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23장. 판을 키우다
6.
“대표님! 기대 이상의 성과가 나왔습니다!”
“잘됐군요. 볼트23 성능 향상이 어느 정도인가요?”
11월 5일 오후 6시, 월래스를 다시 찾은 창수는 격하게 들뜬 앤드류의 모습을 보게 됐다.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홉고블린 힘줄로 만든 활시위가 제 역할을 한 것이 확실하다.
창수는 두서없이 말하는 앤드류의 습관을 파악하고,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직설적으로 물었다. 시간은 소중하니까.
“어……. 그것이…….”
“자세한 건 제가 말씀드릴게요. 운동에너지가 2,187J이에요. 신소재를 사용하기 전보다 133% 위력이 상승했어요.”
“제식소총보다 위력이 강해진 거군요.”
앤드류가 전달 내용을 정리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자, 에린이 나섰다.
홉고블린 힘줄을 사용한 볼트23의 위력이 창수가 사용하는 AK-201보다 400J 이상 강하다고 한다.
“맞아요. 연사력만 높이면 화약 무기를 능가하는 냉병기가 만들어지는 거죠.”
“활시위를 교체한 것으로 그런 위력이 나올 수 있는 건가요?”
위력이 상승할 거라 예상은 했으나, 133%는 너무 과하다. 창수는 어떤 작동 원리가 볼트23의 파괴력을 급상승시킨 것인지 알고 싶었다.
“활대가 가진 힘을 온전히 사용하게 된 것이 크죠. 그리고 신소재로 만든 활시위 자체 탄성도 운동에너지 상승에 큰 역할을 했어요.”
“활시위만으로 상승하는 운동에너지가 얼마인가요?”
“볼트22 활시위를 신소재로 교체하니 운동에너지가 651J이었어요. 수치로는 233J 상승한 거죠.”
‘오! SP-5와 맞먹는 위력이군!’
러시아 특수부대에서 사용하는 SP-5 저격탄의 운동에너지가 680J이다. 활시위를 홉고블린 힘줄로 교체한 것만으로 실전에서 사용하는 아음속 총탄의 위력에 근접하게 됐다.
이건 볼트22 활용도가 대폭 상승했다는 걸 의미한다.
“활시위 100자루 교체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이틀이면 될 거예요.”
“그러면 개발팀 전원 일요일과 월요일 휴식하고, 화요일부터 교체 작업을 시작하세요.”
“예? 100개를 한꺼번에 교체한다고요? 신소재가 대량 생산되는 건가요?”
“자세한 정보는 서로 모르는 것이 좋습니다. 확실한 건 화요일 작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신소재를 공급한다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볼트22를 멋진 녀석으로 바꾸어 놓을게요.”
활대를 만들 와이번 날개뼈는 수량이 적어 볼트24를 위해 남겨 둬야 한다. 반면, 홉고블린 힘줄로 만든 활시위 재료는 물량에 여유가 있다.
창수는 확보한 볼트22 100자루를 모두 업그레이드하기로 결정했다.
에린은 뜻하지 않은 창수의 지시에 당황하면서도 기쁘게 받아들였다.
업그레이드한 볼트22가 아음속 소총에 버금가는 위력을 가질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 *
11월 12일 토요일 오전, 월래스 내부에 마련된 사격장에 볼트22의 골수팬들이 모였다.
- 볼트22 성능을 개선했다는데 얼마나 좋아졌을까?
- 위력이 10% 정도 상승했을 것 같아.
- 10%? 너무 과한 기대 아닐까? 지금도 볼트22는 냉병기 수준을 까마득히 넘은 괴물이야.
- 네 말이 맞아. 하지만 앤드류가 소소한 개선을 하고 우리를 초대할 것 같지는 않아.
- 흠……. 그 말도 일리가 있네.
초대받은 사람은 모두 15명. 월래스가 재정적인 어려움에 몰렸을 때, 자금을 지원해 준 열성 팬들이다.
이들 중 대다수가 월래스를 창립한 앤드류와 개인적인 친분을 가지고 있다. 허풍과 쇼맨십을 모르는 앤드류가 실없이 자기들을 초대할 리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볼트22 성능을 대폭 향상하는 것이 쉬운 일일까?
골수팬들은 엇갈린 생각을 가지며 업그레이드한 볼트22의 진면목을 기다렸다.
- 저벅! 저벅!
11시가 되자 앤드류와 모리스를 비롯해 월래스 관계자들이 사격장에 들어왔다.
열성팬들의 눈이 앤드류에게로 집중됐다. 두서없는 말에 답답함이 느껴지지만, 그들의 눈에 월래스를 대표하는 인물은 앤드류다.
요즘 모리스가 영업에서 빼어난 활약을 벌인다고 해도 앤드류의 영향력을 넘을 수 없다.
일부는 모리스를 고깝게 여기기도 했다. 자기들과 같은 처지에서 월래스의 핵심 인물로 성장한 것에 시기심이 발동한 것.
“안녕하십니까? 후원자 여러분. 저는 월래스 대표이사 김창수입니다.”
- 웅성! 웅성!
골수팬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앤드류가 아니라 낯선 동양인이 접객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창수가 부채를 떠안고 월래스를 인수한 뒤, 2,000만 달러에 달하는 금액을 투자한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직접 대면한 것은 오늘이 처음. 창수가 지분 80%를 가진 대주주이자 대표이사로 마땅한 권리를 행사함에도 낯설게만 느껴졌다.
“김창수 대표님, 앞으로 월래스 경영 전면에 나설 예정인가요?”
“아닙니다. 연구 개발과 생산은 지금처럼 앤드류 이사님이 주도할 겁니다. 영업은 모리스 이사님이 담당할 거고요.”
“오늘은 예외적인 거군요.”
“그렇습니다. 볼트22에 괄목할 만한 성능 개량이 있어, 후원자 여러분을 모신 겁니다.”
골수팬들이 우려하는 건 리버스드로우 컴파운드크로스보우에 깊은 지식이 없는 외부인(?)이 월래스 경영에 깊숙이 개입하는 거다.
비전문가가 의욕이 앞서 잘못된 길을 고집하면, 월래스가 회생 불가능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창수는 그들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파악하고, 간섭을 최소화한다는 걸 천명했다.
“볼트22가 얼마만큼 강력해졌나요?”
“먼저 실사격을 해 보시지요. 구체적인 수치는 그 후에 발표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실제로 사격해 보면 윤곽이 나오겠죠.”
활시위를 홉고블린 힘줄로 교체했을 뿐인데, 볼트22의 위력은 56%나 증가했다. 이걸 지금 말하면, 허풍으로 들릴 수 있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실제 경험을 주는 것이 골수팬들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름길이다.
- 쉐에엑!
- 팍!
- 원더풀! 볼트22가 이렇게 강력하게 될 줄 몰랐어!
- 파괴력이 최소 50%는 상승한 것 같아!
- 껄껄껄! 살아생전에 이런 걸작을 보게 될 줄이야!
- 나도 그래. 볼트22가 한계라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월래스의 기술력을 과소평가한 거야.
골수팬들은 업그레이드한 볼트22를 직접 사격한 뒤, 이구동성 감탄사를 연발했다. 준전문가답게 볼트22의 파괴력이 대폭 상승했다는 걸 바로 알아차린 것.
“모두 사격을 마치셨으니, 구체적인 수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개량한 볼트22의 속도는 초당 193m입니다. 사용하는 화살 무게가 35g, 운동에너지 651J로 위력이 56% 상승했습니다.”
“웬만한 권총 위력을 가뿐히 넘는 거군요.”
“특수하게 제작된 권총 이외에 적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아음속 소총과 유사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사력을 개선하는 연구가 끝나면 군납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군요.”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산체스 의원님.”
골수팬을 대표하는 인물은 로드리고 산체스 플로리다 상원 의원이다. 올해 나이 43세로 소장파지만, 재선에 성공해 정치적 입지를 다져 가는 전도유망한 정치인.
히스패닉 계열임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공화당 소속인 그는 총기와 활을 두루 사랑하는 애호가로 무기에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산체스는 볼트22의 개선된 성능과 미래 가능성으로 미루어, 전투용 병기로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자신을 포함해서 열성 팬을 모은 이유가 미군에 볼트22를 판매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이건 영업 이사 모리스와 유사한 인식.
하지만 창수는 단호하게 군납을 부정했다.
“어떤 문제가 있는 거죠? 가격이 걸림돌인가요?
“그렇습니다. 제작 비용이 1만 달러를 훌쩍 넘어갑니다. 군에서 시험 삼아 몇 자루를 구매할 수 있어도, 의미 있는 매출은 어렵습니다.”
“원가를 낮출 방법은 없나요?”
“사용되는 소재가 워낙 고가라 생산원가를 낮추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소재를 조달하는 데 한계도 있죠.”
“소수에게 고가로 팔 수밖에 없군요.”
“저렴한 재료를 개발하기 전까지 명품 전략으로 가야 합니다.”
사실 업그레이드한 볼트22는 명품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있다.
재장전 시간이 6초에 불과하면서, 운동에너지 2,187J에 달하는 화살을 발사하는 볼트23이 이미 개발됐기 때문이다.
더구나 재장전 시간을 4초 이하로 줄이는 볼트24가 개발되면, 볼트22의 가치는 3순위로 밀리게 된다.
그런데도 창수가 볼트22를 명품이라 부르며 추켜세우는 것은 노림수가 있다는 걸 의미한다.
“오늘 사격에 사용한 5자루를 10만 달러에 구매하겠습니다.”
“말씀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지속적인 테스트를 위해 남겨 둬야 합니다.”
“음……. 그렇군요. 그러면 언제 판매를 시작할 예정인가요?”
산체스의 미간이 조금 꿈틀거렸다. 창수의 거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무의식적으로 드러난 것.
“당분간 판매는 없습니다.”
“그러면 개량한 볼트22를 사용하려면, 매주 여기로 와야겠군요. 항공사 마일리지가 빠르게 쌓일 것 같네요.”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산체스 의원님을 비롯해 오늘 모이신 후원자 전원에게 업그레이드한 볼트22를 선물할 거니까요.”
“예!? 무료로 준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고, 절실한 쪽이 을이 되는 것이 세상 이치.
산체스는 창수가 ‘더럽게 비싸게 군다’고 속으로 욕하면서도, 수시로 월래스를 방문할 생각을 가졌다.
3,600km가 넘는 거리,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는 시간만 4시간이 걸리는 수고를 기꺼이 받아들일 만큼, 강화한 볼트22의 매력에 푹 빠진 거다.
그런데 창수가 2만 달러에도 팔지 않겠다고 버티던 명품(?)을 공짜로 준다고 한다. 조금 전까지 가졌던 짜증과 서운함이 봄날 눈 녹듯 사라졌다.
- 와! 내 이름이 새겨져 있잖아!
- 어! 정말이네!
- 캬! 대표가 바뀌더니 확실히 일 처리가 다르군!
- 어허! 목소리 좀 낮춰. 앤드류가 듣잖아.
- 들으면 어때.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데.
창수는 업그레이드한 볼트22를 그냥 주지 않았다.
산체스를 포함해서 15명의 이름을 각자의 볼트22에 새겨 넣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받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한 연출.
창수를 칭송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리라.
- 쒜에엑!
- 팍!
사격장에 마련된 표적은 모두 5개, 15명은 선물 받은 볼트22를 들고 사격 연습에 들어갔다.
“출출하실 건데, 점심 먹고 하시죠. 사격장은 오후 6시까지 개방하니 시간은 충분합니다. 스태프들 휴식 시간도 필요하고요.”
현존하는 최강의 냉병기를 손에 넣었다고 생각한 골수팬 15명. 무아지경에 빠져 사격에 몰두한 지 90분이 지났을 때, 창수가 점심시간을 알렸다.
볼트22에서 발사되는 강력한 화살에 매료된 사람들이 아쉬움을 느꼈지만, 창수의 말에 군말 없이 따라야 했다.
이미 오후 1시가 넘었다, 사격장에서 안전 관리 하고 화살 보급을 도와주는 월래스 직원들이, 점심 먹고 휴식을 취할 시간이 필요하다.
- 와! 이거 맛이 왜 이리 좋아!
- 헐! 정말 기가 막힌 맛인데!
- 혹시……. 마약 들어가 있는 거 아니야?
창수가 마련한 음식을 접한 골수팬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회사 로비에 마련된 뷔페식 음식이 겉으로 보기에 평범했으나, 맛을 보니 차원이 달랐던 것.
- 어허! 사람들 촌스러워서! 여기에 암브로시아가 들어가 있는 거야!
- 맞아. 촌티 팍팍 내네. 암브로시아 처음 먹어 보나?
- 그렇게 평소에 시골에만 있지 말고, 도시로 나와서 사람들 만나고 다녀야 하는 거야.
15명 중 5명의 반응은 달랐다. 그들은 평범한 음식을 특별하게 만드는 비약의 정체가 암브로시아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