더 늘어날 거고.”

“그러면 속도 조절을 할 수밖에 없겠네요.”

“사업은 기세야. 몸이 힘들다고 여기서 늦추면 제 몫을 못 찾아 먹는 거지.”

김근홍은 암브로시아의 세련되고 깊은 맛을 직접 보자마자, 초대박 아이템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봤다.

본래 간단하게 조언자 정도로 머무를 생각에서, 암브로시아 사업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게 된 건 성공 가능성을 높게 봤기 때문이다.

김근홍의 예상대로 암브로시아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국가 기간산업급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조금도 허투루 시간을 낭비할 수 없는 일.

액셀러레이터를 최대한 밟아 속도를 내야 한다는 걸 경제 전문가의 감각이 알려 주고 있다.

“암브로시아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장거리 마라톤의 초입이에요. 너무 힘 빼지 마시고, 천천히 가시죠.”

“암브로시아보다 더 대단한 아이템이 있다고? 커커커. 역시 너는 황당한 놈이야.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 많아도 암브로시아를 제대로 성공시키는 것이 중요해.”

“기반을 튼튼히 다져야 하는 건가요?”

“암브로시아는 네가 본격적으로 얼굴을 드러낸 첫 번째 사업이야. 나 역시, 오랜만에 양지로 얼굴을 내미는 사업이고. 앞으로 우리가 어떤 사업을 더 할지 모르지만, 여기서 어중간한 상태가 되면, 다음번에 성공할 확률이 대폭 낮아져.”

“음…….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무리가 되더라도 선배님이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김근홍의 말이 옳다. 암브로시아가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는 것은 효능 때문만이 아니다.

마땅한 경쟁 상대가 없다는 것, 그리고 의도치 않은 바이럴 마케팅이 SNS와 인터넷을 타고 빠르게 퍼졌기에 가능한 거다.

다른 사업을 벌일 때, 지금처럼 행운이 함께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손쉬운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최대한 성과를 일구어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창수는 김근홍의 각오에 속으로 박수를 보내며, 나이를 놀려 먹은 것에 약간 미안한 마음을 느끼게 됐다.

“조금만 더 고생하면 가닥이 잡히겠지. 그건 그렇고 창수야, 너 금 얼마나 가지고 있니?”

“비상용으로 조금 모아 놓고 있습니다.”

“얼마 정도? 500kg은 되는 거야?”

“그 정도는 있죠.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금을 찾는 사람이 있나요?”

“대만에서 난리 났다. 사실 진짜 골치 아픈 건 암브로시아가 아니고 금 구해 달라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야.”

김근홍이 상대하는 고객 중 50%가 중국 홍콩 대만 부유층이다.

암브로시아 관련 일을 하면서도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부담 없는 수준의 거래를 이어 왔다.

그런데 최근 대만과 연관된 사업을 하는 중국 부유층에서 금을 찾는 사람이 증가하고, 별 움직임이 없던 대만 부유층까지 김근홍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

일 처리가 정확하고 빠르기로 소문난 김근홍이지만, 밀려오는 고객들의 요구를 모두 충족하기 어려운 상황.

“대만이요?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요?”

“월초에 일본에서 폭발 사고 난 거 알고 있지?”

“그럼요. 알고 있죠.”

“그 일 때문에 중국하고 대만 관계가 급격히 나빠졌어. 일이 꼬이면 대만 해협에서 무력시위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어.”

“예? 일본에서 벌어진 일로 중국과 대만이 다툰다고요?”

“일본이 폭파 용의자로 공장장을 지목했는데, 그 사람이 홍콩에서 선전시로 넘어가다가 죽었거든. 일본은 중국을 테러 배후로 지목하고, 중국은 일본 자작극이라고 맞서고 있어.”

창수가 깔아 놓은 밑밥이 제대로 작동했다.

일본은 오노자와 소스케가 중국의 사주를 받고 미사일 개발 정보를 빼돌리면서 연구소를 폭파했다 믿고 있다.

대외적으로 미사일 개발을 숨기면서, 중국 정부가 오노자와 소스케를 사주해 대규모 테러를 일으켰다고 주장하는 상황.

반면, 뜬금없이 테러 배후로 지목된 중국은 오노자와 소스케가 가지고 있던 미사일 개발 정보를 일부 사용해, 역공에 나섰다.

전범국 일본이 비밀 연구소를 설립하고 미사일을 개발했다는 것. 양심에 가책을 느낀 연구소장이 반기를 들자 살해하고,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자작 테러를 벌였다는 것이 중국의 주장이다.

“그러면 중국과 일본이 싸워야 하는 것 아닌가요? 대만에 왜 불똥이 튄 거죠?”

“테러 공범이 중국계 미국인 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했는데 행방이 묘연해. 일본에서는 중국이 비밀리에 빼돌렸다고 말하고 있지. 중국에서는 공범이 여객기를 타고 홍콩으로 온 뒤에, 대만 여권을 사용해 미국으로 도주했다고 말하고 있어. 대만이 일본의 자작극에 협조했다고 여기고, 응징하겠다고 나서는 거야.”

“그건 논리의 비약 아닌가요? 대만 여권을 사용했다는 것이 대만 정부가 관여했다는 증거는 아니잖아요?”

“맞아. 하지만 대만을 족치려고 벼르고 있던 중국에 좋은 구실이 되는 거야.”

‘흠……. 중국이 중국 한 거네.’

비밀 연구소 폭발 사건을 일본과 미국이 중국을 공략하는 데 이용하리라는 건 이미 예측했었고, 또 그렇게 되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테러 배후로 몰린 중국이 그것을 역이용해 대만을 압박하는 건 예상 밖의 일.

창수가 미국에서 사업에 열중하는 동안 물밑에서 커다란 움직임이 벌어진 거다.

“대만에서 금을 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요?”

“나에게 의뢰한 사람은 모두 37명이야.”

- 척!

“그 사람들 금으로 만족시키기 어려울 겁니다. 이거로 해 보세요.”

중국이 대만 해협에서 무력시위를 넘어 전투를 벌이면, 대만 증시가 박살나는 건 물론이고 대만 화폐가치와 채권 가치가 폭락하며 경제 전체가 마비될 가능성이 크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황금. 대만뿐만 아니라 동서고금 통틀어 정정이 불안한 국가에서 항상 대접받는 귀물이다.

하지만 창수는 금으로 대만 부유층의 갈증을 풀기 어려울 거라 말하며, 백팩에서 묵직한 자루를 꺼내 건네줬다.

“이게 뭐냐?”

“열어 보면 아실 겁니다.”

- 슥!

“헉! 이거 다이아몬드 원석이잖아!”

“예. 40캐럿에서 50캐럿 사이 원석입니다. 컬러와 투명도가 좋은 것들이니 금보다 가치가 높을 겁니다.”

“이거 최소 하나에 200만 달러는 받을 수 있어! 금하고 비교가 안 되지!”

창수는 평행우주 너머 아오툰산업 대표 언치엉으로부터 정기적으로 다이아몬드 원석을 공급받고 있다.

모두 엄지손톱보다 크다. 그중에서 슈퍼노바와 같은 대물급 원석을 S급으로 분류해 놓고, 50캐럿 이상을 A급, 40캐럿에서 50캐럿 사이를 B급으로 분류해 놨다.

창수가 김근홍에게 건넨 자루에는 B급 중에서 둥근 모양을 가져 세공하기 좋은 것들이다.

40캐럿 원석으로 20캐럿 나석과 10캐럿 나석을 만들 수 있다. 세공한 D컬러 FL급 20캐럿 다이아몬드의 가격은 300만 달러에서 700만 달러.

다이아몬드에 조예가 깊은 김근홍은 창수가 건네준 다이아몬드 원석 가격이 개당 수십억에 달한다는 걸 바로 알아봤다.

“자루 안에 모두 100개가 들어 있습니다. 선배님에게 우호적인 사람들에게 적당한 가격에 매각하세요.”

“100개로 숫자를 맞췄어? 그러면 이런 걸 더 가지고 있다는 거야?”

“당장은 아니지만, 추가로 구할 수 있습니다. 더 필요하세요?”

“물량이 충분하면, 절반은 원석으로 매각하고 절반은 세공해서 나석으로 판매하는 것이 좋아. 그래야 제값을 받을 수 있어.”

“그 방법은 좀 곤란한데요. 세공하는 과정에서 출처가 드러나면, 득보다 실이 많습니다.”

“걱정하지 마. 실력 있는 세공사들과 개별적으로 접촉할 거니까. 다이아몬드 원석 출처가 너라는 걸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야.”

“알겠습니다. 비밀 유지가 된다면, 세공해서 파는 것이 낫죠.”

슈퍼노바와 같은 초대형을 제외하고 다이아몬드 원석은 제값을 받기 어려운 시장구조를 가지고 있다.

김근홍은 원석의 부가가치를 높이면서 동시에 원석을 판매할 때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절반을 세공한 뒤 판매하자고 말했다.

문제는 다이아몬드 판매에 연관된 사람이 많아지면, 창수의 존재가 드러날 수 있다는 것.

보석업계에 탄탄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김근홍은 비밀 유지에 문제가 없도록 만들겠다고 말했다.

일 처리에 허점이 없고 치밀한 김근홍의 능력을 잘 알고 있는 창수는 비밀을 지키겠다는 말을 믿고 받아들였다.

“다이아몬드 원석이 있으니, 암브로시아에 집중할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슈퍼노바보다 더 큰 원석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것도 이번에 매각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일단 올해 안에는 판매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내년에 판매한다고 해도 돈으로 받지 않을 겁니다.”

“공짜로 준다는 건 아닐 거고. 돈이 아니면, 무엇을 받을 거야?”

“사업권이나 정치적 영향력으로 교환해야죠. 돈은 암브로시아로 충분히 벌 수 있으니까요.”

초대형 다이아몬드 원석 판매는 창수에게 큰 부를 가져다줬다. 그러나 상도를 지켜야 한다.

카타르퍼스트 대표 자미르가 33억 달러에 달하는 거금을 주고 3,527캐럿 다이아몬드 슈퍼노바를 매입한 것이 3월이다.

창수는 카타르가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 원석 보유국이라는 타이틀을 최소한 1년은 가지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암브로시아를 성공적으로 론칭한 지금, 돈에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

4,000캐럿이 넘는 다이아몬드 원석은 돈이 아니라 창수의 앞날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교환해야 한다.

“껄껄껄. 무슨 말인지 알았다. 네가 원하는 걸 셈으로 치러 줄 고객을 물색해 둘게.”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척하면 척이다. 김근홍은 창수가 무엇을 원하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돈에 초탈한 VVIP급 고객들을 상대해 본 경험자이기에.

‘급한 일은 대충 정리한 것 같은데, 중국이 잔머리를 굴리는군. 그대로 놔둘 수 없지.’

창수는 대만을 한심하게 생각했다. 압도적인 화력과 미국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부정부패가 만연해 공산당에게 중국 본토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하고 ‘중화의 중심’이라는 망령된 꿈을 꾸는 것도 마땅치 않게 여겼다.

그러나 창수가 구상한 건 중국과 일본이 대립하는 것.

중국이 대만을 압박하는 사이, 일본이 빠져나가는 걸 막아야 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